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이 오고 있다]
(11) 성경과 코란,무엇이 다른가
코란에선 예수를 일개 선지자로 간주
최근 한국 교회의 이슬람관이 대결이냐 사랑이냐로 양분되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한국 교회의 이슬람관이 대결이냐 사랑이냐로 양분되고 있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견해차는 이슬람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온 것이라고 진단한다.
전문가들은 한국 교회의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 이슬람과 코란에 대한 이해가 상이하고, 어휘의 번역이 다르고 주제에 따라 이슬람의 현실과 동떨어진 말들이 오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혼란은 또 한국 내 이슬람교가 아랍어 코란의 용어를 기독교 용어로 무분별하게 번역하면서 교계와 선교단체들의 이슬람 이해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알라와 하나님의 개념이다.
알라와 하나님이 같다고 하거나 아니면 다르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알라가 하나님과 같다?
◇ 알라가 하나님과 같다?
알라의 개념은 무하마드 당시 메카와 주변 지역에 유행하던 하니프(단일신 추종자) 신앙을 이어받은 것에서 비롯된다.
무하마드는 코란에서 알라를 중심으로 한 단일신론(타우히드)을 확립했다. 일부 기독교인이나 무슬림들은 코란과 성경의 비슷한 이야기에 비중을 두어 성경이 코란에 많이 포함돼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사건이 전개되는 맥락과 해석으로 비추어볼 때 성경과 다른 부분이 더 많다.
코란은 하나님의 말씀도, 성령의 감동으로 된 책도 아니다.
'알라'라는 말은 기독교인들이 사용한 '알라하'에서 왔거나 혹은 아랍어 '알 일라흐'에서 왔다.
'알라'라는 말은 기독교인들이 사용한 '알라하'에서 왔거나 혹은 아랍어 '알 일라흐'에서 왔다.
아랍어에 기원을 두었다면 무하마드가 속했던 쿠라이쉬 부족이 섬기던 최고신으로서, 무하마드는 당시 메카와 그 주변 지역에서 일부 사람들이 숭배한 알라를 코란의 중심 개념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알라'의 어원적 유래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알라라는 이름이 성경의 엘, 엘로아, 엘로힘이라는 하나님의 이름과 동일한 어원에서 기원했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알라와 하나님의 또 다른 차이는 성경의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반면, 코란의 알라는 인간 역사 밖에 머문다는 데 있다.
알라와 하나님의 또 다른 차이는 성경의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반면, 코란의 알라는 인간 역사 밖에 머문다는 데 있다.
이는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다. 코란에서는 알라가 역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시종일관 강조된다.
코란에는 "그들로 하여금 이 집의 주님에게 예배하도록 하라"(수라 106:3)고 하여 알라가 집(메카의 카바)의 주인으로 나온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느 특정 지역의 신이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또 일부 무슬림들이 아랍 기독교인들도 성경의 하나님을 '알라'라고 부른다며 알라와 하나님을 같다고 말하지만 아랍어 성경에는 알라 외에도 '알랍브' '일라히(나의 하나님)' '말리쿠나(우리의 왕)' '아부나 알싸마위(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등 여러 이름이 있다.
또 일부 무슬림들이 아랍 기독교인들도 성경의 하나님을 '알라'라고 부른다며 알라와 하나님을 같다고 말하지만 아랍어 성경에는 알라 외에도 '알랍브' '일라히(나의 하나님)' '말리쿠나(우리의 왕)' '아부나 알싸마위(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등 여러 이름이 있다.
이슬람에서도 신을 부를 때 사용하는 '알라' '알랍브' '알라훔마' 등이 있는데 아랍어 성경에서 알랍브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하지만 코란에서 알랍브는 언제나 알라를 가리킨다는 점이 다르다.
알라훔마 역시 기독교인이 아닌 무슬림들만 사용하는 용어다.
코란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거부한다.
코란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거부한다.
코란의 알라가 가진 초월성은 무슬림들에게 기독교의 신개념을 수용하지 못하게 했고, 코란의 알라는 피조물과 코이노니아 관계를 원하는 기독교 하나님과 다르게 규정됐다. 알라는 성육신할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도 부인한다.
코란에서 알라는 이싸(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하며 이싸는 신이 아니고 알라는 그런 아들을 절대로 낳지 않았다고 말한다.
◇ 예수님은 누구신가
◇ 예수님은 누구신가
기독론이야말로 가장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다.
코란도 예수에 관해 말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예수를 언급한다.
무하마드는 자신이 예수 이후 최후의 선지자라고 여겼다.
예수는 이슬람 관점에서 구원의 도상에 있는 인물에 불과하다.
기독교는 예수를 구원의 완성자라고 말하지만 이슬람에서는 그가 구원의 도상에 있는 한 인물로 간주된다.
그는 세례요한과 같은 다른 하나님의 사자들과 하나님에 의해 파견됐다 죽임을 당한 사람들처럼 선지자로서 소명을 위임받았다고 말한다.
예수의 개인적 관점과 구원론도 큰 차이를 보인다.
예수의 개인적 관점과 구원론도 큰 차이를 보인다.
기독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그 안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셨다고 말한다.
또 예수가 인간의 구원자로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고 고백한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과 그를 통한 구원, 이 둘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러나 코란은 이 두 요소를 거부할 뿐 아니라 신랄하게 비판한다.
'알라가 마리아의 아들 그리스도라 말하는 사람들은 불신앙의 사람들이다…지옥불이 그런 사람을 삼킬 것이다"(코란 5:72)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이다. 알라는 아이를 갖지 않는다"(코란 19:34) 등의 구절이 이를 뒷받침한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관한 언급도 극히 적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관한 언급도 극히 적다.
이슬람에 따르면 예수는 자연적 죽임을 당했다.
