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리더십 자료 모음
1. 새종대왕의 리더십
2.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
3.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의 리더십
4. 삼성 초대 CEO 이병철 회장의 리더십
5. 현대 전 CEO 정주영회장의 리더십
6. 장보고의 리더십
7. 삼성 CEO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
8. 알렉산더의 리더십
9.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
10. 잭 웰치의 리더십
11. 히딩크의 리더십
12. 역사상 가장 큰 부자, 존 록펠러의 리더십
13. 조선조 정조의 리더십
14.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리더십
15. 칭기즈칸의 리더십
16. 강철왕 카네기의 리더십
17. 롯데 신격호 회장의 리더십
18. 아리스토텔레스의 리더십
19. 중국 청조 강희제의 리더십
20. 벤자민 프랭클린의 리더십
21. LG 구자경 명예회장의 리더십
22. 정보시대의 리더십
23. 리더십의 여덟가지 일반적인 법칙
24. 성공하는 서비스 리더의 덕목
25. 원칙중심의 리더십
26. 리더십 자질을 갖추는 요령
27. 한국형 리더십
28. 흥하게 하는 리더십, 망하게 하는 리더십
29. 역동적인 리더의 특징
30. CEO의 리더십 스타일
31. 유명 CEO의 좌우명(無順)
32. 리더십 전문가 존 맥스웰 박사의 강연회
33. 스티븐 코비의 상생 리더십
1. 세종대왕의 리더십
세종대왕이 어떤 식견을 가지고 어떻게 조직에 생기를 불어넣었으며, 무슨 고민을 했고 어떤 노력들을 기울였는가를 알아봄으로써, 우리는 젝 웰치나 빌 게이츠 같은 서양의 경영자가 아닌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을 가장 잘 경영했던 인물’에 대한 모범적 사례를 발견하게 된다.
시대의 변혁을 꾀한 리더 세종대왕
위대한 인물들은 누구나 그의 마음 깊은 곳에 불멸하는 추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는 세종대왕이 가슴속에 품었던 의지를 ‘긍정적인(포지티브한) 허무’라고 얘기한다. 그것은 그가 국초 국말의 권력쟁투와 무너져가는 인간사의 허무에서 발견한 것이 다름 아닌 인간 존재에 대한 측은지심이었고, 그것이 다시금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되었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세종은 국초에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그의 아버지 태종에 의해 수많은 목숨을 희생되는 것을 보았다. 이로 인해 세종의 심중에는 ‘적극적인 역사 개척보다는 허무에 기반을 둔 인간사와 인생에 대한 연민’이 자리잡게 되었으며, 바로 그것이 그가 역사를 이끌어간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세종의 두 형들은 골치 아픈 왕의 자리에서 도망쳤다. 첫째 형은 미친 척했고, 둘째 형은 중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세종이 선택한 길은 노자의 도(道)인 ‘대은(大隱)은 어시은(於市隱) : 깊게 은둔하는 것은 시끌벅적한 시장 속에서 세상사람과 동고동락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었다. 세종이 평생 실천한 실사구시(實事求是: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일)와 무실역행(務實力行: 참되고 실속 있도록 힘써 실행함)은 또 다른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었으며, 말년에 지은 「월인천강지곡」에는 이러한 세종의 이상이 잘 녹아 있다.
세종은 무엇보다 시대가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면밀히 탐색했다. 새로운 왕조가 들어선 뒤 인재 부족으로 인한 국정 공백을 해결하기 위한 인재수급과, 백성들의 새 왕조에 대한 기대에 부응해 민생고를 해결해 주어야만 했다. 세종은 태종의 죽음을 앞두고 이런 시대적 요구사항을 고민하며 준비해 나갔다.
“세종은 그 자신의 영달 때문에 권력을 탐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사하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에게는 있었다. 피로 얼룩진 시대를 넘어 태평성대와 최고의 나라를 건설할 자신이 젊은 세종에게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형님인 효령이 출가하면서 세종에게 남긴 “현세의 미륵이 되어라”는 당부와도 무관하지 않다. 세종은 그러한 시대적 안목과 대의가 있었기에 뜻있는 선비들을 규합할 수 있었던 것이다.
1. 다스림의 요체는 마음을 닦는 것
백성과 신하를 다스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을 닦는 일이었다. 과연 그는 어떠한 심법으로 국가를 경영했는가.
‘총명(聰明)하다’는 말에서 총은 ‘귀 밝은 총’ 자이다. 즉 똑똑하고 현명하다는 것은 자신의 말과 의견을 내세우기 이전에, 남의 얘기를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세종의 강점을 이렇게 적고 있다. “군주로서 세종의 생활은 온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기 위해서는 심성훈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노하지 않아야 하고 끈기가 있어야 한다. 또한 지식과 지혜의 우위가 전제되어야 한다. 진정한 강자만이 약자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세종이 황희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물었다. “두문동에 머물러 있지 뭣 하러 세상에 다시 나왔는가?” 황희는 이렇게 대답한다. “일찍이 진리탐구에 열중할 뿐 과거에 응할 생각조차 하지 않다가, 백성을 위하여 멸사봉공하는 것 또한 군자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 일러주신 부친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애초에 황희는 태종의 사람이었고 양녕대군을 옹위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세종은 황희의 청렴성에도 불구하고 항상 감시자를 붙여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 그러나 또 한편, 이 총명한 임금과 충직한 신하가 서로의 마음을 얼마나 잘 알고 서로를 믿었으면, 세종이 황희를 6조의 판서를 모두 역임케 하고 20여 년을 정승의 자리에 앉힐 수 있었겠는가. 황희는 평생 세종의 정치적인 조력자이자 선생으로 묵묵히 세종을 보필한 신하로 남았다.
또한 세종은 신하들과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경우 스스로가 누리는 왕위도 사상누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 국가가 안정하게 존속하려면, 충분한 군사력[足兵], 충분한 먹을거리[足食], 그리고 백성의 신임과 마음[民信]을 모두 얻어야 한다고 보았다. 만약 부득이 하게 이들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먼저 군사를 버려야 하고, 다음은 먹는 것을 버리라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백성의 신임과 마음임을 강조한다. 세종은 백성들과의 마음의 화합이 더 본질적이요 더 우선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고려조가 망한 원인에 대해 세종은 태조가 위화도에서 회군했기 때문이 아니라, 고려의 왕조가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무너진 것이라 보았다. 그래서 세종은 백성들이 자기 곁으로 다가오길 기다리지 않고 그들 곁으로 먼저 다가가고자 노력하는 임금이 되었다.
2. 인재 발굴만이 개혁의 힘이다
세종이 인재를 선출하고 키우는 과정에는 유난히 배울 점이 많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세워도 재능있는 부하에게 관대하였고 왕이라고 해서 일을 일방적으로 추진한 것이 아니라 토론을 통해 결정을 내렸다.
세종이 처음으로 자신보다 어린 신하를 뽑는 과거에서 성삼문이 장원을 해서 임금 앞에 나섰다. 세종이 자기 소개를 해보라고 하자, 성삼문은 “어떤 배경인지만 하문하시니 적잖게 실망했습니다.”라며 직언을 올린다. 이때 대전 내시가 “쉬이∼”하며 주의를 주자, 오히려 성삼문은 “대전 내시 주제에 감히 신하가 임금에게 바른 말을 고하는데 중간에 ‘쉬이∼’하고 나서다니”하며 호통을 쳤으며, 이에 세종은 “앞으로 과인에게 직언으로 대하고 많이 도와달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성삼문은 이 일을 통해 ‘이러한 군왕이라면 죽음을 각오하고 충성하겠노라.’고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고 전한다.
세종은 장영실을 등용하는 과정에서도 고리타분한 신분론에 대해 일일이 반박해 신하들을 설복시켰고,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도 신하들의 반대 상소를 일일이 다 읽어가면서 논박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어렸을 때부터 풍부한 독서량을 자랑했다. 왕의 신분에서 동서고금의 많은 책을 접할 수 있었기에 당시 세종의 학식을 따를만한 신하가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태종은 즉위 기간 동안 총 학술 경연이 4회였던 데 반해, 세종은 총 1800회 정도였다고 한다.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았던 세종은 작은 재능이라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등 그 사람의 장점을 취하여 포용하면서도, 엄격한 기준으로 혹독하게 신하를 훈련시킨 강유(强柔)를 겸비한 임금이었다.
3. 훌륭한 리더는 훌륭한 인재를 경영할 뿐
세종이 인재를 발탁하는 요령은, 최종적으로 발탁할 때까지 비밀에 부치고 인재들 간에 경쟁심과 긴장감을 유발시켜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이는 신하들의 자발적인 열의를 이끌어내는 훌륭한 방법이었다. 그러면서도 노신(老臣)들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 장단기적인 목표를 세워 두고 노장청(老長靑)의 조화를 잘 이끌어내었다. 이러한 세종은 인재관리법이 한국인의 특색에 적합한 방식이라 평한다.
또한 세종은 일회적인 목표 제시로 끝내지 않고, 끊임없는 사후점검을 통해 아랫사람들을 독려하였다. 그는 상급 관청과 하급 관청에서 점검과 잔소리에 지쳐서라도 일을 이행하게 만드는 임금이었으며, 부하들의 보이지 않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 내부 보고자들의 은밀한 비공식 보고에도 귀를 기울였다.
새벽경연은 신하들에게 늘 바늘방석이었다. 아침마다 인상을 찌푸리며 대신들에게 공부를 안 한다는 잔소리를 해대고 닦달하였으며, 지각을 하는 신하에게는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호통을 쳤다.
세종은 부국강병을 위해 적재적소에 인재를 투입하고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고양시키기 위해 늘 고민했다. 또한 왕실의 종친이라도 사사로이 특혜를 주는 경우가 없이 늘 공변되게 인재를 관리하였다.
4. 역사가 요구하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은
“천하사를 하는 자는 항상 생각이 멀고 깊어야 하고, 불시의 일에 대비하여야 하며, 경계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조선의 임금인 세종은 백성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문제를 먼저 자각하고 모든 사안에 대해서 파수꾼처럼 늘 깨어있는 임금이었다. 논쟁에 있어서도 모르는 것이 없어야 했고 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임금은 또 아파서도 안되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독서와 늦은 밤 호흡을 가다듬고 깊은 명상에 잠기는 정신수양을 통해서 임금의 사명을 다하는 데 필요한 모든 지혜와 힘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안위를 살피지 않고 일생을 백성을 위해 기꺼이 헌신했던 훌륭한 임금이었고, 또한 국방에 임해서는 결코 물러섬이 없는 사령관이자 혹독한 훈련을 시키는 엄격한 지휘관이었고, 신하들에게는 꺼지지 않는 열정과 깊은 겸손의 덕으로 한없는 본보기가 된 국가의 최고 경영자였다.
무엇보다 세종은 시대정신을 읽을 줄 아는 임금이었다. 국초 국말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도 않은 시대를 다스려야하는 군주에게 어떠한 형극의 길이 펼쳐질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지만, 그는 시대의 요구를 결코 회피하지 않은 천명에 눈뜬 임금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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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리더십
Those who beg for life will bleed. And those who face the death will survive!
必生卽死 必死卽生
Chase the life will bleed, face the death will survive!
경영자와 비지니스맨들을 중심으로 이순신 리더십 배우기 열풍이 거세다. 이순신은 포털 사이트 다음, 네이버 역사인물 검색 순위 1위, 교보문고와 예스24등 인터넷 서점 키워드 검색1위를 기록하고 잇다. 뛰어난장군에서 최고의 전략 경영자로 다시 조망 받고 있는
이순신. 그의 리더십 배우기 열풍은 쉽게 잠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압도적 카리스마와 치밀한 전략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발틱 함대를 전멸시킨 일본의 군신 도고 헤이하치로는 자기를 이순신 장군에 비할 수 없다면서 "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나는 일개 하사관에 불과하다.만일 이순신 장군이 나의 함대를 가졌다면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KBS 대하 사극 < 불멸의 이순신 >의 작가이며 < 불패의 리더 이순신,그는 어떻게 이겼을까 >의 저자인 윤영수는 이순신 승리의 비결을 "신뢰와 권위를 바탕으로 한 압도적 카리스마와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치밀한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나는 일개 하사관에 불과하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나의 함대를 가졌다면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을 것이다 "
- 도고 헤이하치로 - ( 일본 해군 제독 )
경영 전략과 역사서의 재미가 하나로 된 에듀테이먼트 경영서
< 불패의 리더 이순신, 그는 어떻게 이겼을까 >는 이순신 23전 23승의 불패의 신화를 ‘경영 전략 ' 과 ' 리더십'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어 최근 출간된 여러 경영서 중에서 눈에띈다. 특히 이순신이 리더로서 갖추었던 생각이 무었이었을까를 중심으로 역사 드라마처럼 임진왜란 당시의 전투 전개와 이순신의 마인드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은 새로운 개념의 경영 전략서이며 대하사극 마니아들에게 재미와 교양을 동시에 주는 에듀테이터먼트 경영서이기도 하다.
경제 전쟁의 시대, 비지니스맨들을 위한 리더십과 용병술
또한 이 책에서 저자는 ' 성공과 승리의 경험이 없는 조직은 매번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겨본 자가 이긴다 '. '첫 성공의 여세를 이어 나가는 법 ', '전면전의 시기와 결단 ',
' 최1선 방어의 원칙 ' , ' 누구보다 스스로를 믿어라 ' ,등 이순신 장군에게 얻은 경영 마인드와 삶의 지혜를 소개하고 있어 험난한 경제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비지니스맨들에게 절실한 리더십의 비밀과 경영 비법을 전해준다.
23전 23승 전략 원칙 5가지
1. 이겨본 자만이 이긴다
이겨본 싸움을 해본적이 없는 조직은 절대 승리할 수 없다.
2. 여세를 몰아라
마지막 까지 밀어 붙이는 강력한 추진력만이 완전한 승리를 보장한다.
3. 적의 핵심부를 타격하라
가장 견고한 곳이 가장 약한 곳이다. 예기치 못한 대담성으로 적의 핵심부를 칠 때 승리 를 앞당길 수 있다.
4. 전면전을 피하지 말라
승부는 전면전에서 결정 난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전면전을 회피해서는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다.
5. 제1선에서 지켜라
지키는 것도 이기는 것이다. 지켜야 한다면 제1선에서 지켜라. 한번 밀리면 끝까지 밀린다.
<이순신 장군에게 배우는 승리의 기술 >
1. 이겨본 자만이 이긴다.
성공과 승리의 경험은 무엇보다 값진 자산이다. 패배감에 물든 군대는, 이기는 싸움을 해본 적이 없는 군대는 절대 승리할 수 없다.
2. 여세를 몰아라.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작은 성취에 만족하는 순간 위기는 찾아온다. 마지막까지 밀어 붙이는 강력한 추진력, 그것만이 완전한 승리를 보장한다.
3. 그 누구보다 자신을 믿어라.
자신의 선택을 믿어라. 스스로 믿을 수 있을 때까지 준비하라.주먹은 결국 자신이 쥐는 것, 자신을 신뢰할 때 적을 공격할 수 있다.
4. 전면전을 피하지 마라.
결국 승부는 전면전에서 결정난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전면전, 전면전을 회피해서는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다.
5. 제1선에서 지켜라.
지키는 것도 이기는 것이다. 지켜야 한다면 제1선에서 지켜라. 한번 밀리면 끝까지밀린다.
6. 적은 더 빨리 강해진다.
적은 항상 나를 주시한다. 적은 나를 이기기 위해 무슨 수단이든 동원할 것이다. 나보다 빨리 강해지는 적, 그 적을 이기려면 한걸음 먼저 나아가야 한다.
CEO, 이순신에게서 배워라 .
역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조명하고 미래를 투시하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순신을 통해 장수와 전략가가 이룩한 탁월한 전공만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미리 예측하고 이를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정신과, 관습을 과감히 돌파는 개혁의 의지, 휘하 장수들과 함께 합의와 토론을 통해 의견을 창출하는 과정 등에서 CEO로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이순신은 전략의 원칙을 중시했다. 군사전략과 경영전략의 원리는 같다. 현대의 경영인 혹은 지휘관들이 춘추전국시대에 쓰인《손자병법》을 리더십의 지침으로 삼았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이순신은 바다에서 적을 대함에 있어 철저한 분석과 정보를 근거로, 승리를 확정한 상황에서만 전투를 벌였다. 그는 남해안의 복잡한 지형과 조류(潮流)를 완전히 파악했다. 전라좌수영의 관할해역과 더불어 대부분의 해전이 벌어진 경상도 해안까지 현장답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피난민과 포로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정보원과 정탐선을 투입해 적진의 형세와 이동경로 등을 면밀히 관찰했다. 이를 반영하여 이순신은 해전에서 기습과 같은 공격으로 적에게 큰 피해를 주었지만, 아군이 기습에 노출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경영에서도 경쟁기업을 이기기 위해서는 주어진 환경을 최대환 활용하고, 피아의 장·단점을 정확히 분석하여 상대의 약점을 공략해야 한다.
원균이 칠천량해전에서 패하여 삼도수군의 기반이 완전히 무너진 후, 조정은 백의종군에 있던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명했다. 그러나 이미 통제사 이순신에게 남아있는 전력은 아무것도 없었다. 칠천해전 당시 도주한 경상우수사 배설의 전선 12척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군비가 전무(全無)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순신은 육로로의 남행을 단행한다. 전날 조정에서의 모진 고문으로 인해 심신이 쇠약해진 이순신에게 육로를 이용한 남행은 고된 강행군이었다. 또한 그의 행로가 왜군이 진군하는 길과 일치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위치에 놓여있었다. 적의 보급병이나 정찰병과 언제든지 조우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적의 허를 찌르는 과감한 행동을 취했다. 그는 적의 동향을 살피며 이동했다. 적들은 이순신이 바로 자신들의 곁에 붙어 진격로를 따르며 동향을 살필 줄은 미처 몰랐다. 위험을 무릅쓰고 적을 허점을 찌르는 대담함이 돋보이는 지휘관의 면모이다.
이순신은 이 남행길에서 민심을 수습했다. 삼도수군의 궤멸로 백성들은 불안을 느꼈고 피난행렬이 늘어났다. 그러나 이순신이 지리산을 중심으로 남부지방 장정에 나서자 피난민이 줄고 백성들은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이순신이 초계를 출발할 당시에는 휘하 군관이 9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각 고을을 지나며 흩어졌던 군사들이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또한 이순신의 복권이 알려지자 의병장들도 늘어났으며 일부 승려들은 의병 사령장을 써달라고 했다.
또한 이순신은 대장정 도중 각 고을 현감들과 만나며 그들이 가졌던 불안감을 해소시켰다. 진주목사, 남해현감, 고산현감 등이 이순신과 뜻을 함께 하며 자신감과 행정력을 복원해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불어 군사들이 사용할 무기를 수습했다.
모든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 이순신은 빈손으로 빠른 기간 안에 군사와 물자를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군선 13척과 왜적선 133척의 대결이라는 미증유의 위기, 명량전투를 대승으로 이끌어낸 것이다.
이러한 변환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순신이 부하장수들과 더불어 백성들에게 보여준 신뢰에 있다. 하급관리 시절부터 실천했던 청렴성과 공사(公私)의 엄격한 구분이 일부 상관들에게는 미움을 사는 요인이 되기도 했으나, 부하들에게는 신뢰를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도덕성의 영향을 받아 부하들도 역시 높은 도덕성을 견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절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부하들로 하여금 깊은 신뢰감과 충성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순신은 국가존망의 위기 속에 사기가 크게 떨어진 패잔병들을 수습해 기적과 같은 명량대첩을 성취했다. 이러한 위기극복의 리더십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기업의 경영자에게 좋은 귀감이 될 수 있다.
이순신은 죽음을 각오하고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전투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에 빠진 장병들의 분투를 이끌어 냈다. 실제로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의 지휘선이 단독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부하들의 사기를 올리고 전투에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했다.
기업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먼저 기업의 리더인 경영자가 희생정신을 발휘해 솔선수범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부도가 난 기업이라 해도 경영자가 모든 것을 걸고 분전하는 모습 앞에서 종업원들이 기업회생에 적극 나서는 경우가 많다.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하던 때, 해전에서 왜선을 격파하는데 탁월한 성능을 발휘한 거북선을 개발했다. 그는 일본 수군의 강점을 무력화하고 조선 수군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전함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따라 나대용과 같은 기술자들과 함께 개발에 주력한 결과 거북선이라는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 탄생할 수 있었다.
왜 수군의 전선은 기동성이 우수한 반면 상대적으로 내구력이 약했으므로 거북선과 충돌할 경우 적선은 쉽게 깨어져 나갔다. 거북선은 등판 위에 쇠못을 꽂아 백병전에 능한 왜병이 전선 위로 올라서는 것을 차단했다. 배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었지만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었으며 전·후·좌·우의 사방에서 화포를 쏠 수 있었다. 이러한 기능으로 거북선은 해전에서 적진을 교란하는 돌격선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 외에도 이순신은 우리가 갖고 있던 승자총통과 쌍혈총통이 총신이 짧고 총구가 얕아 일본의 조총보다 성능이 떨어지므로, 왜군의 조총을 보고 그 성능과 화력을 높여 정철조총이란 새로운 개인화기를 개발했다.
우리의 승자총통이나 쌍혈총통은 총신이 짧고 총구멍이 얕아서 왜적의 조총만 같지 못하며 그 소리도 웅장하지
못하므로 정철을 두들겨 만들었는데 총신도 잘되고 총알이 나가는 힘이 조총과 똑같습니다. 정철로 만든 조총 5자루를 올려 보내오니 조정에서 각 도의 여러 고을에 명하여 모두 제작토록 하여 서로 다투어 만들게 함이 좋겠습니다.
영국의 G. A. Ballard가 “이순신 제독이 넬슨보다 나은 점을 가졌으니, 그것은 기계발명에 대한 비상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라고 평가했는데, 이 기계발명은 곧 거북선과 총통을 일컫는 것이다.
이처럼 이순신은 전쟁 전과 전쟁이 진행되는 중에도 지속적인 전비태세를 유지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가는 혁신적인 면모를 보였다.
근원적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혁신을 해야 한다. 개발과 품질향상, 기술혁신, 경영방법의 도입과 경영혁신, 마케팅과 서비스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분에 과감한 혁신을 추진하여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다만 어떤 조직과 단체를 불구하고 성공적인 혁신을 위해서는 리더가 선두에 서서 이를 지휘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임진년부터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까지 7년간의 진중에서의 일을 기록하여 《난중일기》남겼다. 《난중일기》에는 전쟁에 관련된 많은 기록뿐만이 아니라 전란 전반에 걸친 사회·경제·정치·군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사가 남겨져 있다. 때문에 이순신 개인사의 연구와 더불어 조선사 연구에 따른 사료로서도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그는 조정에 올린 장계(狀啓)에서도 전쟁 상황을 상세하게 보고했는데, 이들은 현재 〈임진장초(壬辰狀草)〉로 남아있다. 때문에 우리는 4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임진왜란의 과정과 해전에서의 전투상황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알 수가 있다. 이순신의 투철한 기록정신에 의한 수혜(受惠)이다.
만약 이순신이 《난중일기》를 남기지 않았다면 후세에 사료이자 문화유산을 물려주지 못했을 뿐더러, 자신이 전쟁을 수행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시행착오를 거듭했을 수도 있다. 각종 업무를 기록하는 일지와 개인의 일기는 물론 주부의 가계부까지도 그 유용성을 지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록을 소홀히 하여 손해를 보는 경우는 항상 존재한다. 과거의 기술에 대한 기록이 없어 기술재현을 하지 못하거나,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시절 단기간에 경제발전을 이루었던 기술에 대한 기록이 없어 다른 후진국에 이를 판매하지 못하는 일들이 그러한 경우이다.
지식은 꾸준한 기록에 의해 축적되어야만 활용될 수 있으며, 이러한 지식들이 바로 경쟁력에 직결된다.
오랜 경험을 통해 자기는 알고 있지만 남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노하우 등 암묵적 지식(tacit konwledge)도 끊임없는 기록과 분석을 통해남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명시적 지식(explicit knowledge)으로 바꿔야 새로운 지식의 창조로 연결될 수 있다. (지용희,《경제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 지식경영에 앞선 기업들이 다양한 업무 형태의 방법들을 자세히 기록한 지침서로 만들어 실제업무와 직원교육에 활용하는 것도 기록 활용의 한 형태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순신의 많은 전략과 전술의 업적은 현대의 경영원리와도 일치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과정들이 성공한 기업가나 기업 등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기존의 관습과 타성에 젖지 않고 항상 초유(初有)의 위기를 개척해 나간 지도자 이순신.
무한경쟁의 시대에 있어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고 26전 26승의 신화를 이룩한 이순신의 정신과 전략은 경영인으로서 배워야 할 CEO의 전범(典範)이며, 오늘날의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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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의 리더십
김대중 전 대통령의 리더십
감옥에서나 망명지에서 항상 대통령 준비를 해왔다는 그는 일흔네 살에야 꿈을 이뤘지만 정작 부도난 국가를 떠맡게 되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IMF 외환위기라는 폭탄을 맞아 쉴 여유도 없이 당선 다음날부터 실질적 대통령 역할을 하며 나라경제를 챙겼다. 또 햇볕정책을 펼쳐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켰고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다. 그리고 이제 미국에선 북한인권법이 통과되고 대선에서도 한반도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다. 정부에선 은근히 김 전 대통령에게 대북특사 역할을 기대하기도 하고, 북한에서도 그의 방북을 바란다고 한다. .
[간략]
1925년 전라남도 신안군에서 출생하였다. 1950년 《목포일보》 사장이 되었고 1960년 민의원에 당선된 후 1971년까지 6·7·8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963~1967년 민주당·민중당·신민당 대변인, 1968년 신민당 정무위원을 역임하였고, 1971년 신민당 대통령후보로 민주공화당의 박정희(朴正熙)와 겨루었으나 패배하였다. 그 후 미국·일본 등지에서 반체제운동을 주도하다가 1973년 8월 8일 도쿄[東京]의 한 호텔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 의하여 국내로 납치(김대중납치사건)되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76~1978년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투옥되었고 1980년 초 정치활동을 재개하였으나, 같은 해 7월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82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1985년 귀국하여 김영삼(金泳三)과 더불어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직을 역임하였고 1987년 8월 통일민주당 상임고문에 취임하였다.
같은 해 11월 평화민주당을 창당하여 12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88년 4월 제13대 국회의원(전국구)에 당선되었고 1991년 9월 통합야당인 민주당을 창당하여 공동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다시 낙선하여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는 동시에 정계은퇴를 선언하였다.
1993년 영국으로 건너가 1년 동안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연구생활을 하였고 1994년 귀국,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아태평화재단)을 조직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민주당의 최대 계파인 동교동계의 막후인물로서 여전히 제1야당의 실력자로 알려졌다. 1995년 6월에 실시된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적극 참여하여 민주당을 승리로 이끌고, 같은 해 7월 정계복귀를 선언함과 동시에 계파 국회의원 54명과 함께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 총재가 됨으로써 제1야당의 총수로 정치생활을 재개하였다. 1997년 10월 자유민주연합과의 야권 후보단일화를 이끌어낸 뒤 같은 해 12월 15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어 한국 정치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룩하였으며, 1998년 2월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1998년 12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중국 및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갖는 등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였으며, 1997년 11월부터 시작된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의 외환위기를 재정·금융 긴축과 대외개방, 금융 및 기업의 구조조정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였다.
1999년 5월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 중 공동 1위에 선정되었으며, 6월에는 미국 경제 주간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하는 '아시아개혁을 주도하는 지도자 50인'에 선정되었다. 2000년 1월 자유민주연합과의 내각제 개헌논의를 유보하고, 새천년민주당을 출범시켜 초대 총재에 취임하였다.
2000년 6월 13~1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대로 평양을 방문하여 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또한 50여 년 간 지속되어 온 한반도 냉전과정에서 상호 불신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에의 새로운 장을 여는 데 크게 기여한 공로로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평화적 정권교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하였으며 1998년 12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중국 및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갖는 등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였으며, 1997년 11월부터 시작된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의 외환위기를 재정·금융 긴축과 대외개방, 금융 및 기업의 구조조정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큰 업적은 50여 년 간 지속되어 온 한반도 냉전과정에서 상호 불신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에의 새로운 장을 여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IMF 구제금융 관리체제의 극복 및 청산]
김대중 정권은 김영삼 정권으로부터 경제위기를 물려받고 출발하였다. 경제위기는 1997년 11월 금융위기와 함께 시작하였다. 동시에 김영삼은 대통령으로서의 지도력을 상실하였으며 12월에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김대중이 금융위기의 해결에 있어서 국내외적으로 실질적인 대통령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미국과 IMF는 한국의 대외부도를 막기 위해 긴급자금을 지원토록 하면서 동시에 한국에 대하여 한국경제 전반에 걸쳐 이른바 구조조정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와중에서 1998년에 -7%의 성장률을 보였던 경제도 1999년에는 11%의 성장률을 보이는 등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그리하여 2001년 8월에는 IMF차입금을 예정보다 빨리 상환하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김대중 정권은 초기의 금융위기와 그 다음의 경제위기를 국민들의 협조로 잘 극복하였다.
