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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공관복음서 탐구

에스더2381 2010. 7. 2. 11:51

 

 

공관복음서 탐구

 

 

1. 공관복음서 탐구(探究) 를 시작하며


공관복음서 탐구 에 동참하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본 강좌는
2000년 상반기 동안 마르코 복음서를 중심으로 공관복음서 전체를 자세히 공부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1999년 한 해 동안 개설됐던 구약성서의 맥(脈) 강좌 때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여러분은 매주 발행될 본 자료의 안내를 받으며 공부하게 될 것입
니다. 본 자료는 크게 네 부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첫째 부분 성서길잡이 는 본문을 읽는 데 꼭 필요한 안내를 해 놓은 것이고, 둘
째 부분 현문우답(賢問遇答) 은 본문을 읽으며 갖게 될 온갖 궁금증을 질의응답
형식으로 해설해 놓은 것이고, 셋째 부분 곰곰이 생각하기 는 본문을 읽으며 일주
일동안 씨름해야 할 과제를 제시해 놓은 것입니다. 마지막 말씀산책 은 앞에서 주
어진 과제에 대한 하나의 해답으로 일종의 명상자료입니다.
본 과정은 일주일에 한번씩 있는 전체 모임에 참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전
체 모임 시간에는 각자가 일주일 동안 성서를 읽으며 느낀 체험과 곰곰이 생각하기
를 통해 얻은 해답을 서로 나누며, 강의도 들을 예정입니다. 하지만 사정상 전체 모
임에 참여할 수 없는 분은 본 자료를 가지고 혼자 공부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밝힐 것은 본 과정의 중심은 성서 읽기라는 것입니다. 본 자료는 여러분이
성서 본문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따라서 성서는 읽지
않고 본 자료만 읽는다면 별다른 효과를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곰곰이 생각
하기 에서 제시된 질문에 대해 성의껏 해답을 찾아오셔야만 합니다. 성서는 질문하
는 자에게만 대답합니다. 아무 질문 없이 맹목적으로 성서를 읽는 것은 공염불에 불
과합니다. 본 강좌의 목적은 공관복음서를 자세히 읽는데 있지 않습니다. 공관복음서
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쌓는데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성서를 올바로 읽는 훈련을 하고
나아가 그 말씀 따라 사는 훈련을 하는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질문을
갖고 성서를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성서가 죽은 문자가 아니라 생명의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모두가 본 과정을 통해서 공관복음서에 묻혀있는 보물을 찾고
생수를 길어 올리는 기쁨을 맛보시길 빌며, 이를 통해 내적 치유와 외적 변화를 경
험하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공관복음서 탐구(探究) 제1강


2 공관복음서 탐구 (探究)


2. 본 과정을 효과적으로 공부하기 위한 지침


(1) 주초 하루를 성서 공부하는 날로 정합니다.
(2 ) 본 자료의 성서길잡이 를 먼저 읽습니다.
(3 ) 성서길잡이 의 안내를 토대로 해당 성서 본문을 꼼꼼히 읽고 명상합니다.
이때 각 복음서의 차이점을 꼼꼼히 살피며, 마르코 복음서 본문과 병행하는
마태오와 루가 복음서의 본문도 꼭 읽습니다. 참고할 성서로는 네 복음서
대조 (정양모·배은주·김윤주 엮음, 분도출판사, 1993)를 적극 추천합니다.
이 책은 네 복음서를 한꺼번에 볼 수 있게 편집되어 있고, 그리스어 원전에
가장 가깝게 번역되어 있어 공관복음서를 탐구하려는 본 과정에서 사용하기
에 안성맞춤입니다. 또 본문을 읽을 때 성서지도 를 함께 보는 습관도 들이
시기 바랍니다.
(4 ) 본문을 읽다가 궁금증이 생기면 반드시 메모해 두고, 감명 받은 구절이나 느
낌을 3∼4줄 정도로 노트에 적습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국어사전에서
뜻을 찾아봅니다.
(5 ) 다음으로 본 자료의 현문우답 을 읽으며 궁금증을 해소합니다. 만약 거기에
도 답이 없으면 수업시간에 질문합니다.
(6 ) 끝으로 감명 받은 성구에 대한 명상과 곰곰이 생각하기 에서 제시된 질문에
대해 일주일 내내 깊이 묵상하고 성의껏 해답을 찾습니다.
(7 ) 매주마다 있는 전체 모임에 지각하지 않고 참석합니다. 이날은 한 주일 동안
개별적으로 성서를 읽으며 얻은 체험과 발견한 진리를 공동체 안에서 함께
나누며 강의를 들음으로써 도움을 받는 날입니다.


