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무소유
교회에 다니던 어떤 연예인이 TV 에 나와서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무소유의 삶’에 감명을 받고 불교로 개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글을 씁니다.
존경스러웠던 스님
저는 청년기 때 법정스님의 책에 매료된 적이 있습니다. 법정스님의 초창기에 쓴 책을 읽어보면 비록 저와 다른 종교인 불교의 스님이지만 너무나 존경스러웠고 그분의 글이 너무나 아름답고 낭만적이어서 저도 그러한 삶을 살고 싶은 충동까지 느낄 정도로 그의 책에 매혹되었었습니다. 기독교인인 청년이 불교의 스님의 열성적인 팬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법정스님의 이미지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바랑을 메고 다니는 다른 스님들의 이미지까지 좋아져서 고상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책은 출간되는 즉시 구입해서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중반기나 후반기에 쓴 책을 구입해서 읽고 있노라니 약간의 갈등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승객2천명을 태울 수 있는 1만 9천 톤급의 호화여객선을 타고 에게해의 크레타섬에 가서 비치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해수욕을 즐기고([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p231-234), 스위스와 독일 뮌헨을 여행하고(앞의 책,p34) 헐리웃을 활보하고, 자동차로 미국의 하이웨이를 드라이브하고, 인도에 가서 몇 달간 수행을 하는 등의 내용의 글이 계속 나타났습니다. 중반기나 후반기의 그분의 저서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미국, 유럽, 인도 등 외국을 안방드 나들듯이 드나드십니다. 새로운 책이 한권씩 출간될 때마다 저의 갈등은 점점 심화되었습니다. 왜 갈등이 점점 심화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름지기 성직자는 자신이 하는 말이나 설교나 설법이나 자신이 쓴 글과 그의 삶이 일치되어야 존경을 받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90%는 평생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하고 살다가 죽습니다. 연간 해외여행 1천만 명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한 사람이 여러 번 나간 것까지 총합한 해외여행객의 연인원의 누계일 뿐 아직도 해외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 90%입니다.
그런데 책을 쓴 인세로 미국, 유럽각국, 인도 등을 안방 드나들듯이 하시는 분이 주장하는 ‘무소유’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미국, 유럽, 인도 등 외국으로 훌쩍 날아갈 수 있는 분이 평생 외국구경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사는 우리나라의 90%의 국민들 앞에 ‘무소유’를 가르친다는 것은 자신의 가르침과 현실의 삶이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한국인들이 외국에 자주 드나드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더구나 해외여행자유화 시대인 지금, 외국에 드나들 수 있는 금전적 여유가 있고 외국에 나가서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외국에 나가는 것은 좋은 일일 수 있습니다. 저는 해외에 단기선교를 하거나 복음을 전하거나 무역을 위해 외국에 자주 나가는 분들은 나라를 위해서 정말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애국자중의 애국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외국에 나가서 선교를 하거나 무역을 하는 애국자 중의 애국자들이 더 많아져야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해외에 자주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거나 선교를 하시거나 무역을 하시는 분들 중에 외국에 나가 보지 못한 90%의 국민들을 향하여 ‘무소유’를 요구하는 뻔뻔스러운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외국에 자주 다니는 분들은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90%의 국민들 보기에 미안해서라도 감히 그들에게 ‘무소유’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외국에 자주 드나드는 분 중에 유독 법정스님만이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90%의 국민들을 향해서 “버려라. 버려라. 버려라” 며 ‘무소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법정스님은 외국에 그토록 자주 다니면서도 외국에 한 번도 나가 보지 못한 90%의 국민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는지 그들에게 집요하리만치 ‘무소유’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법정스님만큼이나 외국을 자주 드나들거나 오래 체류할 정도의 사람은 우리나라 인구의 1% 안에 속하는 최고특권부유층입니다. 그분은 아마 저서의 인세만 해도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은 벌었을 것입니다(월간조선 기사에 의하면 류시화씨가 인세로 100억 원을 벌었다니, 그와 버금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법정스님도 수십억 원은 벌었을 것임).
