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체험하는 신앙
욥기42:1-6
성 어거스틴 이후 시대를 풍미했던 신학자요 신앙지도자 중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의 대표작이 <신학대전>이라는 책인데
그는 이 책을 미완성으로 남겼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보완해서 완성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분이 왜 이 책을 미완성으로 남겼는지 아십니까?
스스로 책 쓰는 것을 중지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책을 잘하다가 갑자기 책 쓰는 것을 중단 했습니다
왜 그렇게 한 줄 아십니까?
그가 어느 날 예배 중에 너무나 신비한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퀴나스가 갑자기 모든 저술활동을 중지하자
레지날도라는 제자가 너무 안타까워서 항의하듯이
왜 책을 쓰다가 그만두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계시 받은 것에 비하면
내가 쓴 것은 모두 지푸라기 같아서 쓰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토마스 아퀴나스가 믿음도 없이 책을 쓴 게 아닙니다.
그는 그 책을 쓰기위해 금식하고 기도하며 최선을 다해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독교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책들을 썼습니다.
그러나 막상 주님의 성육신과 보혈의 은혜를
계시와 환상 속에서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나니까
그 글들이 너무 시시해보여서 더 이상 저술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본문 속에서 읽은 욥의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당대 최고의 의인이었습니다.
욥기 1:8 말씀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며
하나님께서도 욥을 자랑스러워하시며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욥이 오늘 본문에서 뭐라고 합니까?
본문 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이 말은 지금까지 욥이 그렇게 의로운 삶을 살았지만
사실 그의 신앙은 주님에 대해 귀로 듣기만 한 연약한 신앙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주님을 눈으로 뵙는 성숙한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십니까?
500년 만에 하나 나올 정도라는 신학자의 글이
신비한 체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당대 최고의 의인이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미숙한 신앙인이었다가
주님을 체험하고야 믿음이 성숙해집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됩니다.
사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위대한 신학서적들이
기독교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그 내용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신학사상은 나중에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수정되었습니다.
욥의 의로운 삶도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욥은 나중에 고난이 심해지자
왜 내가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괴로워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하나님의 꾸중을 듣고 나서야 신앙이 더 성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을 알기 위해 연구해도
하나님을 만나 직접 받는 계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의롭게 살아도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심지어 그런 의인도 신앙이 흔들릴 때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데레사 수녀를 아십니까?
데레사 수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베풀었습니까?
그런데 그 데레사 수녀도 고해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해 고통을 겪을 때가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마 항상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데레사 수녀가 언제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녀를 만나주실 때였습니다.
힘 있고 성숙한 신앙은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 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때
인간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놀라운 감동으로 진리를 깨닫게 해주실 때
인간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권세를 체험할 때
인간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진정한 예배와 순종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 이 체험이 약해지면 신앙이 약해지고
하나님이 다시 만나주시면 신앙이 새롭게 힘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는 신앙
하나님을 체험하는 신앙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 할 수 있습니까?
또 하나님을 만나면 어떻게 됩니까?
욥의 일생이 이것을 잘 보여줍니다.
욥은 당대 최고의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욥을 참소했습니다.
사탄은 욥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니까 의롭게 사는 것이지
만일 화를 당하면 하나님을 떠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탄에게 욥을 해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단, 욥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욥의 자녀들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욥은 전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잘 섬겼습니다.
사탄은 욥의 몸이 성해서 그런 것이라고 하며 몸을 치면
틀림없이 믿음을 배반할 것이라고 참소했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몸을 치는 것도 허락해주셨습니다.
단, 죽이지는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욥의 몸에 독한 종기가 나게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욥의 친구들이 찾아와 욥이 죄 때문에
벌 받는 것이라고 하자 욥의 마음이 상합니다.
욥은 자기가 죄 때문에 벌 받는 게 아니라고 하며 친구들과 논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모르겠다고 하며
하나님께 따지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 기도가 욥기 13:24절 말씀에 나옵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
하나님께서 왜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원수처럼 대하십니까? 하며
원망어린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은 욥의 원망어린 기도를 한참 들으시다가
결국 하나님은 욥에게 대답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대답이 욥기 38장에 나오는데
하나님은 거기에서 욥에게 <너 이것을 아느냐, 너 이것을 할 수 있느냐>는
두 가지 유형의 질문을 하셨는데
욥은 하나님이 아느냐 하시면서 물으시는 질문에 아무것도 대답 할 수 없었고
하나님이 너 이것 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욥은 자신의 무지와 하나님의 전지하심
자신의 무능력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철저하게 깨달았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나서야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감히 따질 수 있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위대하신 모습을 체험하자
욥은 자기가 원망했던 것을 모두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을 높이며 순종하는 자로 거듭납니다.
이제는 어떤 일을 만나도 오직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는 참 신자로 성숙한 것입니다.
욥은 그 동안 선조들이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것은 아주 훌륭한 신앙생활입니다.
특히 욥은 남달리 말씀에 잘 순종하여 최고의 의인으로 살았고 큰 축복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해서 말씀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는
정말 수준 높은 신앙생활을 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신앙생활에서는 의심이 생기기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데레사나 욥의 신앙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우리는 부족해서 가끔이라도 하나님을 체험해야
우리의 흔들리는 믿음을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어떤 집사님 한 분이 간증을 하시는데
영적으로 육적으로 굉장히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 힘든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눈 녹듯이 사라질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 였는가 하면
주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고 난 뒤였다고 합니다.