김대중대통령과 [국민의 정부]는 97년 대선에서 약속한 대로 2년만에 IMF구제금융의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였음 → IMF 전후 주요 경제지표 변화 설명 경제성장률 : 98년 -5.8%에서 99년 10%로 증가 경상수지 : 97년 82억 적자에서 98년 406억 달러, 99년 260억 달러 흑자로 전환 환율안정 : 98년 1월 달러당 1,573원에서 2000년 1월 1,123원으로 안정 가용외환보유액 : 97년 12월 39억 달러에서 2000년 1월 현재 768억 달러로 증가, 금년중 1,000억달러 예상 단기외채 비율 : 97년 9월말 54.2%에서 99년 11월말 28.0%로 감소 주가지수 : 97년 12월 376.3P에서 2000년 1월 943.8P로 수직상승 물가(전년대비) : 98년 7.5% 인상에서 99년 0.8%로 사상 최저 물가 실업자 수 : 98년 178만명에서 2000년 1월 현재 100만명으로 감소 중소기업 : 97년 2만3천개 도산,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3만개 창업 아시아월스트리트저널 1월 25일자, 깡드쉬 [IMF총재] = 한국 국민들은 김대중 대통령을 지도자로 모신 것을 행복하게 생각해야 한다. 김대통령이 있었기에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경제구조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Asia Weekly 최신호 = 김대통령은 아시아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이다. South China Morning Post誌 = 한국의 경제위기 극복은 침몰하는 타이타닉호를 거꾸로 돌린 것과 같다. 아시아월스트리트저널(AWSJ) 1월 24일자 사설 = (대우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한) 김대중정부는 칭송받아 마땅하다. 장기적으로 정부의 역할을 줄여가려는 김대통령의 의지가 있는 한 한국경제는 더욱 건실해 질 것이다. 독일일간지 Handelsblatt(한델스브라트) 2월 26일자 = 한국은 마치 잿더미속에서 날아오르는 불사조처럼 경제위기로부터 회복되었다. 블라드미르 [前 러시아 부총리] = 김대중대통령을 러시아에 2년만 빌려주면 러시아 경제가 회복될 것이다. 윌버로스 [미국 로스차일드펀드 회장] = 인도네시아가 외환위기로부터 조기 탈출하기 위해서는 김대중대통령과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도널드 그레그 [前 주한미국대사(1989~92년)] = 김대통령이 재임기간 동안 계속해서 개혁의 행보를 늦추지 않는다면, (한국은 물론) 동북아시아 전체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데이비드 앱샤이어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이사장] = 김대통령은 큰 좌절을 극복하고 한국을 자랑스럽고 안전하고 번영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도록 국민을 이끌어 갈 이 시대에 맞는 지도자이다. 존 던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 한국 국민은 여전히 정치·경제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위기에 대한 대처의 성공여부는 김대통령의 끊임없는 용기, 의지, 능력에 달려 있다.
[햇볕정책]
김대중위 3단계 통일론:
1) 남북연합단계 2) 연방단계 3) 완전통일단계
김대중 정권은 남북관계에 있어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어 남북 간의 적대관계를 크게 완화시켰다. 그 결과 평양에서 김정일과 첫 번째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이어서 서울에서는 첫 남북 국방장관회의가 있었다. 햇볕정책! 통일을 위한 유화적인 자세,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1998년4월3일 영국을 방문했을 때ㅡ런던대학교 연설에서 처음 사용했던 `이솝의 우화'에서의 비유다. 대북 교류협력을 화해, 포용으로 증진하겠다는 우호적인 정책이다. 여기에는 경제적 지원이 크게 저류를 이루고 있다. 첫째는 경제협력의 활성화. 둘째 투자규모의 제한 철폐등이다. 일부 국민은 햇볕정핵에 불만이다.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시기상조론을 주장한다. 현재의 상황으로는 타주적(他主的) 거래의 제물이 되지 않기 위해 지속적인 남북 대화와 북을 돕는 자세가 긴요하다. 햇볕 정책의 본원적 의미가 뭔가? 추운 겨울 두터운 모피 코트를 벗겨주는 온유한 작업이라면, 북에 대한 지원은 복선 없이 증폭시켜 나가야 타당할 것이다. 이 점,역사관이 불건전한 정신 풍토에서 깨어나야 한다. 금강산 관광과 함께 개성공단 건설, 경의선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사업 등 이른바 3대 경협사업도 본궤도에 올랐다.
정부가 지원한 민간 베이스 사업인 금강산관광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육로 버스 관광을 거쳐 승용차 관광의 단계까지 올랐다. 개성공단 건설은 지난해 12월 15일 시범단지에서 첫 제품이 출하되어 당일 생산된 북한산 냄비가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판매돼 서울 시민의 밥상에 오르는 단계에 진입했다. 남북의 허리를 잇는 경의선·동해선도 2002년 9월 18일에 연결을 위한 착공식이 열려 지난해 12월 연결이 완료되어 임시 개통되는 데 이르렀다.
남북은 또 지난 5년간 총 124번, 연 평균 24번 이상의 각종 대화를 가졌다. 장관급 회담의 경우 2000년 7월 이후 지난해 5월까지 모두 14번이 개최되었다. 그 이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달 21∼24일에 15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서울에서 열림으로써 다시 남북 대화가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군사 분야에서도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신뢰구축의 단초가 마련됐다. 휴전선에서의 상호 비방방송은 이미 자취를 감췄으며 서해상의 우발적 충돌방지방안에도 합의했다. 남북한 군 당국이 6·25전쟁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마주앉아 장성급회담(2회)을 개최해 비록 초보적 수준일망정 신뢰구축을 통한 평화공존의 단초를 마련한 덕분이다
"북한인권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북한은 정치-사회적 인권이 아니라 질병으로부터 생명을 유지하는 원초적 인권이 더 중요합니다. 탈북자들도 북한 독재에 대한 반대보다 식량을 구하러 나오는 겁니다. 그런 원초적 인권을 제일 도와주고 있는 게 한국입니다.“
“북핵 문제가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으는데 내가 볼 때 북한은 핵은 수단이고 목적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입니다. 북한이 미국과 싸워 이길 수 있나요? 또 북한에 핵이 있다한들 미국에 비하면 장난감 수준이죠. 북한의 목적은 사는 겁니다. 살기 위해서 나 죽이면 너 죽이고 나 죽는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입니다.”
김정일에게 강조한 말: “당신들이 핵이라든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한다는 말이 있는데 절대 안 된다. 미국 감정 조장하고 남한도 절대지지할 수 없습니다.”
부시 대통령에게는 :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했는데 한국 사람치고 공산주의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전 사회가 감옥 같은 나라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린 같은 민족이고 통일할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대화해야 한다. 대화라는 것은 맞는 사람끼리만 하는 게 아니다. 서로 안 맞는 사람, 심지어 증오하고 싫어하는 사람끼리도 해야 합니다. 레이건 전 대통령도 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도 햇지만 소련과 대화했습니다.”
우리는 장구한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단일 민족으로서의 순수성을 지키고 찬란한 민족 문화를 꽃피워 왔다. 그러나 광복 이후, 남북 분단으로 인해 민족의 동질성은 크게 훼손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된 남북 단절에서 비롯된 민족적 장벽을 허물고 통일을 이룩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통일이란 단순히 분단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분단으로 인해 상실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하나의 민족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념과 사상, 생활양식, 제도 등의 남한과 북한과의 이질적이 요소를 사회, 문화적으로 통합해 나아가는 것이 선결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의 대북한정책은 그의 대북한 적극정책에 대하여 비판적인 국민들에게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김대중으로 인하여 인해 남한에 있어서 비록 그 방법과 진행속도에 있어서는 이견이 적지 않지만 남북관계 개선은 기본방향에 있어서 움직일 수 없는 정책이 되었다.
[노벨 평화상]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그리고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 업적을 기려 2000년 노벨 평화상을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한국이 수십년간 권위주의의 통치하에 있을 때, 여러 차례의 생명에 대한 위협과 장기간의 망명생활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점차적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1997년 그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한국은 세계 민주주의 국가 대열에 확고히 자리잡았다. 대통령으로서 김대중씨는 확고한 민주 정부의 수립과 한국에서의 내부적 화합 증진을 추구해 왔다. 강력한 도덕적 힘을 바탕으로 김대통령은 인권을 제한하려는 시도들에 맞서 동아시아 인권수호자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버마(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동티모르의 인권탄압에 반대하는 그의 헌신적 노력 역시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햇볕정책'을 통해 김대통령은 50년 이상 지속된 남북한간의 전쟁과 적대관계의 해소에 노력해 왔다. 그의 북한 방문은 남북한간의 긴장을 완화하는 과정에 큰 동력이 되었다. 이제 한반도에 냉전이 종식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김대통령은 또한 인근 국가들, 특히 일본과의 화해를 위해 노력해 왔다. 노벨위원회는 한반도의 화해 진전과 통일을 위한 북한 및 다른 국가 지도자들의 기여를 인정하고자 한다.
김대중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의 의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도, 문학상과 평화상 수상자는 많은 사람들이 알게된다. 그리고 이 상을 받기 전에도 세계 3 대 인권 운동가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14년 동안 꾸준히 수상후보에 올랐던, 영예는 참으로 청사에 빛날 쾌거일 것이다. 그 동안 한국은 수차에 걸친 국제행사를 차러온 문화국민으로 평화를 표방했다.그러나 행사 뒷끝마다 노벨상이 없는 나라라고 부유한 열강들은 한국을 동정했다.
평가 어록:
“역사의 가장 값진 승리자, 김대중, 그는 복수하지 않았고 대신 고뇌하였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접었다. 그러나 봄밤이 아플 것이다. 봄이 가기 전에 이제는 늙어버린 가신들을 불러 손을 잡아주길 바란다. 소쩍새 울음을 타서 술 한잔 건네기를 바란다. 그들도 떠나갈 때가 되었음을 알 것이다. ”
경향신문 김택근 부국장 wtkim@kyunghyang
“자유롭고 즐겁게 인터넷에서 놀 수 있는 정보화사회의 기반을 마련해주신 분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안에서는 망할 찌라시들 덕에 과소평가 내지는 폄하되었으나 해외에서 더욱 존경받고 사랑받는 분....“ (어느 블로그)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는 역사가 평가할 것입니다. 단지 저는 대한민국을 위해 바친 그의 열정과 진심만은 우리가 인정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비판하기보다 좋은점은 인정하고 후세의 대통령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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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젊은’ 리더십
특히 김위원장의 모습은 철저하게 반공교육을 받고 자라난 우리 젊은 세대를 당황케 했다. 왜냐 하면 김위원장은 귀하게 자라고 예술에 심취해, 성격이 까다롭고 괴팍하며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지도자로 인식돼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TV화면을 통해 여유가 넘치는 그의 모습에서 상당히 호방하고 솔직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더욱이 일부에서는 1인 보스정치에 얽매여 소신과 패기없이 그저 말 바꾸기만 하는 우리 정치인들과 비교해 김위원장을 ‘통이 크고 도량이 넓은’ 인물로 영웅시하는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김위원장의 독특한 이미지 관리는 영화광에다 TV 등 언론매체에 밝은 그의 리더십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있다. 즉 정상회담 일정을 하루 연기해 우려를 자아내게 한 후 의표를 찌른 공항영접 등으로 극적 반전을 연출했다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김위원장의 자신감 넘치는 행동도 관심의 초점을 자신에게 맞추기 위한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다.
실제로 정상회담 과정에서 김위원장은 예상과는 달리 협상에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우선 대화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는 적극성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협상에서 주도권 잡기는 김대통령의 장기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선 오히려 김위원장이 대화를 주도했다. 김대통령은 주로 듣는 자세로 일관했고 다소 위축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어떤 면에서는 젊고 패기 있는 김위원장의 자세가 김대통령의 논리와 치밀함을 압도하는 느낌을 주었다. 즉 김위원장은 ‘젊고 패기 있는 리더십이란 이런 것’임을 보여준 셈이다. 특히 2박3일간의 짧은 정상회담이었기에 리더십에 기초한 그의 순발력이 더욱 빛나 보였다.
결과적으로 김위원장은 이번 회담을 통해 단숨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공산권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하였다.
한편 이번 회담은 김대통령에게는 대단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집권 3년째인 임기 중반을 맞아 여소야대 정국 아래서 정국의 주도권 확보와 안정적 유지를 위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일이 요구되던 김대통령으로서는 성공적인 정상회담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므로 일정과 의제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 을 시도한 김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은 매우 도전적인 것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방북 일정이 하루 연기됐을 때 김대통령은 무척이나 긴장했을 것이다. 또 정상회담이 가시적인 성과 없이 끝났다면 대단한 정치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정상회담 내내 김대통령은 무척이나 긴장하고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차분·논리 VS 활달·감
김대통령은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과장된 표현이나 제스처를 취하는 일 없이 차분하고 노련하게 대화를 유도했다. 김대통령은 원래 꼼꼼한 준비와 정연한 논리, 그리고 정확한 근거 제시를 통해 상대를 설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그의 이러한 리더십은 100% 발휘됐다. 2박3일간의 짧은 정상회담을 통해 ‘차분·논리’에 기초한 김대통령의 리더십과 ‘활달·감’에 기초한 김위원장의 리더십은 대조와 조화를 이루며 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이제 두 사람의 대조적인 리더십을 좀더 자세히 분석해 보자. 리더십에 관한 연구 중 가장 선구적이고 일반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분석방법은 개인의 심리적 측면과 특성을 강조하는 ‘바버(James Barber)의 분석틀’이다. 바버는 대통령의 개성(personality)은 크게 성격(character), 세계관(world view) , 행위방식(style)을 포함하며 이러한 개성은 상당히 정형화돼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특정 대통령의 개성은 그가 직면한 국민의 기대감을 포함한 정치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이러한 개성은 대통령의 행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바버는 대통령의 개성이 그들의 ‘활동 에너지’와 ‘정치적 직무에 대한 태도’로 표출된다고 보았다. 활동 에너지는 개인이 얼마나 활동적이냐 비활동적이냐를 분석하는 것이고, 정치적 직무에 대한 태도는 그가 얼마나 정치적 생활을 즐기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기초로 바버는 먼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을 성격 또는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활동 에너지와 직무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적극-긍정형(active-positive)’, ‘적극-부정형(active-negative)’, ‘소극-긍정형(passive-positive)’, ‘소극-부정형(passive-negative)’으로 분류하면서 대통령의 심리적 특성과 국정운영 결과의 관련성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적극적 대통령은 넘치는 활동 에너지를 갖고 있으며, 소극적 대통령은 쿨리지 대통령(꼭 11시간 잠을 자고, 낮잠을 즐김)처럼 근본적으로 활동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긍정적 대통령은 대통령직 수행에 큰 기쁨을 가지나, 부정적 대통령은 대통령직 수행에 최소한의 만족을 느낀다고 한다.
이러한 분석에서 중요한 점은 네 가지 유형 중 어느 유형이 다른 유형보다 좋다거나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라 유형마다 장·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 유형의 장점이 발휘될 때는 대통령의 개성이 국정운영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단점이 드러날 때는 개성이 국정운영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바버는 이러한 분석틀을 이용해 지도자의 개성을 분석하면 향후 그의 국정운영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바버의 분석틀을 이용해 김위원장과 김대통령의 개인적 특성을 중심으로 리더십을 분석해 보자.
먼저 2박3일간의 김위원장 행동을 보면 그는 ‘적극-긍정형’ 리더십에 해당한다. 이러한 리더십 유형의 장점은 대체적으로 성취욕이 강하고 결과(results) 중심적 국정운영을 추구한다는 것이고, 단점은 끝맺음 없이 너무나 많은 일을 벌이고 단기적 시각으로 단기적 성과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이 유형에 속한 인물 중 성공적인 대통령으로는 미국의 제퍼슨, F. 루스벨트, 트루먼, 케네디 대통령을 꼽는다. 포드, 부시 대통령도 이 유형에 속한다. 반면 카터 대통령은 이 유형 중 실패한 대통령으로 분류된다.
실제로 김위원장은 김대통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고 패기가 있다. 적극적이면서도 긍정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 때문에 성취욕이 강하고 결과중심적인 국정운영을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일을 벌이게 되고 단기적 성과를 추구한다.
또한 자기 생각이 강한 탓에 그의 참모들은 종종 그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 정책집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김위원장의 경우 공개적으로 활달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태도는 장점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최고지도자로서 다소 경솔하다는 인상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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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초대 CEO 이병철 회장
* 이화여대 이어령 교수의 변
제일제당(1953), 제일모직 (1954) , 동방생명(1957), 안국화재해상보험(1958), 세계백화점(1962), 삼성문화재단(1965), 전주제지(1965), 중앙개발(1966), 한국종합병원(1966) 중앙일보-동양방송(1966), 삼성전자(1969), 삼성전관(1970), 제일합섬(1972), 삼성전기(1973), 삼성코닝(1973), 호텔신라(1973), 삼성석유화학(1974), 삼성중공업(1974), 용인자연농원(1975), 삼성항공(1977), 삼성시계(1977), 삼성건설(1977), 한국엔지니어링(1978), 삼성반도체통신(1980)
그가 사업을 하기 위해 투자한 초기 자본은 쌀300석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로부터 50년 후 그가 이룩한 삼성그룹은 166개의 계열기업에 103 조 가량의 매출액(2001년도 8월 기준)을 기록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병철은 원래 부자였으니까 라고 하며 그의 놀라운 업적을 애써 무시하려 한다.
일본의 3 대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내셔널 그룹의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자동차의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 소니의 창업주 이부카 마사루가 그들이다.
이 셋을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사람이 바로 이병철이라는 사람이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기업가라고 말하고 싶다.
-정주영
호암 이병철 회장이 걸출한 사업가였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이들이 알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치밀한 판단력과 혜안으로 삼성이라는 대그룹을 일구었으며, 오늘날 삼성이 한국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놓았다.
- (워싱턴 포스트) 캐서린 그레이엄 명예회장
세상 사람들은 흔히 경영을 간단히 말하자면 돈벌이로 생각한다. 호암 선생도 물론 그런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호암은 물질에 대한 욕망을 이미 뛰어넘은 대단한 사업가였다. 나는 사업가에도 일류와 이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류 사업가가 되자면 사적인 탐욕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호암은 일류 사업가였다.
- 제너럴 일렉트릭 잭 웰치 회장
호암 선생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은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안색도 좋아보이지 않았다. 호암 선생에게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는데, 호암 선생 역시 자신의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연한 모습이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평생 해왔던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참 아름다웠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대가의 자세가 아닌가 잠시 숙연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진짜 경영자라면 호암선생처럼 최후의 순간까지, 경영 일선에서 자신의 마지막 생명까지 불태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었다.
한국 경제의 짧은 역사 속에 가장 위대한 인물을 선정한다면 이병철이라고 주저없이 말하겠다. 내가 한국 경제사의 인물로 선정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경제인, 사업가의 첫 번째 목적은 이윤 창출이다. 두 번째 목적은 일자리 창출, 즉, 경제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상공업 천시풍토와 한일합방, 6.25를 겪으면서 한국 무역을 세계 12위까지 끌어올린 장본인인 이병철이라면 한국 경제사에서 가장 뛰어난 경제인으로 선택해도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1 . 투기성 사업의 무용성
그는 26세에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쌀 300석 분의 토지로 도정업, 운송회사 , 토지 매입을 차례로 해나갔다. 여기서 도정업이라는 것은 벼를 사다가 껍질을 벗겨 쌀을 만드는 일을 말한다. 이 같은 사업을 하면서 이병철은 경남 일대에서 최대의 지주가 된다. 그러나 1937년 3월 터진 중일 전쟁으로 인해 일본 정부가 은행의 대출을 중단함에 따라 전답의 시세가 폭락, 은행 대출금에만 의존하던 이병철에게는 현금 2 만원과 전답 10만평만을 제외하고 모든게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때 말한 것이 ` 3利가 있으면 3害가 있다` 이다. `교만한 자 치고 망하지 않은 자 없다.`
그 당시 상황을 통해 얻은 경험을 통해
(1). 사업은 국내외 정세를 정확히 통찰해야 한다.
(2). 무모한 과욕을 버리고 자기 능력과 한계를 냉철히 판단해야 한다.
(3). 요행을 바라는 투기는 절대로 피해야 한다.
(4). 직관력의 연마를 중시하는 한편 제 2 , 제 3 의 대비책을 강구해야한다.
(5). 대세가 기울어 이미 실패라는 판단이 서면 깨끗이 미련을 버리고 차선의 길을 택해야 한다.
짧은 보고서에 위에 5가지 경험을 적어놓은 이유는 위와 같은 사항이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병철은 중일전쟁으로 국제 정세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깨달았다면 현재는 그 당시보다 경제적인 급변은 더욱 심하기 때문이다. IMF로 인해 국내 경제는 어떤 보호막도 없이 해외에 그대로 방치되기 때문이다. 요행을 바라는 투기는 주식투자, 떴다방, 복권, 일확천금을 노리라고 언론에서 조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주식투자를 강조하는 언론 때문에 많은 이들이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개미투자자들 중에서 돈을 벌고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기관 과 외국인 투자자, 소수의 몇몇 대규모 자본만이 돈을 벌고 있는 것인 현실이다. 복권 같은 경우에는 언론의 행태가 더욱 심한 편이다. 20억을 벌었다고 광고하고, 언론에서 보도하고, 그런 의도가 어디에 있을까? 그것 역시 사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병철은 도정업, 운송회사, 부동산 투기를 하면서 이처럼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사업은 무익하다고 하였다. 나라를 위해서도, 국민을 위해서도,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로지 소수의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2. 최고라는 것은 무엇일까?
최고라는 것은 삼성의 모토이기도 하다. 최고만이 살아남습니다. 최고가 되는 길! 삼성이 나아가고자 하는 길입니다. 모든 기업이 최고가 되기를 원하지만, 삼성은 원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기업이기도 하다. 그런 최고라는 개념을 심어준 인물이 바로 이병철이다. 이병철에게 최고라는 의미는 최고의 품질, 최고의 인재를 의미한다. 일종의 장인정신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 이병철이 꿈꾸는 것이다. 평소에 이병철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노력하는 유전자는 따로 있다.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하기는 하지만, 누구나 다 노력하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해볼 때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노력은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1) 품질로서의 최고
이병철에게 최고라는 개념이 잡힌 것은 1950년 2월 도쿄를 방문했을 때 라고 한다. 뒷 길에 허름한 이발소에 별생각없이 들어가서 주인에게 말했다.
`이발일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제가 3대 째니까, 가업이 된지 이럭저럭 60년쯤 되나 봅니다. 자식 놈도 이어주었으면 합니다만...`
이병철은 사소한 대화에서 일본인들의 투철한 직업의식을 느꼈다. 삼성의 기업정신은 일본의 장인정신과 비슷하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장인정신을 일컬어 잇쇼켄메이 라고 한다. 즉, 한 가지 일에 목숨을 걸고 그 분야에서의 최고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신을 바탕으로 한 것이 제일모직이라고 할 수 있다. 1954년에 설립된 제일모직이 설립된 배경은 이렇다. 당시에 사회적 분위기는 돈없는 사람들에게 양복지는 뜬구름 잡는 소리라며 욕먹기 십상이고,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마카오 신사가 부유함을 상징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프라다를 입고있어야 부유함을 보여진다고 생각하는 것. 물론, 명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디자인, 원단, 브랜드가 주는 이미지이다. 그러나, 그 차이점이 단지 브랜드에서 오는 것이라면 브랜드의 고급성이 주는 인식의 차이만 바꾸어 놓는다면, 우리 제품도 명품이라 불리울 수 있지 않을까. 이병철도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제일모직의 브랜드를 광고하기 시작한다. 해외 유명 브랜드보다 낫다는 광고 문구를 쓰기도 하고, 직접 입기도 하고, 실제로 최고의 품질을 만들기 위해 막대한 자본과 노력을 투자하여 해외 유수의 평가 단체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이병철은 제일 제당과 제일 모직의 성공으로 전국 납세액의 4%를 내는 국내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이것은 이병철 개인만의 성공이 아니라, 마침내 한국 땅에서 외제 양복지를 몰아내고 국민 생활에 새바람을 불어 넣었으며, 연간 250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외화를 절약하게 되었다. 요새 우리 사회를 일컬어 세계화 시대라고 말을 한다. 외국계 기업들이 우리 기업들을 차지하고, 국민들은 국내 제품보다 외국 제품을 선호하는 등, 물론 이러한 과정들이 세계화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일방적인 세계화라면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세계화란 세계 각국의 특성들이 한데 뭉쳐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의 세계화는 서구 선진 몇몇 나라들의 문화만이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것 같다. 이병철의 제일모직이 한국에서도 외국 제품 못지않은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면, 우리들이 해야할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못만드는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이 아닐까?
2) 인재도 최고
이병철이 삼성물산공사를 주식회사체제로 출범하면서, 회사운영 기본방침을 밝혔다.
첫째, 일정한 자본금의 규모를 정하지 않고 사원이면 누구나 응분의 투자를 하고, 이익의 배당을 투자액에 비례해 공평하게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채택한다.
둘째, 사장이거나 평사원이거나 간에 공존공영의 정신으로 일에 몰두하는 것은 물론, 능력에 따른 대우와 신상필벌의 기풍을 마련한다.
셋째, 사원의 생활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운영에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가능한 한 우대해 가족적 분위기가 항상 유지되도록 한다.
당시 이병철은 임원들에게 25%의 출자를 하게 했다. 그 이유는 출자자들에게 회사 이익이 곧 자기 이익이므로 서로 분발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이병철의 초기 회사에 대한 생각은 공존공영 이 단어일 것이다. 나만의 회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회사이니, 우리 모두를 위해 열심히 하자. 이것은 앞에서 말한 일본 경영의 신인 네셔널 그룹의 마쓰시타에게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일본 경제가 불황이어서 모든 회사들이 직원들을 해고할 무렵에 마쓰시타도 임원들로부터 직원들을 해고해야만 한다는 강요를 많이 받았다. 더 이상 버텼다간 회사가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마쓰시타는 우리 모두의 회사이기 때문에 과실이 아닌 이상 회사를 위해 개인을 버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였다. 집이 어렵다고 가장이 어린 아이들을 길거리에 내모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모든 직원들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말하면서 직원들의 반나절 직장생활을 하자고 주장했다.지금의 노동 시간 단축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현재 우리 노동계가 주장하는 것이 5일 근무제이다. 노동 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인원의 절반이 반나절만 일하고 나머지 반나절은 직접 물건을 들고 파는 것이다. 그런 아주 힘든 시기를 서로 도와가며 이겨낸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마쓰시타의 희생정신은 나중에 미국이 일본을 점령한 후 대기업 해체를 명령했을 때, 마쓰시타 전기(내셔널 그룹)의 전 직원들이 매일매일 미국방에 항의하는 것으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정리 해고와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의 입장에서는 정리 해고는 기업의 재정상태와 관련해서 극복을 위한 가장 쉬운 지름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리 해고의 대상은 40~50대 젋은 날의 열정을 다바쳐 지금은 신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 과연 이것이 공존공영의 길일까? 기업의 역할은 이윤 획득과 일자리 창출이다. 그 두가지는 어떤 것이 먼저 선행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윤 획득에 약간 지장을 줄지라도 일자리가 창출된다면 기업은 감수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가 힘들다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방법을 강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기업들은 정부와 해외 기업의 강요에 고용 시장의 유연성이라는 허울좋은 닉네임을 뒤집어쓴 채 정리해고를 감행하고 있다.
`3利가 있으면 3害가 있다.`는 이병철 회장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병철의 인재 양성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얘기하고자 한다.
이병철은 인재를 뽑기 위해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공채 사원을 뽑은 기업인라고 한다. 이전까지는 연고 위주로 사람을 뽑다가 `삼성의 인재는 내가 뽑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1957 년에 시행한 것이다. 당시에는 고위 관직으로부터 인사청탁이 많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공채 출신과 인사청탁으로 들어온 사원과는 승진과 봉급을 다르게 했다. 승진과 봉급에서 공채출신이 연고 입사자보다 앞서도록 한 것이다. 이병철의 자존심이 발휘된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다만 폐쇄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래서일까 삼성은 최고 일류 기업이고, 선호도 1위인 기업인 것은 사실이지만, 냉정함이 많이 엿보이는 기업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 이유를 위와 같은 데서 찾는다면 웃기겠지만.