법정스님이 책을 쓴 인세로 외국에 자주 드나드는 우리나라 국민의 1% 내에 속하는 최고특권상류층 인사가 되었으면 더 이상 ‘무소유’에 대한 책은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1%의 최고상류특권층이 누리는 외국관광여행의 생활을 누리면서 자기보다 못한 99%의 국민들에게 ‘무소유’를 가르치거나 요구하는 것은 성직자로서 ‘무소유’라는 ‘글’(설법)과 자신의 삶이 일치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결혼할 때 집사람에게 새 가구 해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집 가구들은 전부 저와 집사람이 결혼 전에 각각 자취하면서 쓰던 중고품들입니다. 아내가 쓰던 장롱은 방안에 넣으려고 했지만 옛날 집이라 천정이 너무 낮아서 방에도 못 들어가고 다 부숴져서 없애 버렸습니다. 집사람이 가져온 TV를 10년 이상 사용하니 화면이 벌겋게 되어서 한 대 때리면 정상이 되고 조금 후에 또 벌겋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서초동 사랑의 교회 대각성전도팀이 저희 교회에 단기사역을 오면서 TV로 선교영화 비디오를 볼 수 있느냐고 물어서 화면이 벌겋게 된다고 했더니 오시면서 29인치 중고TV를 한대 가져오셨는데 새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그 TV를 잘 보고 있습니다. 저희 집사람은 읍내에 나가서 길거리에 버려진 헌가구들을 잘 주워옵니다. 컴퓨터 책상도 두개나 주워왔습니다. 법정스님이 아신다면 저희 집의 중고TV나 길거리에서 주워온 컴퓨터 책상을 비롯한 모든 잡다한 중고 가구들을 버리라고 윽박지르겠지요. 그런 가구들을 소유한 이상현 목사는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탐욕스런 욕심쟁이 가짜 목사이므로 아호를 청랑(淸浪)이라고 부르지 말고 탁랑(濁浪)이라고 고치라고 비난하면서 다 버리라고 강요하겠지요.
제가 법정스님의 책들을 읽으면서 느낀 갈등은 그분이 가구는 다 없애버리고 ‘텅 빈 충만’을 느낀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외국에는 몇 주간씩 몇 달간씩 체류하면서 지낸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아서 큰 갈등을 느꼈습니다. 집안의 가구를 다 없앨 정도로 가난하고 청빈한 무소유자라면 가까운 일본이나 대만은 고사하고 제주도에 갈 비행기 삯도 없어서 저처럼 배를 타고 가야 할 텐데, 오대양 육대주를 안방 드나들듯이 드나드는 이야기를 읽으니 앞뒤가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물론 법정스님도 불교 포교 강사로 초빙 받아서 외국에 나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참무소유의 성자인 김요석 목사님도 중국 몽골의 한센 환우촌에서 한센환우들의 고름을 빨아주고 함께 동고동락하는 사역하다가 미국의 재미교포 교회들의 초청을 받고 한 달간 미국의 교회들을 다니면서 신앙체험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달 동안 미국에서 신앙체험간증집회를 한 후 앞으로 가능한 한 미국에 오지 않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김요석 목사님이 미국이나 유럽에 강사로 초청을 받아서 간증집회를 한다고 해도 그것은 가장 선한 일이므로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법정스님도 유명한 분이니 김요석 목사님처럼 외국의 교민들을 상대로 한 세미나나 강연회 강사로 초빙 받아 주최측에서 비행기 삯을 대주는 순수한 외국여행도 있겠지요.
그러나 법정스님은 한국에 수행할 산이나 절이 없는지 일 년에 몇 달씩 인도나 티베트나 네팔에 체류하며 수행을 합니다. 만약 어떤 목사가 한국의 수많은 산을 두고도 1년에 몇 달씩 이스라엘의 산에 가서 산기도 한다고 하면 <짜가 먹사> <삯군먹사>라며 여론의 몰매를 맞습니다.