3. 성서길잡이


(1) 왜 마르코 복음서를 중심으로 공관복음서를 읽어야 하는가?
주후 70년경 마르코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구전을 채집하여 사상 처음으로 마르
코 복음서를 펴냈습니다. 그보다 10- 20년 앞서 어느 해외 유대계 그리스도인이 주
로 예수님의 말씀 구전만 채집하여 예수 어록(略Q, 자료라는 뜻의 독일어 Qu elle
의 머릿글자)을 펴냈습니다. 그리고 서기 80년경 루가와 마태오가 각기 복음서를 펴
냈는데, 그들은 주로 마르코의 구조를 따르면서 그 중간 중간에 어록을 삽입하는 수
법을 썼습니다. 또한 루가와 마태오는 마르코와 어록 이외에도 제각기 예수님의 말씀
과 행적 사료를 채집하여 여기저기에 삽입하였습니다. 이 사료들을 일컬어 루가의 특
수사료(略SL)와 마태오의 특수사료(略SM)라고 합니다.
이처럼 마르코·마태오·루가 복음서는 사료상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서로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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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복음서를 개별적으로 보기보다는 함께 보는 것(共
觀)이 순리입니다. 이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라 하는 이유도 바로 여
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세 복음서 가운데 마르코 복음서가 가장 중요하며 그 우선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은 마르코가 제일 먼저 된 복음서일 뿐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그
의 행적에 치중했고, 다른 두 복음서는 마르코의 순서를 틀로 하여 필요에 따라 그것
을 수정했고, 그 사이사이에 Q자료나 또는 각각의 특수사료를 삽입·편집했기 때문입
니다.
마르코 복음서 Q라는 예수어록
마태오
특수자료
마태오 복음서 루가 복음서
루가
특수자료


(2) 예수 시대의 팔레스티나 지리
팔레스티나는 필리스틴 , 즉 불레셋 사람들이라고 불리던 백성에게서 유래했습니
다. 그들은 구약성서 시대에 가나안의 해안평야에 정착했는데,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지역을 필리스티아 , 혹은 불레셋 땅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에서 나온 용어가 지금
팔레스티나라고 부르는 땅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된 것은 로마 제국 시대에
이르러서였습니다.
하느님이 선택한 당신 백성에게 약속한 땅 팔레스티나는 성서에서 중요한 사건 대
부분이 일어난 고대 중동의 중심지입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라는 성서에서
눈에 익은 범위로 측정하면 남북의 길이는 24 0- 250㎞입니다. 동쪽과 서쪽을 직선
으로 연결한 폭을 측정하면, 단은 33㎞, 브엘세바는 113㎞입니다.
요르단 계곡이 그 땅을 길게 동서로 나누고 있습니다. 이 계곡 안에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던 요르단강이 있습니다. 헤르몬산의 발치에서 시작하는 이 강은 겐네사
렛 호수(갈릴래아 혹은 티베리아 바다라고도 불립니다.)를 향해 흘러내리고 굽이치
는 물길이 되어 사해로 급하게 흘러갑니다. 사해는 해면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으
로, 물이 흘러 들어가기만 하고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는 않습니다. 염분 함유량이
보통 바다의 25%가 넘어 물고기가 살 수 없는 곳입니다. 면적은 94 5㎡이고, 평균
수심은 360m , 가장 깊은 곳은 4 00m입니다.