삼성 그룹의 특징 중 하나는 전문경영인 영입을 통한 경영이다. 이병철이 삼성상회를 만들어서 별표국수를 발매했을 때부터 이순근이라는 전문경영인을 쓴 것이다. 전문 경영인에게 믿고 맡기는 것이다. `못미더운 사람은 아예 쓰지 않고, 쓰거든 믿고 맡긴다.` 는 경영방침은 이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오늘날 삼성은 과장부터 전결권을 갖고 있는 회사라고 한다. 위와 같은 경영방침은 삼성의 모든 사업 분야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병철은 여기다 조건을 달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믿고 맡기되 따질 것은 꼼꼼하게 따진다는 것이다. 과거 삼성이 전주 제지 공장을 지을 때, 이병철은 부지의 입지 조건보다 지역사회에 대한 배려를 먼저 생각했다. 전주에 제지공장을 짓겠다고 하자, 지역 주민들이 땅을 내놓아 부지를 사들였다. 그러나 부지상의 부적합문제로 부하 직원들이 다른 지역을 물색하자, 이병철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전주의 입지 조건이 다른 데 비해 나쁘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게 아니오? 내가 항상 말했듯이 기업이란 눈앞의 영리만을 추구해서는 안 되는거요. 기업을 일으킬 때는 국가나 사회에 만들어 바친다는 생각으로 시작해야 하오. 특히 이번 제지공장은 지역사회 발전이라는 전주 시민들의 간절한 소망이 깃들여 있는 사업이 아니오?`
이병철은 되도록 삼성의 기업방향을 자신의 가치관과 병행하여 나아가고자 했던 것 같다. 모든 분야에서 그렇게 하진 못했겠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자세가 엿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3. 미래의 계획
1) 나와 나라가 사는 길
이병철은 6.25 후 다시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가 재기한 일화는 다음에 소개하기로 하고, 이병철은 평소부터 가지고 있었던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제조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어떤 제조업을 할 것인가에 대해 치밀한 사전 조사를 한 끝에 당시 우리나라에서 100% 수입품에 의존했던 설탕, 페니실린, 종이 중에서 현실적으로 이병철이 할 수 있는 설탕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제당에 참여를 하고자 하였으나, 막대한 자금과 기술력이 부족했다. 힘든 난관을 이겨내고 1953년 11월 5일 제일제당이 만들어진 것이다. 설탕이 생산된 지 불과 6개월 만에 50 톤으로 늘어났고, 제일제당 설립 4년 째인 1956년에는 150톤, 1957년에은 200톤으로 시설이 늘어났다. 시설만 늘어날 뿐만 아니라 수요도 폭발적이어서 없어서 못팔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지경이 이르자, 주위 사람들은 설탕값을 조금만 올리면 많은 자본을 얻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으나, 이병철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근당 이익이 10환이 아니라 60환이 되면 이익도 그 여섯 배가 되어 현재 80억 환의 여섯 배가 되니 모두 480억 환인데, 대체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 어쩌자는 거요? 장사에도 도의가 있는 법이오. 나는 독과점업자가 되어 사리사욕만을 채울 생각이 추호도 없으니 설탕값 올리자는 의견은 없었던 걸로 합시다.`
이 같은 생각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업에서 공존공영은 늘 강조해온 것인데, 과잉경쟁을 하지말고 이익을 서로 보전하면서 연구소에서 생산비용을 낮추고, 질을 높여 이익을 소비자에게 돌려주도록 해야 한다.`
이 말은 이병철이 아랫사람들에게 늘 하달하는 업무지시 내용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홍화상의 `카리스마 VS 카리스마`에서 평한 내용이 있다.
`시장은 흐르는 물과 같다. 물을 막거나 흐려놓으면 고기는 그 곳을 떠난다. 현명한 어부는 물의 흐름을 막지 않고 물을 흐려놓지도 않으면서 고기를 잡는 법이다. 시장질서를 지켜가면서 장사를 하는 것이 서로가 잘사는 지혜다.`
1967년 한국 비료 사건 이후 해외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사업을 찾고자 고심하던 터에 평소의 자세대로 치밀한 사업계획을 통해 전자산업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이병철은 전자산업의 사업성을 검토해 본 결과 기술, 노동력, 부가가치, 내수와 수출전망 등 사업 전반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경제실정에 곡 알맞은 사업이었다. 이병철에게는 나름대로의 경영철학이 있었다. 반드시 자기 능력의 한계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업을 시작한다는 걸 철칙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한 철학 하에 이병철은 수원 45만평의 대지를 살 대 삼성이 부동산 사업에 뛰어든다는 비난여론을 뒤에 엎고, 1969년 1울 13일 삼성전자 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미래의 반도체 시장 전망까지 점쳤다고 한다. 그러한 미래 예측은 10여년 후인 1984년 삼성반도체 공장이 준공되면서 현실로 나타나기도 했다.
훌륭한 사업가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 눈빛은 미래를 향한다고 했다. 세상에는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들도 많고, 미래를 향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두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이는 드문 것 같다.
` 무슨 일을 시작해서 끝을 맺으려면 처음부터 철저하게 계획을 새워 밀고 나가는 것과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밀어붙여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2 ) 사업의 성공을 위한 계획
이병철은 미래를 계획할 때 두 가지를 검토한다고 앞에서 말한 바 있다. 첫째는 국가와 민족을 위함이요, 둘째는 그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치밀한 사전조사를 바탕으로 한 사업계획
이병철의 사업철학은 1976년 5월 (서울 경제 신문)의 `재계회고`에서 밝힌 논문으로부터 알 수 있겠다.
`사업의 착수에서 우선 국민과 인류에 필요한 것인지를 살피고, 그 다음 수익성, 자금, 인력, 기술 등을 따져 자기 능력에 맞는 사업을 전개하도록 해야한다.`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전준비와 계획이다. 당초에 계획을 잘못 세워 중도에 자금난으로 허덕인다거나 판로가 막혀 당황하게 된다면 경영자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내가 부동산에서 실패를 본 것은 이와 같이 "경영"이 처음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자기 능력의 한계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이를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는 또 하나의 기업 철학도 이 때 배운 것이다.`
1998년도 김대중 정권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면, IT 강국을 강조하면서 벤처붐이 불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한 폐해는 각종 벤처 비리 사건, 또는 벤처 기업체의 부실이다.
이병철이 살아서 이런 상황을 보았다면 이런 말을 했을지 모르겠다.
`사전 준비 계획 없이 사업하는 것은 기업이 망하는 지름길이다. 나라에서 장려한다고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사업을 확장한 메디슨이 그 경우이다. 메디슨은 의료 기계 기술이라는 좋은 사업아이템을 가지고도 벤처자금 등 주력 기술과는 상관없는 사업에 치밀한 계획 없이 확장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장려, 혜택으로 인한 사업은 정부의 관리가 소홀해지거나, 정권이 혼란해지는 경제 외적인 상황이 일어난다면 길 잃어버린 미아처럼 헤매는 상황이 발생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그렇다.`
이병철은 1987년에 이 세상의 생을 마감했다. 15년이 지난 후 우리의 경제 철학은 무엇인가? 이병철이 무의미한다고 강조했던 투기성 사업에만 너무 집착을 하는 것은 아닌가? 설령, 그 사업이 투기성 사업이 아니라 할지라도 투기성 마음은 없는 것인가? 이병철 경영철학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아닌지 생각된다.
4. 외부적 상황이 기업가에게 미치는 영향
외부적 상황의 중요성이 기업가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아주 크다. 물론 기업가에게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주민들이 굶어죽는 상황이 발생한 것도 북한 체제 때문일 것이고, 아프리카 일대의 기아 문제 역시 선진국들의 임시방편적인 대책과 지도층의 부도덕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외부적 상황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전쟁, 재난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고, 중동사태, 흉년으로 인한 물가 인플레, 정책의 변화로 인한 사회 변화 등 예기치 않게 발생되는 상황을 뜻한다. 기업가들은 이런 외부적 상황을 미리 알고있던 것처럼 대처할 수는 물론 불가능하다. 기업가들은 예기치 않은 상황이 왔을 때에 피해를 최소화하고, 최악의 상황에서 길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이병철은 그러한 면에서 최대의 피해자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누구보다 실망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희망의 씨앗을 발견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1) 독재 권력과의 관계
돈과 정치는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한다. 기업가들에게 권력이 필요한 것인지, 권력가들에게 자본이 필요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독립적인 기업인은 보았어도 독립적인 권력가는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해답이 나올 것 같기도 하다. 1995년도쯤 중국에서 이건희 회장이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우리나라 경제는 1류고 정치는 3류다.` 이건희 회장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한 마디로 정치가 경제의 발목를 붙잡는다는 말이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는 국내 정세가 혼란스럽다는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당시 군사정부는 불안정한 위치로 인해 민심을 잡고자 여러 가지 민심정책을 행하였는데, 그 중 한가지가 부정 축재 혐의로 기업 매출액 1위부터 11위까지 열한 명을 부정축재자로 지목했고, 그 첫 번째가 이병철이었다. 당시 이병철은 일본에 체류 중이었다고 한다. 이병철은 6월 24일 제국호텔에서 AP, UPI 등 외신기자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빈곤 제거를 위해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할 용의가 있다. 귀국하는 대로 이에 필요한 절차를 밟고, 정부의 조치를 기다리겠다.`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당시 군사 정부도 민심에 끌려서 부정 축재 혐의로 이병철을 지목한 것이지, 근거가 있어서 지목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튼 귀국 후 이병철은 박정희를 만나 자신의 의견을 얘기한다. 기업인의 본분은 사업을 일으켜 일자리를 마련하고 세금을 내고 확대투자를 해서 키워나가는 것이다. 기업인을 활용해야한다. 이 같은 이병철의 입장은 박정희의 의견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병철은 자신의 위기를 넘겼다. 이렇게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이병철의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절에서 밝히겠지만, 이병철은 일제시대, 2차 세계대전, 6.25 , 4.19의거 속에서도 살아남은 경제인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 정부에 대한 대처 방법을 알았던 것이다.
그런 이병철도 크게 후회한 사업이 있다. 한국 비료 사업이다. 일반인들에게는 한국 비료하면 삼성이 사카린을 취급했던 범죄 행위로 기억을 한다. 그 사건에 대한 자세한 조사 자료가 없기 때문에 이병철님의 장남 이맹희님의 의견을 참고로 하고 있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이병철은 비료 사업을 2 차례에 걸쳐 시도하게 되는데, 그 첫 시도는 1960년대쯤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허락 하에 비료 사업을 무난하게 추진 중이던 이병철은 1960년 4.19의거 때문에 좌절을 맛보게 된다. 물론 이때도 부정축재자로 몰려 막대한 벌금을 물기도 한다. 그렇게 첫 시도가 무산된 뒤, 비료사업을 접었다가 군사정부의 요구로 인해 다시 비료 사업을 재개하기 시작한다. 여러 가지 힘든 난관을 극복한 뒤, 겨우 비료 공장이 정상적으로 가동될 무렵 이병철은 `한비 밀수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한비 밀수 사건`이란 사카린-식료품을 만드는 공업재료로써 단 맛을 내는 물질. 당시에는 필수품이었다고 한다.- 이 시장에 누출되어 그것을 조사하던 와중에 삼성이 밀수하게 됐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이맹희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삼성이 미쓰이측의 기계를 사준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100만달러를 주기로 했는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여 박대통령에게 의견을 여쭤본 결과 100만 달러어치 물건으로 들여와 1/3은 정치자금, 1/3건설자금, 1/3은 한국비료의 운영자금으로 쓰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하여튼 `한비 사건`으로 인해 이병철은 10년 간 힘들게 가꾸었던 한국 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게 된다. 물론 한국 비료는 1994년 한국 비료 민영화 방침에 따라 공개입찰을 실시하였는데, 삼성이 최저입찰가보다 1000억이 더 많은 2300억을 제시해 회사를 찾아갔다고 한다. 참으로 삼성에게는 한이 서려있는 기업이었던 것 같다.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이 많았기 때문에 기업인들로 하여금 경영에만 신경을 쏟지 못하게 한 것 같다. 경영만 잘한다고 성장을 못하는 기업이 한국에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한 곳이 한국이다. 그러한 상황은 시간이 50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내 생각에 그러한 풍토를 없애기 위해서는 정치가 경제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올 연말에는 대선이 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래의 대통령에게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 무엇을 하겠다고 나서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역할은 일반 국정에 관한 것에만 집중을 하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달라는 것이다. `무엇을 장려하겠다`는 말만 들어도 겁이 난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옛 속담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2) 예측 불허인 세계 상황과의 관계
이병철이 국제 정세가 일반 경제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대공황이었다. 대공황이 일어날 당시에는 이병철은 일본에 있었는데, 일본의 경제 위기를 보면서 느낀 것이 많았던 것 같다. 그 후에 1937년 3월 터진 중일전쟁은 경남에서 대지주로서의 꿈을 부풀던 이병철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었다. 중일전쟁으로 인해 일제는 쌀가게를 문닫게 한다. 정주영이 파산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국민들 대부분이 겪은 것일 것이다. 또 국제 상황이 바뀐 것은 우리 국민들에게 비참한 과거인 1950년 6.25이다. 삼성물산공사가 보관하던 물품들이 모두 타버려 없어진 것이다. 이병철이 41살에 일어난 일이다. 자칫 자포자기할 수 있었던 이병철에게 행운이 돌아왔다. 이병철은 아마 이때도 그 생각을 했을 것이다. `3害가 있으면 3利가 있다.` 그 행운이란 다름 아닌 예전에 과수원과, 양조장을 했었는데, 그만 벌이고 있는 사업들이 너무 커서 대구에 있는 조그만 사업체는 이창업이라는 사람에게 맡기고 잊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쟁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대구에 왔는데, 이창업이 이익금이라고 3억원을 내놓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운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단순히 행운이라고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병철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 한국 경제는 현재 IMF 이후 외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유망한 기업들은 외국에 팔려나간지 오래고, 일반 국민들은 그것에 대한 인식도 가지지 못한 채 자신의 앞 날 만을 염려하며 주식 투자에 정열을 쏟는다. 그런 와중에도 삼성 전자가 성장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 뿌리가 얼마나 튼튼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한때 이건희 회장이 개인의 취미생활인 자동차를 사업으로 확장시키려는 무모한 시도를 해서 위태로워진 적이 있었던 것을 제외하곤 삼성은 언제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서있었다.
- 이화여대 이어령 교수
이병철의 경영 철학
1980년 7월 이병철 회장은 전경련에서 행한 연설에서 자신의 성격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한가한 것을 가장 싫어하고 못 견디는 성미입니다. TV를 보면서도 신문이나 잡지를 읽고 이야기합니다.” 이병철은 대단한 독서광이었고 평생 손에서 책을 떼지 않았다. 이병철의 성격은 까다로우면서도 귀족적이었다. 167cm의 키에 60kg의 몸무게, 야무진 입매와 단정함, 예리하면서도 온화한 시선. 이병철은 매사에 제일주의를 고집하여 남에게 지는 것을 생리적으로 싫어했다. 이병철의 인상은 차갑고 매서우며 냉혹했고 예리하며 까다로웠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느낌이다. 그러나 그를 가까이에서 본 사람들은 반면에 성격이 둥글며 사교성이 뛰어나고 의외로 온화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이병철 회장은 유교적 선비문화의 소양 위에 서 있던 기업인이었다. 어려서 배운 논어를 기반으로 행동이나 사고방식 그리고 몸가짐에 선비문화와 엄격함이 배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경학부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에 남달리 관심이 많았고 사실 경영인으로서 이병철의 일생은 신기술을 도입해 새로운 기업을 일으킨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당, 모직을 거쳐 비료, 전기전자,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그는 경영과 기술 두 문제를 놓고 평생을 싸워왔다. 이병철은 한국이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더 좋은 품질을, 더 싸게, 그리고 남보다 앞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인 삼성종합기술원은 한국 전자산업기술을 선도하고 그의 유언과도 같은 “기술은 돈보다 중요하다”라는 말을 실천하고 있는 한국 기술의 메카가 되었다.
행하는 자 이루고 가는 자 닿는다
보보시도장(步步時道場)이란 ‘한 걸음 한 걸음이 인생’이라는 뜻으로 이병철이 자주 인용하던 구절이다. 1987년 9월말 서울대학병원 내과의 서정돈 교수는 급히 와달라는 전갈을 받고 이병철의 자택에 도착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이 회장은 서교수에게 와주어 고맙다며 웃음을 띄었다. 한평생 제일주의와 완벽주의로 일관해온 대기업 총수답지 않게 표정이 온화했고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10월 17일 이회장은 병중에도 한국빌딩 준공식에 참석했는데 이것이 그의 마지막 공식 행사 참석이었다.
10월 20일 이병철은 안양 골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2층 창가에 앉아 잔디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서서히 날이 어두워질 무렵 이병철은 직원들에게 골프화를 가지고 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프로골퍼 이강선과 함께 카트를 타고 1번 홀로 나갔다. 1번 홀에 선 이병철의 첫 번째 티샷은 헛스윙이었고 두 번째 티샷도 겨우 10미터 정도 굴러갔다. 그러나 세건트 샷지점에서부터는 평상시처럼 플레이했다. 3번 홀에 이르자 날이 어두워져 더 이상 플레이를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못내 아쉬워하는 이병철의 마음을 읽고 주변사람들이 카트와 승용차 헤드라이트를 필드 쪽으로 밝혀주어 9번 홀까지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그의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병철은 카트를 타고 10번 홀 그린을 세 바퀴나 돌아본 뒤 골프장을 떠났다. 이것이 이병철의 마지막 골프였다. 그리고 이병철은 20일 후인 1987년 11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거인의 77년 생애가 끝난 것이다.
“행하는 자 이루고, 가는 자 닿는다”라는 명구는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던 순간까지 일관되게 흘렀던 좌우명이자 그의 행동주의적인 삶과 경영철학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가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가 행했기 때문이고,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가고 또 갔던 것이다.
이병철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참으로 어렵지만 굳이 언급하자면 철두철미함과 추진력을 겸비한 애국 기업가라 정의 내리고 싶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모든 자료를 수집해 꼼꼼히 따져보는 철두철미함을 가지고 있지만 한번 시작하면 무서운 추진력으로 끝장을 보는 의지력의 소유자이고 중대한 결정에 있어 국가의 발전을 염두에 둔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경영인이었기 때문이다. 무역업으로도 큰 돈을 벌고 있었던 때에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 제조업을 시작한 일이나 73세의 나이에 반도체 사업을 추진한 점은 그가 범상한 경영자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여기에 더해 사람을 부릴 줄 아는 리더였으며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멋쟁이였다.
이병철 회장의 경영 신조
1. 신용을 금쪽같이 지켜라
2. 사람을 온전히 믿고 맡겨라
3. 판단은 신중하게, 결정은 신속하게
4. 근검절약을 솔선수범하라
5. 매모광이 돼라
6. 세심하게 일하라
7. 행하는 자 이루고, 가는 자 닿는다
8. 신상필벌을 정확히 지켜라
9. 전문가의 말을 경청하라
10.사원들을 일류로 대접하라
* 이병철 회장의 경영 15계명
1계명 행하는 자 이루고, 가는 자 닿는다
2계명 신용을 금쪽같이 지켜라
3계명 사람을 온전히 믿고 맡겨라
4계명 업의 개념을 알아라
5계명 판단은 신중하게, 결정은 신속하게
6계명 근검절약을 솔선수범하라
7계명 메모광이 되라
8계명 세심하게 일하라
9계명 신상필벌을 정확하게 지켜라
10계명 전문가의 말을 경청하라
11계명 사원들을 일류로 대접하라
12계명 부정부패를 엄히 다스려라
13계명 사원교육은 회사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14계명 목계의 마음을 가져라
15계명 정상에 올랐을 때 변신하라
“행하는 자 이루고, 가는 자 닿는다”라는 명구는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던 순간까지 일관되게 흘렀던 좌우명이자 그의 행동주의적인 삶과 경영철학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가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가 ‘행했기’ 때문이고,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가고 또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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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전 CEO 정주영회장의 리더십
정주영 회장의 삶의 철학과 이념
- 삶의 철학
(1) 성실성
강원도 아산에서 출생한 정주영은 그의 삶의 전반적인 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가진 최고의 재산은 부지런함과 근검 절약이었다. 정주영 스스로 평생의 자본이라고 말하던 것이 부지런함이었다. 매일이 새로워야 하고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루마다 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더욱 부지런하기 위해 노력했다.
성실함은 자신감을 갖게 한다. 어떤 일을 할 때는 경력이나 학벌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시점에서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자세가 일을 한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극복하지 못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이유 같은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성실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큰 문제도 차근차근 풀어나 갈 수 있는 해결책이 보이게 된다.
작은 일에 성실한 이를 보고 우리는 큰 일에도 성실하리라 믿는다. 작은 약속을 어김없이 지키는 사람은 큰 약속도 틀림없이 지키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큰 일에도 최선을 다한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성실한 모습은 신용을 얻는 최고의 방법이 된다.
(2) 결단력
매사에 빠른 결단력과 속전속결의 모습을 보여온 그는 늘 어떤 일이던지 고민하지 않고 결정을 내렸다. 현대가 주력해왔던 건설업은 즉각적인 결정이 중요한 산업이다. 시간이 곧 돈이기 때문에 무리한 결정이라 할지라도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결정에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주영 회장의 모습은 성공을 가져다준 요인 중에 하나일 것이다. 투자에 있어서도 시기를 놓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일화로 방송국에 2억이라는 기부를 5분도 안 되어서 결정을 내리는 모습은 직접적으로 기업경영과 큰 연관이 없는 듯하지만, 어떤 사안을 두고 빠른 결정을 내는 속전속결 방식 속에 그의 경영 철학이 숨어있는 것이다. 빠른 행동력으로 공사기간을 앞당겨 인력비와 투자비를 줄여야 이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을 하는 사람은 돈과 시간에 쫓기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인은 그때그때 적응할 수 있는 임기응변적인 민첩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정주영 회장의 맨주먹 마케팅
사진 한 장을 보여주고 돈을 빌릴 수 있을까? '설마?'하고 웃겠지만 우리가 잘 아는 현대그룹의 정주영 왕회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1972년 정주영 회장은 조선소 건설을 위한 차관을 빌리기 위해 소나무와 초가가 보이는 울산조선소 부지 사진 한장만 들고 영국 버클레이 은행을 방문했다.
"돈을 빌려주면 여기다 조선소를 지어서 배를 팔아서 갚을테니 돈을 빌려 주시오".
그러자 은행장이 미심쩍은 듯 "도대체 배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습니까?"하고물어보았다. 그러자 정주영 회장은 거북선 그림이 그려있는 우리나라 지폐를 한 장 꺼내 보였다. 그리곤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나라는 1500년대에 이미 거북선을 만든 나라입니다".
기가 질린 은행장은 까다로운 조건을 하나 걸었다. "앞으로 당신이 만든 선박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차관을 주겠습니다" 아직 조선소도 없는 정주영 회장으로서는 '엄동설한에 딸기를 따오라는 말'과 같은 이야기였지만 정주영 회장의 맨주먹 마케팅은 여기서 위력을 발휘했다.
정회장은 스코트 리스고 조선소에서 26만톤짜리 선박 설계도면을 한 장 빌려서 마침 파리에서 휴가중인 세계적인 선박왕 리바노스를 찾아갔다.
"당신이 배를 사겠다고 계약 해 주면 이 계약서를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조선소를 지어서 배를 만들겠습니다"라고 맨주먹 마케팅을 전개했다.
"현대가 만드는 첫배를 당신한테 바치는 영광을 달라"는 정회장의 맨주먹 마케팅에 감탄한 그리스 3대 선주의 한사람인 리바노스는 선박건조 경험은커녕 조선소조차 없는 현대에 26만톤급 유조선 두 척을 주문했다.
이 계약 덕분에 정주영 회장은 영국에서 돈을 빌려 울산의 한쪽에는 조선소를 짓고 다른 한쪽에서는 유조선을 건조해 2년 3개월만에 완공했다.
무엇이 정주영 회장을 부자로 만들었는가? 그것은 열정과 끈기의 맨주먹 마케팅이 성공비결이다.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대에 영업활동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정주영 회장의 맨주먹 마케팅을 한번 머리에 떠올려보자.
용기가 날 것이다. 그런 용기로 다시 한번 시작할 때다.
[정주영의 경영철학]
- 사람들은 곤경에 처하면 헤쳐나갈 길이 없다고 체념한다. 그러나 찾지 않으니까 길이 없지, 필사적인 노력으로 찾아나서면 다 해결 방법이 나오게 되어 있다.
[정주영식 손자병법]
- 병사들은 극한 상황에 빠지면 오히려 두려워하지 않고, 갈 곳이 없으면 단결력이 굳어지며, 깊이 들어가면 투지가 생겨나고, 부득이하면 싸움에 임하게 된다.
[정주영 뛰어넘기 성공전략 포인트]
집념이 강한 사람에게는 하늘도 감동한다!
(1)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확실하면 집념은 저절로 생긴다.
(2) 매일 아침마다 소리 내어 '그 목표는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다짐하라.
(3) 말보다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해 다른 사람을 감동 시켜라.
전주영 회장의 성공 비결(MBC)
성공 비결 1 - 내 몸이 담보
강원도 통천,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정주영은 16세에 가출, 막노동판을 전전 하다가 서울의 쌀가게에 취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와 신용밖에 없다고 생각한 정주영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며,
그 결과 쌀가게 주인과 주위 사람들에게 신용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스물 일곱 되던 해, 정주영은 자동차 정비공장을 차리게 되는데.
자동차 정비공장 문을 연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화재로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빚을 얻어 시작한 정비공장이 전소되자, 정주영은 빚위에 또다시 빚을 지게 되고.
다시 일어서야 할 그때, 정주영에게 돈을 빌려 준 사람들은 쌀가게 시절 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국 정주영이 다시 일어나 오늘 현대그룹의 발판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신용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이지요.
성공 비결 2 - 구두쇠.
30여년 전에 지은 그의 집엔 20여년이 넘은 소파와 10년이 다 된 17인치 TV가 전부였습니다.
17년전 작업복을 죽기전까지 입고다녓을 정도.
정주영은 젊은 시절부터 아끼는데 있어서는 누구 못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한때 한국 제일의 부자 정주영은 구두쇠엿던것이지요.
성공 비결 3 - 아침형 인간
정주영 회장의 성공비결 또 하나.
그 누구보다 부지런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쌀가게 시절부터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문을 열고 점포를 정리했던 정주영은 자신이 사업을 하던 시절에도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곤 했다고 합니다..
그리곤 해가 빨리 뜨지 않는다고 역정을 내곤 했다는데.
현대회장으로 있을당시에도 새벽 6시 기상, 7시면 회사로 출근하였다고 합니다.
성공 비결 4 - 빈대만도 못한놈
정회장이 부하직원을 야단칠 때 늘 하는 말은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고 햇답니다.
그것은 부두 노동자 시절 몸으로 익힌 정회장의 철학이 담긴 욕설이라고 합니다.
부두 노동자 시절, 몸에 기어 오르는 빈대를 피하기 위해 네 개의 물그릇에 상다리를 담궈 놓고 상위에서 잠을 자던
정회장은 며칠 되지 않아 다시 빈대에게 시달리게 된다.
살펴 본즉 빈대들이 벽을 타고 올라가 천정 위에서 몸으로 뛰어 내린 것인데.
빈대도 머리를 쓰면 되는데, 사람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햇습니다.
정주영은 사업에 있어서도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내어 멋지게 성공을 하곤 했지요.
한겨울 보리를 심어 잔디를 대신 했던 부산 UN묘지 공사며,
폐 유조선으로 단번에 물길을 막았던 서산 간척지 공사.
그의 성공은 상식에 매달리지 않는 신선한 발상의 성공이었습니다.
성공 비결 5 - 불도저
정주영 회장의 별명은 불도저.
그것은 한 번 마음먹은 사업을 무섭게 밀어 붙이는 추진력 때문인데.
1970년, 울산 모래 벌판에 세워진 조선소는 모두가 불가능 했다고 말한 사업이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없던 시절, 그곳에 조선소가 세워지리라고 믿었던 사람은 오직 정주영 뿐이었습니다.
울산 모래 벌판의 사진 한 장을 달랑 들고 당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반에 해당하던 4500만불의 차관을 얻어
세계 최대 규모의 도크를 만들었던 정주영.