그분은 동유럽과 러시아를 몇 달씩 여행합니다. 여행비용이 수백 만 원이나 수천 만 원은 들 것입니다, 그것은 본인의 인세수입의 비용이 아니면 불가능한 외국체류입니다. 외국에서 몇 달씩 체류하는 부유층은 대한민국에서 1%도 안 될 것입니다. 아니 해마다 몇 개월씩 해외에서 체류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아마 열손가락 안에 들지도 모릅니다.
“책을 써서 인세를 받아서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자기 돈으로 해외여행 다니는 것이 무슨 잘못된 일인가?”라고 반문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당되는 말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무소유를 그토록 절절히 부르짖었고 지금도 절절히 부르짖고 있는 법정스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제가 농어촌 목회자 세미나에 가서 익산 성민교회의 이원봉 목사님의 세미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기를 본인은 부흥회나 세미나 강사로 다니기 때문에 호남지역의 성결교단 목사님들 중에는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목사 중의 한 명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원봉 목사님이 풍요롭다고 해야 법정스님의 수입의 백분의 일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노인목사님은 호남지역의 성결교단 목사님들 중에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목사님 중에 한 분임에도 불구하고 평생 동안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교회에 가난한 성도들이 많은데 목사가 해외여행 다니면 적게는 수십 만 원 많이는 수백 만 원 써야하는데 그런 돈 있으면 가난한 성도들을 돕겠다는 것입니다. 연세가 많은 노인 목사님인 그분은 평생 해외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하고 돈이 생기면 가난한 성도들을 물질적으로 도왔고 지금도 가난한 성도님들을 돕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해외여행을 가는 모든 분들에게 이원봉 목사님과 같이 되라고 강요하거나 해외여행 다니는 분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정죄하려고 그분에 대해서 쓴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서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은 정당한 일이며 좋은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원봉 목사님의 경우를 비추어 본다면, 이 목사님보다 백배 천배 만배나 더 큰 목소리로 무소유와 청빈을 부르짖고 있는 소위 ‘무소유의 성자님’이시며 ‘청빈의 성자님’이신 법정스님만큼은 설법강사로 초청받은 경우 외에 몇 달간씩 해외에 체류하거나 몇 달씩 해외의 산에 나가서 수행하는 등의 해외여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무소유와 청빈을 목숨을 걸고 부르짖는 ‘무소유의 성자님’ ‘청빈의 화신’이시라면 수억 원 수십억 원의 인세를 가지고 해외여행을 다녀서는 안 됩니다. 이원봉 목사님이 “해외여행 다닐 돈 있으면 성민교회의 가난한 사람이나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 돕겠다”고 하셨다면, 이목사님보다 더 유명한 ‘무소유와 청빈의 성자’이신 법정스님은 “해외여행 다닐 돈이 있으면 우리 길상사의 가난한 불자신도들을 돕겠다”며 길상사의 가난한 불자들이나 일반불자들을 위해서 모든 인세를 사용한 후에야 비로소 무소유를 부르짖을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정스님은 이원봉 목사님의 경우와 비교해볼 때 이미 무소유를 부르짖을 자격을 일찌감치 상실했습니다. 가난한 성도들을 생각하면 해외 여행할 마음이 안 생긴다는 이원봉 목사님이 오히려 해외여행을 안방 드나들듯이 하는 법정스님을 능가하는 참무소유자입니다.
제가 수년전에 이 글을 법정스님이 관련된 모든 사이트에 몇 번 올렸는데 법정스님이 저의 글을 입수해서 읽었는지 그 이후부터 법정스님이 쓴 책에는 해외여행에 관한 글이 거의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나온 여러 권의 책에서 해외여행에 대해서 많이 썼는데 소위 ‘무소유의 성자’라는 분이 이미 그렇게 많은 해외여행을 한 것 자체가 이미 ‘무소유의 성자’ ‘청빈의 성자’의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저는 법정스님의 책을 읽다가 해마다 외국에 가서 장기간 체류하는 1%의 최상류층, 초특권층의 인물인 법정스님이 자기보다 가난한 99%의 국민들 앞에서 무소유를 강조하고 우리를 향해서 “살림살이를 버려라. 집안물건을 다 갖다 내다버려라. 물건을 소유하는 것은 집착이요 욕심이다. 나처럼 다 버리고 ‘텅 빈 충만’을 느껴라!”라고 말하니 울분이 터졌습니다.
