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이 교회로 하여금 병들게 하는 것
최병규 박사의 이단문제 칼럼
이단에 빠져 그 신학교(신학원)를 수료하면서 어떤 이가 다음과 같은 소감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제가 어렸을 때 다녔던 교회에서는 장로님들이 목사님을 끓어 내렸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세 교회들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군대에 갔을 때에도 군종병들이 상관들에게 잘 보이려고 사병들을 억지로 교회로 데려 가려고 했기 때문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이단 단체의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을 수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식사 초두에 그 단체의 교주를 찬양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천지의 대 주제이신 창조주 하나님,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들을 피로 사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아주신 예수님, 그리고 오늘날 약속의 실체가 되셔서 영적 새 이스라엘 12지파를 창설하신 우리의 이기신 자 총회장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그가 기성교회로부터 받았다고 하는 경험들이 진실에 근거한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설령 그가 기성교회로부터 실망하고 좌절하였다 할지라도 이단으로 넘어가 이단의 교리를 배우고, 성삼위 하나님이 아닌 '인간 이긴자(그들의 교리에서 '이긴 자'는 복수 형태로 사용될 때에는 그 신도들을 가리키며, 단수로 사용될 때에는 인간 교주를 가리킨다. 그리고 인간 교주를 가리킬 때 '이긴자'라는 존재는 보혜사, 사도 요한격 목자, 약속의 목자 등으로 일컬어진다)'에게 영광을 올린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이 세상에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으며(롬 11:36),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롬 3:23-27)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아야 존재들이기 때문이다(롬 5:8; 벧전 3:18).
얼 마 전에도 한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이러한 주제에 대한 전화를 받고,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 물론 그분은 이단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는 어느 단체에 대하여 그들이 비판받고 있는 부분들이 많지만(필자는 그 단체가 조만간 이단으로 규정될 위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오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그 단체의 많은 주장들 가운데 적어도 한 두 부분은 우리 정통교회의 '미흡한 부분' 을 반성하도록 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이처럼 불건전 단체들이나 혹은 이단들이 기성교회 성도들에게 접근하여 '교회의 비리' 혹은 '교회의 단점'들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그들로 하여금 기성교회에 대하여 부정적인 사고를 하게 만들고 나아가서 기성교회를 떠나서 이단 교회 혹은 불건전 집단의 교회나 운동에 참여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런데 이단 및 불건전 단체들이 기성교회를 비판하거나 기성교회의 전통을 무시하거나 기성교회의 교리를 반박하는 일련의 일들은 우리 기성교회로 하여금 우리 자체적인 문제점들을 돌아보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교회를 뛰쳐나가서 그릇된 이단 교리를 추종하는 1차적인 이유를 우리는 사탄의 역사(혹은 사탄적인 공작)의 결과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들은 우리 교회들이 잘못 시행해왔거나 여러 가지 부적절한 미비점들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들을 개혁해가야 하지 않을까?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교회의 모토는 항상 개혁하는 것(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이라는 것을 상기할 때 우리는 이단들이 교회로 하여금 반성하도록 하는 여러 측면들을 살펴보고 고쳐나갈 수 있어야 하겠다. 우리가 진정으로 개혁된 교회라면, 우리의 자체의 결점과 부조리를 포함한 일체의 미비점들을 직시하고 '항상' 그리고 '기꺼이' 개혁해가야 하는 것이다.
이 단들이나 불건전단체들이 우리 교회로 하여금 반성하도록 하는 여러 요소들이 있겠지만 그 중 첫 번째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교리교육 시행'의 문제이다. 그들이 30개론을 공부시키든 초, 중, 고등 6개월 과정을 공부시키든, 80개 공과를 가르치든 그 무슨 성경공부와 신학훈련을 시키든 간에 이단들이 궁극적으로 해 가는 작업은 바로 '인간을 교주로 만들기 위해 교리공부'를 시킨다는 것이다.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해 온 내담자들 가운데는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교리공부나 성경공부를 한 적이 없다고 대답한 이들이 많다. 우리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기독교 교리'를 체계적이고도 전반적으로 가르쳐 놓지 않은 결과 정작 이단들이 철저한 거짓 교리로 접근해 올 때 기성교회 다니던 이들(그들을 성도라고 일컫고 싶지 않음: 그들 가운데는 평신도, 정통교회 신학교회에서 신학을 바르게 배우지 못한 전도사, 강도사, 준목, 목사, 목회자 사모들이 있음)이 미혹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각 신학교들은 신조학을 가르치면서 실제로 신학생들이 신학교 재학 시절에 교리 형성의 배경과 개요만 가르칠 뿐 아니라 그 내용까지도 충분히 이해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에야만 신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목회자가 될 때, 자신이 배운 바 있는 그 교리들을 성도들에게 교육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필자가 여러 교파와 교단 신학교의 교리 교육 시행 현황을 듣게 될 때 시정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이단들이 우리 기성교회로 하여금 반성하게 되는 것은 '요한계시록 이해'의 문제이다. 최근에 모 이단 단체는 우리 기성교회 목회자들에게 그리고 심지어는 평신도들에게도 그들의 요한계시록 주석(예, '성경에 대한 계시와 주석')을 배워보라고 권유해 오고 있다. 그것은 진실된 권유가 아니라 은근한 미혹이다. 그 책에서 그들은 먼저 주제와 성경 구절을 제시한다(예. 「땅의 사방 백성 곡과 마곡」, 계 20:7-10). 그리고 국내 건전한 신학자들(김재준, 김응조, 조용기, 박수암, 이상근, 석원태, 박윤선 등)의 견해와 외국 저자들(헨드릭슨, 렌스키, 래드, 레온 모리스, 로버트 마운스 등)의 견해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들은 기성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바 있는 통일교, 안식교, 여호와 증인 등의 요한계시록 해설도 병기해 놓고 있다.