그는 조선소 도크 건설과 동시에 26만톤 짜리 두척의 배를 만드는 세기적 실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30개월 후, 대한민국 최초로 만든 거대한 유조선은 한국을 세계 제 1위의 조선국으로 도약시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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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의 리더십
동아시아 바다를 완전히 장악한 장보고는 분명한 역사적 인물로서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재해석하고 본받아야 할 점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글로벌 마인드와 네트워크 활용능력은 현대의 경영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손꼽히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지구촌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국가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개인이 자신의 역량을 국제무대에서 맘껏 펼치게 된 것을 생각해 볼 때, 장보고라는 인물은 확실히 천년의 세월을 뛰어 넘은 통찰력이 엿보이는 인물이다.
그가 천민출신으로 세계에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청해진이라는 해상왕국을 건설하게 된 데에는 개인적인 무술 실력보다는 타고난 지도력과 추진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오늘날 많은 경영인들이 주목하고 있는 해상왕 장보고의 리더십을 몇 가지 꼬집어보자.
1. 장보고는 시대를 읽는 남다른 눈을 가지고 있었다. : 장보고는 조공무역이 쇠퇴하고 민간무역이 도래할 것을 미리 예측했다. 그리하여 동북아를 각각의 나라로 따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권역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 장보고는 국제적 감각의 리더쉽을 소유하고 있었다. : 청해진은 1만명의 민군(民軍)과 그 가족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구성원들은 다양한 국적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장보고는 국가별 문화적 차이를 인정했으며, 청해진에 필요한 다양한 기능을 해외에서 아웃소싱하는 등 국제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3. 장보고는 완벽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 군사력, 조선술, 항해술에서 장보고는 완벽한 준비를 갖추고 있었으며, 영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잘 정비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해상의 무역을 리드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4. 장보고는 네트워크 활용능력이 뛰어났다. : 장보고가 당나라에서 그만큼의 영향력을 키워갈 수 있었던 것은 신라, 당,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신라인들을 결속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했는데, 이 네트워크가 바로 장보고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5. 장보고는 글로벌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다. : 그는 청해진 중심의 해상체제에서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청해진의 활동에 당과 일본을 참여시키기 위해 당시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던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극 도입한다. 당나라의 직제를 그대로 차용하고 동아시아 3국의 공통 코드로 불교를 받아들여 국경을 초월하는 등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참고자료: 삼성경제연구소, 천년 전의 글로벌 CEO 해상왕 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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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CEO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
“양과 질의 비중이 1:99도 안된다. 0:100 이 되어야 한다. 10:90 이나 1:99 로 생각한다면 이것이 언젠가는 5:5로 간다. 한쪽을 0으로 만들지 않는 한 절대로 안된다.” - 이 건 희 회장
- 1987년 46세로 회장 취임
- 1993년 신경영 선언 : 프랑크푸르트 선언 : “나부터 변해야 한다.” “ 처자식 빼고 다 바꾸자.” “양 위주의 경영을 버리고 질 위주로 가자”
“질만 높이면 양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된다.”
* 현재 세계 1위: 19개 ⇒ 2010년 50개로 늘린다
- 질경영의 성과 : 1992년 매출 : 35조 7,000억 ⇒ 2004년 매출 135조 5,000억 (4배 증가)
- 이익 : 1700억 ⇒ 19조원 (112배 증가)
- 삼성전자 브랜드의 가치 : 세계 21위 125억 5,300만달러 (인터브랜드 컨설팅 업체)
- 1등주의 삼성 ⇒ 초 일류주의 삼성
소위 ‘한국을 먹여 살린다’는 삼성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삼성의 세계-1등주의 연구’에서는 그 힘을 이건희 회장의 ‘용인(用人)’에서 찾았다.
“21세기에는 탁월한 천재가 10만~20만명을 먹여 살리는 인재경쟁의 시대, 지적 창조력의 시대이다.”
2002년 6월 이건희 회장이 삼성 사장단 50여명에게 던진 말이다. 이 회장은 삼성이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성패가 ‘핵심인재의 확보’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이건희 회장이 요구하는 핵심인력은 미래를 움직일 천재를 의미했다.
1만 2000명의 석·박사급 인재가 근무하는 삼성그룹이지만 이 회장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한다. 삼성은 국적을 불문한 석·박사급 인재를 매년 1000명씩 늘려가고 있다고 한다.
“초일류 기업이 되려면 모든 삼성인이 인간미·도덕성과 함께 한국인다운 예의범절, 국제인의 에티켓을 갖추고 세계와 미래를 바라보며 크게 생각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강조하는 ‘존경받는 기업’이 되는 한 조건이다. ‘기회경영’에 실패하면 또 다른 기회를 모색할 수 있지만, ‘전략경영’의 실패로 신망을 잃으면 회사의 생존조차 위험하다는 것이 이건희 회장의 생각이다.
1987년이었죠. 이병철 회장의 장례식을 치른뒤 열흘뒤인 1987년12월1일 셋째아들인 이건희(李健熙) 부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의 대권을 물려받기까지 21년 동안 아버지로부터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점심시간에 계열사 사장들을 불러 업무를 보고 받았는데, 이 자리에는 사돈인 홍진기(洪璡基) 회장과 이건희 부회장이 고정멤버로 배석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1978년 삼성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한 후에는 회장실 바로 옆방에 대기하고 있다가 아버지의 스케줄에 맞춰 그림자처럼 수행했습니다. 매일 용인에 있는 아버지 숙소로 가서 취침을 확인한 뒤에야 귀가했다고 합니다.
이병철 회장은 자신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나고 장사에 대한 관심이 많은 둘째아들 대신, 좀더 멀리 내다보는 시각을 가진 셋째아들을 후계자로 선정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은 이건희 회장이지만, ‘삼성그룹 회장’으로서 경영 스타일은 아버지와 판이했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고, 인재관을 비롯한 몇가지 사항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외부의 우수인재를 선발하는 일이라면 아버지 못지않게 열심이지요.
이건희 회장은 개인적으로는 자율관리형 시간관을 가지고 있으며, 미래 전략을 구상하거나 거시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 이외에는 삼성그룹의 대부분 사안을 전문경영인들에게 위임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저로서는 다소 헷갈리긴 하지만 어쨌든 ‘인간미’를 강조하는 조직관리에다, 명백하게 듣기(listening)형 리더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면시간도 불규칙합니다. 요즘엔 규칙적으로 수면을 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지만, 얼마전까지만해도 24시간 연속 깨어있기와 24시간 연속 수면을 병행하기도 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한남동 집에서 매년 수천 편의 영화나 TV 드라마를 보지요. 삼성 정보팀이 매일 올리는 따끈따끈한 최신 정보에다, 전세계에서 발간되는 최신 과학기술 잡지를 숙독합니다. 휴대폰이든, 오디오든 웬만한 첨단 기기를 직접 분해하고 조립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무엇이든 한가지 깊게 파고들어 사물의 본질을 캐내는 작업이 그의 취미입니다. 그러다보니 상상력과 직관력이 커지게 마련입니다. 미래의 경영이나 기술이 어떻게 변화할지 수(手)를 읽는데 아무래도 유리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삼성이 반도체나 LCD(액정표시장치)의 대형 투자를 할때는 모두 이건희 회장이 결단을 내려주었습니다. 상상력과 직관력으로 단련된 ‘동물적인 감각’이지요. ‘동물적’이라고 한 것은 무슨 논리적인 설명으로는 딱히 납득할 수 없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대신 삼성그룹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업무는 모두 이학수(李鶴洙) 구조조정본부장이나 윤종용(尹鍾龍)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맡기는 스타일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IMF체제 이후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갔을 때도 ‘집중과 선택’이라는 밑그림만 던져놓고 단 한마디 말을 하지 않은채 실무를 구조조정본부에 일임했습니다. “팔아야 한다고 판단되면 오너 눈치 보지 말고 과감하게 팔아라”고 분명한 방침을 내놨기 때문에 사장단들이 일을 처리하기가 수월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삼성과 빅딜 협상을 벌였던 다른 기업체 임원들은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자기 판단에 따라 협상조건을 밀었다, 당겼다 하는 것을 보고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건희 회장은 혼자서 생각을 많이 하다보니 자연히 말하기보다 듣기에 능숙하지요.
물론 1993년 신(新)경영 때는 당시 프랑크푸르트, LA 등지에서 평균 8시간 이상, 최장 16시간짜리 회의를 잇따라 주재하며 3개월 동안 8500쪽 분량의 말을 쏟아냈습니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보통 때는 열 마디를 듣고 열번 생각을 한 다음에 한 마디를 합니다. 혹시 남에게 말을 걸더라도 "왜" "왜" "왜"를 반복하면서 본질을 캐묻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이건희 회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력을 중시하다보니 현실의 사업에 대한 감각도 차이가 있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중소기업형 리더라면, 이건희 회장은 대기업형 리더다. 이병철 회장은 직접 주3~4회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챙기고 지시했다. 아마 이병철 회장이 계속 경영했다면 아마 오늘날과 같은 삼성전자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사장들이 회장이 언제 갑자기 무슨 질문을 할까, 어떻게 대답할까에만 신경써면서 ‘쫄아서’ 정상적인 경영활동이나 아이디어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권한위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다르다. 소소한 일은 관여하지 않고 큰 줄기만 챙긴다. 다만 큰 흐름을 잘못 짚으면 혼이 나는 것은 더 무섭다”고 말했습니다.
큰 그림을 그리는 깊은 생각과 높은 안목
이건희 회장의 폭넓은 안목과 통찰력은 그칠 줄 모르는 지식욕과 깊은 사색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매달 엄청난 양의 책과 잡지를 읽고, 또 틈만 나면 비디오를 시청합니다. 그는 정치·경제·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모아놓고 읽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책만 한 20권이 되며 잡지의 경우는 시사경제에서부터 문화예술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잡지 50종 정도를 구독합니다. 그리고 자택 지하실에는 열 다섯 개의 VTR을 설치해놓고 매일 뉴스, 과학 다큐멘터리, 세계 여러 나라의 프로그램이 녹화된 비디오 테이프를 시청됩니다. 이렇게 매일 접하는 엄청난 양의 정보는 사색을 위한 풍부한 재료가 됩니다.
정보에 대한 갈구와 함께 이건희 회장의 사고를 깊게 해주는 것은 그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생각의 철학'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경영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말하며, 경영이든 일상사든 문제가 생기면 최소한 다섯 번 정도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원인을 분석한 후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모든 문제를 다각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를 ?입체적 사고?라 이름 붙였으며, 빠르게 변하는 21세기 생존의 키워드가 될 것이라 했다. 그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영화 감상을 예로 들어 '입체적 사고'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감상할 때, 대개 주인공에 치중해서 보게 됩니다. 주인공의 처지에 흠뻑 빠지다 보면 자기가 그 사람인 양 착각하기도 하고, 그의 애환에 따라 울고 웃습니다. 그런데 스스로를 조연이라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면 아주 색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나아가 주연? 조연뿐 아니라 등장 인물 각자의 처지에서 보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의 인생까지 느끼게 됩니다. 거기에 감독·카메라맨의 자리에서까지 두루 생각하면서 보면 또다른 감동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회장은 일단 입체적으로 보고, 생각하는 '사고의 틀'이 만들어지면, 음악을 들을 때나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또 일을 할 때에도 새로운 차원의 눈을 뜨게 된다고 합니다.
입체적 사고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건희 회장은 일단 중요한 사안이 하나 생기면, 해결될 때까지 몇 날 며칠이고 생각에 빠집니다. 그리고 나서 결정을 내립니다.
이건희 회장의 정보에 대한 갈구와 입체적 사고는 남들보다 앞서 미래를 구상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 중 기자가 갑자기, 10년 뒤 삼성의 모습은 어떠할 것 갔느냐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머뭇거림 없이 10년 후 삼성의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10년 후 삼성은 사업구조나 경영구조에서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입니다. 욕심이 좀 지나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삼성은 전자·금융·서비스 사업을 중심으로 세계적 수준의 디지털 기술과 핵심 역량을 갖춘 첨단 기업으로 성장하고, 부채가 거의 없는 탄탄한 재무구조를 보유한 일류 기업으로 변모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은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해, 국제사회에서 존경받을 것입니다.
이병철 회장의 경영 신조
1. 신용을 금쪽같이 지켜라
2. 사람을 온전히 믿고 맡겨라
3. 판단은 신중하게, 결정은 신속하게
4. 근검절약을 솔선수범하라
5. 매모광이 돼라
6. 세심하게 일하라
7. 행하는 자 이루고, 가는 자 닿는다
8. 신상필벌을 정확히 지켜라
9. 전문가의 말을 경청하라
10.사원들을 일류로 대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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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의 리더십
알렉산더는 인적 자원을 활용하는 데 천재적인 소질을 갖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1만 명에 달하는 병사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고 전한다.
그는 전쟁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병사와 함께 먹고, 마시고, 잠을 잤다. 그는 항상 소박한 식단을 즐겼고 추운 곳에서 잠을 청했다. 항상 최일선에서 병사를 이끌었으며 그들과 함께 싸우다 부상을 입는 일도 잦았다.
의사교육을 받은 그는 전투가 끝나고 나면 몸소 병사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심지어 자신이 큰 부상을 입었을 때에도 병사들의 상처를 먼저 돌보았으며, 심각한 부상을 입지 않은 경우에는 다른 병사들이 다 치료를 받고 난 후에야 치료를 받았다.
랜스 커크의 '리더십의 명장 알렉산더' 중......
사족....
알렉산더..... 마케도니아의 왕 (BC 356-BC 323, 재위 BC 336-BC 323)
마케도니아라는 작은 국가의 왕으로 광활한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그리스 문명을 인도와 아프가니스탄까지 전파했던 알렉산더는 세련된 정치가이자 능숙한 전략가이며 잔인한 전사였다.
몽테뉴는 `가장 탁월한 사람들` 이라는 글에서 알렉산더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
"통찰력 인내심 치밀함 관대함 낙천성과 같은 군인적 자질들과 그가 누린 영광스러운 기간과 영토, 잘못을 인정하는 순수한 의지 등은 그를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하게 만든다 ."
세련된 정치가이자 능숙한 전략가이며 잔인한 전사였던 알렉산더는 한마디로 영웅이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프랑수아 슈아르는 저서 `알렉산더` 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신화로 남은 한 사내를 조명한다.
단순히 그의 삶만을 조명한 것이 아니라 알렉산더라는 인물이 사후 어떻게 신화가 되어갔는지 그 역사적 궤적을 추적한다. 알렉산더는 산화가 될 조건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프랑스의 계몽사상가인 볼테르는 알렉산더의 구체적인 업적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는 전쟁 중에도 법을 만들었고 상업로를 개척해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한 도시들을 세웠다. 알렉산더가 세운 도시는 무수히 많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전성기 무렵 남 부유럽과 북아프리카, 서아시아에 알렉산더라는 이름이 붙은 도시가 무려 60개 가 넘었다.
이 도시들은 이름은 바뀌었지만 지금까지도 도시로서의 명성을 누리고 있는 곳들이다.
알렉산더는 지적이면서도 치밀한 근거 위에서 전쟁을 했고 통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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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
물론 ‘불법과 탈법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독재를 하든 방임(放任)을 하든 실적만 좋다면 대부분 정당화되고 결과적으로 리더십 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실적이 나쁘면 리더십이고 뭐고 갖다붙일 여지가 없어진다. 정치인이나 종교인의 리더십과는 다른 대목이다. 그래서 ‘투명경영’이란 말은 있어도 ‘민주경영’이란 단어는 없는 모양이다.
기자가 고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의 생전에 현대그룹을 취재하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점은 느닷없는 사장단 인사였다. 그것도 기사마감 시간이 임박해서야 불쑥 내놓는 헤비급 인사로 몇 번이나 소동을 벌였다.
요즘 현대자동차그룹에서도 간간이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 초에도 그랬다. 지금까지 몇몇 의외의 인물이 사장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정기 시즌이 아니라 오너의 뜻에 따라 수시로 단행되는 ‘번개 인사’는 현대가(家) 리더십의 한 특징을 보여준다.
정몽구(鄭夢九·67)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그렇듯 가부장적 경영을 해오면서 뛰어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집에 은둔해 있는 오너도 아니고, 회사 공장을 한두 번 순시하면서 현장경영한다고 홍보하는 오너도 아니다. 실제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고 행동으로 다그친다.
요즘 중국 베이징에서는 ‘현대속도(現代速度)’란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현대차가 막차로 중국시장에 진입했지만 금방 기존의 메이저 업체를 제치고 상위권으로 도약한 것을 빗대는 말이다.
현대차는 2004년에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에서 41만8615대를 판매해 점유율 2.5%의 벽을 넘어섰다. 기아차 판매분을 합치면 점유율은 4.1%에 이른다. 2005년 1분기 성과는 더 좋다. 현대차는 2004년 세계시장에서 228만대를 팔아 판매증가율 16%를 기록했다. 이는 도요타, 혼다의 10%나 GM의 4%를 크게 앞지르는 것이다.
기자는 1990년대 후반 당시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과 단둘이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롯데호텔 세면장에서, 금강산 관광선인 금강호 갑판 위에서, 신라호텔 미니룸에서. 그때 본 정 회장은 상당한 눌변(訥辯)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각종 국내외 행사를 많이 치러서인지 달변은 아니라 해도 분명하고 명쾌한 의사표시를 한다. 당초 정 회장의 눌변 때문에 그의 경영능력에 의심을 품는 사람도 있었고, 2000년 현대차로 홀로서기를 했을 때는 과연 회사가 제대로 굴러갈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정 회장은 그런 의심과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세계시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
아버지 정주영 회장은 벤치마킹 대상이자 라이벌
정몽구(MK) 회장을 지켜보면 그 내면에 아버지 정주영 회장에 대한 벤치마킹과 함께, ‘아버지를 라이벌로 설정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가 숨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주영 회장은 매일 새벽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여러 동생과 자식에게 근검을 가르쳤다. 정몽구 회장은 수많은 삼촌과 형제 사이에서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물불을 안가리고 뛰었다.
정몽구 회장은 1996년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내 나이 예순을 앞둔 터여서 아버지가 옛날처럼 무섭지는 않지만 여전히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의 한 측근은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일념으로 사업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정 회장의 스타일은 그의 아버지와 흡사하다. 외모는 물론 선이 굵으면서도 세밀하고 의리와 인정을 중시하는 것도 닮았다. 솥뚜껑만한 손에다 ‘삼국지’를 애독하는 것도 비슷하다. 부하를 관리할 때 믿고 맡기긴 하지만 상호경쟁을 시키는 방법도 비슷하다.
하지만 아버지를 베끼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5년 전 벌어졌던 ‘왕자의 난’은 한편으로 아버지로부터 정통성을 받고 다른 한편으론 아버지로부터 독립하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결국 2000년 9월 눈물을 머금고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독립하면서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정 회장은 일반인에게 ‘뚝심 경영인’과 ‘보스형 경영인’으로 각인됐다. 회사 임직원들은 초기의 정 회장을 ‘보스형 오너’로 불렀다. 임직원에 대한 장악력과 통솔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년 전 미국에서 시작한 ‘10년, 10만마일 무상 보증수리’의 경우 회사 내부에서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정 회장은 초강수를 두었고 결국 오늘날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0년대엔 일관제철소 사업 진출을 시도했으나 정부와 갈등을 빚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INI스틸을 통해 한보철강 당진공장 인수를 성공시키고, 이곳에 일관제철소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보다 더 일찍 일어나고 더 많은 곳을 다니고 더 깊은 생각을 하자고 그는 결심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외환위기 직후 적자였던 현대차를 맡은 지 1년 만에 4000억원대 흑자를 기록했고, 해마다 기록을 경신했다. 환차익(換差益)을 감안해도 대단한 수치다.
현대차는 2004년 국내외에 167만7818대를 팔아 1조7846억원에 이르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4년 연속 순이익 1조원을 넘어섰고 조만간 순이익 2조원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기아차도 2005년 3월 수출 500만대 기록을 달성하는 등 현대차에 못지않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결과가 나오자 그룹 안팎에서는 정 회장을 ‘전략가형 CEO’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부하를 몰아붙이는 데서 벗어나 장기 비전을 세우고 향후 이슈를 예측하여 이를 추진력있게 실행하는 스타일로 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대차 측은 “품질경영, 현장경영, 뚝심경영 등 세 가지가 정몽구 회장의 경영철학 요체”라고 말한다. 정 회장은 이를 통해 ‘지옥의 카레이스보다도 더 치열하다’는 자동차 산업에서 세계 톱5로의 진입 가능성을 노크하고 있다.
품질에 진짜 목숨을 걸었다
현대차는 1986년 4995달러짜리 엑셀 승용차를 가지고 최초로 미국에 진출했다. 미국 소비자는 싼 맛에 끌려 현대차를 많이 샀지만 금방 품질이 들통났다. 판매는 하향곡선을 그었고 현대차는 미국인의 조롱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 현대차는 미국에서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올 4월엔 미국 컨슈머리포트지(誌)가 쏘나타를 ‘가장 신뢰할 만한 차’로 선정했다. 타임(TIME)은 4월 25일자에서 “정몽구 회장이 철저한 품질경영을 통해 과거 영욕의 현대차를 글로벌 성공 메이커로 변신시킴으로써 세계 자동차업계 역사상 가장 놀라운 기적을 이루었다”고 칭찬했다.
올 1월 비즈니스위크도 정 회장을 자동차 부문 최고 CEO로 선정하면서 “정 회장은 1999년 현대차를 맡으면서 품질을 최우선에 두는 경영을 시작, 회사를 바꾸어 놓았다”고 보도했다.
모두 정 회장이 광적으로 품질경영에 집착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품질’이란 단어는 선대(先代) 때는 그렇게 강조하지 않던 단어였다.
정 회장은 과거 수년간 현대자동차써비스를 맡아보면서 품질 문제가 회사의 가장 큰 걸림돌임을 발견했다. 그는 5년 전 현대차 품질본부 서병기 사장의 방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리고 “품질은 우리 생존의 핵심이다. 얼마의 비용이 들든 간에 품질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정 회장의 지시는 단호했지만 현장 직원에게까지 전달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빨리, 값싸게 만드는 습관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 회장은 직접 공장의 세세한 부분까지 품질을 직접 체크했다.
2002년 8월에는 기아 오피러스 수출차량을 직접 시험주행하다가 전문가도 찾기 힘든 미세한 소음을 발견하여 선적을 40여일 미루며 즉각 저소음 엔진으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 당시 남양연구소의 한 간부는 “그렇게 하면 손실이 매우 크다”고 보고했으나 정 회장은 “품질 때문이라면 상관없다”고 반박했다.
현재 정 회장의 지시에 따라 서울 양재동의 현대-기아차 사옥 1층은 3개의 품질 관련 공간(품질상황실, 품질회의실, 품질확보실)이 차지하고 있다. 정 회장은 “우리 차가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멈춰 서있는 것을 상상해봤느냐”면서 품질상황실의 설치 이유를 설명했다.
24시간 가동되는 품질상황실은 해외판매망으로부터 제기되는 하자(瑕疵)를 실시간으로 체크한 뒤 연구개발부서에 자료를 넘긴다. 관련 임원은 물론, 정 회장에게도 밤새 발생한 하자가 실시간으로 보고된다.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은 “직원 사이에 ‘정몽구 회장은 품질본부장’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말했다.
수년 전 현대차에서는 해외시장 전략을 놓고 여러 의견이 나왔다. 그 중엔 ‘렉서스’ 같은 고급 브랜드를 만들어 회사 이미지를 한 단계 상승시키자는 안도 있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품질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추진하면 도리어 이미지가 실추될 수 있다”면서 ‘선(先)품질향상’을 강조했다. 최고급 브랜드의 유혹을 물리친 정 회장의 결단은 현재까지 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진정한 현장경영은 발로 뛰는 것
기자가 알기로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현장경영을 하는 재벌총수는 거의 없다. 정몽구 회장은 예외적인 사례 중 하나다. 현장에서 보고 배우고, 현장에서 느끼고, 현장에서 해결한 뒤 확인까지 한다는 ‘삼현주의(三現主義)’는 정 회장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1998년 외환위기를 불러온 부실기업 기아를 빠르게 정상화시킨 것도 그의 현장경영 덕분이라고 한다.
기아차를 인수한 초기에 정 회장은 한 달에 한 번꼴로 화성을 비롯해 광주, 소하리에 있는 기아차 공장을 찾아가 직접 현장을 점검했다. 피(被)인수기업으로서 인수기업 총수의 방문이 힘이 됐을 것은 분명하다. 그는 엔진공장, 주물공장, 보일러 배관실 등 구석구석을 샅샅이 점검했다.
그의 현장경영 철학에는 배경이 있다.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대건설과 현대자동차를 거친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의 지시로 현대자동차의 애프터서비스(AS) 전담회사인 현대자동차써비스를 맡는다.
당시 포드와 손을 잡은 현대차는 포드로부터 자재가 적기에 조달되지 않아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이를 타개하려고 임직원과 함께 자동차 부품을 싣고 전국 순회서비스를 직접 다녔고,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정비차량이 개천에 빠져 낭패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현장을 누비면서 고객 불만을 직접 접했던 경험이 지금의 ‘현장경영’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현장경영을 하려면 무엇보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매일 오전 6시30분 이전에 출근해 관련 임원을 불러 밤새 고민한 주제를 일러주고 토론한다. 회장의 생각을 임원들이 따라가기가 벅찰 만하다.
그의 좌우명은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다.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 정주영 회장에게 써주었던 휘호이기도 하다.
그의 현장경영 습관 덕분에 해외 생산거점도 신속하게 구축됐다. 현대차는 5월 20일 준공식을 거행한 미국 앨라배마공장을 비롯, 슬로바키아공장, 중국공장 등 해외거점에 자동차 생산기지를 착착 구축시키고 있다.
정 회장은 인구 25만명의 앨라배마주 소도시 몽고메리를 가로지르는 65번 고속도로에 한글로 적힌 ‘현대자동차를 환영합니다’라는 안내판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고 한다.
수입 구두 신어본 적 없어
경복고 출신인 정몽구 회장은 운동을 좋아해서 학창시절 럭비부 주장을 맡았다. 그는 “럭비에서 팀워크 정신을 배웠다”고 사석에서 자주 말한다.
듬직하고 의협심이 강했던 정 회장 주변에는 항상 친구가 따랐으며, 지금까지도 그런 유대는 지속되고 있다. 정 회장은 당시 교내 깡패를 혼내주기도 했다. 그의 고교동기인 손병두 전(前) 전경련 부회장은 “몽구가 ‘공부 잘하는 병두 건드리지 마라’며 교내 불량배를 혼내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사람과 함께 있기를 원하고 사람을 거느리고 부리는 데 익숙하다. 현대자동차써비스를 맡았을 때였다. 집이 멀었던 그는 회사 인근의 친구 아파트에서 잠을 자며 감색 점퍼와 군화 차림으로 늘 현장을 지켰다.
밤이면 공장 한편에 드럼통을 놓고 소주와 삼겹살을 수리공들과 나눠 먹으며 동고동락했다. 서울 원효로 3가 정비공장 앞 수퍼에서 작업을 마친 정비공들과 소주를 자주 마셨는데, 당시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을 지금도 기억하여 안부를 묻는다.
정 회장은 직원과의 팀워크를 잘 만들어나간 덕분에 1977년에는 현대정공을 설립, 국내 레저용 차량의 새 장을 연 갤로퍼라는 히트작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현대·기아차 신입사원 수련회에 2001년부터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재벌 오너 총수가 매년 신입사원을 직접 대하며 기업비전을 제시하고 격려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정 회장이 사람을 모으는 비결 중 하나는 소탈함과 검소함에 있다. 물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풍이다. 즐겨 신는 신발은 오래된 국산 금강제화다. 외제 브랜드는 신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음식도 설렁탕과 불고기, 삼계탕 등을 좋아한다.
자동차 내수부진·노사분규 등이 과제
정몽구 회장의 앞에는 해결해야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 우선 자동차 내수시장이 계속 부진하다. 세계시장에서는 이제부터 강력한 견제를 받게 됐다.
점점 줄어드는 마진도 또다른 문제점이다. 환율 문제 등으로 2005년 1분기 영업이익은 30.1%나 줄었다.
단골로 터지는 노사분규, 오너 일가와 측근 핵심인력 중심의 의사결정, 다른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방적이지 못한 이사회 운영 등에 대한 비판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새로 진출한 일관제철소 사업은 조만간 중국의 본격적인 철강공급으로 국내에서 심각한 공급과잉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삼성의 이재용 상무 케이스와는 달리, 정 회장은 아직 아들인 정의선(鄭義宣) 기아차 사장에 대한 지분승계를 순조롭게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계열사인 엠코와 글로비스 등을 활용하려고 하지만 감시의 눈길이 워낙 많다.