제가 법정스님의 <무조건 다 버려라>론에 더 화가 난 이유 중에 하나는 법정스님의 책을 여러 권 읽고 법정스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비기독교인 한 분이 저희 집에 와서 가구나 책들을 보고 하는 말이 “저런 것 다 버려야 한다. 법정스님은 다 버리고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는데...”라고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법정스님은 다 버리고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는데 목사가 무슨 잡다한 가구들을 가지고 있느냐는 뜻입니다.
친척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고 또 법정스님의 책을 읽으니 더 화가 났습니다. 그의 글을 읽다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아니, 이 양반, 무소유에 대한 책을 써서 외국에 드나들면서 헐리웃이니 디즈니랜드니 그랜드캐넌이니 뉴욕이니 파리니 뮌헨이니 지중해니 인도니 하는 나라에서 몇 달씩 체류하면서 관광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강원도 산골 오두막집에 살면서 무소유 쇼우(행각, 연극)를 벌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든 적도 있습니다.
오두막 편지가 아닌 헐리웃 편지를 써야 한다
법정스님이 한국의 강원도의 산골 오두막집에 살면서 ‘오두막 편지’ 등 그 오두막집에서 사는 청빈한 무소유의 삶의 모습을 기가 막히게 낭만적이고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책을 써서 인세를 벌어서 외국에 나가서 몇 달씩 체류하며 수행(?) 겸 관광을 하다가 온다면 그 오두막집살이가 무슨 청빈이며 무슨 무소유입니까? 법정스님은 같은 책의 한 쪽에는 무소유를 강조하고 한 쪽에는 외국 몇 개월 체류, 러시아 횡단여행, 헐리웃, 크레타섬, 뮌헨, 스위스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저는 법정스님이 독자들을 비판력이 없는 무지한 바보로 취급하고 있든지, 아니면 그 모순된 내용의 책을 읽고도 모순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의 무소유 사상을 높이 떠받들어 모시는 독자가 바보이든지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의식이 있는 독자라면 그 모순점을 금방 발견하고 비판할 것입니다. 어쨌든 외국을 수시로 드나들고 한 번 나가면 몇 주간씩 몇 달씩 외국에서 생활하실 정도로 풍족한(?)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법정스님이 외국에 한 번도 안 가본 90%의 국민들을 향해서 ‘무소유’ ‘청빈’을 요구하는 것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고 오히려 평생 외국에 한 번도 안 나가 보고 죽는 90%의 국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므로 의식 있는 독자들의 비웃음과 분노만 살 것입니다.
외국을 수없이 드나드는 그분이 써야 할 책은 ‘오두막 편지’니 ‘무소유’니 ‘텅 빈 충만’이니 하는 제목의 책이 아니라 ‘러시아 횡단여행기’ ‘세계 관광안내서’ ‘크레타섬 비치호텔편지’ ‘헐리웃 편지’ ‘디즈니랜드 편지’ ‘뮌헨편지’ 파리 상젤리제 편지‘ ’알부자가 되는 법‘같은 책이 아닐까요? 그분의 책 중에 ‘버리고 떠나기’라는 책이 있는데, 그 제목을 ‘버리고 헐리웃으로 떠나기’ ‘버리고 세계관광떠나기’ ‘버리고 에게해로 해수욕 떠나기’ ‘버리고 그레타 비치호텔로 떠나기’ ‘버리고 러시아 횡단여행 떠나기’라고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드웨어 부자와 소프트웨어 부자
또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외국을 안방 드나들듯이 드나드는 법정스님이 평생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하고 죽을지 모르는 90%의 국민들이 가족을 부양하고 자녀를 키우기 위해서는 필수적 요소인 중고냉장고, 오래된 세탁기, 전화기, 골동품 같은 장롱, 시집올 때 가져온 낡은 찬장 등등 가구나 가전제품을 소유하는 것을 죄악시하여 “버려라. 버려라, 버려라, 그리고 ‘텅 빈 충만’을 느껴라!!”고 명령하듯이 요구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제발 잡다한 고물 가구들을 소유하고 있는 목사님들과 불쌍하고 가난한 서민대중들을 탐욕에 눈이 어두워서 버리지 못하는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드웨어(방안의 가구와 살림살이)부분에서는 ‘무소유’인지 모르나 소프트웨어(온라인통장)부분에서는 호화여객선을 타고 에게해 크레타섬 비치호텔에 묵으면서 해수욕을 할 정도로 풍족한 ‘유소유자 중의 최고의 유소유자’ 아닙니까?
