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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계1장4] 장차 오실 분 소개/주님과 하나님(확장되신 하나님)

에스더2381 2010. 7. 2. 10:30

[계1장4] 장차 오실 분 소개/주님과 하나님(확장되신 하나님)

 

[성경 말씀](계1:7-8)

 

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생명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나는 주님의 사랑을 입어 거룩하게 된 성도들과 각처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본문은 장차 오실 분 소개에 대해서입니다.

 

7 볼지어다

지켜보라는 말입니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이 말은 예수님께서 오시는 형태가 공개적일 것임을 말합니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이 말은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모두가 눈으로 보게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이 말은 예수님의 원수된 자들까지도 볼 것이라는 말로서 모든 것들이 드러날 것을 말합니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이 말은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반응을 말하는 것으로서 가슴을 치고 후회하며 슬퍼할 것입니다.

그러하리라 아멘

이 말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요한은 확신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요한은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의 제자로 개종한 자로서 처음부터 모든 사실들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요한이 확신 있게 강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여기에서 ‘주 하나님’이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말씀하시는 것으로서 그분은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창조자이시며 유일하신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장차 오실 하나님에 대해 친히 소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여기에서 ‘알파’란 헬라어 알파벳의 맨 첫 글자이며 ‘오메가’란 맨 나중 글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단순하게 처음과 나중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알파벳이 모두 모여 한 조를 이루듯이 한 묶음 단위에서의 맨 처음과 나중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역사를 시작하시고 그 역사 속에 계시며 다스리시고 그 역사를 끝내시는 모든 것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이 말은 ‘알파와 오메가’의 반복적인 설명과 같습니다. ‘이제도 있고’란 현재의 역사 속에 계시는 분으로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계시는 분을 말하고 ‘전에도 있었고’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존재하셨던 하나님을 말씀하시는 것으로서 만물을 창조하신 주인이 되신 분을 말합니다. 그리고 ‘장차 오실 자’란 심판주로 오셔서 모든 창조에 관한 것들을 심판하실 심판주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이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서 모든 일에 능치 못함이 없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관해서는 크게 둘로 나누어 말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천지와 만물 창조요 또 하나는 예언을 이루심입니다. 예언이란 장차 될 미래 일을 미리 아시고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후 때가 되면 그 일을 이루시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7절과 8절은 장차 오실 분에 대한 소개로서 한 조를 이루는데 7절은 주님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고 8절은 하나님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으며 7절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고 8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친히 소개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아들 하나님은 요한 형제가 소개하고 아버지 하나님은 자신이 친히 소개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신약시대에 확장되신 하나님

 

볼 수 없는 영체이신 여호와의 몸

 

[출 33:20-23]

20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22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이 글은 모세 형제님이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나가실 동안 손으로 모세 형제를 덮었다가 지나가신 후에 손을 거두신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의 등은 볼 수 있지만 얼굴은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영의 몸이시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볼 수 없는 몸이십니다.  

 

[겔 1:26-28]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27 내가 본즉 그 허리 이상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 같고 그 허리 이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면으로 광채가 나며

28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

이 말은 에스겔 형제님이 본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입니다. 그 모양이 사람의 모양 같고 허리 이상은 단 쇠 같고 허리 이하는 불같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 7:9-11]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여기에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란 아버지 하나님을 말합니다.

 

[단 7:13-14]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여기에서 ‘인자 같은 이’란 예수님을 말하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란 아버지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다니엘 형제가 본 모습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을 분명하게 나누어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아들이신 증거

 

[요 3:16-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여기에서 ‘독생자’란 외아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주셨다고 합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은 외아들을 주신 이유입니다. 그 이유는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함입니다.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말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이 되신 과정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과  요한복음 3장 17절 말씀을 비교해 볼 때 요한복음 3장 17절에서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고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아들은 동일합니다.  

 

말씀에 대한 소개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은 말씀이 계신 때를 말합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여기에서 ‘말씀’은 아들 하나님을 말하고 ‘하나님’이란 아버지 하나님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3장 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기록되어 있고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곧 말씀은 아들이고 아들은 말씀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말씀’은 아들 하나님을 말하고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란 아들 하나님과 아버지 하나님을 말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에서 ‘말씀’이란 아들 하나님을 말하고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말은 말씀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씀 즉 아들의 종류가 하나님이라는 말이지 아들의 존재가 하나님 아버지와 한 존재라는 말이 아닙니다. 만약 여기에서 말씀 곧 아들이 하나님 곧 아버지라면 함께라는 말은 왜 쓰는 것입니까? 한 존재가 나와 함께 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말씀이신 아들에 대해서 설명하되 아들이 하나님의 종류라는 말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 말씀의 존재가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라고 이해한다면 성경의 근거에 의해서 아들이 아버지라고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것은 언어적인 모순이 되며 말이 되지 않습니다. 언어라는 것이 공동체간의 약속인데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라도 이해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은 전파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까지는 말씀에 대한 설명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이 말은 말씀이 언제부터 계셨는가에 관한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이 말은 말씀과 함께 계신분이 누구인가를 말합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이 말은 말씀의 종류가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2-3절은 말씀과 만물과의 관계를 말한 것입니다.