현대차의 성장은 그야말로 이제 시작이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아직은 세계 7위에 머무를 뿐이다. 2010년의 세계 5위 달성은 그리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과연 정 회장의 리더십은 이 모든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이 미래 인재경영을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미래인재경영
정몽구 회장은 25일 제주 해비치 리조트에서 열린 '2004년 현대·기아차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에 참석, CEO 특강을 가진 자리에서 '글로벌 기업인의 자세'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정 회장은 특강에서 "현대·기아차 신입사원은 ▲투명하고 공정한 일처리로 신뢰받는 인재 ▲전문능력 배양과 상호간 협조 ▲도전과 개척의 벤처정신 ▲현대·기아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사명감 ▲차세대 자동차 산업의 주역 역할 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바탕으로 선배직원들이 노력한 결과 현대·기아차는 획기적 품질향상, 비약적 수출확대, 해외시장에서의 성공경영 등을 이루어 낼 수 있었고 현재 세계7위의 자동차회사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이와 함께 "경기 침체 속에서도 현대·기아차는 정상적인 경영활동으로 고용안정을 유지하고 있고,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졌다"며 "향후 국민소득 2만달러 국가가 되는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회장은 그러나 "그동안의 눈부신 성장에도 불구하고 선진업체와의 기술격차, 아직은 약한 브랜드 이미지 등 분발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차세대 자동차산업 주역으로서 이러한 과제들을 극복해 세계 초일류 자동차회사를 만드는 주역이 되고, 그에 손색없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정몽구 회장의 경영스타일
의사결정이 매우 빠르다.
경쟁업체들 은 현대자동차의 빠른 의사결정을 높게 평가한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충 분한 검토 없이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몽구 회장 개인의 경쟁력
매경이코노미는 ‘ CEO 경쟁력’ 평가를 위해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 김성수 경희대 교수, 김태현 연세대 교수, 이항구 산업연구원 팀장, 주우진 서울대
교수(가나다 순) 등 5명 이 참여하는 평가단을 구성했다.
평가위원들은 전략 및 비전수립능력, 업무추진능력, 이해관계자와의 조정능력, 윤리경영 및 투명경영, 경영권 안정 등 5가지 기준으로 ‘CEO’경쟁력을 평가 했다.
현대차 그룹현황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요즘 '엔도르핀'에 충만해 있다.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실천해 온 '월드 베스트 전략'을 열매맺는 시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정몽구 회장은 올해 '중간 시장을 공략하는 그저그런 자동차 메이커'라는 딱지를 완전히 벗어던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실천 경영, 모범 경영을 몸소 실행하는 등 절치부심한 결과 현대차를 한차원 높은 경지로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여전히 정몽구 회장의 경영을 두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어눌하다', '2%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차 내부 평가는 사뭇 다르다. '총수'로서 정몽구 회장은 비전, 꿈을 전파하며 미래 경쟁력 확보를 채찍질하는 '승부사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미래 비전은 곧 현대차 미래라는 점에 이견은 없다. 정 회장은 미래에 대한 비전과 확신을 약간은 툰탁하게 느껴지는 언행 속에 감출 줄 아는 진정한 '고수'라는 평가다.
정 회장은 그 자신의 '인생 로드맵'과 '현대차그룹의 발전'을 동일시하고 있다. 그는 '일이 곧 내 인생'이라는 구세대(?)에 속해 있지만 그와 현대차의 향후 업적은 새로운 경지를 펼치려 한다.
정 회장의 경영철학
정몽구 회장은 그룹 '총수'다. 과거 총수는 그 자리에 있는 것만을 대접받았다. 그가 하는 말 한마디는 모든 것을 매듭짓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변했다. 확실한 비전, 실현가능한 과제, 전체 그룹을 슬기롭게 이끄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정몽구 회장은 실천을 중시한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지론과 경영철학을 이어받아 현장 제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정 회장은 말로 하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실천하고 보여주는 '행동인'을 원하고 있고 스스로 그 같은 면모를 보이고 있다. 2001년. '품질 지상주의'를 표방한 정몽구 회장의 실천력은 그룹 전반에 강력한 파장을 일으켰다.
정몽구 회장은 결단력에서도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10년 10만마일 보증제도'를 도입한 것이나 그룹 안팎의 우려를 잠재우며 과감히 중국 현지 투자에 나선 것은 정 회장의 '의지'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고 현대차 관계자는 말한다.
정 회장은 2001년 이후 국내 공장을 비롯해 미국 인도 중국 등 해외 생산거점을 직접 돌며 직원들을 두루 격려하고 있다. 일일히 사소한 문제까지 직접 챙기며 '애정어린'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그를 바라보는 현대차 직원들의 시선은 따사롭다. 다른 그룹 총수들로서는 부러울 법하다. "단순히 그룹 2세라는 지위로 평가할 수 없다. 정몽구 회장은 그룹 창업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직접적인 개입을 최소화하되 일단 개입하면 '신속, 과감, 결단'을 요구한다. 정몽구 회장이란 존재 자체가 그룹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현대차 고위 임원)
2004년=현대차, 환골탈태의 해
현대차는 이달 '쏘나타(프로젝트명 NF)' 출시를 시작으로 잇달아 세계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 차종을 쏟아낼 계획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 유수 자동차 메이커들도 현대차와 정몽구 회장의 변신에 놀라워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2001년 '품질 경영'을 최대 화두로 제시했다. 1999년 이후 옛 현대그룹을 휩쓸었던 '왕자의 난'을 겪은 뒤 정 회장이 제시한 화두는 '월드 베스트 카를 만들자'였다. 자동차 전문그룹으로 거듭나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자는 비전이었다.
시장에서는 여전히 '정몽구 회장을 정점으로 한 현대자동차 과연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을까'하는 물음이 팽배해 있다. 그러나 현대차 관계자가 던지고 있는 답변은 자긍심으로 충만해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휴대폰,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 부문에서 세계 1위 업체로 우뚝 선 것도 몇 년 되지 않았다. 현대차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만년 하위 메이커가 될 것이라고 다른 업체들은 우리를 얕잡아 보지만, 이제 목격하게 될 것이다. 현대차는 새로운 미래를 써 나갈 것이다. 월드 베스트는 가까운 미래다."
정몽구 회장. 그와 현대차그룹의 행보가 한국 기업사에 새로운 장을 펼쳐 나갈 지 예의주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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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웰치의 리더십
잭 웰치는 미국에서 가장 무자비한 경영자로 불렸던 사람이다.
1981년 그가 GE의 CEO자리를 인계받았을때
GE의 시장 총가치는 130억 달러였다.
웰치 회장은 미국기업 역사상 최고의 CEO로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영자로, 전반기는 GM의 슬로언 회장, 후반기는 GE의 웰치 회장
- 포천誌는 웰치 회장을 「월스트리트의 마이클 조던」으로 칭송
웰치 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이는 GE가 지난 20년간 탁월한 성과를 올렸기 때문
- 매출은 1981년 270억 달러에서 2000년 1,290억 달러(4.7배)로, 순이익은 15억 달러에서 127억 달러(8.4배)로 증가
·자본 수익률이 20% 수준을 기록하여 미국 평균 12%를 훨씬 초과
- GE를 시장가치 5,300억 달러(41배)의 기업으로 만들었고, 자신의 연봉 역시 9,400만 달러(스톡옵션 포함)로 업계 최고수준 유지
- 미국 포천誌와 파이낸셜 타임스는 3년 연속(98~2000) GE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
그가 20년간 GE의 CEO로 근무하면서 GE를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키워낸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1. 만약 그 일을 전부터 하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 했겠는가?
언제나 현재를 판단할 때 냉정함을 잃지 않았던 잭 웰치,
그가 지난 20년간 가장 경계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만약, 그 일을 전부터 하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 했겠는가?'
그것은 곧,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혹은 업무가 전부터 해 왔던 일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비전은 생각지도 못한채 "그냥" 답습하는 상태는 아닌가 점검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혹시라도 진지한 고민없이 계속 일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지어 과거나 혹은 인정에 얽매여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2. 1등과 2등이 아니면 버려라
고쳐라! 매각하라! 폐쇄하라!
잭 웰치는 시장 점유율에서 1등이나 2등을 차지하지 못하면 그 사업을 가차없이 정리했다.
1등과 2등...누군가는 결과지상주의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잭 웰치는 1등이나 2등이 된다는 것은 하나의 목표이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필수조건이라 믿었다.
때문에 자신들의 주력분야에 힘을 쏟고, 주력분야가 아닌 것은
그 일을 1등으로 하는 전문회사에 아웃소싱을 맡겼다.
결국 1등을 하기 위해선 가능성 있는 것만을 골라내는 뼈아픈 선택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그 선택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당신은 조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인가?
잭 웰치는 직원들을 상중하로 나누었다.
상위 20%와 중간의 70%, 그리고 하위 10%...
하위 10%로 분류되는 사람은 GE를 떠나야 했다.
모두들 잭 웰치의 이런 전략을 비난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하위 10%에 속하는 직원은 회사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해 이런 평가를 통해 끊임없이 하위 10%를 가려내, GE 직원들의 경쟁력을 높여 나갔다.
4. 차별하라!
하위 10%의 해고가 현실이었던 것처럼, 상위 20%에게 주어진 엄청난 혜택도 현실이었다. 상위 20%는 중위 70%에 비해, 두배, 심지어 세배 이상의 급료를 받았던 것이다. 또한 엄청난 스톡옵션과 승진기회 역시도 상위 20%만 받을 자격이 있었다. 차별화 전략은, GE직원들의 분발에 확실한 동기부여를 해주었고, GE를 일할맛 나는 회사로 만들어주었다. 누구나 상위 20%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자가 발전의 집단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5. 열정없는 당신, 떠나라!
GE에서 하위 10%로 분류되었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일 자체가 본인의 적성에 맞지도 않았고,
그래서 일을 즐기지도 못한 채 마지 못해 억지로 해왔다는 것이다.
지금 혹시 나의 업무가 재미있지 않다고, 일이니까 그냥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도 위험수위에 올라 있다.
잭 웰치는 그런 사람을 가차없이 해고해 왔다.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을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함께 갈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잭 웰치는 어떤 능력보다, 또 어떤 기술보다 우선하는 것은 열정이라고 말했다. 열정없는 존재는 필요치 않다는 것이 잭 웰치의 기준이었다.
6. 항상 점검하라! 항상 체크하라
잭 웰치는 직원들에게 항상 높은 목표치를 던져 주었고, 직원들은 그 목표치를 어김없이 해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항상 점검하고, 항상 체크하라!
잭 웰치는 직원들의 목표에 끊임없는 관심을 표명했고,
단지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속에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끔
일일이 커뮤니케이션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해왔다.
심지어 그는 틈이 날 때마다 직원들과 쪽지를 주고받으며
일의 진척사항에 대해 얘기를 나누곤 했던 것이다.
말단 사원 한 명에게 주어진 업무조차도 잭 웰치는 절대 방관하지 않았다.
7. 배워라! 10년을 5년으로 단축시키는 방법
GE를 다른 기업과 차별화시켜 주는 핵심가치는 바로 "배운다"이다.
"모토롤라가 10년 걸려 이룩한 것이라면 우리는 5년 이내에 이룩해야만 한다, 대신 우리는 다른 회사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배울 것이다"
GE의 방식은 늘 이렇다. 그들이 배워야 하는 대상과 목표가 정해지면,
아마추어 대학생이든, 창업을 한지 1년이 채 안되는 중소기업이든,
그것이 누구고, 어디든간에 달려가 배웠다.
바로 그런 점이 GE의 저력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배워야 할 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 해도, 그들이 최강의 기업이 되기 위해 필요한 어떤 것도 사소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배우기 위해 GE는 많은 것을 버렸다.
그것은 절차와 형식, 그리고 관료주의이다.
8. 절차와 형식, 관료주의에 굴복하지 마라
잭 웰치가 처음 GE의 CEO로 부임했을 때, 그가 가장 답답했던 것이 있다. 그가 결재를 하기 위해선, 말단직원부터 회장인 잭 웰치한테 오기까지 총 12단계를 거쳐야 했다.
잭 웰치에겐 그것은 쓸데없는 낭비였다.
결재를 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여러 단계의 인력들도 낭비였고,
여러번의 결재는 또한, 신속한 일의 진행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년 후, 지금 GE의 보고 과정은 12단계에서 6단계로 대폭 줄었다.
"쓸데없는 보고서가 아니라면 훨씬 더 창의적일 수 있다!"
잭 웰치는 누누이 강조했다.
절차와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의적인 아이디어!
형식적인 보고서로 시간을 보내고, 인력을 낭비하기보다는
차라리 낙서처럼 갈겨쓴 아이디어 쪽지가 더 효율적이라고...
그 자신 또한 보고서를 기다리기보다는,
틈이 날 때마다 임직원들과 노트 한켠을 찢은 작은 메모 한 장으로
의견을 나누었으며, 절차와 형식의 파괴를 몸소 실천했다.
9. 필요하면 될 때까지 했다!
"Boudaryless"
이 단어는 미국인들도 발음하기 힘들어 자주 틀리는 단어라고 한다.
잭 웰치는 GE의 직원들 앞에서 이 "Boundaryless"를 말하다 발음이 안돼 더듬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회장이 수많은 직원들 앞에서 발음을 틀려 가면서도 수십번, 수백번 이 말을 강조한 이유는
"Boundaryless" 벽없는 문화를 강조하고 싶어서였다.
이렇듯 잭 웰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체면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될 때까지 반복하는 집요함을 보였다.
한번도 그 정도면 됐다고 대충 넘겨본 적이 없는 그의 열정 때문이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이 정도면 됐다! 혹은 대충대충 하자!"
잭 웰치가 우리의 이 말을 들었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10. 유리를 깨뜨려 줄 사람이 필요하다 (변화)
"우리는 유리를 깨뜨려 줄 사람이 필요하다... GE는 반드시 변화할 것이다"
잭 웰치는 기업의 발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변화'라고 했다.
그래서 항상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 바로 '유리를 깨뜨리는 사람'을 갈망해 왔던 것이다.
잭 웰치 또한 GE에서 그 자신도 유리를 깨뜨린 사람으로 기록되어 왔다. GE에 불어오는 변화의 새바람을 막지 않았고, 그것이 옳다면 언제든지 환영했던 잭 웰치,
그의 말대로 변화의 물결을 타지 못했다면 GE는 그저 과거의 거대한 기업으로 막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이제 변화는 21세기를 열어나가는 최대 화두 중 하나이다.
누가 먼저 변화의 흐름을 탈 것인가!
누군가의 시도에 그저 팔짱을 끼고 구경하거나,
해봤자 안된다는 패배의식으로 전체의 변화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내가 아니었나를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지도자들이 해야할 일
1. 축하하는 행사를 많이 만들어라.
=파티 너무 많이 하면 회사가 너무 노는 분위기로 가서 안좋을 거 같다고요? 아닙니다. 축하할 일 있거들랑 많이 많이 하십시오. 그거야말로 공을 인정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이겼는데, 성공했는데, 그게 소소한 일이라고 무시하고 지나간다고요? 저런... 기뻐할 기회를 마구 갖다 버리시는군요. 리더가 이걸 안해주면 아무도 안합니다. 좋은 일 하고도, 축하할 일 두고도, 썰렁하게 지나가면 안되지요.
2. 부하직원들이 모험을 할 수 있게 하라.
너무나 많은 경영자들이 직원들에게 새로운 일을 하라고 부추기다가도, 막상 시도해서 실패하고 나면 '작살'을 냅니다.
혁신과 실험을 원하거든 모범을 보이세요. 지도자가 과감하게 뭘 해보려다 실수할 수도 있지요. 실수했다구요? 구구절절 이유 설명하고 설교하실 필요 없습니다. 유머 좀 섞어서 가볍게 지나가세요. 그러면 직원들이 실수 한번 했다고 인생 끝나는 거 아니구나 하는 거 눈으로 보고 배우지요. 그럼 되는 겁니다.
또 한 가지, 그 조직 내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은 절대 아니라는 거 명심하십시요.
3. 질문을 많이 하십시요.
리더란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회의시간에 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인양 직원들에게 물어보세요. "만일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하지?" "왜 안될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렇다고 묻기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리더란 자신이 제기한 의문들이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이슈를 만들고 나아가 행동으로 이어지는가를 확인해야지요.
4. 배짱과 감으로 밀고 나갈 줄 알아야지요.
지도자란 인기 테스트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끌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미 '리더'인데, 자꾸 그 자리에 출마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인기에 연연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보세요. 이미 뽑혔다구요.
5.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솔직하세요.
보통사람들이란 당연히 나쁜 소식을 전하는 악역을 맡기 싫어하지요. 다음달에 직원 반 자를 거야, 이런 말 하기 어렵지요. 그래도 솔직하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비즈니스가 잘 안되면 안된다고, ... 지도자란 일이 잘못되면 책임을 지고, 일이 잘되면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넘겨주는 사람들이랍니다.
6. 상사와 부하직원도 결국 유유상종이랍니다.
낙관적인 전망을 갖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지도자들 밑에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다네요. 또 그 팀 전체가 그런 분위기가 되고요. 불행한 팀이 승리하기는 어렵답니다. 그렇겠지요. 지도자나 부하직원이나 맨날 심란한 얼굴로 징징 울고 다니면 뭐가 되겠습니까? 결국 지도자의 일이란 부정적 사고와 싸우는 것이 아닐까요?
7. '비전'은 그냥 보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먹는 거냐. 물론 그것도 아니지요. 숨쉬고 더불어 살아가는 거랍니다. 비전을 말할 때는 이상하고 애매한 표현 쓰지 말랍니다. 직원들 헷갈려요. 과녁이 흐릿하면 맞추기 어렵지요? 회사가 직원들에게 어떤 보상을 해줄 것인지 정확하게 밝히세요. 그걸 선명하게 알면 직원들이 변합니다.
8. 최고의 선수를 만들어내라.
운동경기에서 뛰어난 선수가 많은 팀이 이길 가능성이 높지요. 네,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도자는 '우수 선수' 양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베스트 플레이어는 어떻게 만드느냐?
첫째 평가를 잘해야지요. 그 자리에 제대로 된 사람 데려다 일 시키고 있느냐.
둘째 유능한 코치여야 합니다. 지침을 제시하고 비판하고 도와서 선수가 실력을 증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셋째 지도자 자신이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감이 있어야 남을 인정하고 격려하고 신경쓰는 여유도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감있는 지도자와 함께 일할 때 직원들은 기꺼이 위험부담을 질 용기를 내고 꿈을 넘어서고, 별거 별거 다 하게 된다는 거 아닙니까. 여하간에, 이게 성공하는 팀의 '연료'와 같은 거랍니다.
"지도자가 되기 전에는, 당신에게 성공이란 오로지 당신 '자신의 성장'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된 당신에게 성공이란 '다른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잭 웰치
많은 수의 기업들이 리더십 개발에 실패하는 이유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이다.
첫째, 의도만 있고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지 않는 경우이다. 실질적인 행동이 없으면 리더는 저절로 길러지지 않는다.
둘째, 말로만 리더십을 강조할 뿐, 실제로 새로운 발상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처벌함으로써 좌절시키고 마는 경우이다. GM이나 DEC, 웨스팅 하우스 등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추진하던 리더가 기존 이사회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중도에 퇴진당하고 만 사례가 있다.
셋째, 막대한 자원과 시간을 투입하지만 컨설턴트나 학자에게서 배운, 말만 잘하는 관리자만 양성하는 경우이다. 진정으로 필요한 리더십 양성은 이론이나 포장에 의해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고 현장에서의 실제 행동에 의해서만 달성된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두고 볼 때에, 기업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재의 육성이며 그 중에서 리더십의 양성이라 할 수 있다. 크로톤빌에서는 매년 약 1만명의 GE 직원들이 리더십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데, 약 10억 달러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잭 웰치는 직접 크로톤빌의 교육 현황을 보고 받고 연수 프로그램 개발에 관여하며 직접 강사로도 참여하고 있다. 리더 육성 프로그램에 최고 경영자가 이 정도까지 관심을 가지고 헌신하는 예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GE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잭 웰치는 GE의 전 구성원이 심득해야 할 GE의 Value 를 설정하고 이를 공유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고 전세계 GE 직원들이 항상 가지고 다니는 GE Value 라는 한 장의 카드를 통해 GE가 추구하는 이념을 살펴볼 수 있다. GE가치를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GE의 리더들은 항상 정직하고 성실함을 추구한다.
둘째, 분명하고 단순하고 현실에 기반을 두며 고객 중심적인 비전을 창조하며 이 비전을 솔직하게 모든 사람들과 공유한다.
셋째, 공격적인 목표를 세우고 과정을 분명히 인식하며 책임감과 열의를 가진다.
넷째, 우수함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글로벌리즘을 이해하며 다양한 구성원의 글로벌 팀을 구성한다.
다섯째, 스스로를 추동(推動)하는 에너지와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며 이끌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변화를 추구한다. 또한 변화를 위협이 아니라 항상 기회로 본다.
여섯째, 경쟁 우위 확보를 위해 질과 비용, 스피드를 추구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GE는 리더들이 이런 GE가치를 철저히 숙지하고 실천하도록 훈련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이런 훈련이야말로 크로톤빌이 존재하는 목적이다. 또한 "GE가치들을 얼마나 잘 구현하는가" 가 전 직원의 승진을 결정하는 최고의 기준이 되고 있다. GE 인사부는 상사와의 면담과 부서, 사업부문별 토의를 통해 각 직원들을 평가하는데, 이 평가의 두 가지 기준은 업무 실적과 GE가치의 실천 정도이다. 잭 웰치는 '아무리 업무 성과가 좋아도 GE가치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도 없다'고 까지 말한다. 기업의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전 직원이 공유하는 가치가 있어야 하며 이 가치에 기반해 리더들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GE의 리더육성책에서 또 다른 특징은 외부의 우수한 인재를 스카우트하는 데 적극적이란 점인데, GE는 사내 직원들이 차근차근 승진해 올라가는 것 못지 않게 외부의 우수 인력을 스카우트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외부 인력을 적극적으로 발탁하는 개방성을 통해 조직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것이 GE의 정책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부 인력들도 예외 없이 GE가치를 익혀야 하며 이 가치 공유를 통해 GE의 리더로서 자격이 되는 지를 평가받게 된다. 결국 GE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중의 하나는 우수한 리더들 육성에 아낌없이 투자한다는 점이며 이런 리더육성책의 중심에는 GE가치가 놓여있는 것이다.
잭웰치의 인재 고르기
좋은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어렵다.
위대한 직원을 고용하는 것은 훨씬 더 힘들다. 그러나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고 그들이 성공하고 성취하고 앞으로 나가도록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우수한 직원을 확보하기 위해선 채용 시 다음 세가지 덕목을 체크해야 한다.
첫째, 정직 순수(Integrity)다. 순수한 사람은 진실을 말하고 자기가 한 말을 지킨다. 둘째 관문은 지적능력(Intelligence)이다. 복잡한 현실 세계에서 똑똑한 사람들과 같이, 또는 그들을 이끌어갈 만한 폭 넓은 지식과 풍부한 지적 호기심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스트레스나 일시적 부진을 잘 콘트롤하고 성공을 즐기면서도 겸손할줄 아는 성숙함(Maturity)이다.
그런 연후에 4-E 1-P를 적용한다.
첫번째 E는 긍정적 에너지(Energy)다. 어떤 역경과 난관도 돌파하고 마침내 변화와 성취를 이뤄내는 마그마같은 꿈틀거림이 있어야 한다.
두번째는 다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나눠줘 더불어 에너제틱하게 만들고(Energize) 영감을 불어넣어주어 불가능도 가능케 해내는 능력이다.
세째는 예스냐 노냐 양자택일의 결단을 내릴 예리한(Edge) 용기, 네번째 E는 실행력(Execute), 즉 주어진 업무를 완성하는 능력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P, 열정(Passion), 가슴 속 깊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일을 하는지를 본다.
끊임없이 평가 지도하고 자신감을 쌓게 하라.
CEO의 비전을 부하들이 보고 체감하고 호흡하게 하라. 일선 직원들까지 비전을 공유하게 하라. 급여든 보너스든 보상책을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리더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낙관적인 생각이 전 직원의 피부 속까지 침투하도록 해야 한다. 긍정적이고 쾌활한 리더의 조직엔 긍정적이고 쾌활한 사람들이 가득 차고, 침울한 사람은 비슷한 무리에 둘러 싸인다.
솔직함과 투명함, 신용을 통해 신뢰를 확립하라. 해고 통보등 나쁜 소식을 전해야 할때도 얼버무려서는 안된다.
인기 없는 결정을 내리는 용기와 뱃심있는 결단력을 가지라. 리더는 인기 대회 출전자가 아니다.
리더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고 의문은 반드시 행동으로 답하게 하라. 만약..이라면, 왜, 어떻게를 끊임없이 던져라.
리스크 테이킹을 하고 학습도 먼저 실천, 모범이 되라.
월드시리즈에 우승하고도 샴페인 터트리지 않는 팀을 상상해보라.축하하라.축하는 긍정적인 에너지의 분위기를 만든다.
나는 종종 리더는 타고 나느냐 아니면 만들어지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답은 물론 둘다다. IQ나 에너지같은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자기확신같이 살아가면서....
웰치가 이런 말을 했군요.
"당신이 지도자가 되기 전에는,
성공이란 오로지 당신 자신의 성장을 의미했다.
그러나 지도자가 되었을 때,
이제 당신에게 성공이란
다른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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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의 리더십[Gus Hiddink]
TV시청률에서도 알 수 있듯이 히딩크의 등장은 축구에 대한 인식과 재미 를 한 차원 높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스타탄생이다. 축구 대표팀 내부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선수들간에 경쟁 심이 높아지고 훈련 분위기가 진지해졌다. 무엇보다도 선수들이 '열심히 뛰면 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생각하는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러한 히딩크식 축구가 과연 성공을 거둘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고질병을 앓고 있는 한국축구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 으며 설혹 그의 실험이 실패하더라도 비싼 돈이 아깝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정신력 강조하는 ‘심리전 리더십’
거스 히딩크 감독은 심리전(心理戰)의 대가이자 스포츠계에서의 리더십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표상이다.
히딩크 감독이 이뤄낸 두 차례의 월드컵 4강 진출과 한 차례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 그리고 한 차례의 4강 진출은 모두 자신이 이끄는 선수들의 정신력과 심리적인 일치단결을 탁월한 용병술을 통해 100%까지 이끌어 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세계 축구의 변방인 한국 대표팀을 이끌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일궈낸 것과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에서 유럽 톱클래스의 선수 한 명 없이 이룬 챔피언스리그 우승(1987~1988 시즌), 그리고 올 시즌 4강 진출은 히딩크 감독의 지도력을 빼고서는 모두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다.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자신이 이끄는 팀 선수들의 심리상태를 장악하고 확실한 동기부여를 통해 자신감과 성취욕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또 프로스포츠와는 필연적인 관계인 언론 관계에 매우 능숙하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히딩크 감독이 팀 관리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팀의 대표적인 스타플레이어를 확실한 자신의 부하로 만드는 일이다. 팀의 대표격 선수를 굴복(?)시키면 팀 관리는 저절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의 ‘스타 길들이기’와 관련해서는 유명한 일화들이 있다.
‘선수 길들이기’의 달인
1980년대 말 PSV 에인트호벤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을 당시 히딩크 감독은 브라질의 떠오르는 스타였던 호마리우를 영입했다. 그러나 브라질 선수 대부분이 그렇듯 호마리우의 성격은 지나치게 자유로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PSV는 당시에도 경기 당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오전 10시에 팀 훈련을 시작하는데 호마리우는 매일 정확하게 10시에 맞춰서 클럽하우스에 나타나곤 했다. 10시가 훈련시작 시간이면 다른 선수들은 9시30분쯤 나와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훈련시작 10분 전에는 코칭스태프로부터 오늘의 훈련 내용을 듣는 등 준비를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호마리우는 언제나 딱 10시에 맞춰서 나타났고, 그래서 정작 훈련을 위해 그라운드에 나오는 것은 항상 다른 선수보다 늦었다. 더구나 코칭스태프로부터 훈련내용을 듣는 일은 거의 없었다.