우리 서민들은 국내 여행을 할 때에도 호텔비가 비싸서 모텔이나 장급여관에서 숙박합니다. 저는 모텔비도 비싸다고 생각되어 모텔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24시간 찜질방>에서 5-6,000원내고 목욕도 하고 잠도 잡니다. 그것도 천원 아끼려고 찜질방 홈페이지에서 할인권까지 프린트해서 갑니다.
한국 교회에 부자목사님들도 있지만 한국교회의 70%의 교회는 사례금(월급)을 줄 수 없는 미자립교회 목사님입니다. 국가에서 정한 최저생활비 이하의 목회자가 60%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미자립교회의 목회자님들과 도시 교회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갈 때는 기름값을 절약하기 위해서 모여서 함께 봉고차를 타고 갑니다. 그리고 주최측에서 숙소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에는 시골목사님들은 찜질방에서 잠을 잡니다.
찜질방에는 모텔비 2-30,000원을 아끼기 위해서 5-6,000원내고 들어와서 잠을 자는 서민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찜질방에서는 코고는 소리, TV소리, 떠느는 소리 때문에 제대로 깊은 잠을 못잡니다. 그래서 이튿날 일어나면 뒷머리가 땡기고 정신이 몽롱하지만 그래도 모텔비 좀 아끼느라 찜질방에서 잠을 잡니다. 이런 서민들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법정스님이 외국의 호텔에서 숙박하면서 무소유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통장의 넉넉한 외국여행자금)의 최대의 유소유자인 법정스님이 소프트웨어(통장의 돈)는 별로 없고 자질구레하고 케케묵은 하드웨어(잡다한 고물 가구, 살림살이)만 소유한 서민대중들의 그 하드웨어 소유를 집착으로 규정하여 죄악시하고 그 하드웨어들을 다 버리고 ‘텅 빈 충만’을 느끼며 ‘무소유’의 삶을 살라고 요구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벼룩에게 간을 빼어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저는 법정스님에게 정중하게 여쭙고 싶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가난한 서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케케묵은 잡다한 하드웨어(살림살이)를 소유하는 것은 집착이요 탐욕의 죄악이고, 외국을 자유자재로 드나들 정도의 소프트웨어(통장의 비자금)를 소유하는 것은 욕심의 죄악이나 집착이 아니고 청빈이며 무소유란 말입니까? 단지 눈에 남의 눈에 잘 뜨이는 썩은 중고가구나 살림살이를 소유하고 있는 것은 집착이요 탐욕이며, 다른 사람의 눈에 절대로 뜨이지 않는 통장의 비자금(외국 여행자금)을 소유하는 것은 ‘무소유’의 삶입니까? 자신의 통장의 막대한 자금 소유는 무소유이고 청빈이며, 다른 사람의 잡다한 썩은 중고 가구의 소유는 탐욕이며 집착이며 악행이라는 것은 아전인수격의 잘못된 논리입니다.
집안에 가구는 별로 없지만 통장에는 돈이 두둑하여 몇 달씩 해외관광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과 집안에 잡다하고 쓸데없는 골동품 같은 살림살이는 가득하지만, 정작 통장에는 무일푼이거나 마이너스 통장에 농가부채가 가득한 사람이 한 마을에 살고 있다면 통상적으로 우리는 전자를 알부자라고 칭하고 후자를 빈민 혹은 무소유자라고 칭합니다.