4절은 말씀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1-4절까지는 모두 말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몇몇 형제들을 통해서 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출애굽기 33장 20-23절을 보면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 에스겔, 다니엘, 요한 형제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그 형상과 모양은 보았으되 얼굴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아버지 품속에 있는 

이 말은 말씀 즉 아들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계셨던 곳을 말합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이 말은 외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서 볼 수 없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나타내셨다는 말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주신 것은 독생자 즉 외아들이십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은 외아들을 주신 이유입니다. 그 이유는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신 것은 그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 태를 통해 육신을 입고 태어나셨기 때문에 아들이 아니라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며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은 아들을 보내신 목적을 말합니다. 그 목적은 세상 구원입니다.

 

[요 8:42]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여기에서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태어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왔음이라’란 마리아의 태를 통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아들의 존재는 말씀이시고 말씀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볼 때 아들이시며 아들이란 아버지로부터 출발점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아버지 없는 아들은 없습니다. 아들이란 모두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들이 스스로 존재하는 아들이 있다면 그는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입니다. 여기에서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라는 말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아버지로부터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 홀로 계시던 때가 있고 어느 시점에서 말씀 즉 아들을 낳으셨으며 그 아들 즉 말씀을 통하여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요 18:37]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여기에서 ‘났으며’란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아버지로부터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왔나니’란 그리스도께서 보냄을 받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을 말합니다.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여기에서도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 즉 아들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나신분이고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태어나신 시기는 만물 창조 전입니다. 아버지는 났으니 아버지이시고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태어 났으니까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은 반드시 출발점이 있으며 아들의 출발점은 아버지입니다.

 

순서--하나님 홀로 계시던 시대--아들을 낳으심--아들로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됨

 

[고전 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여기에서도 한 하나님과 한 주가 계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설명하고 있고 또 한 주가 계시는데 그분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물은 아버지에게서 났고 아들로 말미암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만물을 나신 분은 아버지이시고 아들 즉 말씀은 낳는 수단이 된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아버지가 아들 즉 말씀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천지와 만물이 창조 되었습니다.

 

구주의 탄생

 

[눅 2:11-2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구주께서 탄생되셨습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영의 몸만 가지고 계셨던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셨고 아들 즉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사람의 모양으로 오심으로서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나타내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었다고 했으니 영체이신 하나님의 몸이 육의 몸을 입으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아버지의 몸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영의 몸이셨으나 아들 즉 말씀을 보내사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육의 몸을 가지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몸은 영체이시고 아들의 몸은 육체를 가지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확장이라고 말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신약시대에 그 아들을 통해서 몸이 확장 되셨습니다. 모세, 에스겔, 다니엘, 요한 형제님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증언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몸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심으로 하나님과 똑 같은 형상과 모양을 한 그 아들이 하나님을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육의 몸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니까 체 즉 몸이 확장 되셨다는 말입니다.  

 

구주되신 예수님의 외모

 

[사 53:2-3]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 말은 하나님의 확장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말한 것입니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이 말은 예수님의 고난을 말합니다. 가난으로 인한 고통과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아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은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말한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호칭의 바른 인식

 

[롬 15:6]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해석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하나님을 따로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여기에서도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 그리스도를 따로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 11: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여기에서 하나님을 예수의 아버지라고 설명해 놓았으며 여기도 따로입니다.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여기에서는 아들과 아버지와 하나님의 영을 각각 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갈 1: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여기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각각 따로 말하고 있습니다.

 

[갈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여기에서도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설명해 놓았으며 따로 말하였습니다.

 

[엡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여기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을 분리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엡 4:5-6]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여기에서도 주도 한 분이시고 하나님도 한 분이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주도 한 분이시고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깨닫기 위해 고민하고 있을 때에 지금 기독교가 알고 있는 그 이론을 두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싸움은 처음부터 잘못된 싸움이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알려 달라고 기도하니 네가 깨달아 보아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깨달은 후에 주님께서 다시 음성을 들려주시기를 하나님께서 확장되셨으며 그는 우리의 구원자요 영원한 우리의 왕이시라고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난 주관적인 근거와 객관적인 근거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아버지 품속에 계신 외아들이 하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아버지 품속에 계신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즉 아들은 볼 수 없는 아버지를 볼 수 있도록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부터 영의 몸을 가지고 계셨는데 그 아들을 통하여 육의 몸을 갖게 되셨습니다. 주의하십시오. 신학적인 사상으로 몇 위 몇 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것을 신약 안에서 확장되신 하나님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다시 증거하기

 

[계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여기에서 ‘그’란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란 계시를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계 5: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여기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란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오른손에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이 있습니다.

 

[계 5:7]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여기에서 ‘어린 양’이란 아들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리고 ‘보좌에 앉으신 이’란 아버지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아들 예수님이 하나님의 오른 손에서 책을 가지셨다는 말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깨닫기 바랍니다.