상황이 이랬지만 10시를 넘기면 벌금을 내도록 팀 규칙이 정해져 있어 히딩크 감독으로서는 마땅히 질책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낸 꾀는 이랬다. 히딩크 감독은 “내일 10시에 경기와 관련한 팀 미팅을 할 예정이니 절대 늦지마라. 늦으면 평소의 벌금 두 배를 매기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히딩크 감독은 자신의 시계 바늘을 10분 앞당겨뒀다. 물론 다른 선수들은 평소처럼 30분 전부터 클럽하우스로 나왔지만 10시에 꼭 맞춰 나타나던 호마리우는 이날도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히딩크 감독은 작전대로 10시10분 전부터 회의를 시작했다. 팀 전원이 회의 중인 가운데 호마리우는 정확히 10시 클럽하우스의 문을 들어섰다. 그리고는 ‘정각에 나왔으니 아무 문제가 없지 않느냐’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곧 “왜 늦어놓고 아무 말도 없이 자리에 앉느냐. 팀 전원에 사과하고 벌금을 내라”는 히딩크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호마리우는 벽에 걸린 시계를 가리키며 “지금이 딱 10시인데 무슨 사과와 벌금이냐”고 항의했지만 히딩크 감독의 답변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내가 말한 10시는 지금 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의 시간으로 정한 것이다. 내 시계는 이 팀의 보스인 감독의 시계이고 지금은 10시10분이다. 억울하면 다른 팀을 알아봐라.”
호마리우는 잠시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벌금을 내고 사과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부터 그는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훈련시작 30분 전에 클럽하우스에 나왔다. 히딩크 감독은 원하는 것을 얻었다.
한국 대표팀을 맡았을 때 히딩크 감독의 선수 길들이기 대상은 안정환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팀을 맡은 지 1년이 지날 시점까지 이탈리아 세리에A 페루자에서 뛰고 있던 안정환을 거의 팀에 합류시키지 않았다. 이탈리아 리그의 일정과 대표팀의 소집일정이 잘 맞지 않았던 탓도 있었지만 당시 국내 유일의 빅리그(이탈리아, 잉글랜드, 스페인의 축구 리그의 규모와 수준이 세계 최고여서 통상적으로 쓰이는 말) 진출 선수인 안정환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감독의 지시사항이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투사로 만들 필요가 있었기에 의도적으로 배제한 측면도 있었다.
히딩크 감독의 노림수는 안정환이 주제로 오른 인터뷰마다 잘 드러났다. 그는 인터뷰 때마다 안정환이 페루자에서 베스트11에 들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며 “아무리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라도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다. 안정환의 기량이 뛰어날지는 모르나 팀에서 정기적으로 경기를 소화해야 베스트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으니 그때쯤 소집하겠다”고 말했다. 때로는 “안정환은 소속팀에서 베스트11으로 뛰지 못하므로 완전한 세리에A 선수가 아니다”는 극언(?)마저 서슴지 않았다.
히딩크 감독의 길들이기는 안정환이 대표팀에 합류한 시점에서 더욱 뚜렷해졌다. 파주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 나타난 안정환의 모습은 벤츠 SL600을 타고 매니지먼트사의 호위를 받는 등 그야말로 개선장군처럼 휘황찬란했다. 히딩크 감독은 이 장면을 2층 감독실에서 창문을 통해 모두 보고 있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안정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날 오후부터 시작된 훈련에서 안정환은 항상 비주전팀에만 기용됐다.
이런 히딩크 감독의 작전은 이전부터 언론을 통해 칼날처럼 날려댔던 독설과 함께 안정환의 승부욕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안정환은 부드러운 퍼머넌트가 들어간 최신 헤어스타일을 손질하지 않은 채 훈련에만 매달렸다. 항상 깔끔하기만 했던 얼굴도 면도를 하지 않아 꺼칠해졌다. 훈련에 나서는 그의 눈에는 전에 없는 독기가 넘쳐흘렀다. ‘이래도 나를 무시할 수 있느냐’는 무언의 시위가 묻어났다. 안정환이 이처럼 달라진 모습을 보이자 그와 포지션 경쟁을 벌어야 하는 다른 선수들도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대표팀 전체의 훈련 분위기는 한층 고조됐다. 히딩크 감독은 안정환을 ‘왕따’시키는 작전으로 자신이 원하는 팀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후에 “안정환의 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확신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정신상태를 좀 고쳐놓을 필요가 있었다”는 말로 자신이 심리전을 펼쳤음을 시인했다.
자신감 불어넣는 능력 뛰어나
그러나 히딩크 감독이 이처럼 선수들과의 신경전을 통해서만 팀 전력을 향상시켰다면 그를 리더십의 대가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능력에서 더욱 탁월하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 선수들은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 전날 밤 히딩크 감독의 방으로 한 명씩 불려갔다. 좀처럼 개인 미팅을 하지 않았던 히딩크 감독은 이 자리에 불려온 선수들에게 그동안의 체력측정 결과를 펼쳐 보여주며 “지난 5개월 동안 너의 체력이 향상된 것을 눈으로 확인해봐라. 나는 세계 최고의 팀이라는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감독을 했지만 지금 우리 팀의 체력 수준은 레알 마드리드 이상이다. 너도 그 중 하나다”라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리고는 “우리가 월드컵에서 맞붙을 선수들은 세계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지만 너의 실력도 절대 그들에 못지 않다. 나는 세계 최고 스타들을 직접 감독했던 사람이다. 누구보다도 그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팀이라면 그들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당시 대표팀의 맏형었던 홍명보는 “히딩크 감독과 미팅을 한 후 네 차례의 월드컵 출전 가운데 가장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다”고 말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홍명보의 마음을 말 몇 마디로 안정시킬 수 있었다면 다른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수퍼스타가 아니었던 박지성과 이영표를 PSV 에인트호벤으로 데려가 최고의 선수로 길러낸 부분에서는 선수의 성장 잠재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끝까지 최고의 선수로 키워내는 히딩크 감독의 능력을 알 수 있다. 박지성은 네덜란드 진출 이후 한 해 동안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월드컵과 소속팀을 오가며 2001년과 2002년 두해 동안 사흘 이상 쉬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혹사한 박지성은 오른 무릎 연골판의 일부분이 손상됐고 네덜란드 무대에 진출한 2004년 3월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이후 박지성은 부상회복에다 유럽 무대 적응기를 거치면서 홈팬까지도 야유를 할 정도로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였다.
이영표에 대해서도 비난이 일었다. PSV 에인트호벤의 왼쪽 사이드백으로 거의 전경기를 소화한 그였지만 네덜란드 무대에 데뷔한 첫 해에는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고 전술적인 움직임에서도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박지성과 이영표에 대한 신뢰에는 변함이 없었다. 네덜란드의 유명 축구평론가들이 잇달아 “한국 선수들을 데려온 것은 히딩크의 실수”라고 비아냥거렸지만 히딩크 감독은 이렇게 애제자들을 감쌌다. “박지성과 이영표는 현재로선 수퍼스타가 아니다. 수퍼스타를 영입하려 했으면 나는 그들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충분히 수퍼스타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선수고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 선수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히딩크 감독의 이같은 태도에 네덜란드 언론은 계속 물음표를 달았다. 하지만 올 시즌 코리안 듀오가 PSV 에인트호벤이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자 이들이 달았던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었다.
이달 초 AC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을 취재하기 위해 네덜란드에 머물 당시 현지의 유력 일간지인 데 텔레흐라프의 예룬 기자는 한국 선수들에 대해 이런 평가를 했다. “히딩크 감독이 ‘기다려보라’고 했음에도 한국 선수들이 성공하리라고 믿는 기자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말이 결론적으로 맞았다. 박지성과 이영표는 PSV 에인트호벤의 전력에서 필수불가결한 선수가 됐다. 이제는 팀이 그들과의 재계약을 위해 목을 매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짚기도
히딩크 감독 하면 또하나 떠오르는 것이 능숙한 언변이다. 역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가운데 최고의 인기를 누린 그는 오랜 지도자생활을 통해 신기에 가까운 언론 대처능력을 보였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를 너무도 적절히 구사하며 때로는 무시하고, 때로는 살갑게 대하며 매스 미디어가 원하는 바를 너무도 정확히 짚어냈다.
사상 최초의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룬 뒤 상대가 세계 최강 이탈리아로 결정되자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I’m still hungry)”라고 말해 한반도 전체를 감동시킨 데서 잘 보여주듯 히딩크 감독이 내뱉은 말 가운데는 그야말로 어록에 올려도 될 만한 것이 적지 않다. 당시 스포츠전문지에서는 히딩크 감독이 인터뷰 중 내뱉은 말을 따로 모아 특집판을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의 언론 대처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말만 번지르르해서가 아니었다. 자신과 자신이 이끄는 팀에 언론이 가장 호의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조절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를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히딩크 감독은 경기에서 패한 후 인터뷰장에 나타날 때 항상 미소와 농담을 잊지 않는다. 대부분의 축구 지도자들이 패한 후 실망스럽거나 패배의 책임을 통감하는 경직된 얼굴로 인터뷰에 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이 나오면 은근슬쩍 애교까지 부린다.
지난 5월 5일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진출이 좌절된 후 한국 취재진은 히딩크 감독의 ‘4강 징크스’에 대해 물었다. 두 차례의 월드컵과 한 차례의 챔피언스리그에서 준결승전에서 패해 결승에 오르지 못한 이유를 물은 것이다.
우승컵을 가슴에 품고 싶은 것은 모든 승부사의 열망인 만큼 히딩크 감독으로선 매우 뼈아플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일단 “나한테 그렇게 심하게 묻지 말아요”라고 우스꽝스런 포즈를 취해 예봉을 피해갔다. 그런 후 자신은 결승진출에 실패하기보다는 전력이 약한 팀을 이끌고 4강까지 올랐다는 점을 강조했다. 약점을 감추고 강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반면 경기에서 승리한 뒤에는 오히려 자신과 팀에 대해 엄격한 평가가 뒤따른다. ‘오늘 경기는 어떤 점이 부족했고, 이를 어떻게 고쳐나가겠다’는 식의 냉정한 평가도 내린다.
다만 자신의 팀에 대한 비판을 할 때도 히딩크 감독에게는 원칙이 있다. 절대 선수 개개인에 대한 공개적인 평가나 비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경기와 관련한 선수 개개인의 잘못된 점을 자신의 입으로 언론에 밝히지 않는다. “나를 믿고 따르는 부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팀워크를 저해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라는 게 히딩크 감독의 설명이다. 그러나 안정환의 경우처럼 자신의 리더십을 높이기 위해 ‘언론 플레이’가 필요한 경우에는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교묘하게 언론을 이용한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언제나 치밀한 계산이 포함돼 있어 절대 적절한 수준을 넘는 법이 없다.
[히딩크 스타일의 의미와 메시지]
히딩크가 우리에게 던져준 첫번째 화두는 '실력주의'이다.
선수 기용에 있어서 학연이나 개인적인 친소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 우리 축구계에는 아직도 어느 감독이 들어서면 어느 선수가 중용된다는 식의 연고주의 풍토가 살아있다. 이런 것들에 억매일 필요가 없는 히딩크는 시합과 연습성적을 통해 선수들을 기용하고 자신의 기준에 맞는 선수 를 추려나간다. 특정 선수를 불러 개인면담을 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선수들은 감독에게 잘보이기 위해 노력을 할 필요가 없으며 오로지 실력이 평가의 전부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국내 기업의 최고경영자나 정치인, 관료들이 '일 자체'보다는 학연이나 지연, 충성심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고 기용하는 풍토와는 다르다.
둘째로 '지식 축구'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축구선수들은 열심히 뛰고 감독이나 코치가 지시하는 몇 가지 전술에 따라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히딩크는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하나의 작은 패스를 할 때도 '왜'라는 의문을 갖도록 요구 한다. 과거에는 자기 포지션만 잘 소화하면 만족스런 평가를 받았지만 히딩크는 팀 전체의 전술을 강조하기 때문에 다른 선수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까지도 모두 머리 속에 넣어야 한다.
히딩크는 훈련 때도 녹음기를 휴대하고 다니며 그때그때 분석내용을 데이터베이스화 한 다음 다음 공개미팅에서 선수들에게 제시한다고 한다.
그의 노트북에 특정선수의 이름을 입력하면 그 선수의 장단점이 동영상으로 펼쳐진다고 한다. 코칭스탭과 선수들이 틈틈이 영어공부를 하는 것도 히딩크 취임 이후 달라진 모습이라고 한다.
세째는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히딩크는 취임 즉시 한국형 축구라고 할 '3-5-2'시스템을 '4-4-2'시스템 으로 바꿔버렸다. 3-5-2시스템은 나름대로 수비를 강조하는 한국축구의 강점으로 인정받아왔다. 히딩크는 이를 버리고 '토털 사커'라는 세계적인 흐름을 채택했다. 아직 선수들이 이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허점을 노출하고는 있지만 팬들도 공격적인 축구를 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글 로벌 스탠다드를 반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네째는 '자신감의 회복'이다.
히딩크는 선수들에게 외국의 강팀에 대한 열등감을 없앨 것을 주문하고 있으며 선수들도 정신력을 되찾고 있다. 히딩크는 실수를 해도 나무라지 않고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며 격려해주기 때문에 선수들이 실패에 대 한 두려움을 덜고 위협적인 패스와 돌파를 하게 된다고 한다. 선수들의 '기(氣)'를 살려준다는 말이다.
다섯째는 '규율과 자율의 조화'이다.
히딩크는 전지훈련 때 호텔 냉장고에서 주류를 모두 치우고 비디오를 상영하는 TV 유료채널을 끊어버렸다. 복장통일, 시간엄수, 휴대전화 사용금지와 같은 규율을 어기는 선수는 가차없이 내보내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반면 훈련은 매우 자율적이라고 한다. 그는 우선 구보를 없앴다.
체력은 선수들이 각자 알아서 해결할 일이지 운동장을 몇바퀴씩 돌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축구에 대한 철학과 목표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그는 축구가 취미이며 관중에게 축구보는 재미를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월드컵 16강 에 오를 경우 막대한 보상도 기다리고 있다 . 히딩크가 세계적인 감독이라고 해서 그를 미화할 생각은 없다. 그의 리더십이 새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피터 드러커에 따르면 리더 십은 카리스마와는 관계가 없으며 일(work)에서 나온다고 한다. 일을 달성하기 위한 분명한 목표, 책임, 신뢰(언행일치)의 세 가지가 리더십의 요체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히딩크의 리더십은 오히려 평범한 것이며 다만 우리가 그 중 일부를 놓치고 있거나 가지지 못했을 뿐이다.
한국의 경영자, 관료, 정치인들도 히딩크에게서 찾아야 할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곰곰 생각해보자.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문제를 알고도 그대로 두는 것은 아닌지, 문제해결 능력이 없는 사람이 중책을 맡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자문(自問)해볼 일이다.
[히딩크의 성공비결]
지금까지 1990년 월드컵부터 98년 월드컵까지 한국축구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짚어 보았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다 보니 어떤 독자들은 단편적인 사항에 대해 지적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리즈의 큰 줄기는 2002년의 한국축구와 지금의 축구를 비교하자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3회에 걸친 칼럼은 서론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견해가 달랐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나는 히딩크를 통해 우리축구가 혁명적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성공에는 물론 몇 가지 환경적 요인이 존재합니다. 우선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라는 점입니다. 팬들의 성원과 축구협회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그에 상응하는 선수들의 정신력, 심판 판정 등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어드밴티지가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환경적인 요인만으로 히딩크의 성공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히딩크 개인적인 요인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우선 그의 성공요인 첫 번째는 리더십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칼럼에서 썼듯이 먼저 그는 노회한 심리전의 대가였습니다. 가삼현 축구협회 국제국장이 영입을 위해 히딩크를 처음 만났을 때(아마 2000년 11월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의 이야기입니다.
가 국장의 의사를 전해들은 히딩크는 가장 먼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내가 이유도 없이 한국 선수들에게 여기에 있는 이 나무에 올라 가라고 한다면 그렇게 하겠는가?" 가 국장이 "아마 그럴 것"이라고 대답하자 히딩크는 그 때서야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98년 월드컵에서 이미 한국팀의 한계를 명확히 보았던 히딩크로선 선수들에 대한 장악력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선수들이 자신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예상대로 그는 선수 장악에 쉽게 성공했습니다. 부임 초부터 언론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 그는 이를 통해 선수들의 경쟁심을 유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긍정적인 여론도 중반기를 거치며 부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나 역시 2002년 3월27일 터키전(0-0무승부)을 보기 전까지 히딩크 축구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월드컵을 불과 2개월 앞둔 시점이었죠. 그리고 히딩크 축구는 월드컵 개막을 일주일도 안 남기고 가진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극찬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2002년의 한국축구는 이전과 무엇이 달랐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선 먼저 히딩크의 훈련과정을 분석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히딩크의 훈련은 4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부임 초기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패스였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상대의 볼을 가로챈 뒤 찬스가 아닌 상황에서도 무리한 패스를 시도, 공격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불필요한 드리블과 패스, 불필요한 볼 소유가 많다는 의미지요.
히딩크는 초기 3개월여간 패스의 강약 조절법과 볼트래핑 훈련을 중점 실시했습니다. 축구의 기본부터 다시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1년 4월부터 시작된 2단계 훈련에서는 선수들에게 포지션별 임무를 명확히 인식시키는 데 주력했습니다. 포지션별로 자기 위치를 벗어나지 않고 절제된 움직임과 수비임무(이전의 한국축구에서 가장 안됐던 부분이죠), 즉 팀플레이를 주문했습니다. 이러한 히딩크의 의도가 비로소 명확하게 드러난 첫 경기가 아까 이야기한 터키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어 그는 웨이트훈련 단계에 들어갑니다. 각 개인 별로 약한 부위를 근력으로 보완하는 훈련입니다. 그해 9월의 4단계 훈련부터 파워트레이닝을 도입했습니다. 평가전 바로 전날에도 지속적인 파워트레이닝을 실시, 평가전마저도 체력훈련장으로 삼았습니다. 그 때문에 평가전 결과가 나빴을 것입니다.
2002년 1월부터는 체력과 전술훈련을 동시에 병행했습니다. 그의 체력훈련이 한국 지도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로 축구선수에게 요구되는 민첩성과 순간 스피드, 유연성 배양에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전술은 상대 공격수가 1명일 때 4백, 2명일 때 3백으로 대응하는 등 상황에 따른 다양한 시스템을 체득시켰습니다.
히딩크 감독의 체력지도 방법은 인터벌 훈련에서 잘 나타났습니다. 특히 히딩크 감독은 피로회복 속도를 중시했고 이를 위해 통계와 측정기구 등을 사용한 과학적 방법을 도입했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 선수들이 20m 왕복달리기를 140회나 계속할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피로 회복도가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훈련 단계를 거쳐 한국팀은 2002년 월드컵에서 그 때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게 됩니다.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패스입니다. 이전까지 롱패스를 많이 사용했지만 숏패스 위주로 바뀌었습니다. 히딩크는 공을 뺏기지 않고 경기를 지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백패스나 횡패스를 많이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우리 선수들의 습관은 공을 잡으면 일단 돌아서 전진패스를 했지만 상대 선수들이 달려들 때는 항상 자신이 보이는 곳에 안전하게 패스하도록 했습니다. 당연히 경기는 소극전으로 보일 수 있었습니다.
한국 선수들이 패스할 때 고개를 들고 하는 것도 이전과 달라진 모습입니다. 고개를 숙인 상태서 패스를 하면 부정확해 지기 때문에 히딩크는 고개를 들고 시야를 확보한 상황에서 패스하게 했습니다. 패스는 최대한 쉽게 하라는 것이 히딩크의 주문이었습니다.
히딩크는 또한 포지션별로 철저히 지역방어를 요구했습니다. 이전까지 한국축구는 미드필드 지역에서도 대인마크를 했지만 히딩크는 미드필더는 공격형이나 수비형 미드필더 모두 상대를 따라 다니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마 한국축구에서 획기적인 변화였을 것입니다. 스토퍼는 공격 가담을 금하고 미드필드에선 지역방어를, 우리 진영 30여m 이내에선 대인마크를 하게 했습니다.
또 한가지는 히딩크가 선수들간 의사소통을 중요시했다는 점입니다. 이를 위해 히딩크는 지시를 내리는 선수는 넓은 경기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후방에 위치한 선수가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골키퍼는 수비수에게, 수비수는 미드필더, 미드필더는 포워드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지요. 상대를 파악하면서 해야 할 역할을 서로 알려줌으로써 플레이를 유기적으로 만들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것이 효과적으로 발휘되려면 선수들의 경기운영 능력이 궤도에 올라야 합니다. 공격수-미드필더-수비수가 이루는 3선의 간격이 항상 일정한 틀을 유지하면서 공수를 조율하게 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히딩크의 축구는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효율성 있는 축구입니다. 백패스, 횡패스가 많고 템포가 느려도 상대를 지배하는 축구(공을 뺏기지 않는 축구), 경제적으로 뛰는 축구입니다. 전진패스 위주의 비경제성이 특징이었던(뻥축구) 이전의 한국축구와 비교할 때 혁명적인 변화라 할 것입니다.
지도자의 유형을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지만 나는 좋은 선수로 키우는 지도자와 좋은 선수를 갖고 성적을 내는 지도자, 단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눕니다. 한국팀을 맡기 전까지 히딩크는 좋은 선수를 갖고 성적을 내는 지도자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팀을 맡은 뒤 그는 두 가지 능력을 모두 보여 주었습니다. 이번 시리즈 마지막이 되는 다음 칼럼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코엘류의 실패는 비록 재임 기간은 짧았지만 바로 그가 좋은 선수로 키우는 지도자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록
“난 선수들을 칭찬하지만 비난하지 않는다. 잘못을 지적하고 야단치는 것은 우리팀 내부에서만 한다. 그것이 나와 선수의 약속이고 신의다.” [Gus Hiddink]
“난 그동안 이회택 김호 박종환 차범근 허정무 감독 등 다섯 분의 대표팀 감독을 모셔봤다. 히딩크 감독이 내가 여태껏 모신 감독님들과 가장 구별되는 것은 확실한 목적의식을 갖고 훈련에 임한다는 것이다. 패스연습이면 반드시 패스연습만 시킨다. 거기에 체력훈련이 함께 이뤄지는 경우는 없다. 전체적인 훈련량은 많지 않다. 그러나 고도의 집중력과 긴장을 필요로 한다. 생각하는 축구를 하지 않으면 단번에 휘슬을 분다. 30분만 훈련해도 녹초가 된다.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꾸지람은 전혀 없다. 훈련에서 안된 부분만 지적한다. 선수들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술 담배 여자 문제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운동장에만 나가면 엄청난 에너지로 선수들을 장악한다.” [홍명보]
히딩크는 이런 자신의 축구철학을 실현하는 데는 실전 경험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깨지더라도 강한 팀과의 실전을 원한다. “감독의 임무는 선수들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이 강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강하고 똑똑한 선수들이 있어야 하고 이런 선수들은 큰 게임에서 나온다”는 것.
“난 어디까지나 나이며 바뀌지 않는다. 평소에 진지하지만 때로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할 때는 모든 부분에서 진지하다. 난 개방적인 성격이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없다. 언론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언론을 모두 수렴하다 보면 내 축구철학이 흔들릴 수 있고 전술적인 완성도가 방해받을 수 있다. 난 오로지 나의 길을 갈 뿐.” [Gus Hiddink]
히딩크가 네덜란드 프로 축구팀 「PSV 아인트호벤」 감독을 맡고 있을 때 그 팀에 호마리우라는 유명한 스타 플레이어가 있었다. 브라질 출신의 호마리우는 현란한 드리볼을 바탕으로 개인 돌파능력이 탁월한 선수였지만 훈련에 불성실하고 감독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 말썽꾸러기였다. 오전 10시부터 훈련을 하는 날이면 감독 히딩크는 10분 前에 훈련장에 나와 있으나 호마리우는 정각 10시에 나타났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히딩크는 자기 시계를 10분 빠르게 맞춰 놓고 호마리우를 기다렸다. 10시 정각에 나타난 호마리우에게 히딩크는 왜 시간을 지키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호마리우는 10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는 자기 시계를 내 보였다. 히딩크는 10시10분을 가리키고 있는 자기 시계를 보여주며, 지금부터는 감독의 시계에 시간을 맞춰라고 지시했다. 이 일이 있은 후 히딩크는 시즌 첫 경기에서 호마리우를 베스트 멤버에서 제외했고, 그 다음 경기에서도 뺐다. 벤치에 앉아서 두 경기를 지켜본 호마리우로서는 자존심 구기는 일이었다. 세 번째 경기를 앞두고 全선수가 모인 자리에서 히딩크는 베스트 멤버 리스트에 호마리우 이름을 올리고는 호마리우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가 버렸다. 세 번째 경기에 출전한 호마리우는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선수들의 잘못을 일일이 말로 꾸짖기보다는 제제를 가해 스스로 반성하게 하는 것이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이다.
축구전문 월간지 「축구 매니아」에서는 히딩크의 선수 관리 비결을 다섯 가지로 꼽았다.
(1) 선수들에게 동질감을 부여했다. 히딩크는 모든 선수들에게 형이나 선배와 같은 존칭을 쓰지 말고 이름을 부르도록 해, 선ㆍ후배 간에 軍紀가 엄하고, 나이별, 출신 학교별로 뭉쳐 다니는 한국 축구의 고질병을 없앴다. 의사소통의 자유로움은 단체 경기인 축구에서 조직력 및 전체 경기력을 상승시켰다.
(2) 선수들 간에 자발적인 경쟁의식을 유도했다. 월드컵 본선에 대비한 베스트 일레븐을 히딩크는 미리 발표하지 않았다. 그는 많은 선수들을 끝까지 테스트하겠다고 했다. 선수들은 자기 이름을 리스트에 올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기량 연마에 힘썼다.
(3) 기초 체력 강화다. 전통적으로 체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되어 왔던 한국 선수들의 체력을 정확히 조사, 평가함으로써 과장된 요인들을 정리하고, 선수 개개인에게 체력의 한계를 정확히 인식시켰다. 체력 훈련 강화는 선수들의 자신감으로 이어졌다.
(4) 과학적 데이터에 의한 철저한 선수 분석이다. 세 번에 걸친 기초 체력 테스트 외에 전술 소화 능력, 개인기, 정신력 등을 선수별로 데이터하고 다양한 분석 기법을 통하여 해결책을 제시해, 최강의 멤버를 구성할 수 있었다.
(5) 강팀을 통한 테스트다. 세계적인 수준의 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통하여 大敗에도 불구하고 경험을 쌓도록 했다.
“나는 험난한 길을 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길이 옳다는 것을 확신한다.” [Gus Hiddink]
“준비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어떠한 비판에도 나는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다. 당신들이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비판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나는 6월을 기다려 왔다. 세계 유명 축구팀들이 우리를 비웃어도 반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월드컵에서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낮은 전력의 팀들을 격파하면서 얻는 값싼 승리가 아니다. 만약 그러한 길을 택했다면 그 과정에서 나오는 승리로 인해 한국 국민들은 열광하겠지만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세계 일류 팀이 되길 원한다면 더욱 강력한 팀과 싸워 나가야 한다. 질 때 지더라도 두려움을 떨쳐내고 배우고자 하는 자세로 그들과 1대 1로 부딪쳐야 한다. 한국 국민들은 그러한 준비에서 나오는 패배로 인해 실망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패배 뒤에 오는 값진 월드컵에서의 영광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월드컵에서의 승리는 내가 원하고 또한 한국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다.” [Gus Hiddink]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한국팀의 첫 인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전력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한국 선수들의 열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지시하고자 하는 점을 충실히 이행하고자 노력했으며 한결같이 착하고 순수했다. 유럽의 톱 클래스 선수들은 스스로의 생각이 강하고 개성이 탁월하다. 그들 사이에는 프로라는 의식이 있을 뿐, 하나의 팀으로서, 아니 한 국가를 대표하는 스포츠 선수로서의 사명감은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월드컵이란 무대를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선수들도 많이 봐 왔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월드컵 그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 무대에서 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자세를 보여 왔다.이러한 한국 선수들의 마음가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실력이 떨어지면 남보다 더한 노력으로 보충하면 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선수들은 세계 어느 나라의 선수들보다 우월하다. 이러한 한국 축구의 기본 잠재력은 일찍이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으며, 내 스스로를 더 채찍질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한국 선수들을 대단히 사랑한다. 그들의 순수함은 나를 들뜨게 한다.” [Gus Hidd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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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큰 부자 : 존 록펠러의 리더십
존 록펠러(John Rockfeller)의 인생은 거침이 없었다.30세에 1백만 달러를 모았고,43세에는 미국 최대의 정유회사를 세웠다.53세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진 대부호가 됐다.그때 그는 알로페시아(Alopecia)라는 병에 걸렸다.음식을 전혀 소화해내지 못했으며,눈썹과 머리카락이 빠져 몰골이 흉측했다.
