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단이 주는 기도의 교훈
출애굽기30:1-10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 지어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 가운데서 성전의 역할을 한 것이 성막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는 성막 기구중 하나인 분향단을 만들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 분향단은 가로 50센티 세로 50센티 높이 1미터 정도의 크기로
아카시아 나무의 일종인 조각목으로 만듭니다
분향단의 향 연기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분향단에서 사르는 향을
성서의 기자들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연결을 시킵니다.
계시록 5: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8절 마지막 부분 보시면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요한은 성도들의 기도와 향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분향단의 향 연기는 성도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는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기도의 능력(응답)을 체험하고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10절 말씀을 보시면
분향단 네 모퉁이 붙어 있는 향단 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이 뿔은 능력을 상징합니다.
제사들 지낼 때 짐승의 피를 뿌리고
짐승을 태우는 번제 단에도 네 뿔이 있는데
이 번제단의 뿔은 구원의 능력, 보혈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분향단의 네 뿔은 무엇을 상징하겠습니까?
분향단은 기도와 관계되어 있으니
당연히 분향단의 네 뿔은 기도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의 능력,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분향단은
지성소 안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 즉 증거궤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본문 6절 말씀을 보시면 <그 단을 이 단은 분향단을 의미합니다
분향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성막에 있는 기구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증거궤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바로 분향단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과 우리의 거리가 가장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게 됩니다
그런데 이 기도의 능력은 아무나 체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아무나 기도를 한다고 해서 하나님과 가까워 질수는 없습니다
한 여자 청년이 자기 남자친구는 교회에는 다니지 않지만
자기가 교회 다니는 것을 알고는
매일 자기를 위해 기도한다면서, 착하지 않으냐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이 맞는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까?
얼핏 생각하면 맞는 말 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의 형식을 갖췄다고 해서 전부 기도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여자 청년의 남자 친구의 경우는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아무나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자기 여자 친구를 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하나님을 만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무나의 기도를 들으시지 않기 때문 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기도를 통하여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고
어떤 사람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가까워 질수 있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분향단의 위치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막 동쪽에 있는 문을 통과해서
성소안에 있는 분향단까지 나아오려면 사람들이 거치는 여러 과정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과정들을 살펴보면 어떤 사람이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 갈 수 있는가를 알게 됩니다
먼저 성막은 세마포로 된 울타리가 있는데
이 울타리 동쪽에 나 있는 유일한 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 문을 통과하면 성막 마당 뜰에 있는 번제단을 만나게 됩니다.
이 번제단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린 예수님
또 십자가에 흘리신 주님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대속사역과 보혈의 능력을 믿은 사람이 번제단을 통과한 사람입니다
분향단 까지 나아올려면 제일 먼저 이 번제단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물두멍을 통과해야 합니다
번제단을 지나 다음에 있는 기구가 물두멍입니다
이 물두멍은 번제를 드린 사람이 피 묻은 손과 먼지 묻은 발을 씻게 되는 곳입니다
예수 믿은 이후에도 우리가 죄로 더러워 질수 있는데
이 죄를 자백하고 깨끗케 하는 한 사람이 물두멍을 통과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소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성소 왼쪽에 떡 상이 있습니다
이 떡 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데
떡 상을 통과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힘을 얻고, 하나님 말씀 가운데 살고
말씀가운데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떡 상 맞은편 성소 입구의 오른쪽에는
금 촛대가 있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빛, 성령의 조명을 상징합니다.
이 금 촛대는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번제단을 지나 물두멍을 지나
떡 상을 지나 금 촛대를 지난 사람이 비로소 분향단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조용조용 기도하는 사람도 있고
큰소리로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때 조용조용 기도하는 사람은 소리 지르며 기도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하나님이 귀가 먼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를까?
기왕이면 좀 점잖게 믿을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소리 지르며 기도하는 것을 천박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큰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은
조용하게 기도하는 사람을 냉랭하다고 합니다.
‘이왕 믿을 거면 뜨겁게 믿어야지, 왜 저렇게 뜨뜻미지근하게 믿느냐?’고 타박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도하는데 있어서 목소리의 크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느 한쪽이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입니다.
물론 주변의 모든 사람이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기도하는데
혼자 큰소리로 기도하여 다른 사람을 방해하는 것은 곤란합니다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자기 편한 대로하면 됩니다.
기도할 때에 정작 중요한 것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이냐 기도하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사실입니다.
무릇 기도는 번제단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의 능력을 믿고 사죄의 은총을 입은 사람이
물두멍에서 날마다 자신을 성결하게 하면서
떢 상에 있는 말씀으로 힘을 얻고 그 말씀대로 살면서
금 촛대에 의한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지하여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분향단과 물두멍 떡 상과 금 촛대를 통과한 사람의
기도만이 능력 있는 기도가 되고
분향단과 물두멍 떡 상과 금 촛대를 통과한
사람의 기도만이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가까워 질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 드리는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구원을 얻고
날마다 죄를 자백하고 삶을 정결케 하고
말씀 안에 살고 성령안에서 살아가므로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8절 말씀을 보시면 제사장에게는 한 책임이 있는데
그것은 분향단의 향을 끊어서는 안 되는 책임
즉 분향단의 향을 꺼뜨리지 말아야하는 책임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 해야 합니다>
분향단의 향을 꺼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이 말을
신약의 말씀으로 옮기면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7절에 나오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이런 얘기를 듣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됩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막중한 책임을 부여하는 말씀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에게 주어진 귀중한 특권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일반 국민이 대통령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 때나 청와대에 찾아가서 ‘대통령 좀 만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고 해서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전제군주 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백성이 왕을 알현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입니다.