저희 마을은 100가구가 조금 못되는 어촌마을입니다. 저희 마을의 주민들은 대부분 농가부채를 안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통장에 아무 것도 없고 오히려 마이너스 통장에 농가부채만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한 집이 파산신청을 해서 받아들여지니 너도 나도 파산신청하겠다고 나서는 형편입니다. 전에 완도의 금일도에 속해있는 2가구가 사는 작은 섬에 전도하러 가보았더니 21세기인 지금 한 가정에서 흑백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냉장고도 수십 년 된 썩은 냉장고이고 연탄도 배달이 안 되서 나무장작을 때고 있었습니다. 낙도선상선교회 팀원들 여러 명이 갔으므로 거짓말할 수 없는 일이고 거짓말 같은 사실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텅빈 충만을 느끼라면서 유럽이다 미국이다 러시아 횡단여행 인도여행이다 해외여행을 안방 드나들듯이 하시는 법정스님께서는 흑백텔레비전을 보며 수십 년 된 썩은 냉장고와 방안에 가득히 온갖 잡동사니 가구를 소유하고 있는 그 섬의 주민을 보고 “소유하는 것은 집착이며 탐욕이므로 버려라 버려라 버려라 버리고 텅 빈 충만을 느껴라”라고 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해마다 외국에서 몇 개월씩 체류하며 생활하는 분이 파산신청을 하는 농어민 서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오래된 낡은 고물 TV, 작은 냉장고, 라디오, 전화기 등을 집착이요, 탐욕의 산물이라며 ‘다 버려라’ ‘다 버리고 텅 빈 충만을 느끼며 살아라’ 고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수년 전에 중국항공기 사고 때 세상을 떠난 분들 중에 우리 한국인 4형제 부부가 있었습니다. 5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할아버지형제부부 7명이 -한 명의 할아버지는 중국여행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나 부인이 홀할머니이기에 7 명임- 난생 처음의 외국여행인 중국 여행을 떠나기 위해 중국항공기를 탔다가 그만 항공기 사고로 부부들이 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법정스님!
스님에게 과연 평생 처음 외국여행인 중국여행을 하기 위해 중국항공기를 탔던 그 부부 네쌍 7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소유하고 있는 케케묵은 TV, 냉장고, 전화기, 장롱을 버리라고 하실 자격이 있는지 정중히 여쭙고 싶습니다. 그들에게 수십 년 묵은 케케묵은 골동품 살림살이를 버리라고 요구하기 전에 본인이 외국에 몇 달씩 체류하며 생활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그 ‘통장의 비자금’을 먼저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눠주고 난 후에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우리나라의 90%의 서민들에게 ‘버려라’고 주장한다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해마다 외국에 몇 달씩 체류할 수 있는 ‘막대한 비자금’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서민들에게 골동품과 다름없는 케케묵은 고물 같은 살림살이들을 소유욕의 산물이나 집착으로 매도하고 ‘버려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요구이며, 입에 더러운 뭣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일 수 있습니다.
<내가 소프트웨어(통장의 풍부한 해외관광여행자금)를 소유하는 것은 선한 것이고, 너희들이 하드웨어 (잡다한 골동품 같은 고물 살림살이들)를 소유하는 것은 악독한 탐욕이요, 집착이며, 죄악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가진 악한 것(잡다한 살림살이)은 다 버려라, 버려라, 버려라, 나는 내가 가진 선한 것(통장의 돈)을 가지고 초호화여객선타고 휘파람불며 외국관광유람이나 하고 호텔에 숙박하며 몇 달씩 해외에 체류하며 생활할 테다>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바람피우면 로맨스이고 네가 바람을 피우면 불륜>이라는 논리와 같은 것 아닐까요?
케케묵은 가구나 살림살이를 버리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돈을 포기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통장의 돈이 넉넉히 있다면 오래되고 낡고 케케묵은 가구나 살림살이들을 버리는 것은 앉아서 떡먹기 보다 쉽습니다. 그러나 통장의 돈을 버리는 것은 고물 가구를 버리는 일보다 백배나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하드웨어(살림살이, 가구)에 집착하는 것보다 소프트웨어(통장의 돈)에 집착하는 것이 더 큰 집착이며, 더 큰 욕심이며, 더 큰 죄악일 수 있습니다.
