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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때를 따라 공급 받아야 할 양식 (매일의 경건, 성실한 경건의 삶)

에스더2381 2011. 5. 21. 00:43

 

※ 때를 따라 공급 받아야 할 양식 ※

 

 

 

가끔 제가 카페에 잘 보이지 않으면 “목사님은 그냥 집에 계신데 왜 이리 안보이실까?”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전 매일 바쁘게 살아갑니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도 거의 낮 시간엔 바깥에 나가보지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현재는 하루 일할 수 있는 체력적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데 낮에 바깥나들이를 하거나 하면 일할 수 있는 시간을 거의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현재 건강과 체력 상 일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은데, 해야 할 일들은 많습니다. 힘들고 피곤해도 적어도 하루 2-3시간의 경건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이 사역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전할 말씀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성령님의 감동하심과 가르치심을 받으려면 주님 앞에서의 적어도 그만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감동하시고 가르치시는 말씀을 다시 글로 정련하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카페를 운영해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카페나 블로그에 좋은 자료들을 물색하여 올리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리고 무리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저녁에라도 약간의 산책과 운동시간 등을 가지고 성경이나 책등을 조금 보다보면 금세 하루의 시간이 깊어지고 잘 시간이 되곤 합니다. 대부분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고는 말하기 어렵겠지만 나름 매일 바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한편 현재의 건강은 늘 피곤하고 힘들지만, 언제나 믿음으로 건강을 주실 것을 믿고 고백하며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어쩌면 새로운 차원의 신앙의 세계로 인도하시는 연단과 깨달음의 시간, 가령 새로운 믿음의 세계라던가 치유 등의 세계에 대한 눈을 열어주시려는 복된 시간이 아닌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렇게 지내는 하루하루, 때로 피곤하면 거의 하루 종일 잠을 자곤 합니다. 주일을 앞둔 토요일도 피로감에 거의 하루 종일 잤던 것 같습니다. 해거름에 눈을 떠서는 그래도 내일이 주일이니 설교말씀을 위해서 잠시 기도하였습니다.


저의 다소 곤함을 아셨던지, 주님은 그리 지체하지 않으시고 전할 말씀의 주제와 대지를 간략하게 감동해 주시더군요. “나의 가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하나 주님이 아시니 나를 단련하신 후엔 정금같이 빚어주실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이 감동하신 설교의 주제는 “매일의 성실한 경건생활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에 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 주제를 두고 선택한 본문은 마태복음 24장 45-51절의 말씀을 택하였습니다. 본문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마24: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마24: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24: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마24: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마24:49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마24:50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마24: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본문을 보시고 다소 설교주제와 맞지 않는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이 말씀은 성도님들의 매일 성실한 경건생활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양무리를 맡은 종들을 향한 성실한 사명 감당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가끔 제게는 한편 부담이 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비록 간접적인 문서 곧 글을 통한 말씀사역이지만, 때때로 개인적인 여건으로 며칠 말씀을 전하지 못하면 마음에 부담으로 다가서는 성경말씀이기도 합니다.


가령 집에서 누군가가 가축을 기른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가령 축사를 정리해 준다거나 몸 손질을 해 준다던가 하는 일들은 가끔 바쁘면 거르거나 미루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양식, 곧 꼴들과 물들을 공급하는 일은 늘 성실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하지 아니하고 하루는 엄청 포식하게 주었다가 다음 날은 이런저런 일로 미루어 굶기고 이런 식으로 가축을 기른다면 모든 가축들이 다 병들거나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생명과 관련된 양식에 관한 일은 성실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의 매일의 성실한 경건한 삶”의 주제를 두고 이 본문을 택한 것은, 그 말씀을 역으로 생각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성실한 경건생활을 통하여서 영적 양식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일을 맡은 종들을 향한 경종과 부탁의 말씀입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면 참 목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요, 그분이 주시는 풍성한 꼴을 먹어야 영적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적어도 영적 생명에 관한 생활은 매일 성실하여야 함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본문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연 매일 성실한 경건 시간을 가지며 생활하시고 있습니까? 매일 규칙적이고 시간이 길던 짧던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고 그 빛의 비추임을 받는 시간을 가지고 계십니까?


만약 그러하다면 영적으로 나름 강건하실 것이며 참으로 복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러하지 못하다면 분명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하시며 병든 부분이 있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양식에 관해서는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규칙적으로 때를 따라 공급이 되지 않으면 건강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왜 매일매일 성실한 경건의 시간을 가지며 진리와 의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4 가지만 간단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너희는 생은 유한하니 하루하루를 귀하게 여기라” 말씀하시며 감동하셨습니다.