사실 그들은 필자의 글을 그들의 한 지파의 홈페이지에 실어놓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기성교회의 요한계시록 해설 작업을 어디 한 번 해보라는 식으로 조롱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 우리 정통교회 목회자들에게 편지하여 '기성교회의 계시록 해석을 너무나 다양하다'는 점을 공격하면서, 자신들에게만 바른 해석이 있으니 그것을 살펴보라고 미혹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기성교회는 그 다양성들을 인정하고 병기하면서도 '그렇지만 기성교회는 요한계시록 해설을 통하여 인간을 교주화시키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 어떠한 중보자도 없다는 것'을 역설할 것이다.
이단들은 기성교회의 요한계시록 해설의 다양성을 병기해 놓은 다음에 결론 부분에 가서 자신들의 견해를 '바른 증거'라고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바른 증거'라고 하는 것은 우리 역사적 교회(historial church)가 쳐다 볼 때는 조잡하기 짝이 없고 일고의 가치도 없으며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무시하고 삼위일체론을 왜곡시키며 인간을 교주로 만들어가기 위한 것임을 간파할 수 있다. 사실 우리 교회들은 평신도들에게 요한계시록을 잘 설교한다든지 가르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계시록의 주요 어휘들에 대한 개념조차도 없는 평신도들에게 이단들이 접근해 와서 계시록 운운하면서 가르치게 될 때 그 교리를 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 여러 교파들과 교단들 가운데 예장 고신총회가 평신도용 요한계시록 공과를 재작하기 위하여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며, 이 시대 이단들의 침투를 대응하면서 성도들에게 종말론적 삶의 태도를 갖게 하도록 하기 위한 교회의 당위적인 과업인 것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 이 과업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미래 한국교회 즉 우리 자녀들이 맞이하게 될 시대의 교회는 '치명적인 위기'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있으면서, 평신도들에 이단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말만 늘어놓는다는 것은 결코 주님 앞에서 옳지 못한 일이다.
셋째로, 이단들의 비난과 폄하를 생각해 볼 때, 우리 교회가 개혁해야 하겠다는 것은 목회자나 성도들 모두의 윤리적, 사회적, 도덕적인 모든 측면의 쇄신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비단 안티기독교 인사들로부터만 아니라 사회의 여러 매체들로부터도 지적받아 온 바이다(사실 이단들이나 사이비단체들 그리고 불건전단체들은 기성교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심각한 부조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인간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부조리가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왜곡시키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는 부조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종종 어떤 이단들의 경우 그 교주들이나 측근자들의 비리들이 알려지기도 한다). 우리 교회들은 교회 세습, 목회자들의 지나친 권력욕, 개교회주의, 기타 교회들의 부조리한 모습들을 부절이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교회는 완전해야 한다는 것이 이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동시에 죄인들'인 우리가 모여 있는 교회는 주께서 바라시지 않는 모습들도 여전히 지니고 있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5장 ‘교회에 관하여’를 참조하라. 4절에서는 보편적인 교회도 더 순결하기도 하고 혹은 덜 순결하기도 한 것에 대하여, 그리고 5절에서는 하늘 아래 가장 순결한 교회라도 혼잡과 과오에 빠질 수 있지만(The purest Churches under heaven are subject both to mixture and error. 마 13:24-30, 47-48),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교회가 지상에 있게 될 것(마 16:18, 28:19-20; 시 102:28)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들이 우리 자체의 문제점들을 개혁해가지 않고 계속 고집하게 된다면 그것은 덕이 되지 못하게 되고, 종국적으로는 복음 전파에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잘못 될 수 있고 범죄할 수 있고 부족한 부분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계 2:5) 다시 주님 앞에 서고 새롭게 되어져 가야 한다. 주님의 용서를 경험하고 우리 각자의 삶에서부터 시작하여 교회 전체가 시정할 부분을 고쳐가자. 그렇게 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 앞서 가신 신앙선배들이 그토록 외치고 우리들에게 전수해주었던 '개혁주의'를 발전시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넷 째로 이단들이나 사이비, 불건전 단체들이 우리로 하여금 반성하게 하는 것은 바로 '성도의 교제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단에 빠진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 땅에 천사가 되어 우리들을 섬겨주셨던 많은 전도사님들, 혈육처럼 보살펴 준 이들, 모두 감사합니다...세상에 어떤 신앙인들이 늦은 저녁시간에도 헤어짐이 아쉬워 자리를 털지 못하고 뜨거운 형제애를 나눌까요? 그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열린 말씀으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새 그릇으로 지음 받은 좋은 예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 어떤 경우에는 동생이 이단에 빠져 있기에 그 누나가 그 단체의 이단성에 대하여 설명을 해줘도 그 동생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필자에게 증언한 바 있다: "누나, 나도 그 단체가 이단인 줄 알아. 그러나 그곳에서 사랑을 받고 있어!"