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보겠습니다.
명동의 거리에서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1억원이 저축되어 있는 외국관광자금용통장과 화면이 벌겋게 나오는 고물 TV 한대를 놓고 둘 중에 하나를 가져가 보라고 해보십시오. 서울시민 천만 명이면 천만 명이 다 1억 원이 든 통장을 가져가지 중고TV를 가져가는 바보는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은 케케묵은 살림살이나 중고 가전제품에 대한 욕심보다 '돈'에 대한 집착과 욕심이 수십 배나 더 강렬합니다.
그러므로 케케묵은 중고 살림살이를 남김없이 다 버린다 해도 통장에 넉넉한 비자금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결코 집착이나 욕심을 버린 무소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가구를 버리지 않고 있는 사람보다 백배나 더 큰 집착광이며 욕심장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텅 빈 충만?
법정스님! 참으로 무소유를 외치고 싶으면 살림살이를 다 버리고 없앤 <텅 빈 방>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돈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불쌍한 길상사 불자들이나 굶어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위해서 보내고 난 후 <텅 빈 통장>을 보여주며, <나는 통장의 돈을 한 푼도 남김없이 다 주어 버리고 ‘텅 빈 통장’만 가지고 있음으로써 ‘텅 빈 충만’을 느끼고 있다>고 해야 ‘참무소유자’ 일 것입니다. ‘텅 빈 방’이지만 ‘충만한 통장’을 소유하고 있으면 ‘텅 빈 방’때문에 ‘텅 빈 충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충만한 통장’이 있기 때문에 텅 빈 방에서도 ‘텅 빈 충만’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법정스님의 책들을 수없이 읽고 또 읽어서 법정스님 연구전문가가 된 저는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외국을 수시로 드나들 정도의 소프트웨어(외국여행자금)의 유소유자인 법정스님은 ‘무소유’를 내세울 자격이 전혀 없고, 오히려 이름 없는 암자에서 가난하게 지내는 수많은 무명의 청정비구스님들이 ‘무소유’를 말해야 설득력이 있고 감동을 줄 수 있다.>
평생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하시고 이름 없는 암자에서 수행하시는 수많은 가난한 청정비구스님들,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평생 동안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맑고 향기롭게’(법정스님이 이끄는 모임)회원님들, 제 말이 틀렸습니까? 이름 없이 묵묵히 수행하시는 가난한 암자의 청정비구스님들이야 말로 ‘무소유자’라고 할 수 있지, 법정스님은 결코 ‘무소유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법정스님보다는 오히려 평생 외국을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기독교의 ‘한국의 프란시스코 이현필 선생’ 같은 분이야말로 ‘참 무소유’의 인물이 아닐까요? 이현필 선생은 하드웨어(살림살이)와 소프트웨어(통장의 돈)등 모든 면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진실하고 투명한 ‘참무소유의 인물’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외국에 나갈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버스비도 없어서 수십 리 산길을 맨발로 걸어 다니며 전도 했습니다. <맨발의 성자 이현필>이라는 책을 읽어보십시오.
이현필 선생의 스승인 도암의 성자 이세종 선생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갑부였는데 예수님을 믿은 후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부채를 다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이 공덕비를 세워주었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무슨 공덕비를 세우느냐?”며 공덕비를 땅에 묻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일생을 거지처럼 살았습니다. 중국과 몽골의 한센병자촌(나환자촌)만 다니시며 전도하고 목회하시는 김요석 목사님 같은 분이야 말로 하드웨어 소유도 없고 통장의 소프트웨어 소유도 없는 투명한 무소유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맨발의 천사 최춘선 할아버지같은 분이야말로 참무소유의 성자입니다. 저의 선친도 목사였는데 외국이라고는 가까운 일본이나 대만도 한 번 나가보지 못하고 살다가 천국에 가셨습니다. 아버님은 외국은 못 가보셨지만 해외는 가보셨습니다. 그 해외는 바로 제주도입니다.