 

[고전 15:23-28]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이 말은 부활 순서에 대해서 말한 것입니다. 맨 먼저 첫 열매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고 그 다음은 주님 다시 오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 즉 은혜시대 끝에 첫째 부활에 참여할 이기는 자들을 말합니다.

 

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이 말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의 부활 시기를 말합니다. 요한 계시록 20장 5절을 보면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라는 말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리고 ‘이는 첫째 부활이라’라는 말은 4절에 대한 결론입니다. 문장이 참 어렵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두 종류의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 후에는 나중이니’란 천년 늦게 부활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와 둘째 사망의 부활로 나올 자들은 부활 시기가 천년 차이가 납니다.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이 말은 예수님께서 천년왕국 끝에 나라를 아버지께 바친다는 말씀입니다.

 

25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이 말은 천년왕국을 다스리는 기간 동안 주님께서 순종하지 않는 모든 세력을 굴복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이 말은 요한 계시록 20장 14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천년왕국이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 시대에 들어가기 전에 있을 희고 큰 보좌 심판 때에 맨 마지막으로 사망과 음부를 불 못에 던져 넣는 것을 말합니다.

 

27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이 말은 천년왕국 동안 주님께서 다스리실 때에 순종치 않는 모든 것들을 굴복시키시는 것을 말합니다.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이 말은 곧 주님께서 만물 위에 계신 것을 말합니다.

 

28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이 말은 만물이 아들에게 복종한 후에는 이라는 말로서 나라를 아버지께 바칠 때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여기에서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란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아들이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할 때를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이는’이란 아들이 아버지께 복종하시는 이유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아들이 모든 만물을 자기에게 굴복케 하신 후에 자신도 하나님께 굴복하게 되는 이유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 이유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고전 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여기에서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에서 ‘곧 아버지가 계시니’란 한 하나님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말합니다.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여기에서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란 방금 전에 말했던 아버지 하나님 외에 또 한 주님이 계시는데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라는 말 속에 예수님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과 또 한 주가 계십니다.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이라 호칭된 곳은 다 아버지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약 시대에 아들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 말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여러분들의 생각을 말하지 말고 성경 몇 장 몇 절인지 근거를 대십시오. 신약시대에 아버지와 아들은 부를 때는 각각 분리해서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들과 그의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사상입니다. 그 증거는 신약성경 전체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장차 오실 분에 관한 소개이며 그 중에서 주님에 관한 소개는 요한이 하였고 하나님에 관한 소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개를 친히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한 분 하나님과 한 주가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영의 몸을 가지고 계시며 신약시대에 그 아들 즉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게 하심으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육의 몸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아들을 통하여 확장 되셨습니다. 이것을 깨달으십시오.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고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 사상이 반영된 글에도 하나님이라고 쓴 글은 지금의 믿는 이들처럼 하나님이라는 말 속에 아들이 포함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이 글을 쓸 때 하나님이라고 썼다면 아버지 하나님을 말한 것이지 지금의 믿는 이들처럼 하나님이라고 쓴 글을 보고 거기에 아들이 포함된다는 인식을 가졌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사상은 하나님하면 당연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말하는 것으로 인식하였고 아들을 부를 때는 랍비 즉 선생님이나 주님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쓴 글을 대할 때 우리도 그와 같은 마음으로 글을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기독교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관한 이론은 가톨릭교에서 가지고 나온 버려야 할 누룩입니다. 난 논쟁을 피하겠지만 한 마디만 질문한다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보이지 않으나 영체로서 존재하시고 그 품에 계신 말씀을 보내사 육신을 입게 하심으로 그 아들을 통하여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육의 몸을 가지셨다면 신약시대에 하나님은 영의 몸과 그 아들을 통해 육의 몸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신약 안에서 그 아들을 통하여 확장 되셨습니다. 만약 이것이 아니라면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신 이후 하나님과 그 아들을 한 몸이라고 하신다면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몸이 존재하지 않으신 것입니까?

 

  이런 초등학문에 대해서는 말하기도 싫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식의 이론을 말하지 마십시오. 그냥 순수하게 성경을 통해서 느껴지는 대로 믿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출회를 당할까봐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가 되지 않겠습니다. 잘못된 것은 고쳐져야 합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함으로써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 소개도 못하는 수준으로 만들어버린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에 속합니다. 자녀들이 날마다 부르는 자신의 아버지도 소개 못하는 벙어리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까? 이 시대의 성도들은 다 죽고 없습니까? 진리를 사랑하는 자가 이렇게도 없습니까? 이것은 주님께서 임하시기 전에 반드시 성도들이 알고 회복해야 할 문제임을 깨닫기 바랍니다.

 

[고전 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우리에게는 한 하나님이 계시고 또한 한 주님이 계십니다. 회개합니다. 주님! 용서하시기 원합니다.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아멘!

출처 :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
글쓴이 : 하늘아버지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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