이분이 기도를 하다가 빛나는 옷을 입으신 주님이
자신의 손을 잡으시는 것을 체험했는데
그렇게 주님 만나고 나니 모든 문제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면 힘 있는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자주 체험하면 할 수록 더욱 힘 있게 살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체험하려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욥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했습니까?
욥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자꾸 말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려면 하나님께 말을 걸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말을 거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 말을 걸 고 기도할 때 찬양과 감사의 기도를 올리면 더 좋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묻고 따지는 기도를 드려도 괜찮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웃집 개가 우리 개를 물어죽이면 이웃집 개에게 따집니까,
그 주인에게 따집니까? 주인에게 따집니다
개는 우리가 상대할 존재가 못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는 왜 선악과를 먹었느냐고 따지셨습니다.
그러나 뱀에게는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그냥 벌만 내리셨습니다.
따지고 묻는 것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때로 하나님께 묻고 따지는 것도
하나님을 인정해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게 더 좋지만
감사가 안 될 때는 묻고 따지기라도 하는 것이
아예 하나님께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입니다.
더욱이 해결해달라고 간청까지 하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욥은 이렇게 원망하고 따지며 해결해달라고
간청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따지고 원망하는 그 자체는 나쁜 것이기 때문에 꾸중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욥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못 만나고 아무 꾸중도 듣지 않는 것보다는
꾸중을 듣더라도 하나님을 만나는 게 훨씬 더 좋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만나기만 하면 우리에게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실체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바로 옆에 계시는 것처럼 하나님을 부르고
내 생각을 말씀드리고 고마운 것에 대해서는 감사를 드리고,
억울한 것에 대해서는 따지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출타한 부모님과 전화를 하면 부모님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바로 옆에 계시는 것처럼 대화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전화를 통해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움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외국에 나가신 부모님과 여러 날 전화를 하지 못하면
부모님이 잘 계시는지 불안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오랫동안 하나님과 대화하지 못하면 믿음이 흔들립니다.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면 믿음이 흔들립니다.
데레사 수녀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자주 드려야 합니다.
기도에 응답이 없으면 더욱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왜 응답해주시지 않느냐고 따지면서라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응답을 통해 기도가 이루어지든지
혹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를 분명히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믿음도 굳건해지고 축복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하나님은 말씀과 기적으로 응답하십니다
욥은 하나님이 폭풍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폭풍 속에서 말씀하시는 기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두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기적 없이 마음의 감동만으로도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 속에 말씀을 듣게 해주십니다.
가끔 설교를 하고 나면
설교를 통해서 성도님들 가운데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발견하고
또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합니다.
지극히 부족한 사람이 전한 말씀이지만
그 성도님은 하나님의 감동을 통해
자기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다음으로, 외형적인 기적을 통해 응답해주십니다.
병이 낫기를 간절히 기도했다가 병이 나으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믿음이 굳건해집니다.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도했다가 문제가 해결함을 받으면 믿음이 굳건해 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 잘 섬기며 순종하게 됩니다.
체험은 우리의 신앙과 삶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쁨과 평안은커녕
답답하고 속상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믿음이 흔들릴 때도 있지 않습니까?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이 굳건해지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욥처럼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솔직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속상한 것, 답답한 것, 원망스러운 것까지
모두 말씀드리고 다 해결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응답이 안 되어 믿음이 더 흔들리고
속이 더 상해도 절대 중지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새로운 믿음과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통하여 더 쉽게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한 것은 오늘날 우리는 오늘 본문속의 욥보다
하나님을 더 쉽게 체험 할 수 있는 통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통로가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을 쉽게 체험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하시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심으로 성령님을 높이고
성령님을 인정하기만 하면
말씀을 깨닫고 기적을 체험하며 사람이 변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님의 감동 속에 성경이나 설교에서
때로는 성령님이 직접 들려주시는 음성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냥 옳은 말씀이 아니라 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단순히 좋은 말씀이 아니라 내 영혼에 힘을 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기분이 좋아지는 말씀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성령님은 직접 능력으로 역사하기도 하십니다.
성령님은 두 가지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는 성령님의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님의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열매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성품을 닮게 해줍니다.
사랑과 화평과 온유로 채워서 우리의 본성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고귀한 모습을 갖게 해줍니다.
그러면 놀라운 신앙의 확신과 기쁨과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내 자신이 변하지 않아 안타까울 때가 많지 않습니까?
분명히 선을 행하고 싶은데도
악을 행하는 내 모습에 속상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이럴 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우리의 모습이 변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입으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의 은사는 우리에게 놀라운 능력을 줍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겨가게 만들고 어려운 일을 해결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이런 능력으로 일하는 중에 기적을 체험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런 기적적인 능력을 체험하신 분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체험이 있으면 더욱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며
더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제가 가정이나 병원에 심방을 가게 되면
주로 위로하고 격려하러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병도 치유하고 환경도 치유하러 간다는 생각도 자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배와 기도를 통해
환자가 치유되고 환경이 치유 되는 것을 자꾸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체험을 많이 하면
우리의 믿음과 기도와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삶이 얼마나 많이 바뀌겠습니까?
우리가 모두 바르고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받아
하나님을 만나고 그 사랑과 능력을 체험하여
우리의 신앙이 더욱 굳건해지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며 더욱 하나님께 잘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 자신도 큰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의 신앙이 귀로만 듣는 신앙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높이며 성령 안에서 기도하므로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강력한 신앙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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