그런데 어떤 왕이 “앞으로 매년 1월 1일은 백성을 만나는 날로 하겠다.
그러니 누구든지 나를 만나고 싶은 백성은
매해 1월 1일에 나를 찾아오도록 해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나라에는 매해 1월 1일마다 자기의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러
온 사람들로 대궐 앞이 미어터질 것입니다.
어쩌면 일주일이나 한 달 전부터 노숙을 하면서 줄을 서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이 우리한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만일 ‘너희는 매년 1월 1일에 나한테 기도하라’라고 했으면
우리는 아무리 답답하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1월 1일을 기다려야 했을 것입니다.
1월 1일이 아닌 다른 날에는 아무리 목이 터지게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듣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라고 했습니다.
왕이 백성들에게 “너희는 아무 때나 필요하면 나를 찾아오너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만나주겠다.”라고 얘기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 년에 한 번 찾아가면 일 년에 한 번 만날 것이고,
일 년에 두 번 찾아가면 일 년에 두 번 만날 것입니다.
매일 찾아가면 매일 만날 것이고 쉬지 않고 찾아가면 쉬지 않고 만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을 하다가 자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친구에게
‘천만 원 정도는 언제든지 빌려줄 수 있으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아무 때나 얘기해.’라고 했습니다.
이런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자기의 형편이나 처지에 관계없이 천만 원 정도는
항상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야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일주일 전에만 얘기했어도 여유가 있었는데 마침 지금은 곤란하다.’라거나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융통해 보겠다.’라고 둘러댈 사람은
처음부터 이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으니까
하나님도 역시 쉬지 않고 우리 기도를 들으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얘기는 ‘내가 쉬지 않고
너희의 기도를 듣고 있겠다’라는 얘기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앞으로는 밥도 안 먹고 잠도 안자고 오로지 기도만 해야 하는
우리의 책임이 생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언제 무슨 말을 하는지
잠시도 쉬지 않고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확인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하는 기도를 넘어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 기도로 나아가야합니다>
그런데 기도에는 우리가 내 문제에 대해
주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중보기도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속의 등장하는
성막 분향단의 향을 끄뜨리지 않아야 하는 제사장의 사명은
한손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또 한손은 죄지은 인간의 손을 잡고
둘을 연결하는 중보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 본인이 전혀 기도하고 있는데도
여러분들이 건재한 이유가 여러분 모르게 다른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니면 혹시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있으면
여러분이 하고 있는 그 중보기도가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유일한 끈일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누군가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있는데
그 기도가 하나님과 그 사람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유일한 끈이라면
그 기도는 잠시라도 쉬면 안됩니다
또 여러분이 그토록 이나 기도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건재하다면 그것은 자기가 잘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중보기도 덕분입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겸손해져야 할 것입니다
삼상12장 23절 말씀에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않겠다>는
사무엘 선지자의 말이 나옵니다
여기에 보면 <기도하기를 쉬는 죄> 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에 대해서 사람들의 생각이 몇 번씩이나 바뀝니다
맨 처음 성경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을 때에는
야 사무엘쯤 되는 사람은 <기도를 쉬는 것도 죄라고 하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성경말씀은 지금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라고 하는 구나>에서
기도하기를 쉬는 것이 죄로구나>로 바뀝니다
그런데 이 삼상12장 23절 말씀을 자세히 보면
기도하기를 쉬는 것이 죄라 그렇게 하지 않고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라고 했습니다
결국 사무엘은 자기를 위한 기도를 쉬는 것을 죄라고 말하지 않고
남의 필요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것
중보기도를 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여겼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무엘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의 기도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보게 됩니다
기도를 열심히 한다는 분들의 기도를 들어보면
대부분이 남편 돈 잘 벌어오게 해주고
자식 공부 잘 하게 해주고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해달라는 것 말고는 다른 기도제목들이 없습니다
맨날 주시옵소서 만 하는데도
옆에서는 기도 열심히 한다고 칭찬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가 그 정도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나를 위한 기도에서
다른 사람을 위한 성숙한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성막은 그 자체가 이동이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번제단도 그렇고 물두멍도 그렇고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분향단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본문 4절 말씀을 보면 이 분향단을 옮기기 위해
분향단 메는 채를 끼울 수 있는 고리를 만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를 상징하는 분향단이 이동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삶의 어떤 영역이든지 기도가 필요 없는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곳에서 항상 있어야 할 것이 기도입니다
이것이 분향단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교훈입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우리의 크고 작은 모든 문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기도하므로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 가까이 설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모든 곳에서 항상 기도하게 하시되
나를 위한 기도를 넘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중보기도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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