4 공관복음서 탐구 (探究)


유다 지방
유다
예수님이 태어나고 죽은 지방입니다. 복음서에는 예루살렘(수도) , 베들레헴(예수
님의 탄생지) , 엠마오, 아리마태아, 예리고, 베다니아 같은 주요 지명이 나옵니다.
유다의 남쪽과 사해근처 지역은 사막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예수님이 단식하고 유혹
을 받은 곳입니다.
대부분의 거주자들은 바빌론 유배시 추방되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유다 지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유다인이라 부르고 그들의 땅을 유다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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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티나 종교의 지배계층은 모두 여기에 정착하였고, 예루살렘과 예리고 주위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갈릴래아
예수님이 성장하고 선교를 시작한 지방입니다. 갈릴래아는 문자 그대로 사방이 이
방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곳입니다. 비유다적인 사고와 외부세력과의 접촉이 필연
적이었기 때문에 갈릴래아는 팔레스티나의 다른 어느 지방보다도 개방적이었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갈릴래아의 지명들은 나자렛(예수님의 고향) , 가나, 가파르나움,
막달라 그리고 수도인 티베리아 등입니다. 이곳은 유다보다 비옥했기 때문에 더 번창
했고 인구도 더 많았습니다.
베레아
이 지역은 요르단 동쪽의 넓은 고원으로 갈릴래아보다 넓으나 인구는 훨씬 적었습
니다. 복음서에서 베레아는 요르단강 건너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은 트란스요르
단의 두 지역인 베레아·데카폴리스 중의 하나입니다. 구약시대에 트란스요르단은 모
압·암몬·길르앗·바산을 합친 지역이었습니다.)
비유다 지방
사마리아
사마리아는 유다와 갈릴래아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수도도 사마리아로 불렸습니
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한 후에도 그 지역에 남
아 있던 이스라엘인들과 유입된 이방인들이 혼인하여 낳은 후손입니다. 비록 그들도
유일신인 하느님을 믿었지만, 그들의 종교는 단지 모세오경에만 근거를 두었습니다.
그들은 시카르 근처의 그리짐산 위에 있는 성전에서 과월절을 보냈습니다.
이 지역의 경계선에서 예수님은 10명의 나환자를 치유했지만 단지 한 사람만이 감
사를 표시했습니다. 그가 바로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의 한 마을인 시카르
에서 예수님은 우물에 물을 길으러 왔던 사마리아 여인과 생명과 진정한 예배 등 깊
은 영적 진리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데카폴리스
이 지역은 기원전 63년에 로마가 팔레스티나를 점령한 후 10개의 도시가 연맹을
맺어 생긴 곳입니다. 테카-폴리스란 10개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시리아의 로마에서
파견된 사절에게 전반적인 행정이 예속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을 듣기 위하여 이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치유의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겐네사렛 호수의 동쪽 해안에서 치유된 악령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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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알린 곳도 바로 이 지역입니다.
페니키아
셈족의 명칭으로는 가나안이라고 불리는 이 땅은 시리아의 로마령의 일부였습니
다. 페니키아인들은 조선공과 목수로 유명합니다. 띠로와 시돈은 페니카아에서 가장
화려한 항구였습니다. 솔로몬이 고용한 목수 중의 일부가 그곳에서 왔으며 그들의 종
교는 다신교적이고 비도덕적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귀신들린 시로-페니키아
(가나안) 여인의 딸에게서 악령을 몰아냈습니다.
필립보 영지
이곳은 가울라니타스, 이두레아 그리고 트라코니티스 등 팔레스티나의 북쪽에 뻗
쳐 있는 다양한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베싸이다와 필립보의 가이
사리아 같은 지명의 도시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베사이다는 베드로와 필립보의 고
향으로 예수님이 5천명을 먹인 기적을 행한 곳입니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는 베드
로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두매아
유다의 남쪽에 위치한 이 지역은 에사오의 후손들인 에돔족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입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에돔은 이두매아입니다. 대헤로데는 이두매아를
이끄는 가문에 속합니다.
※ 위의 자료는 모니나 V. 베이베이 지음, 시청각통신성서교육부 옮김, 함께 발견하는 하느