*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글을 보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는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짧은 한 마디 문구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렇게 병원 로비에 서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어디선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리고 들어보니 병원비 문제로 환자의 가족과 병원 측이 다투는 소리였다. 환자의 가족은 너무나 가난해서 병원비를 낼 수 있는 형편이 되질 않았고, 그런 환자를 입원시킬 수 없다는 병원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환자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병원 관계자들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초라한 안색을 하고 있는 소녀가 한쪽에 앉아서 조용히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록펠러는 비서를 시켜 그 환자의 병원비를 대신 지급하도록 지시하였다. 물론 누가 지불했는지에 대한 것은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얼마가 지난 뒤, 록펠러는 병원에 다시 찾아갔을 때 소녀의 회복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를 본 록펠러는 나중에 자신의 자서전에 이 순간을 그의 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후 록펠러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정말 뜻밖에도 암투병에 시달렸던 건강이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98세까지 행복한 삶을 살며 록펠러 재단을 통해 나눔을 베푸는 삶을 살았다.
"살면서 이처럼 행복한 삶이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내 인생의 55년은 항상 쫓기듯 살았지만, 나머지 43년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존 록펠러는 아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나눔의 힘에 관한 짧은 글을 남겼다.
'나는 아주 오래 전, 돈을 남에게 나누주기 시작한 후부터 재산이 점점 늘어나는 선물을 받게 되었다.'
실제로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5억 5천만 달러나 되는 돈을 남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남에게 돈을 나눠줄수록 더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이미지 관리를 위한 홍보 전략으로 몇푼 안 되는 돈을 나눠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록펠러의 PR 담당자 말에 의하면 그는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의지로 사람들에게 돈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는 끊임없이 회사를 확대하며 고속 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1911년 독점금지법 위반 판결을 받은 뒤 회사는 해체되었고 그는 경영자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 뒤 그는 자선사업가로 변신해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는데, 특히 부유한 재산가이자 막대한 기부자인 그가 푼돈마저 아끼는 사생활에서는 무척 깐깐한 구두쇠로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미국인의 자부심이 높아졌다.
그는 자신의 자녀와 손자들에게 금전교육을 엄격히 시킨 것으로 유명했다. 맨해튼은행장이었던 데이비드는 할아버지인 록펠러가 어떻게 돈 쓰는 방법을 가르쳤는지 사람들에게 자주 들려주었다.
록펠러는 데이비드가 아이였을 때 일주일 용돈으로 25센트를 주었다. 그리고 평소 작은 지출도 빼놓지 않고 사용 용도를 노트에 기록하도록 했다. 그는 주말이 되면 할아버지 앞에 앉아 일주일 동안 기록한 노트를 보여 주었다. 그러면 록펠러는 손자의 노트를 보며 함께 일주일 용돈을 결산하곤 했다.
그는 데이비드가 돈을 바른 곳에 적절하게 썼으면 칭찬의 의미로 5센트를 얹어 주었다. 하지만 허튼 곳에 돈을 썼거나 노트를 기록하는 것에 소홀했으면 얼마 되지 않은 용돈에서 여지없이 5센트를 깎아 버렸다.
이렇게 결산이 끝나면 록펠러는 데이비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사용하는 용돈은 결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란다. 여러 사람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작은 돈이지만 너에게 주어진 것이지. 그러니 늘 돈이 생기면 그 중에 일부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한다.”
록펠러는 이렇게 작은 돈도 제대로 바르게 쓰도록 했고 수입의 일부분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도록 가르쳤다. 결국 오늘날 록펠러재단과 연구소는 이러한 록펠러 가문의 엄격한 금전교육 덕분에 사회를 위해 더 많은 공헌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신의 내면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주어라.
당신을 도와주고 치유해주며,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주어라.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지 말고,
그것이 나중에 다른 경로를 통해 더 크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남에게 베풀어라.
이들의 성공 요인은 크게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그들은 돈을 따라 기웃거리지 않고,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사업을 하기 전에는 직장에서 그 누구보다 충실하게 일했다. 록펠러는 첫 직장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밤 11시까지 일에 매진했고, 카네기는 철도 회사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까지 해가며 인정을 받았다. 돈이나 인맥이 없을 때 그들은 현재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둘째, 한 분야를 파고들어 일인자가 되었다.
록펠러는 석유 사업을 하면서 오직 석유만 생각했다. 옷에서는 항상 석유 악취로 가득했으며, 집에 돌아와서도 사업 구상으로 밤을 꼬박 새우곤 했다. 카네기는 여러 곳의 철도 건설에 투자하고 있었으나 그 사업에서 차례차례 손을 떼어, ‘좋은 알을 하나의 광주리에 담아두고 그 광주리를 소중하게 지킨다’는 원칙에 충실했다.
셋째, 사람 관리에 뛰어난 자질이 있었다.
록펠러는 경쟁사에 대해서는 잔혹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대했지만, 자사 직원들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그는 스탠더드 오일 초기 시절만 해도 입사를 지원한 사람을 모두 면담했고, 이름을 기억했다. 그의 말이 법이나 다름없었던 임원 회의에서 그는 반드시 상석이 아니라 테이블 중간에 앉았다. 카네기는 자신이 남보다 재능이 뛰어나기보다는, 뛰어난 사람을 발굴하는 데 소질이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다. “나는 증기 기관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도 없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도 훨씬 복잡한 기계인 인간을 알려고 노력했다”라고 그는 말했다.
넷째,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이 있었다.
록펠러는 유전을 보면서, 원유를 생산하기보다는 그것을 정제하고 또 저렴하게 수송하면 큰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카네기는 나무로 지어진 다리들을 보면서, 앞으로는 모든 다리가 철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떠오르는 산업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 그들이 20세기 말에 태어났다면 틀림없이 인터넷으로 엄청난 돈을 긁어모았을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그저 가난한 시골 소년에 불과했고, 다른 소년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었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부자가 되는 길을 일러 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기어코 큰 부자가 되고 말겠다는 강렬한 열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당면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했다. 직장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사업의 기회가 왔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도전적으로 뛰어들었다.
‘부를 구축하고 말리라’는 가슴 깊이 타는 뜨거운 열망이야말로 그들이 부의 제국을 건설하는 든든한 초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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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리더십
이건희, 정주영, 박정희, 이순신, 세종대왕 등 걸출한 인물들이 단골 리더 리스트들이다. 역사학자들이 최고의 왕으로 꼽는 정조는 이 리스트에 올라본 적이 없다.
21세기 한국인들은 이제 정조대왕의 리더십을 한번 되돌아야 봐야 할 것이다. 그가 어떤 꿈을 꾸었으며,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그리고 그의 원대한 구상이 왜 좌절됐는가를 진지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뒤주 속에서 한 많은 생을 마친 세도세자의 아들인 그는 정치적으로 소수파였다. 그는 우선 청론 사류의 정치적 입장을 수용하면서 도덕 군주를 표방했다. 외척을 물리치고, 현신들을 가까이 둠으로써 정치의 도덕성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는 또 모든 정치를 학문에 기초를 뒀다. 오늘 날 관점에서 보면 지식 기반 정치를 추구한 셈이다. 특히 규장각을 설치하여 정치에 필요한 국내외 지식 체계를 정비했다. 또 규장각에 우수한 학자들을 유치하여 인재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정조대왕은 열린 정치를 추구했다. 정조시대에는 국가 통치 이데올로기로서 성리학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거세게 일어났었다. 서울 경기지역에 근거를 둔 경화사족 중 일부는 청나라 학문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북학을 유행시켰다.
또 기호 남인들은 새로운 학문으로서 서학(천주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시도했다. 정조는 이런 기류에 대한 전통 성리학자들의 반발을 무마하며 새로운 학문의 유입을 간접적으로 지원했다. 스스로 주자학의 적통임을 자부하면서도 새로운 지식을 수용하는데 열린 자세를 보였던 것이다. 정조대왕은 새로운 건설자로서 기업가적 정신을 보여줬다. 그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을 동원하여 수원 일대에 신도시를 건설했다. 오늘날 한국 경제의 중추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정조대왕이 미래를 위해 건설한 수원에서 태동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으리라.
한반도라는 삶의 무대는 숙명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역사적으로 사상이든지, 기술이든지 막히고 고일 때 쇠락의 길로 갔다. 외래 문물을 받아들이고, 이를 주체적으로 재창조할 때 번영하고 안정을 구현했었다. 불교, 유교, CDMA, 게임 등 한반도를 대표하는 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비록 외래 문명이지만 한반도에서 찬란하게 꽃을 피웠다는 점이다. 이들 문명을 처음부터 우리 것이었다고 우기면 세상에서 ‘바보’가 된다. 또 처음부터 우리가 세계적인 문명을 혼자서 만들겠다고 해도 역시 ‘바보’가 될 것이다. 분수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한반도 공동체에서 요구하는 역사적 리더십은 CEO(Clean, Electronic, Open)적인 것이다. 깨끗하며, 정보화마인드를 갖추고 있으며, 개방적이야 한다. 그러면서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산업 마인드(Chief Executive Officer)를 지녀야 한다.
정조대왕 CEO 리더십은 오늘 날 한국인들에게 ‘희망의 빛’이다. 보통 한국인들의 마음은 심한 상처를 입고 있다. 누구를 존경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가 무섭다. 입장이 다르면 아귀처럼 달라 들어 할퀴고 물어 뜯기 일쑤다. 정조대왕이 현대사에서 한번도 우상화되지 않았던 것이 다행스럽다. 그는 특정 정파의 이데올로기에 맞는 우상화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푸는데 필요한 ‘살아 있는 역사’적 전통이다. 특히 디지털 문명시대를 맞아 막 꽃을 피우고 있는 한반도 정보사회 문명에 정통성과 자부심을 채워주는 희망의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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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리더십
그런 도쿠가와의 리더십은 저자가 책 1장에서 분석하는 '도쿠가와의 인간학과 경영철학' 속에서 현대적 표현을 얻는다. 도쿠가와 경영철학의 첫 번째 덕목은 '신뢰'였으며 도쿠가와에게는 '신뢰'가 자기 이미지 통합 전략과 같았다.
도쿠가와는 처음 노부나가의 군대와 싸워 패한 뒤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었다. 당대의 실력자 노부나가와 아직 세가 미약했던 도쿠가와 사이에는 실은 실력에 의한 주종간 갈등이 있었다.
도쿠가와의 충성도를 시험하고자 했던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도쿠가와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죽이기까지 해야 했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노부나가와의 동맹을 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20여년 동안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는 노부나가와 도쿠가와의 동맹은 일본 전국시대의 미담이 됐다.
이처럼 '신뢰'를 중심 개념으로 삼는 도쿠가와의 CI전략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유지하며 어떤 위기에 빠지더라도 신뢰를 잃는 일만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정리된다.
이를테면 '도쿠가와 주식회사'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경영전략이었던 도쿠가와의 '신뢰경영'은 네 가지 원칙 위에 작동한다.
첫째는 머리와 몸을 분리하는 분단 정책이다.
도쿠가와는 장군(쇼궁)이 된 지 2년만에 은퇴해 셋째 아들 히데타다에게 자기 직위를 넘겼다. 하지만 모든 권한을 넘기지 않고 '슨푸'라는 은거지에서 다양한 인재들로 참모진을 구성, 정책을 만들도록 해 아들에게 이를 실행토록 했다. 정책을 만드는 머리 부분은 슨푸에 두고, 실행을 하는 몸과 손, 발은 에도에 두는 식이었다. 이 이원체제는 2대 장군 히데타다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노부나가가 '공포'를 이용한 관리를 했다면, 히데요시는 현자의 윤리나 도덕에 중점을 두고 부하들을 격려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유지와 관리가 필요한 시기에 일본 천하를 이끄는 장군이 된 도쿠가와가 택한 전략은 분단정책이었다.
둘째는 '꽃과 열매를 동시에 주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도쿠가와는 남에게서 신뢰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을 중시해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다이묘(大名: 일본 중세말 - 근세초 지방에 할거하던 봉건영주, 쇼궁의 휘하에서 지방 세력으로 존재했다)에게는 급여를 적게 주고 돈을 많이 받는 자에게는 요직 곧 권력을 주지 않았다.
뒤에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과정에서도 전권을 물려주지 않았다. 다양한 인재들로 구성된 집단을 만들어 아들을 견제토록 했다. 어느 한 사람이나 조직에 절대 권한을 주지 않고 늘 이원체제를 유지했다.
셋째는 늘 민심 동향을 파악하고 여론을 듣는 쪽으로 정책을 편다는 원칙이다.
도쿠가와의 후계자 선정은 이 원칙을 따른 예다. 도쿠가와의 둘째 아들 히데야쓰는 무예와 지략이 뛰어나 일찍부터 후계자로 지목되었지만 정작 도쿠가와가 지목한 후계자는 셋째 아들 히데타다였다.
장기적이고도 안정적인 조직관리를 위해 어떻게 후계구도를 짜야 하는지 고민한 도쿠가와로서는 히데타다가 참모들의 의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점을 평가해 후계자로 선정한 것이었다. 이 부분은 책 4장 '후계자 선택이 경영자의 능력을 결정한다'에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넷째는 '상인의 검소한 생활과 계산능력, 재능을 본받자'는 원칙이다.
무인이자 정치가였던 그는 경제감각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종이 한 장도 아꼈고 매사에 생산성과 효율을 강조했다.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경영
도쿠가와 경영철학의 두 번째 덕목은 '인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내심에 대한 묘사로는 1장에 흥미로운 예화가 소개되어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각각 하이쿠라는 일본 특유의 단시를 읊었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야 한다."라고 했고,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게 해야 한다."고 했으며, 도쿠가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노부나가는 다혈질에 성미가 급한 인물이었다. 울지 않는 새는 필요 없으니 죽여 마땅하다고 보는 냉철한 인간형이다. 히데요시는 천한 출신이지만 사람을 끄는 힘과 뛰어난 지혜로 노부나가의 신임을 받게 되고 노부나가가 죽자 전국통일을 이룬 인물이다. 자신감에 넘치며 울지 않는 새를 울게 만든다고 불릴 만큼 지혜롭다.
한편 인내심이 강한 도쿠가와는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먼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기 때문에 절대로 서두르면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2장 '운과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는 도쿠가와가 자신을 평생 짓누른 노부나가라는 크나큰 짐을 짊어지고 나아가 천하를 제패하는 도정을 묘사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여섯 살 박이 어린 시절부터 19세가 될 때까지 사무라이들의 싸움판 와중에서 인질 생활을 하며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에야스는 처음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수하에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이마가와를 거꾸러뜨리고 판도를 바꾸자 오다 노부나가 수하에 들어가 속국의 장졸로 있으면서 자기 자식까지 할복시키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 뒤 노부나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자 이번에는 당시의 최고 실력자 히데요시의 수하에 들어갔다. 히데요시는 변소치기를 하며 살다가 일약 장군(쇼궁)이 된 인물이다. 이에야스는 그런 히데요시에게도 머리를 숙이고 때를 기다렸고 히데요시의 시대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이처럼 결정적인 때가 오기까지 참고 기다리는 도쿠가와의 경영 스타일은 그를 '너구리 영감'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게 할 만큼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생존양식을 겸비한 것이었다.
3장 '사람을 알아야 사람을 부릴 수 있다'에서는 도쿠가와가 다른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사람을 자기 뜻대로 부리는 데 능란했던 사실과 함께 그가 어떻게 사람의 심리를 능란하게 읽어낼 수 있게 됐던가 설명되어 있다.
장군(쇼궁)이 통치하던 16세기 일본에서 정치가의 필수조건으로는 무력과 재력 외에 당시 장군의 통치 아래 지방에서 할거하던 세력인 다이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책 입안 및 실행능력이 요구됐다.
다이묘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당시 패권자들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는 제각기 다이묘들을 엮어 파벌 만들기에 열심이었다. 주로 다이묘들에게 패권자 자신의 姓(성)이나 이름을 쓰게 하거나 양자를 들이고 혼인을 하며 혹은 돈을 뿌리는 방법이 주로 쓰였다.
이런 식의 세력 만들기에 가장 골몰했던 패권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히데요시에 비해 이에야스는 賜姓(사성)이나 혼인, 돈 뿌리기보다는 사람의 심리를 활용해 세력을 얻었다.
저자의 설명으로는, 인간관계에서는 욕심을 부리는 쪽이 약해진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이에게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를 생각해주지 않는 사람에게 더 신경을 쓰는 심리가 있는데 도쿠가와는 이런 인간심리를 잘 활용했다 한다.
이를테면 가까운 자보다는 먼 자를 선택해 가까운 자의 질투심을 불러 일으켜서 자신에 대한 충성 경쟁을 부추기는 식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쿠가와 막부의 기틀을 다지는 데 채택한 인간경영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인간경영에 관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또 다른 특징은 그가 매우 비정한 지도자였다는 사실이다. 이에야스에게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다.
도쿠가와는 자주 "물은 배를 띄워주지만 다른 편으로는 배를 뒤집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다. 그는 친구를 믿지 않았고 단지 충성스러운 부하만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소년 시절을 인질로 생활하며 시련을 겪었던 도쿠가와의 성장배경이 자리한다. 인질로 살고, 내키지 않는 패권자에 복속하며 생존을 위한 적응을 첫째 명제로 삼는 경험을 거듭하면서 인간이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든가, 겉과 속을 달리 보이게 할 필요성 따위를 몸으로 체득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뿐 아니라 그와 같은 시대를 산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이 살아남기 위해 익힌 요령은 비정하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그들이 교재로 삼은 전략서 [손자], [한비자] 등속은 모두 '사람을 배신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전국시대 일본의 리더들에게는 고독을 견뎌내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던 셈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간경영법과 경영·정치 전략은 시공을 초월해 모든 경영의 기본인 인간관리 측면에서 현대의 기업 경영자를 비롯해 조직을 이끌고 사람을 관리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참고할 만한 내용이 풍부한 한 전형이다.
저자는 이에야스의 인간경영을 여러 가지 일화와 함께 제시하며 그의 인간성, 여성관, 종교관, 건강법, 우정관 등까지 곁들여 다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의 인간경영 방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울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인질생활을 하기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일본을 통일해 쇼궁이 되고 자기 아들에게 쇼궁의 지위를 물려주어 도쿠가와 막부의 기반을 확고히 하는 때까지를 설명해, 격동의 시기였던 일본 전국시대 역사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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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의 리더십
1. 몽골족을 동기부여 시킬만한 "웅대한 비전"
2.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한 점
3. 자신의 부하는 훌륭한 리더로 키워 낸 슈퍼 리더십
4. 끊임없는 상무정신을 고취시킨 점
5. 스피드를 중시한 전략의 구사
6. 통합적 패러다임과 거시적 안목
7. 모계중심의 성개방 의식
8. 자신을 정점으로 하는 매우 효율적인 조직 구성
9. 과학기술과 교역의 장려
10. 유능한 참모의 기용
칭기즈칸은 뉴욕타임즈에서 선정한 "세계를 움직인 가장 역사적인 인물" 중 첫 번째 자리로 뽑힌 바 있다.
첫번째 칭기즈칸의 리더십 중에 주목받을 점은 그의 "웅대한 비전"이다.
일찍이 과거에도 없었고 누구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가능하게 만든 대단한 비전이다. 그의 비전이 처음부터 컸던 것은 아니다. 17살의 어린 소년 테무진이 타타르족의 습격으로 아버지를 잃고 그의 부족은 모조리 흩어 졌으며 자신은 포로로 잡혀 끌려가는 신세에 처해졌다.
이때 그가 가진 목표는 "흩어진 부족을 되찾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것" 이었다. "할 일이 있는 한 나는 죽을 수 없다" 라는 말과 같이 소설과도 같은 모험과 역정을 거쳐 마침내 그 소원을 이루게 되었는데 어린 테무진이 결론지은 것은 그의 부족들이 "공동의 목표"가 있으니 잘 뭉치더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공동의 목표는 소박하거나, 곧 이룩될 만한 작은 것에서는 별반 효과가 없었으며 원대야망한 것이라야 사람들이 큰 힘을 내더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오늘날 이야기하는 <비전>과 다를 바 없다.
칭기즈칸 리더십의 면면에는 한가지 공동목표가 달성되기가 무섭게 곧 다음의 새로운 공동목표를 만들어 쉬지 않고 달리는 자전거만이 서 있을 수 있다는 듯이 그의 부족을 이끌어 갔다. 그리고 그 비전은 나라를 만드는 것, 주변국가로부터의 위협을 없애는 것, 아예 중원을 경영하는 것, 나아가 천하를 통일하는 것, 그리고 그 천하는 중국 땅을 넘어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땅으로 계속 커져만 갔고 그 꿈들은 하나씩 하나씩 실현시켰다.
두번째 칭기즈칸의 리더십 두 번째는 명분과 정당성의 확보이다.
부족들은 명예를 중시하고 이름 석자에 대한 오명을 몹시도 싫어 한다. 항상 그들은 옳은쪽으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청군 아니면 백군인 상태의 전쟁이 아니라 자신들은 정의의 편이라는 생각으로 싸우도록 같은 전쟁을 하더라도 명분이 없는 전쟁을 하지 않았다. 금나라 100만 대군을 칠 때도 그 명분은 나라를 물려 받지 못할 불효한 놈이 천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명분이었다. 그리고 백성들을 향해서는 일종의 해방전쟁이라고나 할까 땅을 빼앗거나 명분 없는 약탈을 자제하였다.
세번째 칭기즈칸 리더십의 탁월한 점은 슈퍼 리더십이다.
중앙아시아며, 그리스 발칸반도, 모스크바, 베를린 등 엄청난 거리의 원정에도 불구하고 칭기즈칸 자신은 자신의 본토를 벗어 나 본 적이 없다. 십수년전 까지만 해도 벌판에서 말을 부리던 부하들이 대군사를 지휘하고 신출귀몰한 전략을 구사하는 대장군으로 변신된 것이다. 부하를 육성함은 물론, 전권을 주어 현지의 왕을 임명하고, 인접국가에의 전쟁 여부까지 모든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 그리고 서양세계 정신적인 지주인 교황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숙의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권한은 현지에서, 그때 그때의 상황에 맞게끔 현지의 지휘관이 철저히 알아서 하도록 믿었던 것이다.
네번째 그는 그의 부족들이 끊임없는 상무정신(尙武精神)에 젖어 있기를 바랬다.
그의 마지막 유언중의 하나가 "흙벽돌집에 살지 마라"라는 것이다. 흙벽돌 생활은 정착생활을 의미하며 곧 말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면 허벅지에 살이 찌고 배부른 기름 맛을 알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원정길을 포기하고 음주가무에 빠져 들 것을 경계한 것이다. 그리고 살림이 풍족해 지면 더 많은 재물에 욕심을 내고 단신의 군장이 온갖 재물보화로 무거워질 것이기 때문이며 서로 많은 재물을 차지하려고 서로 싸울 것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오늘 날 우리의 위정자들이 험난했던 민주투사의 역정에서는 서로 잘 뭉치다가 정권을 잡으니 서로 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배고픈 시절 굶주림을 면하려고 이 역만리 먼 땅의 건설현장에 나가던 우리의 근로자들이 이제는 3D기피 현상에 빠진 것에 비추면 새삼 뒤돌아 볼 만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다섯번째 그의 리더십 비밀은 스피드이다.
마차로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2년이 걸리던 것을 생각하면 중원을 점령하는 2년여의 세월은 거의 말을 달리는 속도로 영토를 점령해 간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먼저 의사결정의 스피드주의를 보자. 원정군들은 온갖 작전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수많은 정보와 판단을 요구하는 결정임에도 그들은 철저한 임장주의(臨場主義)를 선택하였다. 이는 현대적 의미의 현장주의인데, 탁상공론으로 세월을 보내 봤자 소용이 없고 "저 산을 넘어 가 보아야 그곳이 산일지 바다일지를 안다"는 모토로 일단 대원칙을 먼저 세우고 행동에 옮기며 상황을 보아가며 세부적인 사항을 그때 가서 결정한다는 방식이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을테지만 이는 모르고 내린 결정보다 안전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듯 무모한 방식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의 조직이 기동력에서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몽고말과 손에 익은 작은 칼, 그리고 사냥터에서 갈고 닦은 그들의 활솜씨는 무거운 갑옷으로 무장한 중세 서양의 병정들은 양철 허수아비와 같이 다루기 편한 연습상대에 불과했다. 중후장대가 아니라 경박단소가 세계를 점령한 것이다. 직관적 감각과 선이 굵은 대원칙 주의, 빨리 빨리를 노래하는 우리의 스피드광 기질은 언뜻 보아도 칭기즈칸의 리더십에 걸맞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리더십의 여섯번째 비밀은 그의 통합적 패러다임에 있다.
일단 전쟁을 벌인 적국이라 할지라도 전쟁이 끝난 뒤 제국의 일원으로 충성을 맹약하기만 하면 이러 저러한 제한을 가하지 않았다. 그들의 재산은 물론, 왕권, 심지어 종교까지 자율권을 부여했다. 각 국가가 가진 고유의 특수성(개체성)을 보존하는 것은 보편성(전체성)을 의미하는 제국에 대한 충성하나로 허용되었던 것이다. 요즘 세상에서 얘기되는 Global Standard가 어떠해야 할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이 자국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정치적으로 자국에 도움을 주는 약소국에게까지 압박을 가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칭기즈칸을 생각해 내고 그 회포를 풀었으리라. "야야 칭기즈칸의 반만 닮아 봐라" 하고 말이다. 과거 아시아 지배의 야심을 불태웠던 일본의 작태에서도 한참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 주장이 궁극적으로 그들의 천황, 종교를 섬기도록 강요하고 언어사용을 강요한 것을 보면 일본은 역시 아시아 조차도 지배할 만한 패러다임을 지니고 있지 못한 섬나라로서의 한계를 지녔다 할 것이다.
리더십의 일곱번째는 현대인의 생각을 앞지를 정도의 성개방 의식에 있었다.
아울러 자손을 번영시키는 근본으로서의 여성 지위를 무척 인정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그의 아내는 자신의 부락이 공격을 받을 때 적국에게 납치되어 2년여를 적의 장수에게 잡혀 있었다. 그가 자신의 아내를 되찾았을 때는 이미 그의 아내는 적국의 아이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천하에 그 사실을 알리고 나의 아내가 낳은 아이는 나의 자식임을 선포한다. 그리고 그 아이는 대몽골족의 장손으로 남아 그의 아버지 위업을 이어 받게 된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국사에서 배운 바와 같은 고려시대의 공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해가 빠르다. 궁녀로 끌려간 조선의 아녀자들은 그들의 원래 가문의 등급에 따라 대접을 받게 되는데 공녀 위씨는 나중에 원나라 황제의 후궁이 되기도 한다.
리더십 비밀 여덟번째는 조직력에 있었다.
그의 대장군 밑에는 사단과 연대, 대대, 중대 등을 편성하였는데 그와 같은 군대의 조직 편성은 먼 훗날 나폴레옹이 등장하기 전에는 없던 형태의 조직이라고 한다. 칭기즈칸은 뛰어난 조직가로도 유명한데, "어떤 조직이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칭기즈칸은 <나라를 함께 세우고 고생한 자들> 즉 건국공신 88명을 천호장(千戶長)에 임명했다.
그 중에는 두세개의 천호를 가진 자들도 있었으므로 전체 95개의 천호가 편성되고 이것이 몽골이라는 국가의 사회조직이 되었다. 천호라고 하면 천명의 戰士를 제공할 수 있는 단위이고, 그 밑에 백호, 또 십호가 있어서 사회조직 자체가 군대조직과 동일하였다. 따라서 국가 사회조직이든, 군사조직이든 동일하였고, 칭기즈칸을 정점으로 완전히 재편한 것이다.
칭기즈칸은 종종 적군을 숫자로 압도하며 일렬 횡대로 진격하여 눈깜짝할 새에 포위하는 전법을 썼는데 이는 조직을 일사분란하게 지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전법이었다. 이러한 그의 조직력은 엄격한 군율을 바탕으로 이루어 졌다. 아무리 뛰어 난 장수라더 라도 군율을 어기면 엄격하게 벌을 주었다. 그의 몽골군이 승리를 거두었던 또 하나의 요인은 기동력이었는데 그 키작기로 유명한 몽고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던 백성들이 자기 몸에 딱맞는 칼을 쥐고 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몽골군의 전령은 10마리의 말을 끌고 달리며 교대로 말을 갈아 타며 2000리를 내리 달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부산과 평양까지의 거리쯤 될까?) 식량은 어떻게 하느냐?
그들의 말안장 밑에는 말린 고기가 깔려 있는데 사방 60센티 가량의 방석같은 고기가 소두마리 분량이라고 한다. 물만 부으면 완전한 우주식량이다. 적어도 병사 한명이 몇 달치 식량을 깔고 달리는 것이다. 몽골의 영광 속에 더욱 놀라운 것은 역참제도이다. 소도 카라코쿰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으로 공용도로를 개설하였고 일정 거리마다 역을 세웠는데 그의 손자 오고타이칸이 즉위할 무렵에는 역전을 위한 말이 20만필, 역사만도 1만개가 넘었다고 한다. 이러한 도로운영으로 상인이 다니게 되었고 로마교황의 사자가 다녔으며 마르코폴로 부자도 이 길로 몽골에 이르게 된다. 강력한 지휘명령 체계로 군율이 잡힌 조직력과 기동력! 이것이 칭기즈칸 리더십의 핵심적 성공비결이다.