어제 오후 해질 무렵 산책겸 운동을 잠시 나갔었습니다. 공중걷기 운동기구를 이용하여 잠시 운동을 하고 있는데, 눈앞에 나풀나풀 거리는 어떤 무리가 보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하루살이더군요.


생물학 전공을 한 사람이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하루살이는 하루를 살기에 하루살이라고 한다지요. 70-80년을 사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하루살이의 생은 정말로 짧습니다.


그러나 수백 혹은 수천 년을 사는 나무나 신록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의 생명도 참 짧아 보일 것입니다. 가령 제가 즐겨 찾는 장소의 자라는 긴 수명의 나무가 저를 쳐다보면 잠시 땅에 보이더니 이젠 안보이네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긴 것 같지만 정말 짧고 세월은 바람과 같고 빛과 같이 흘러갑니다. 30즈음에 결혼하고 몇 년 정신없이 지내다보면 금세 40, 이 나이쯤 되면 벌써 구세대로 취급을 받지요. 또 그렇게 정신없이 몇 년 지내다보면 50, 60 인생은 정말 성경의 말씀처럼 아침 이슬과 같고 안개와 같은 것을 조금씩 실감하면서 살아갑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은 긴 것 같지만 짧고 짧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지며, 기도와 말씀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고 진리 안에서 아름답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짧은 인생 가운데서 한편 우리가 또한 우리가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푸른 나이는 또한 더욱 적기 때문입니다. 젊은 날 푸른 날은 한 시절 여름날 푸르른 나뭇잎처럼 곧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가령 우리가 살아가다가 어떤 질병으로 시한부 생명의 선고를 받았다면, 그것이 몇 개월이라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귀하고 흘러감이 아쉽겠습니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의 육신은 죽음의 언도를 받고서 살아갑니다. 태어날부터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하루를 너무도 귀하게 생각하며, 진리 안에서 아름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매일의 경건의 시간은 필수요, 생명입니다. 왜냐하면 기도와 말씀에 시간을 드림이 없이 타락한 본성의 우리가 하루하루를 진리 안에서 아름답게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능력이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빛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생은 반복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님은 설교 대지를 주셨습니다.


누구나 그러한 생각을 한번 쯤 하시겠지만, 저는 정말로 다시 한번 어린시절로 돌아가서 새롭게 인생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지금의 나이에서 생에 대해서 깨달은 것으로 다시금 한 번 더 새롭게 살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것들이 있을 것이고 저 또한 개인적인 것이라 말씀드리지 않지만, “아 그 때, 그랬더라면...”라고 생각되는 지난날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들은 너무도 가슴 아프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하신 대지처럼 우리의 생은 반복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행착오라는 것이 없습니다. 가령 교통신호를 무심코 지키지 않다가 사고를 당하여 불구가 되면 그것으로 불구의 몸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다른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험삼아 이렇게 해보고 다시 저렇게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의 하루, 한번의 시간, 한번의 인생 그것으로 우리의 현세의 삶은 끝을 맺습니다. 그림을 그리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찢어버리고 다시 새 도화지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하루하루를 진지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 뿐인 인생, 한 번 뿐인 오늘이라는 하루, 그 하루하루의 그림을 아름답게 그려가려면 매일의 경건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는 타락한 본성의 육을 좇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셋째, “말씀과 진리 안의 삶에 진정한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감동하시며 작은 대지를 주셨습니다.


한 번 뿐인 인생,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을 추구합니다. 조금 더 성공하고 싶어 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합니다. 더 많은 취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오르고 취하면 기분이 좋고 마음이 즐거운 것은 한편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혼적인 기쁨이요, 즐거움입니다.


그러한 즐거움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다시금 목마릅니다. 아무리 오르고 취하여도, 아무리 먹고 마시어도, 터진 웅덩이와 같아서 다시금 목마릅니다.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주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의 갈구는 무한한데 이 세상엔 무한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무한하신 하나님 한 분 밖에는 그 마음의 그릇을 가득 채우고 흘러넘치게 할 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과연 누가 이러한 위대한 행복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세상의 부와 귀를 아무리 가진들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것을 누렸던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도다” 탄식하고 숨을 거두었습니까?