님 말씀 (서울: 성바오로딸, 1999 ) 10 1- 105쪽에서 옮긴 것임.
(3) 성서시대의 정치·종교 집단
사두가이파
이 계층의 대부분이 사제계급과 부유층에 속했으며 거의 모든 대사제들은 사두가
이파였습니다. 이들은 정치적·사회적으로 정부가 장려하던 생활양식과 로마법을 받
아들였기 때문에 유다인들은 사두가이파를 경멸했습니다. 종교적 사고에 대해서는
보수적 입장을 취하여 죽은 자의 부활이나 천사와 악마의 존재, 마지막 심판, 하느님
의 직접적인 섭리 같은 후기 교리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바리사이파
엄격한 율법준수와 심한 고행으로 유명한 바리사이인들은 비사제 계층에 속했습니
다. 아무나 바리사이인이 될 수 있었고, 정치적·사회적으로 로마 정부에 냉정한 태도
를 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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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주로 율법을 공부하고 그것을 문자 그대로 행하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율법
을 모르는 무리와 관계를 맺는 것은 그들을 더럽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제를 피하
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적인 준수에도 불구하고 신앙이라는 명목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재물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 혹은 회칠한 무덤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엄격한 종교생활 때문에 그들을 존경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들의 탐욕을 경멸하기
도 했습니다. 새로운 사고의 수용에 관대했던 그들은 사두가이파가 거부한 구두전승
과 기록전승을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율법학자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가 생기기 오래 전부터 존재한 율법학자들은 교육받은 시
민으로서 솔로몬 시대에 처음 등장하여 왕궁에서 서기와 번역가로 일했습니다. 유배
후의 율법학자들은 율법에 아주 조예가 깊었습니다. 율법공부가 유행했고, 그들 중
몇 사람은 깊은 학식을 인정받아 랍비 혹은 라뽀니라는 칭호를 받았지만 불행하게
도 그들은 율법주의에 빠졌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 병을 치료하는 것도 일 가운
데 하나라는 이유로 금지하고 삔 발이나 손에 차가운 물도 뿌리지 않았습니다. 잘린
손가락에 약을 바르는 것이나 평평한 붕대로 감는 것에 이르기까지 율법을 세심하게
준수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대부분 바리사이였고, 극소수가 사두가이파 편에 기울
어지고 있었습니다.
산헤드린 (최고의회 )
7 1명으로 구성된 유다인들의 최고 종교의회로서, 모두 위의 그룹에서 나온 사람들
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정치적 권력은 없었지만 종교 문제와 관련하여 대사제의 자
문기관으로서 조언해 줄 수 있는 유다인의 최고법정의 기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최고
의회는 대사제, 원로 혹은 평신도 의원 그리고 율법학자 세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었
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로마의 행정관이 임명한 대사제는 오직 한 명뿐이었으나 실제로 산
헤드린에 있는 사람들은 그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
다. 세례자 요한의 설교의 서두에서 안나스와 가야파 같은 대사제들을 언급하고 있
는 것을 보면 이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보통 대사제와 원로는 사두가이파로, 율법
학자들은 바리사이파로 단정합니다.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하고 빌라도에게 넘겨준
것도 바로 최고의회였습니다.
에세네파
이 집단은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으나, 예수님 시대에 이미 존재했던 사람들로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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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이들처럼 하시딤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준수에 있어서 바
리사이보다 훨씬 급진적이었고, 로마인들과는 협력하지 않았습니다. 도시에서, 사해
연안의 언덕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고 엄격하게 준수했던 목욕의식과 세정의식
등 특유의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제는 위법이라고 여겨서 성전 예배에
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으므로 요나단(마따디아의 막내 아들로 유다 마카베오의
동생)이 정치권력뿐 아니라 종교의 최고권자인 대사제가 된 것을, 장악이나 침해, 심
