하나님의 자기소개
출애굽기20:1-6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인 출애굽기 20장은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으로 유명한 장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시면
우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하나님 자신을 스스로 소개하고 계시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계십니까?
먼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으로 소개하십니다
본문 2절 말씀 다시한번 읽겠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여러분 이 2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나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를 애굽에서 구원한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과 영광이
가장 잘 나타나는 사건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사건입니다.
온 세상 모든 만물을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 만큼 크고 광대하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일 중에 가장 큰 일을 꼽으라면
당연히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지으신 일을 꼽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본문 속에서
<나는 온 우주만물을 창조한 창조주 하나님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하시지 않으시고
<나는 너희를 구원한 하나님이다>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왜 이렇게 하나님이 자신을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시지 않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구원의 하나님으로 자기를 소개하고 계십니까?
이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스스로 생각하시기를
하나님이 하신 가장 큰 일은 천하 만물을 창조한 일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한 일이라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창조주 하나님이라 소개한 곳은 드물고
언제나 나는 너희를 구원한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즐겨 소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온 세상천지를 만드신 것보다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더 큰일로 생각하실 만큼
우리에게 모든 관심이 있는 분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온 세상을 만드신 것보다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신 것을 더 기뻐하실 만큼
우리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우선순위에 비해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관심과 우선순위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있어서는 우리가 하나님 관심의 전부인데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이 전부입니까?
하나님께 있어서 최고의 우선순위는 우리인데
우리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입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송한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내게.... 하나님은 3등입니다>란 글이 있습니다.
제가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내게 있어 1등은 하고 싶은 일이고.
2등은 해야 하는 일이고
3등은 하나님 만나는 일입니다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해야 하는 일도 다 마치고...
그 후에 여유가 있으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3등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도 하나님은 3등입니다...
내 힘으로 한 번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도와 달라고 하고...
그나마도 안 될 때 하나님을 부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3등입니다...
거리에서도 3등입니다...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내 자신이고
그 다음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며
그 다음에야 저 멀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님께 나는 1등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부르기만 하면 도와주십니다...
내가 괴로워 할 때는 만사를 제쳐 놓고 달려오십니다...
아무도 내 곁에 없다 생각 들 때는...
홀로 내 곁에 오셔서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언제나 1등입니다...
나도 하나님을 1등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만나고...
어려운 일 있을 때 제일 먼저 달려가고
고비 고비 때마다 내가 제일 먼저 손을 잡는
1등으로 가까이 계신 하나님이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게 1등이신 하나님을 나도 1등으로 모시고 싶습니다...는 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늘 우리를 1등으로 대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늘 3등으로 대해 오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1등으로 대하시는데
우리가 존귀하신 하나님을 늘 3등으로 대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서운해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우리에게 집중되어 있고
하나님께 있어서 최고의 우선순위가 우리 이듯이
우리 또한 우리의 모든 관심의 대상이 하나님이 되시며
우리의 최우선 순위가 하나님이 되었으면 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자신을 말씀을 주시는 분으로 소개하고 계십니다
본문 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가라사대>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 아래에 계속되어 지는
십계명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많은 말씀 중의 일부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신 때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신 때가 언제 입니까?
19장 1절에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지 삼개월 되던 때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이상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때 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주신 때는
시기적으로는 출애굽한지 3개월 되는 때였지만
현상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더 이상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때 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 모두를 노예로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애굽의 총리였던 요셉으로 인해 편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 왕이 등장한 후에는
노예로 고단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로 살 그 때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자고 깨도 여전히 노예일 뿐이었고,
날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들을 흥분시킬 어떤 고무적인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날마다 온 백성들이 흥분할 만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모세라는 인물이 등장한 후 백성들의 마음에는
노예생활에서 해방되는 꿈이 생겼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가나안땅에 대한
새로운 희망의 불이 붙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열 가지 재앙이 차례로 일어났습니다.
당시 얼마나 백성들의 마음이 기쁨으로 넘치고 흥분되었겠습니까?
어디 그 뿐입니까?