한 번 뿐인 인생, 그리고 그리 길지도 않은 인생, 그 하루하루의 삶에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누리는 사는 인생보다 복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호화로운 집에 살고 높이 오르고 많은 것을 취하였다고 하여도 마음에 행복이 없다면 행복한 인생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직 참된 행복과 만족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기에 우리는 매일,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의 시간, 곧 하늘의 양식을 공급받는 시간을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을 기웃거려보아도 세상은 우리를 외면합니다. 더욱 곤고해질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 오직 하나님을 통한 마음의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순종하는 진리의 삶에 있습니다.


넷째로, 주님은 “이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대지를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6절 이하를 보면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고 있지요.


마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마12: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이 말씀을 거론한 것은 한 가지 예를 든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무심코 참 많은 말들을 합니다. 좋은 말도 하지만 나쁘고 하지 말아야 할 말들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심판 날에 우리가 한 그 수많은 말들에 대하여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할진대 하루하루의 우리의 삶, 나아가 우리의 그 하루하루가 모여서 이룬 생에 대한 심판은 말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우리의 인생은 내가 지금 살아가는 오늘이라는 현재의 하루가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은 그 하루하루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면 생명이냐 사망이냐의 심판은 면하겠지만, 성경은 불 속에서 겨우 벗어난 것처럼 부끄러운 구원도 말씀하고 있지요.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라” 우리 모두 주님의 환한 미소와 함께 그러한 칭찬을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매일 기도와 말씀의 시간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매일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져도 시시때때로 넘어지고 범죄하는 것이 우리일진대 그러하지 아니한 사람의 삶은 물어보거나 살펴볼 필요조차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 스스로가 잘 알지 않습니까?


아시겠지만 구약은 신약의 모형이요, 그림자입니다. 하나님은 매일 들판에 나가서 만나를 줍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매일 하나님의 뜰에 나가서 하늘양식, 곧 만나를 매일 공급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육이 그러하듯 그래야만 우리의 속사람, 곧 영이 강건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왜 그리스도인이 매일매일 경건한 삶과 시간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하여 간단하게 감동하신 말씀들입니다.


막바지에 주님은 다시금 “한 번 뿐인 인생, 진리의 물감으로 아름답게 그려가라” 감동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냥 평어 적으로 말씀하셨지만 제가 시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해본 말씀입니다.


나아가 “오늘이라는 하루가 너희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라, 너희는 그 날과 시를 모르지 않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옳지요. 가령 오늘이라는 하루를 엉망으로 살다가 홀연 주님의 부름심을 받는다면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으로 삼은 말씀의 50절의 말씀처럼, 주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의 개인적이던 우주적이던 마지막 날은 생각하지 않은 날, 홀연히 도적같이 오리라고 거듭해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까지 위의 본문과 설교를 위해서 감동하시던 주님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의 시종은 측량할 수 없다고 말씀하듯, 저의 믿음과 행함의 부족이던, 알지 못하는 어떤 영적인 것에 속한 것이던, 말씀에 근거하여 치유 받았음을 믿고 주장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 현재적으로 치유를 누리지 못하여 다소 마음이 힘든 저를 향하여 이러한 말씀을 감동하셨습니다.


어려움을 겪으시는 지체님들에게도 다소 위로와 용기의 말씀이 될 듯하여 개인적인 경건시간 주님과 교통한 것을 잠시 더 나누어봅니다. 위에 기록한 주님의 감동하신 설교의 대지와 또한 개인적으로 들려주신 주님의 말씀 속에서 매일의 경건한 삶에 대한 새로운 각오와 또한 위로와 격려를 얻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래봅니다.


주님께서 성령 안에서 감동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생은 유한하고 그 속의 아픔과 슬픔의 날들도 한 순간이니라. 눈을 들어 영원을 바라보아라. 그리고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며 그 하루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족하게 생각하며, 오늘이라는 하루의 현재를 누리는 삶을 살아가라”


“기쁨과 감사를 잃지 말아라. 감사는 어려운 환경을 바꾸고 축복을 누리게 하는 영적 한 비결이다. 기뻐하라. 말씀을 가슴에 깊이 품고 그 참된 소망 가운데서 늘 기뻐하여라. 하나님은 살아계시니 모든 것은 그 말씀대로 될 것이며, 이 모든 것은 순간에 다 지나가리라”


아멘! 마라나타!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죄악 가운데서 탄식하는 모든 피조물에게 새 날을 속히 허락하여 주옵소서.

<저작권자: cafe.daum.net/riverofwater, 초록 등불 목사>

 

 

[샬롬] 혹 말씀을 가져가신다면 불편하시면 아래링크는 삭제하시더라도 글쓴이는 남겨주셔서 저작권은 지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늘 평안하시고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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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정빛 생명수와 불 비둘기
글쓴이 : 초록 등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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