지어는 반란으로 보았습니다. 이런 까닭에 그들은 정상적인 유다인 생활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게 되었는데 대부분 독신자였습니다. 이 집단의 여러 가
지 특징은 소위 쿰란 공동체라고 불리는 사해근처의 고고학 유물의 발견을 통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194 7년) . 쿰란 공동체의 고대 두루마리들은 오늘날 성
서연구에 커다란 가치가 있는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열혈당원
이 집단은 바리사이파를 너무 회유적이고 수동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바리사아파
에서 분리되어 나와 로마에 반대하는 파를 따로 형성했습니다. 그들은 극단적인 민족
주의자였으므로 외국의 압제와 싸우기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단검으로 무장한 집단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돌아다니며 원수인 로마인이나
유다인 협력자들을 암살하였습니다. 인구조사와 공물 헌납을 반대하는 까닭에 압박
받는 계층의 지원을 받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의 하나인 열혈당원 시몬이 이 집단에 속했습니다.
헤로데 당원들
그들은 헤로데 왕조를 지지하는 사람들로서 종교 당파나 열혈당원 같은 극적인 파
는 아니었습니다. 복음서에 세 번 나오는(마태 3 ,6 ; 12 ,13 ; 22 , 16) 이들은 예수
님을 잡아서 제거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재산은 로마에 절대적인 충성을 바침으로
써 얻어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팔레스티나나 고대 세계의 경제구조에서는 중산층이 없고 부(副)는 극소수에게 집
중되어 있었습니다. 대부분 가난했고 그들의 운명은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의 뜻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정부와 그들의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을 경제적으로 약
탈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축재가 아닌 나눔, 차별이 아닌 평등, 폭력이 아닌 봉사
와 비독재를 전했던 예수님의 박애운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기쁜 소식이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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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사람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아주 다양했습니다. 다른 민족의 피가 섞인 사람들(사
마리아인들) , 그리스의 생활양식을 따라가며 살아가는 유다인,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사람, 매춘부, 범죄자, 강도, 다른 여러 종류의 공적 죄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병환
자가 여기에 들어갑니다. 나병환자의 상태는 매우 비극적인 것이었습니다. 치료받을
병원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에서 추방당해야 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들과
접촉하는 것, 심지어는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마저 율법을 어기기에 충분하였습니다.
※ 위의 자료는 모니나 V. 베이베이 지음, 시청각통신성서교육부 옮김, 함께 발견하는 하느
님 말씀 (서울: 성바오로딸, 1999 ) 110- 114쪽에서 옮긴 것임.
(4) 헤로데 가문
로마는 기원전 63년 이후 팔레스티나를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싸우고 있던
하스모네아가의 형제 히르카누스 2세와 아리스토불루스가 폼페이우스에게 도움을
청할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황제로 있을 때, 그리고 로마의 가
신인 안티파테르의 아들 대헤로데가 팔레스티나를 통치하고 있을 때 탄생했습니다.
안티파테르는 한때 카이사르가 임명하여 로마의 행정 장관을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대헤로데 (주전 3 7- 4 년 )
하스모네아가의 마지막 왕자가 패배한 직후에 헤로데는 팔레스티나의 주인이 되었
습니다. 그는 완전한 자치와 로마에 공물도 바치지 않는 자유를 누렸습니다. 단지 전
쟁과 외교정책과 관련된 문제에만 로마에 복종하였습니다. 로마의 호감을 사기 위해
황제숭배를 지지했고,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성전 재건을 포함한 거대한 문화
사업으로 건축공사에 착수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인은 헤로데의 영악함과 야망 그
리고 잔인함 때문에 그를 미워하였습니다. 그는 항상 음모에 둘러싸여 있었고 반란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열 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아내 한 명을 죽이
기도 하고, 몇 명의 아들이 그에게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는 등 가족들과 끊임없이