십자가에 달려 죽어 하늘로 들려올려졌다.
무하마드는 이러한 죽음을 수치스럽게 생각했고 재난에서 구해내는 하나님의 전능성과도 모순된다고 봤다.
참고자료 '코란의 이해'(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성경과 코란'(중심) '인카운터 이슬람'(예수전도단)
참고자료 '코란의 이해'(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성경과 코란'(중심) '인카운터 이슬람'(예수전도단)
[이슬람이 오고 있다] 코란에 성경 내용 많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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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성경과 코란,무엇이 다른가
코란에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성경의 사람들'이란 개념으로 언급된다.
코란에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성경의 사람들'이란 개념으로 언급된다.
이는 무하마드가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동일한 관점에서 보았다는 것이며 그가 유대인과 기독교인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슬람교 형성 이전부터 아라비아에는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많았고 상업적 교역 활동을 하고 있었다.
유대교는 남부 아라비아에서 집중적으로 선교활동을 했고, 메디나의 야트립에는 유대인 공동체도 있었다.
무하마드는 이 공동체와 관련을 맺었을 가능성이 높고 이를 통해 유대인과 많은 대화를 했거나 직접 유대교 회당 예배에 참석했을 가능성이 높다.
무하마드는 이 공동체와 관련을 맺었을 가능성이 높고 이를 통해 유대인과 많은 대화를 했거나 직접 유대교 회당 예배에 참석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유대교 회당에는 이교도들도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허락돼 있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무하마드가 코란을 문서화된 자료가 아니라 구전된 전승을 통해 전혀 새롭게 편집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 당시 무하마드가 어떤 유형의 기독교인들을 만났는가도 중요한 점이다.
또 당시 무하마드가 어떤 유형의 기독교인들을 만났는가도 중요한 점이다.
당시 기독교계는 예수의 인성보다 신성만 강조했던 단성론자와 신성과 인성은 인정하나 한 인격에 존재하는 것을 거부했던 네스토리우스주의자들과의 논쟁이 있었는데 무하마드는 이들의 논쟁을 알고 있었고 그런 이유로 기독교인들을 비난했다는 가능성이 있다.
하르낙과 같은 학자는 "이슬람교는 영지주의적 유대교에 의해 이미 변형된 유대인의 종교가 무하마드를 통해 아랍의 문화적 토대에 맞게 변형된 것"이라고 분석했고, 쇱스는 "유대인 기독교인에 의한 모세와 예수의 결합이 무하마드에게서 완성됐고, 모세와 예수에게 공통적인 요소가 유대인 기독교를 통해 이슬람교가 됐다"고 분석했다.
하르낙과 같은 학자는 "이슬람교는 영지주의적 유대교에 의해 이미 변형된 유대인의 종교가 무하마드를 통해 아랍의 문화적 토대에 맞게 변형된 것"이라고 분석했고, 쇱스는 "유대인 기독교인에 의한 모세와 예수의 결합이 무하마드에게서 완성됐고, 모세와 예수에게 공통적인 요소가 유대인 기독교를 통해 이슬람교가 됐다"고 분석했다.
[이슬람이 오고 있다] 성경으로 복음 전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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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셩경과 코란,무엇이 다른가
무하마드는 성경의 주요 내용을 기독교인들의 성경 주석과 다르게 해석했다.
무하마드는 성경의 주요 내용을 기독교인들의 성경 주석과 다르게 해석했다.
중세 이후 무슬림들은 성경이 왜곡되고 변질되었다는 것을 논증하는 데 그들의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무슬림들의 주장 때문에 무슬림들이 기독교와 성경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아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서로 같은 부분에 해당하는 공통점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무슬림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의사소통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론, 성경의 무오성, 그리스도의 신성, 성육신 교리 등을 잘 알아야 한다.
무슬림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의사소통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론, 성경의 무오성, 그리스도의 신성, 성육신 교리 등을 잘 알아야 한다.
또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 예수, 신약의 복음서 부분 등은 상당 부분 겹치고 있어서 깊이 알 필요가 있다.
2007년 풀러신학교 우드베리 교수가 기독교인이 된 무슬림 700여명에게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원인들 중의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하늘의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2007년 풀러신학교 우드베리 교수가 기독교인이 된 무슬림 700여명에게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원인들 중의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하늘의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아바'(아빠)라고 부르신 것은 성도와 하나님 간의 깊은 인격적 관계가 있음을 확인해 준다.
아랍·이슬람 전문가 주원씨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직유나 비유가 아닌 칭호이며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질적인 관계를 가리키는 말"이라며 "알라는 이런 개념이 결핍되어 무슬림들은 알라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다"고 말했다.
아랍·이슬람 전문가 주원씨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직유나 비유가 아닌 칭호이며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질적인 관계를 가리키는 말"이라며 "알라는 이런 개념이 결핍되어 무슬림들은 알라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다"고 말했다.
주씨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이야기는 당시 문화를 뛰어넘는 새로운 이미지의 아버지를 제시해 주고 있기에 무슬림들과 대화를 여는 데 적절한 본문"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무슬림을 만날 때는 교리도 중요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예수처럼 사는 게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무슬림을 만날 때는 교리도 중요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예수처럼 사는 게 더 중요하다.
지난 2006년 5월 전 세계 복음주의의 대부, 존 스토트 목사는 케직 사경회 은퇴설교에서 한 무슬림 개종 신학자의 얘기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어디에 있든지 예수처럼 살면 내일이라도 이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예수처럼 산다면 오늘이라도 이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어디에 있든지 예수처럼 살면 내일이라도 이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예수처럼 산다면 오늘이라도 이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출처 : JESUS - KOREA(은혜동산)
글쓴이 : 푸른.초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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