인간은 어느 공동체에서나 자신의 존재가 받아들여지고 격려 받게 될 때 그것을 통하여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더 강력한 소속감을 가지게 된다. 이단들에서 그러한 정서적 욕구가 채워진다고 하는 이들의 느낌을 우리는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사탄은 지상의 도성에 속한 시민들을 천사처럼 가장한 모습과 관계형성을 통해서 결속시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우리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넘어간 이들의 간접적인 증언을 통하여 '우리 교회의 사랑 부족'을 회개할 수 있어야 하겠다(계 2:4; 요 21:15-17). 그리고 함께 형제자매된 성도 간에 진실되며 순결한 교제가 부족했던 것도 뉘우칠 수 있어야 하겠다(벧전 1:22; 요 13:34; 몬 1:6-7; 행 2:42; 고후 6:12). 같은 교회에 다니지만 교제도 없고 서로 간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관계로 전락해 있다면, 이제는 그 부분들을 회복해 갈 수 있도록 교회의 사역자들은 기도하면서 노력하고 그러한 기회의 장을 마련해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단들이 우리 교회로 하여금 반성하도록 하는 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곧 '교회중심의 삶의 태도'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단으로 넘어가는 많은 경우들을 볼 때 그들이 교회 중심의 삶이 아니라 '교회 밖 중심'의 삶의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중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넘어가는 것만 봐도 그들이 형식적으로는 교회에 충성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교회 외적인 신앙활동'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우리들은 교회 밖의 여러 건전한 단체들(para-church)로부터 성경공부나 기독교 가치관을 배울 수 있고 또 그것을 대사회적으로 실천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성도들의 삶의 중심은 언제나 교회여야 한다. 교회에서부터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이들은 점차 교회에 대하여 불평 세력이 되며, 이단들은 그러한 성향이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용이하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삶의 중심이 늘 교회에 있도록 설교하고 가르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이와 관련하여 필자의'이단 대응 이전에 사도행전적 신앙을 가져야'라고 하는 글을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http://eusakidok.kosin.org/web/html).
이 상에서 필자의 이단 연구와 상담 경험을 중심으로 하여 이단들이 교회로 하여금 반성하게 하는 여러 측면들을 열거했다. 전국을 순회하면서 필자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이단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즈음에 우리는 성도들에게 이단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교육함은 물론이고, 나아가서 우리 교회를 거스르는 이단 단체들이 비평하고 고안하고 활동하고 있는 여러 측면들을 고려하면서 정작 우리 교회들이 반성하고 개혁하며 보완 발전시켜가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하겠다. 오늘 우리는 우리를 향한 부정적인 비평들이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이라면 그 부분들을 시정해 가야 하겠고, 또 우리가 복음전파와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더 애써야 할 부분들은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교회는 더욱 평안한 가운데 주 예수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 병규 박사는 예장 고신총회 유사기독교 연구소장으로서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이단상담소장으로 섬기고 있다(한국장로교총연합회 이단대책위원회 서기 및 위원장 역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대책위원회 서기 및 부위원장, 전문위원 역임). 한국교회가 매년 9월 첫째 주간(혹은 주일)로 지키는 이단경계주일 제정을 발의하였으며, 현재 각 교파와 교단이 평신도를 위한 요한계시록 공과 교재 제작하도록 협력을 구하며 추진하고 있다. 최근 들어 한기총 이단대책위원회에 '정관'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단 진단과 대응』, 『상담을 통해 본 이단의 모습』, 『교리를 알면 신앙이 자란다』 등이 있으며, 최근 이단 관련 칼럼들은 뉴스파워(newspower.co.kr)의 연재 코너 '최병규 박사의 이단 칼럼'에 게재되어 있다.
blog.daum.net/heresy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이단상담소
eusakidok.kosin.org 예장 고신총회 유사기독교 연구소장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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