투쟁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에 그는 거의 생애의 종말에 다다른 때였습
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그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계획했는데 대신 다른 아이들을 대량
으로 학살했다고 합니다. 그는 주전 4년 과월절 전에 예리고에서 죽었습니다.
헤로데의 사후
1) 분열된 팔레스티나
헤로데의 아들 사이에 아버지가 남겨준 유산문제로 싸움이 붙자 아우구스투스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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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개입하여 헤로데의 세 아들들에게 영토를 분할하여 나누어주었습니다.
) 아르켈라우스(주전 4년~ 주후 6년)
그는 수도로서 예루살렘과 이두매아, 유다, 사마리아를 받았습니다. 그도 아버지
처럼 예상할 수 없고 잔인한 인물이었으므로 요셉은 유다로 돌아가기를 두려워하여
갈릴래아에 정착했습니다(마태 2 ,22 ) .
) 헤로데 안티파스(주전 4년~ 주후 3 9년)
그는 수도 티베리아가 있는 베레아와 갈릴래아를 받았습니다. 동생의 아내인 헤로
디아와 결혼하여 세례자 요한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질문에 아무 답
변도 하지 않자 모욕한 인물이 바로 이 헤로데입니다(루가 23 ,8- 11) .
) 필립보(주전 4년~ 주후 34년)
그는 가울라니타스, 이두레아, 바타네아, 트라코니티스 그리고 아우라니티스를 영
지로 받았습니다. 그의 치세기간은 평화로웠습니다. 헤로디아와 헤로데 필립의 딸인
조카 살로메와 결혼했으나 후손이 없이 죽었기 때문에 그의 영토는 시리아에 병합되
었습니다.
2) 아르켈라우스의 폐위 : 로마의 총독 정치가 시작되다(주후 6년)
아르켈라우스는 아버지의 나쁜 점을 많이 닮았고 좋은 점은 거의 갖지 못한 듯합니
다. 통치 초기 몇 달만에 그는 3 ,000명 이상을 처형했습니다. 세력 있는 가문들이
그에게 반대하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들은 로마 황제에게 사자를 보내어 몇 번이나
아르켈라우스를 폐위시킬 것을 요청했습니다. 결국 아우구스투스는 아르켈라우스를
프랑스로 유배시키고 로마의 총독들이 대신 그 지역을 다스리도록 칙령을 내렸습니
다.
총독의 주요 업무는 세금을 걷거나 조달하고 내부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 새 사제
를 임명하거나 폐위하는 것, 유다인들의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내리고, 로마에 모든
발전들을 보고하는 것 등입니다. 총독 가운데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 본시오 빌라
도입니다.
본시오 빌라도(주후 26- 3 6년)
예수님의 3년의 공생애 동안에 유다 총독으로 있었던 그는 이주 영악하고 끈질긴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총독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 황제의 얼굴을 새긴 메달을 건 군
대를 예루살렘에 입성시킬 정도였습니다. (어떤 형상을 숭배한다는 것은 유다인의 신
앙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 또한 수로(水路)를 건설하기 위해 성전의 돈을 사용
하기도 하는 등 전반적으로 그는 유다인을 화나게 하고 자극하였습니다.
제 1호 2000년 1월 9일 11
예수님의 사형에 동의하도록 재판이 그에게 넘어오자 그는 예수님을 헤로데에게
보냄으로써 그 책임을 회피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헤로데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예수님을 그에게 다시 돌려보냄으로써 마침내 빌라도는 자기 손을 씻고 예수님을 십
자가형에 처하도록 넘겨주었습니다(마태 27 ,24- 25 ) .
※ 위의 자료는 모니나 V. 베이베이 지음, 시청각통신성서교육부 옮김, 함께 발견하는 하느
님 말씀 (서울: 성바오로딸, 1999 ) 115- 120쪽에서 옮긴 것임.
4. 본문 읽기와 곰곰이 생각하기
마르 1, 1- 13과 이와 병행하는 마태 3 ,1- 4 ,11과 루가 3 ,1- 22 ; 4 , 1- 13을 비교
하며 차이점에 유념하면서 꼼꼼히 읽고, 다음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 1) 우리는 복음서를 즐겨 읽습니다. 그런데 복음(福音, 기쁜 소식)이란 무엇입니
까? 복음서를 읽으면서 나는 무엇을 복음으로 받아들입니까?
(2 )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고, 그 증표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 받기 전과 세례
받은 후 나는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저 옛날 세례자 요한은 요르단강에서 물로써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온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 모두가 그에게 나아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1,5 ) . 그 무렵 갈릴래아 나자렛 사람 예수도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 1,9) . 그런데 유다인들의 세례와 예수의 세례를 비교하면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는 유다인들과 달리 세례를 받으면서 자기의 죄를 고백하지 않습니다. 왜일까
