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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계1장5] 계시록을 왜 밧모섬에서 썼는가에 대한 설명/귀양살이

에스더2381 2010. 7. 2. 10:29

[계1장5] 계시록을 왜 밧모섬에서 썼는가에 대한 설명/귀양살이

 

[성경 말씀](계1:9-11)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생명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나는 주님의 사랑을 입어 거룩하게 된 성도들과 각처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본문은 계시록을 왜 밧모섬에서 썼는가에 대한 설명에 대해서입니다.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여기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이며 요한 계시록의 기록자입니다. 그는 처음에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의 제자로 개종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탁월하게 사랑하는 제자였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11제자 모두가 예수님을 배반하였을 때에도 홀로 배반하지 않고 자기 목숨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하는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너희 형제요’란 편지를 쓰는 요한과 편지를 받을 일곱 교회의 사역자와의 관계를 말한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네 본 것을 기록하여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의 사역자에게 편지로 보내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받고 순종하여 요한 계시록을 기록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소개 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 2:11-12]

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이 말은 예수님과 성도들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어떠했는지를 말합니다.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여기에서 ‘주’란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교회 중에서 찬송하시겠다는 말로서 여기에서도 성도들을 형제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행 2:37]

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여기에서는 형제들이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사도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행 15:23]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여기에서는 사도와 장로 직분을 가진 형제들이 성도들을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행 21:20]

20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여기에서는 예루살렘 교회에 있는 형제들이 바울에게 사도님 하지 않고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행 28:17]

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 준바 되었으니

여기에서는 바울이 높은 사람들을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을 보면 요한이나 베드로가 일을 위해서 직분을 사용할 때가 있었고 바울이 자신의 사도됨을 비난하는 자들에게 직분을 사용한 적이 있지만 성도와 교제하며 서로 호칭할 때 직분을 부르지 않고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한분 하나님을 동일하게 아버지라 부르는 한 형제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서로 간에 부를 때에 직분을 부르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에 의해서 생겨난 누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내어 버려야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라는 말은 요한 자신과 우리와의 관계에 대한 설명입니다. 요한과 우리와의 관계는 형제입니다.

 

예수의 환난과

이 말은 요한이 예수님과 관계하여 자신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환난이나 참음을 자신이 주체가 되어 말하지 않고 예수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한의 생각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환난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주님을 사랑하는 제자들을 통해서 계속 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는 그 고난에 동참하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의 환난’이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실 때부터 시작되셨습니다. 구유에 뉘었으며 헤롯의 학살극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 생활을 해야 했으며 갈릴리 나사렛에서의 가난한 생활로 인한 간고와 질고를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공생애 기간에 사람들로부터 받은 핍박은 십자가에서 극치를 이루게 됩니다. 악한 세대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그의 생명의 권세로 사망을 이기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사랑하는 제자들 안에서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지금도 고통당하고 계십니다(행9:4-5) 요한은 이 예수님의 환난에 자신이 동참하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환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지금도 사랑하는 제자들 속에서 계속 되고 있습니다. 

 

나라와  

이 말은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1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들을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라함은 그 이름의 영광을 말하고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이 땅 위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을 말하고 하나님의 뜻이라 함은 하늘에서 그 뜻이 이룬 것처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이란 하나님의 나라의 구성원들인 성도들이 사단에게 속지 않고 이기는 삶을 말합니다. 이기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진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진리가 회복되지 않고는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이 싸움은 지금 사랑하는 제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 정한 수가 찰 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하여 완성될 것이며 세상 나라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고(계11:15) 다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년 동안 왕국을 통치하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 회복을 위해서 우리가 동참하고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이 말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서 제자들이 피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사단의 세상이 되어버린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많은 참음이 필요합니다. 사단의 나라가 되어버린 이 세상 나라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한다는 것은 영적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며 그렇기 때문에 복음 전파에는 항상 박해가 따릅니다. 사단은 불법자요 미혹하는 자로서 세상에 있는 정사와 권세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의 무고한 피를 흘려 왔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억울함을 당해도 대항하지 않고 그 모든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법을 지킵니다. 그러므로 많은 인내가 요구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음은 장차 받을 하늘에 대한 소망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이 말은 요한 형제가 밧모 섬에 있었던 이유를 설명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복음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말하며 ‘예수의 증거’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충성된 증인으로 사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모든 일들에 관하여 요한은 증인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에 대하여 증거할 책임이 있습니다. 

 

증인이란 원래 법정적인 용어입니다. 레위기 5장 1절을 보면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그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치 아니하면 죄가 있나니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증인은 어떤 사건의 증거를 가진 자를 말하는 것으로서 증거에 앞서 위증을 막기 위하여 맹세를 시킵니다. 그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자기 본 것이나 아는 것을 진술치 않으면 그 죄와 허물이 증인에게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잠언 14장 25절을 보면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고 잠언 21장 28절을 보면 ‘거짓 증인은 패망하려니와 확실한 증인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증인의 증거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증인 된 우리의 위치는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증거 하지 않음으로 사람들이 죽게 될 때 하나님은 그 피 값을 우리에게 요구하실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0-12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의 증인들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습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우리의 구원은 주 여호와께 있습니다. 다른 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신이라고 하는 모든 신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하여 지식 없는 무지한 자들이 자기를 구원하지 못할 신 아닌 것들을 신을 삼아 묻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합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어 망합니다. 우리는 이 유일하신 참 신이신 하나님의 증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알게 된 사실을 증거해야 합니다.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이 말은 요한이 예수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는 증거가 됩니다. 요한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로 인하여 밧모 섬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구전에 의하면 밧모 섬은 귀양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요한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밧모 섬에 갇혀 귀양살이를 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환난과 하나님의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마음이 없이는 복음을 전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종으로서 합당치 않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표현함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전파에 따르는 고난의 주체를 자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예수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로서 자신의 고난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0 주의 날에

이 말은 환상과 음성을 받은 날이 언제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의 날’이란 안식 후 첫날을 말합니다.

 

내가

이 말은 음성을 들은 자인 요한을 말합니다.

 

성령에 감동하여

이 말은 음성을 어떻게 듣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 말은 음성이 들려온 방향과 그 형태에 대한 설명입니다.

 

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이 말은 음성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본 것을 책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주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계시록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요한이 계시록을 왜 밧모섬에서 기록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것은 복음 전파를 위해 예수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다가 밧모섬에 갇히게 되었기 때문에 그곳에 있다가 주님의 지시로 계시록을 기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전파에는 항상 이렇게 희생과 피흘림이 따릅니다. 주님 저희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고난과 선조들의 피뿌림 위에 교회가 섰다는 것을 한시라도 잊지 않게 하소서!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천사를 통해 요한에게 지시하시고 요한 계시록을 기록하게 하신 주님! 그 기록을 우리가 보고 생명의 길을 찾습니다. 영혼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주님! 영원토록 영광과 존귀와 찬송을 받으소서!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아멘!

출처 :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
글쓴이 : 하늘아버지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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