그 억압과 고통의 땅을 벗어나던 날 밤에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잠시 홍해 바다로 인해 절망하였으나, 홍해를 육지처럼 건넜고,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게다가 기적의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으며,
쓴 물이 단 물이 되었고,
아말렉과 맞서 승리하는 놀라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고
날마다 흥분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렇게 애굽에서 빠져나와 삼개월동안 광야를 행진했을 때
그들은 시내 광야에 도착했습니다.
이 시내 광야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서 십계명을 비롯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더 이상 애굽과 홍해에서와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던 때입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매일 먹기는 했으나,
과거와 같은 흥분되는 기적적인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반복적인 일상이 계속되었을 뿐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왜 이 때에 하나님이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이상 기적에 의지하여 살 때가 지났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말씀으로 훈련을 받고,
말씀으로 성숙해져야 할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는 큰 기쁨 속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그러한 감격이 사라지고 무덤덤한 때가 찾아 옵니다
처음 성령을 인정하고 성령의 만지심과 함께하심을 체험하면
우리의 신앙이 감격과 흥분에 휩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그러한 감격이 사라지고
감칠 맛나는 체험이 줄어들게 됩니다.
여러분 바로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나 기적 속에만 살아가기만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기쁨과 감격을 경험하고
기적을 경험했으면 그 다음에 말씀과 함께 가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사람들을 성숙하게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이 방법입니다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체험하고 성령님을 체험했으면
그 다음에 말씀이 채워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디모데전서 4장5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까?
성령이 주시는 은사와 기적을 맛보았습니까?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에게 말씀이 필요한 때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말씀을 사모하는 풍성한 말씀의 사람으로 세워지길 원합니다.
세 번째로 오늘 본문 속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오늘 본문에만 나오는 표현이 아닙니다.
성경곳곳에 하나님을 질투하시는 하나님
또는 투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소개가 많이 나옵니다
여러분 사실 하나님께는 질투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단어입니다
질투라는 단어에는 아무래도 지극히 인간적인 냄새가 나고
또 천박한 이미지가 풍겨 납니다
질투라는 단어는 하나님께 전혀 어울리는 단어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니라>
하는 말씀을 먼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질투라는 지극히 천박하고 인간적인
단어를 가지고 자신을 소개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질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질투를 하려면 질투할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 자격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어야만 질투가 가능합니다.
사랑이 있어야만 질투할 자격이 주어진다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질투할 자격이 충분히 있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대단히 질투하실 만큼
엄청나게 우리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이외의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꼴(?)을 차마 보시지를 못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처럼 질투하듯이,
그처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로서는 이미 충분히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이 정도가 아닙니다.
여러분 혹시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가 이웃집 고양이와
친하게 지낸다고 질투하는 사람 보신 적 있으십니까?
자기가 기르는 고양이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사람은 없습니다.
질투를 하려면 그 질투의 대상이
자기와 같은 수준의 인격이 있는 대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질투의 대상으로 보신다는 얘기는
사실은 우리가 그런 존재가 아니지만
하나님은 질투 할 만큼 우리를 하나님과 비슷한 레벨의
고급스런 존재로 대접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 모든 피조물 중에
오직 우리만 하나님의 인격적인 사랑의 대상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있는
우리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은 당연히 질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하나님께 50%의 마음이 가있고
다른 것에 50%의 마음이 가있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의 마음이 80% 90%
심지어 95%가 하나님께 가 있다 해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만약에 어떤사람이 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자기에게 50%의 마음이 있고
다른 남자에게 50%의 마음이 가 있다면 화 나겠습니까? 안 나겠습니까?
당연히 화 나겠지요
그러면 많이 양보해서 남편에게 95% 있고
다른 남자에게 5%가 있다면 기분이 좋습니까? 안 좋습니까?
그래도 기분이 안좋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내와 남편은 100% 모든 마음이 서로에게 가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우리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표현한 곳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신랑이고 우리는 신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랑되신
예수님을 50%의 마음으로 사랑한다며 기뻐하시겠습니까?
95%의 마음으로 사랑해도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햐면 하나님이 먼저 온 마음을 다해
100%의 마음으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은
하나님이 먼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신 것처럼
우리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결단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며, 우리를 질투하시듯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우리가 최고이듯 우리의 최고가 하나님이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은혜의 기쁨과 기적의 감격을 경험한 후에 말씀과 함께가게 하시고
하나님이 온맘 다하여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온맘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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