요? 그가 하느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에겐 죄가 없으므로? 이런 선입견
없이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세례 받던 때의 자세를 기억
해 보고, 예수께서 세례 받던 자세를 상상하여 그 차이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3 ) 예수님이 광야에서 받으신 유혹은 당신이 생애 전체를 통하여 체험한 갈등과
대결을 요약한 것입니다. 내가 일상생활에서 받는 유혹은 무엇입니까? 유혹으로 인
해 마음의 갈등을 겪을 때, 가장 이기기 힘든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 유혹을 어떻
게 이겨냅니까?
5. 현문우답
( 1) 마르 1, 12- 13 a를 보면 그 뒤에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
께서는 사십 일 동안 그 곳에 계시면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고 했고, 마태와
루가의 병행구를 보면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
셨다. 고 했는데 그렇다면 성령이 사탄을 시켜서 예수님을 유혹하게 한 건가요?
이 질문에 대해 이현주 목사는 빛과 그림자를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12 공관복음서 탐구 (探究)
깜깜한 밤에는 그림자라는 게 없습니다. 빛이 없기 때문에 그림자도 없는 것이죠.
그러면 빛이 그림자를 만드는 걸까요? 빛이 있어서 그림자가 생기는 건 사실이지만
빛이 혼자서 그림자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무엇인가가 있어서 빛을 가로막기 때문에
그림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성령과 사탄의 관계도 햇빛과 그림자의 관계와 유사합니다. 즉, 사탄이란 성령이
라는 빛과 인간이라는 물체가 함께 만들어내는 그림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빛이
혼자서 그림자를 만들 수 없듯이, 성령이 스스로 사람을 유혹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
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혹을 당할 때에 아무도 하느님께서 나를 유혹하신다. 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의 유혹을 받으실 분도 아니시지만 악을 행하도록 사람을 유혹하실
분도 아니십니다. 사실은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서 유혹을 당하고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야고 1, 13- 14 ) .
이 말씀은 물체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이 그림자는 나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저 빛 때문에 생긴 거야. 빛이 그림자를 만들었어. 하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
다. 나아가 이 그림자는 물체인 나 때문에, 빛을 그대로 통과시키지 못하는 나의 욕
심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라고 말해야 옳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이 사탄을 시켜서 예수님을 유혹한 것은 아니지만, 빛이신 성
령이 예수님이란 물체에 부딪혀 사탄의 유혹이라는 그림자가 생겼다고 할 수는 있습
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기에 유혹을 받았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방향성입니다. 어디를 향하
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빛을 향해 걷는 사람에게는 어두운 그림자가 보
이지 않습니다. 그림자는 뒤쪽에 생기기 때문이죠. 즉, 빛을 향한 자에게는 그림자가
있지만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그분은 언제 어디서나 오직
빛이신 하느님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숱한 유혹을 당하셨지만 한 번도 거기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반대로 빛을 등지고 걷는 사람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신의 그림자를 밟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늘 유혹에 빠지고 마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어디에 속합니까? 빛을 등지고 섰습니까? 아니면 빛을 향해 섰습니까?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일입니다.
※ 위의 글은 이현주 지음, 젊은 세대를 위한 신학강의1 (서울: 다산글방, 1992 ) 73- 75쪽
을 참고하여 썼음.

 

 

출처 : 임마누엘 카페
글쓴이 : 루디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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