공동체 삶을 사는 기독교인들도 ‘참무소유의 사람들’입니다. 개인 소유재산이 없이 많은 사람이 공동으로 재산을 관리하며 사는 기독교 공동체의 그리스도인들도 국내외에 많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 기독교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분들의 숫자는 약 60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참 무소유사상’을 갖지 않고는 절대로 공동체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 공동체에 관한 여러 권의 서적들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인 여러분, 법정스님의 ‘무소유사상’에 반해서 기독교를 버리고 불교로 개종한 그 연예인처럼 ‘왜 기독교에는 법정스님같은 분이 없나’ 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부지런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일반대형서점의 기독교서적 코너나 기독교 서점에 가셔서 기독교위인전, 순교자전기, 기독교 공동체에 관한 책들을 부지런히 찾아서 읽어보십시오. 법정스님보다 더 훌륭하고 욕심 없는 ‘참무소유의 그리스도인들’을 수없이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타종교 비방을 위해서 쓴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름 없는 암자에서 평생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하고 수행을 하고 있는 가난한 청정비구스님들이야말로 참 무소유의 스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법정스님만은 무소유를 주장할 자격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으며, ‘무소유’를 읽고 불교로 개종한 그 연예인처럼 믿음이 약한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에도 ‘참 무소유의 성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성도들의 영혼을 지켜야할 사명을 지닌 목사로서 그들의 신앙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일 뿐입니다.
이 글을 쓴 또 하나의 이유는 법정스님을 사모하는 비기독교인 친척이 법정스님을 말하며 저희 집의 가구나 잡다한 살림들을 버려야 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의 가구는 절반이 다른 분이 주시거나 주어온 것입니다. 주어온 가구라도 새 가구처럼 깨끗합니다. 외국에 나갈 돈이 없어서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낙도선교사에게 해외여행을 안방 드나들듯이 하는 법정스님의 사상의 잣대로 저와 은근히 비교하니 이치에 맞지 않았습니다. 즉 법정스님의 사상으로 선제공격 당한 저는 어디까지나 정당방어로 이 글을 쓴 것입니다.
제가 선제공격한 것이 아니라 법정스님이 무소유 사상으로 우리 서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잡다한 살림들을 죄악이나 집착이나 탐욕으로 규정하면서 선제공격했기 때문에 저는 정당방위적인 글을 쓴 것일 뿐입니다. 결코 제가 법정스님을 선제공격한 것이 아니라 법정스님이 저와 같은 서민들을 탐욕광 집착광으로 선제공격했기 때문에 정당방어의 글을 쓴 것입니다. 이 점 여러 저서들을 통해서 저희들을 ‘무자비하게’ 선제공격하신 법정스님께서 저를 비롯한 서민들에게 먼저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제공격은 나쁜 것이지만 정당방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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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수십 개국 해외여행에 펑펑 쏟아 부어버리고 일부를 장학금으로 낸 사람은 절대로 무소유자가 아니다.
그리고 자신이 쓴 책을 계속 출간해서 그 인세로 계속 장학금을 대거나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유언은 남기지 않고 자신이 쓴 책은 모두 절판하라니 이것은 또 무슨 행패인가?
내가 인세를 받아서 초호화 해외여행을 하고 수십 개국을 다니며 즐길 것 다 즐겼으니 이제 내가 죽으면 그 돈 다른 사람이 써 버릴까봐 아까워서 절판을 요구했는가?
출판사 관계자들이 ‘이 양반 죽으면서 못 먹는 밥에 코 빠뜨리는가?’라며 씩씩거릴 일이다.
한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훌륭한 신학자이며 주석가인 박윤선 박사님는 천국에 가시기 전 자신의 주석 인세를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고 전부 선한 일에 사용하도록 당부 하셨다.
법정스님이 자식이 없고 어차피 내가 인세 받아서 못 쓸 것 절판해 버려라는 것은 어쩐지 이기주의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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