리더십 비밀 아홉번째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교역의 장려였다.
그가 대칸에 오르자 엄청난 재보가 들어 왔다. 서방의 이란이나, 아라비아의 산물이 받쳐 졌는데 이런 먼 나라의 진기한 물건은 중앙아시아에서 온 위그르인들에 의해서였다. 대부분의 위그르인들은 이슬람교도들이었다. 일찍이 그들의 사라센 제국은 8, 9세기의 영광을 뒤로하고 쇠퇴해 진 상태이지만 그들의 왕성한 교역활동은 여전하였다. 칭기즈칸은 자신의 국가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위그르인들의 교역활동을 돌봐 주었다. 한편 그들도 칭기즈칸의 무력에 의해 교역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중세국가에서 서로 다른 종교의 이교도들을 적으로 보는 반면, 실사구시적인 정신으로 이교도를 통하여 국익을 증가하였고, 그 같은 개방정책으로 선진화된 문명과 각종 과학기술이 교류되었다. 또한 칭기즈칸의 사후에 호레이즘의 수도 사마르칸드를 점령하였을 때 종전의 섬태멸진 전법에 의해 대부분의 주민을 몰살시켰는데 기술을 가진 자들 즉 공예가나 직인들 3만명은 죽이지 않고 몽고 본토로 후송되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유럽에서 동방에 이르는 길목에는 각종 소국이 자리 잡아 통행하기가 곤란하였고, 중간 중간의 험한 길에는 온갖 길에 도적들이 들끓어 동서교류가 곤란하였으나 원대에 이르러 동서왕래가 활발해 졌으니 세계 인류사의 과학문명의 발전을 3세기 가량 앞당겼다는 평가를 듣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칭기즈칸 리더십의 마지막 비밀은 훌륭한 그의 참모에 있다.
그의 주위에는 많은 인재를 두어 각종 자문에 응하게 하였다. 그 중 하나가 야율초재(耶律楚材)이다. 그는 칭기즈칸이 두 번째로 금을 정벌할 때 중도의 성을 지키고 있던 26세의 늠름한 청년이었다. 그는 금에 의해 멸망한 거란족 요나라의 귀족이었는데 유불선 3교에 통달하고 모든 학문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이 자를 불러 칸은 말했다. "요와 금은 원수지간이다. 내가 금을 무찔러 그대의 원수를 갚았노라" 그러자 초재는 하나의 두려움도 없이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의 선조도, 나의 부친도 모두 금의 조정에 봉사하였다. 한번 신하가 된 이상에는 어찌 두 마음을 품고 주군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겠나이까?" 이 대답이 마음에 들어 그를 항상 곁에 두고 정치 상담역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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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왕 카네기의 리더십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
1. 칭찬과 감사의 말로 시작하라.
2. 잘못을 간접적으로 알게 하라.
3. 상대방을 비평하기 전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라.
4. 직접적으로 명령하지 말고, 요청하라.
5.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주라.
6. 아주 작은 진전에도 칭찬을 아끼지 말라.
7. 상대방에게 훌륭한 명성을 갖도록 해주라.
8. 격려해주라. 잘못은 쉽게 고칠 수 있다고 느끼게 하라.
9. 당신이 제안하는 것을 상대방이 기꺼이 하도록 만들라.
사람을 다루는 원칙
1. 비난이나 비평, 불평을 하지 말라.
2. 솔직하고 진지하게 칭찬하라.
3. 다른 사람에게 열렬한 욕구를 불러 일으켜라.
남에게 호감을 사는 요령
1. 다른 사람에게 순수한 관심을 기울여라.
2. 미소를 지어라.
3. 상대방에게는 자신의 이름이 그 어떤 것보다도 기분 좋고 중요한 말임을 명심하라.
4.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라. 자신에 대해 말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고무시켜라.
5. 상대방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라.
6. 상대방으로 하여금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게 하라. 단, 성실한 태도로 해야 한다.
자신의 의도대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방법
1. 논쟁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피하는 것이다.
2. 상대방의 견해를 존중하라. 결코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지 말라.
3. 잘못을 저질렀다면 즉시 분명한 태도로 그것을 인정하라.
4. 우호적인 태도로 말을 시작하라.
5. 상대방이 당신의 말에 즉각 "네, 네"라고 대답하게 하라.
6. 상대방으로 하여금 많은 이야기를 하게 하라.
7.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아이디어가 바로 자신의 것이라고 느끼게 하라.
8. 상대방의 관점에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성실히 노력하라.
9. 상대방의 생각이나 욕구에 공감하라.
10. 보다 고매한 동기에 호소하라.
11. 당신의 생각을 극적으로 표현하라.
12. 도전의욕을 불러 일으켜라.
행복하게 사는 비결.
첫째, 작은 것에 만족하라.
만족을 알아야 한다. 아직도 건강이 있고,
사용할 시간이 있고 가정이 있고 기회가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작은 것에 만족을 하는 사람은 결국 큰것에도 먼족을 한다.
작은 것에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큰 것에도 만족하지 못한다.
늘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간다.
둘째, 소박한 삶에 기쁨을 찾아라.
소박한 기쁨을 찾아야 한다.
물질에서 만족을 찾지 말고 부지런함과 성실함
그리고 깨끗함에 기쁨을 찾아야 한다.
소박한 삶에 기쁨을 찾는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다.
셋째, 기쁨을 만드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그속에서 기쁨을 만드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가난해도 웃는 이유를 찾을줄 아는 사람.
병들어도 행복해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그속에서도
기쁨을 만드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다.
돈 벌기 六訓
1. 마음 속에 당신이 원하는 돈의 액수를 분명하게 정하라.
돈을 무조건 많이 벌겠다는 식의 목표설정은 무의미하다. 구체적으로 정하라.
2. 원하는 돈을 받은 대가로 당신은 무엇을 지불할 것인지 결정하라.
이 세상에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보수는 아무 것도 없다.
3. 원하는 돈을 언제까지 얻고 싶은지 그 날짜를 정하라.
4. 소망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라.
그리고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망설이지 말고 곧 행동에 옮겨라.
5. 얻기 위한구체적인 돈의 액수, 얻기 위한 대가, 날짜,
구체적인 계획, 이상의 네 가지 사항을 종이에 자세히 적어라.
6. 종이에 적은 이 내용을하루에 두 번, 아침에 일어났을 때와
자기 직전에 큰소리로 읽어라.
이때 당신은 이미 그 소망을 실현한 것처럼 생각하고 믿어라.
카네기의 인간관계 三十訓
1. Don’t criticize, condemn or complain.
상대방의 의견에 비판, 멸시, 불평은 하지 마세요.
2. Give honest, sincere appreciation.
진솔한 이해로 다가가세요.
3. Arouse in the other person an eager want.
상대방이 원하고 바라는것에 귀기울여 보세요.
4. Become genuinely interested in other people.
진심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세요.
5. Smile! 웃어봐요!
6. Remember that a person’s name is to that person the sweetest and most important sound in any language.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듣기 좋은 소리라는걸 기억하세요.
7. Be a good listener. Encourage others to talk about themselves.
듣는쪽이 되보세요.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스스로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도록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세요.
8. Talk in terms of the other person’s interests.
상대방의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화제로 삼아보세요.
9. Make the other person feel important and do it sincerely.
진심어린 맘으로 상대방이 본인에게 정말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주세요.
10. The only way to get the best of an argument is to avoid it!
논쟁은 되도록 피하세요!
11. Show respect for the other person’s opinions. Never say, “You’re wrong”!
상대방의 의견에 절대로 "그건 아니야" 라는 말은 하지 마세요.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 주세요.
12. If you’re wrong, admit it quickly and emphatically.
자신이 틀렸을때는, 되도록 빨리, 똑부러지게 인정하세요.
13. Begin in a friendly way.
친근하게 다가가세요.
14. Get the other person saying “YES, YES” immediately.
상대방에게 "그렇지, 그렇지"하는 반응을 이끌어 내도록 해봐요.
15. Let the other person do a great deal of the talking.
자신보다 상대방이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16. Let the other person feel the idea is his or hers.
같이 나눈 이야기라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온전한 자기 생각이라고 느끼게 해주세요.
17. Try honestly to see things from the other person’s point of view. 진심으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도록 노력해보세요.
18. Be sympathetic with the other person’s ideas and desires.
상대방의 생각이나 욕구에 감정이입을 해보세요.
19. Appeal to the nobler motives.
더 가치있는 동기에 호소해보세요.
20. Dramatize your ideas.
생각을 극화해서 재밌게 풀어 나가보세요.
21. Throw down a challenge.
가끔 깊은 생각을 요구하는 질문을 해보세요.
22. Begin with praise and honest appreciation.
어떤말이든 칭찬과 진솔한 이해가 담긴 말로 말문을 열어봐요.
23. Call attention to people’s mistakes indirectly.
상대의 실수를 조용히, 살며시 지적해 주세요.
24. Talk about your own mistakes before criticizing the other person.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본인이 실수한 얘기부터 꺼내보세요.
25. Ask questions instead of giving direct orders.
직접적인 명령투의 말보다는 우회적인 질문을 해보세요.
26. Let the other person save face.
상대방이 무안해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27. Praise the slightest improvement and praise every
improvement. Be “hearty in your approbation and lavish in your praise”. 조그만 발전에도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세요.
28. Give the other person a fine reputation to live up to.
상대방에게 자신감을 주는 말들을 많이 해주세요.
29. Use encouragement. Make the fault seem easy to correct.
질책보다는 격려로 다가서세요.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들의 실수나 약점이 고치기 쉬운것이라 느끼게 해주세요.
30. Make the other person happy about doing the thing you suggest. 상대방이 행복해 질만한 일들을 권해주세요.
-해설
1. 비난·비판·불평·불만은 하지 마십시오.
입술의 30초가 가슴에서는 30년을 갑니다. ‘비난, 비판, 불평하지 마라’는 카네기 인간관계의 첫번째 원칙이자 유일한 부정적인 표현입니다. 굳이 ‘하라’가 아닌 ‘하지 마라’라는 금기어를 사용한 이유는 백해무익하기 때문입니다.
2. 솔직하고 진지하게 칭찬하십시오.
칭찬의 핵심은 바로 솔직함과 진지함에 있습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간과되기 쉬운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칭찬과 감사입니다. 음식을 먹을 때 주인에게 최고의 요리였다고 칭찬해 보세요. 동료가 당신에게 친절을 베풀었을 때,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팀을 위해 편의를 제공했을 때, 그것을 진지하게 인정해 주세요.
“정말 잘했어, 역시 너밖에 없어, 난 널 믿어.”
3. 사람들의 열렬한 욕구를 불러일으키십시오.
사람들의 열렬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려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죠. 만약 세일즈맨이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우리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면, 우리는 그 제품을 구입할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 가족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들이 갖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들이 성취하는 데 있어 무엇을 도와줄까? 이것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열렬한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4. 다른 사람에게 순수한 관심을 기울이십시오.
비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입니다. 어떤 사람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상대방에게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면 됩니다. 순수한 관심의 핵심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5. 미소를 잃지 마십시오.
미소는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입니다. 미소는 꽃이 피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의 ‘얼굴’에서 ‘얼’이란 정신, 사고, 사상, 이념을 나타내고, ‘굴’은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6.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사람의 신체 모두가 중요하겠지만 이름은 특히 그 사람을 상징합니다. 이름은 개인을 타인과 구분해줄 뿐 아니라 그 사람을 독특하고 중요한 존재로 만들어 줍니다. 사람들의 이름을 꼭 기억해서 불러 주세요.
그리고 이름을 부를 때 작은 칭찬도 곁들여 보세요.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방에게 특별한 감정을 심어줄 수 있답니다.
7. 경청하십시오7. 경청하라
경청은 바로 친구를 만들고, 경청을 통한 아이디어는 돈을 벌게 해 줍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면 다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고, 상대방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화 중에 조용히 듣고만 있는 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적절한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피터 드러커는 모든 경영관리 문제의 60% 이상은 잘못된 커뮤니케이션에서 기인한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는 데 실패하곤 하는데, 그 이유는 귀를 열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기보다는 ‘저 사람 말이 끝나면, 나는 무슨 말을 할까?’에 더 큰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나 직원의 말에 공감하면서 잘 경청해 보세요.
8. 고객의 관심사를 충분히 파락하십시오.
영업을 하려고 하지 말고 고객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고 좋은 것을 소개해 주려는 마음으로 비즈니스를 하면 잘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람이 되고 싶나요? 그렇다면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의 채널을 잠시 끄고, 다른 사람의 관심사에 채널을 맞춰 보세요.
9. 먼저 배려하십시오.
‘당신이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하라.’ 성서에 나오는 이 황금률에 따라 행동합시다.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나요? 상대방으로 하여금 중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갖게 해주면, 즉시 상대방과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카운터 직원에게 ‘훌륭한 점’을 찾아서 이야기해 주세요. 당신은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도 행복해질 것입니다.
10. 최선의 논쟁은 피하십시오.
논쟁에서 이겨도 감정을 얻어내지 못하면 결코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누구도 논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논쟁에서 진다면 진 상태로 끝나는 것이고, 이긴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지는 것입니다. 논쟁은 상대방에게 열등감을 주고,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 때문이지요. 논리적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11. 결코 고객이 틀렸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은 꽃이 태양을 필요로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의견 발표를 했는데, 당신이 생각하기에 그 사람이 확실히 틀렸다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해보세요. “고객님의 의견을 다른 방법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물론 제가 틀렸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종종 그렇지요.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을 함께 검토해 보시겠습니까?”
12. 잘못을 했다면 즉시 인정하십시오.
100명의 중의 1명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발휘합니다. 당신이 잘못을 했으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가지세요. 급하게 운전하다가 속도위반이 되었다면 경찰관에게 솔직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 보세요. 이것은 잘못이나 실수를 명확하게 해줄 뿐 아니라, 그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13. 우호적인 태도로 말을 시작하십시오.
당신이 만약 어떤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는데, 고객 서비스가 엉망이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장 소리를 치는 대신 먼저 우호적인 대화를 통해 시작하세요.
혹시 팀 내에 문제가 있으신가요? 그래서 마음이 흥분되어 있는 상태인가요?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안정시켜 보세요. 오늘 할 말이 있으면 내일 하시고, 내일 당장 호통 칠 일이 있다면 하루가 지난 다음에 우호적인 태도로 시작해 보세요.
14. 상대방이 당신의 말에 즉시 ‘Yes’라고 대답하게 만드십시오.
혹시 업무상 어려운 상대방을 만나셨나요. 그렇다면 먼저 그 사람이 확실히 ‘예’라고 대답할 만한 질문을 만듭니다. 계속해서 ‘예’라는 답변을 받아낼 수 있다면, 당신은 몇 분 전에 그 사람이 강력하게 부인하던 문제에 대해서도 ‘예’라는 대답을 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15. 상대방이 많은 이야기를 하게 하십시오.
당신은 자신의 성과를 주로 동료에게 이야기하는 편인가요? 진정으로 상대방의 협조를 구하고 싶다면 그로 하여금 많은 이야기를 하도록 도와 주세요. 사람들은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답니다. 먼저 상대방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십시오.
카네기의 실패학 十訓 - ‘성공적 삶을 위하여’ 중에서 -
카네기는 인간을 실패의 함정으로 몰아넣는 10가지 장애물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열등의식과 자기비하는 의욕을 저하시키는 독약이다.
2. 항상 지름길만을 선택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낭패를 당한다.
3. 타인과 환경에 책임을 전가하면 신용 마저 잃는다.
4. 목표가 불분명하면 고생에 비해 성과가 적다.
5. 독창력이 없이 남을 모방하면 잘해야 2등일 뿐이다.
6. 과거에 연연하는 사람의 앞길은 점점 암울해 진다.
7. 시작도 빠르고 포기도 빠른 사람은 공연히 주변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8. 판단력이 없으면 괜한 시간만 허비한다.
9. 치밀한 계획없이 무모하게 뛰어드는 것은 맨발로 불 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10. 실패한 후에 교훈을 얻지 못한 사람은 또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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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신격호 회장의 리더십
일본에서는 매출 3천억엔을 올리는 껌과 과자회사이지만, 한국에서는 매출 2조엔이 넘는 거대 재벌. 호텔, 백화점, 유원지 등 다각적인 사업으로 급성장을 이룬 롯데의 비밀은 무엇인가.
최근 발간된 일본의 시사주간지 <다이아몬드>는 롯데그룹의 창업주이자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신격호 회장(일본명:시게미쓰 다케오)과의 인터뷰 및 취재를 통해 롯데 창업 56년에 얽힌 비화를 게재했다.
다음은 이 주간지에 실린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종전 직후에 롯데를 창업하여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거대재벌을 키운 남자 - 언론에 거의 등장한 적이 없는 그룹 총수인 시게미쓰 다케오(신격호)가 여든한 살이 되어 자신의 체험과 경영철학을 적나라하게 밝혔다.
롯데 창업 56년은 그야말로 파란만장이라는 표현 그대로였다. 그가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은 전후에 점령군들이 껌을 씹고 있는 것을 보고 돈벌이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사업에 뛰어든 것이 계기였다. 껌은 간단하게 만들 수 있을 뿐더러 별다른 설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당시는 설탕을 배급받던 시기여서 아이들은 단 것에 굶주려 있었다.
물론 간단히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경쟁도 치열했다. 도쿄에만 1백50~1백60사가 있었다. 그래서 다음에는 초콜릿으로 눈을 돌렸다. 초콜릿은 과자업계에서는 가장 매출이 많아서 이것을 하지 않는 한 중소기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초콜릿 사업에는 메이지(明治製菓), 모리나가(森永製菓)라는 양대 산맥이 있었다. ‘달걀로 바위치기’라며 은행은 물론이고, 사내에서도 반대가 있었다. 설비투자에 16억엔 정도 들었지만 은행은 도와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상사(商社)에 부탁해서 간신히 조업할 수 있었다. 만일 초콜릿 사업이 실패한다고 해도 껌으로 올린 수익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은 서 있었다.
신 회장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1941년. 18세라는 젊은 나이였다. 종전 후인 47년에 츄잉껌 제조를 시작하여 다음 해인 48년에 현재의 롯데를 창업했다. 껌 업계에서 최고였던 해리스를 제치고 64년에는 그토록 바라던 초콜릿 시장에 뛰어 들었다. 그 후 메이지, 모리나가를 추격하여 84년에는 드디어 일본 국내 과자업계의 선두로 나섰다. 58년에는 친동생이 한국 롯데제과를 설립, 일본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한국에 쏟아부어 유통과 엔터테인먼트를 기둥으로 하는 거대재벌의 태동이 시작된다.
한국에서 처음에는 식품회사가 아니라 중화학공업을 하고 싶었다. 일본의 공업화를 지켜보고 한국에서도 같은 순서로 진행될 거라 생각했고, 과자는 장래성이 없었다. 과자로는 선두기업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석유화학산업 참여를 검토했으나 한국정부가 지금의 LG를 지정하는 바람에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정부가 제안한 것이 “제철을 하지 않겠나”는 것이었다. 제철사업에 관한 것은 생각도 해 본 적이 없고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알아보니 막대한 설비자금이 필요했다. 당시 하치만(八幡)제철에 상담을 하러 가자 “음, 개인이 하기엔 무리가 아닐까요”란 말을 들었다.
하지만 정부의 요청도 있어서 1년 동안 일본의 제철공장을 전부 보러 다녔다. 미국이나 유럽에도 갔다. 그 결과 연산 1백만톤 규모의 설비라면 충분히 경쟁력도 있고, 은행의 융자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정부가 “제철은 국가에서 하기로 했으니 이제 됐다”고 하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정부에서 제안한 것이 호텔사업이었다. 정부의 관광공사가 경영하는 ‘반도호텔’이란 것이 있었는데, 제대로 일을 못해서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떻게든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호텔도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제철 때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세계 일류 호텔에 전부 묵어 보았다. 호텔사업이란 어려운 것이다. 일본도 그렇지만 세계를 둘러보아도 호텔 단위로 이익을 내는 곳은 상당히 적다. 단 한국이라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전쟁으로 서울 시내는 폐허 상태라 일류호텔 같은 건 없었다.
신 회장의 경우 부탁을 받아서 시작한 사업이 많다. 한국의 다른 재벌들은 돈을 빌려 사업을 키워나갔지만 그는 ‘소심’했다. 호텔사업은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의 직접적인 요청이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신 회장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마음에 들었던 일본 제국호텔 본관의 외벽과 같은 인도산 사암을 구하기 위해 사원을 인도로 파견해서 코스트를 10분의 1로 줄였다.
덧붙이면 현재 치바 롯데 마린스 야구단 매입을 부탁한 것은 ‘쇼와(昭和)의 요괴’라 불린 전 총리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였다. 신 회장의 차남 결혼식에는 기시 전 총리 이외에도 후쿠다, 현직 총리였던 나카소네 등의 유력 정치가가 참석하여, 한일 양국에 강한 정치적인 영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신 회장은 아직 일본에 귀화한 상태가 아니다. 한국 국적 그대로인 것. 한일 양국에서 적절히 다른 모습을 보임으로써 한국에서의 사업 다각화에 매진했다. 호텔 다음은 백화점 업계 진출. 그리고 89년에는 도쿄 디즈니랜드에 대항이라도 하듯이 롯데월드 개장에 나선다.
유원지를 중심으로 호텔이나 백화점, 쇼핑몰이 있는 시설이 있다면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아이들과 놀러올 수도 있고 주부들도 쇼핑할 수 있다. 주차장도 충분히 만들어서 모든 것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으면 편리하지 않은가. 하지만 롯데월드의 구상을 이야기하자 다시 사내에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런 곳에 성인 남자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캐나다의 에드먼턴이란 곳에 그가 생각한 것과 같은 상업시설이 오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추운 겨울날 신 회장은 직접 그 곳으로 갔다. 에드먼턴은 인구 40만 정도의 도시인데, 일요일에는 호텔이나 쇼핑 몰에 10만 명이 몰렸다. 영화관이나 유원지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신 회장은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롯데월드 주변에 4만 평 정도의 부지를 샀다. 총투자액은 3만달러 정도. 당시로서는 큰 투자였지만 어중간한 규모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었다. 만일 실패한다고 해도 일본에서 벌어들인 이익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 서울올림픽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서 우선 호텔을 짓고, 그 다음해에 유원지를 오픈했다. 그 후 롯데월드에 있는 모든 시설의 내장객 합계를 보면 많은 날에는 30만 명 이상 온 날도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숫자였다.
어쨌든 롯데월드의 대성공으로 한국 롯데는 90년대에 황금기를 맞이한다. 호텔, 백화점, 유원지 등의 매출 총액은 2조엔을 돌파. 지금은 일본 롯데 매출 규모의 일곱 배 가까이 늘어나, 효자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의 사업욕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현재 롯데월드 옆에 제2의 롯데월드 건설을 검토중이다. 더구나 도쿄의 가사이에도 롯데월드 도쿄를 구상하고 있다. 일본을 발판으로 삼아 한국 6위의 재벌그룹을 키운 신 회장의 시선은 중국, 인도, 러시아까지 미치고 있다.
롯데그룹의 급성장 배경에는 철저하게 계산된 ‘방정식’이 존재한다. 한국 롯데의 강점을 새로이 검증하여 일본과 한국 기업의 얼굴을 때와 상황에 맞게 교묘하게 달리한 사업 확대 수법의 비밀에 접근했다.
1997년 12월3일, 국제통화기금(IMF)는 한국 정부에 대해 2백10억달러의 자금지원을 결정한다. 2001년 8월까지 IMF 체제하에서 한국은 구조개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강한 정치적 연줄과 논리에 안주했던 현대나 대우와 같은 거대 재벌조차 해체의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아시아 위기의 폭풍에도 꿈쩍하지 않는 재벌도 있었다. 바로 당시 한국 재벌 10위였던 롯데. 아시아 위기 후 한국정부는 각 기업에 일률적으로 부채비율을 2백% 이하로 내릴 것을 요구했다. 2004년의 랭킹에서는 많은 재벌이 경영파탄, 혹은 정리로 소멸한 경우가 많아 97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와중에도 롯데는 10위에서 6위로 오르며 부채비율도 2백17%에서 67%로 개선됐다. 삼성 수준의 재무상태다.
롯데는 현재 한국에서만 2조엔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본가’인 일본 롯데의 일곱 배에 달하는 그룹을, 실질적으로 보면 4반세기 만에 쌓아올린 것이니 놀라울 뿐이다. 일본에서는 식품, 음식 부문이 압도적인 주력사업이지만, 한국에서는 약 2조엔의 매출 중 식품 부문은 겨우 18%에 지나지 않는다. 매출의 대부분은 롯데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유통 부문, 롯데호텔이나 롯데월드와 같은 관광 레저 부문, 그리고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공업 부문이다. 덧붙이자면 슈퍼마켓을 포함한 유통 부문이나 식품 부문, 호텔의 연간 생산량은 국내 최고다.
한국의 세븐일레븐 운영은 롯데가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공업 부문에서는 캐논이나 후지필름과의 합병회사와 알루미늄 제련 자회사까지 있다. 석유화학이나 건설 자회사의 매출은 1천억엔대를 넘는다.
한국에서의 사업은 58년 신 회장의 친동생이 설립한 제과회사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후 친동생과의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고, 65년의 한일 국교정상화, 다음해인 66년의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 협정체결을 계기로 한국의 롯데는 신 회장의 단독기업으로 재출발한다. 전환을 맞이한 것은 79년이다. 이 해에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적인 의뢰로 서울시 중심부의 소공동에 롯데 호텔을 오픈. 계속하여 백화점과 호텔 신관 등을 건설하여 이 일대를 ‘롯데 타운’으로 개발해 간다.
신 회장이 호텔과 백화점이라는 두 개의 간판을 궤도에 올리고 다각화에 성공한 원동력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해할 수 없는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사업화하기 전에 철저하게 조사한다’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돈을 빌린다’는 그의 독특한 경영철학이다. 두 번째는 한-일의 용도를 달리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재일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연줄을 최대로 활용한 그는 한-일 경제발전의 ‘시차’에 눈을 돌렸다. 호텔, 백화점의 경영 노하우는 일본에서는 이미 상식이 되어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최첨단의 노하우였다. 일본 기업인 롯데의 유리함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시게미쓰는 일본에서 번 이익을 한국에 투자하고, 일본에서 스카우트한 인재를 한국에 보내 사업을 확장했다 신 회장의 측근은 “롯데에게 일본은 옷의 오른쪽 주머니, 한국은 왼쪽 주머니와 같다”고 말한다. 오른쪽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이 줄어들어도 왼쪽 주머니로 옮겨진 것뿐이기 때문에 그 옷을 입고 있는 신 회장으로서는 아무 영향이 없는 것이다. 이 양쪽 주머니를 연결하는 존재가 한국의 ‘호텔 롯데’다. 한국의 그룹 기업 중에서 호텔 롯데만이 100% 일본 자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 롯데의 자금력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롯데호텔은 서울과 부산, 롯데월드 건설로 5억달러의 차입이 있지만, 그 반 이상은 UFJ은행(구 산와은행)과 미즈호은행(구 다이이치칸교은행)에서 조달했다. 나머지도 전부 일본 은행에서 빌렸다. 당시 일본 은행의 대출금리는 4~8%.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18~19%(시장금리)로 고금리였다. 일본에서 조달하는 것이 지불이자를 낮게 유지할 수 있다. 더구나 일본에서 빌린 1억엔은 한국에서는 그 몇 배의 가치가 있다. 보통 한국기업은 상대가 안 된다.
한국에서는 ‘외국기업’으로서의 특권도 이용할 수 있다. 66년 한국은 외자도입법을 제정하여 풍부한 기술력, 자금력, 판매력을 가진 외국기업 유치에 나섰다. 이 법률을 이용하면 건설관련 자재의 관세나 이익에 관계되는 지방세, 소득세가 일정기간 면제된다. 롯데는 호텔 건설 때 이 외자도입법에 따른 면세 혜택을 모두 누렸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100~300%나 드는 건설자재의 수입관세가 제로가 됐다고 한다.
일본기업과 한국기업으로서 각각 다른 얼굴을 사용하는 절묘한 방법으로 롯데를 한국 6위의 재벌로 끌어올린 신 회장의 나이는 여든이 넘었다. 철저하게 외부와의 접촉을 피해왔다. 검은 링컨컨티넨탈을 타고 오전 10시에 회사에 나와 비서도 없이 눈에 띄지 않게 안내 데스크를 지나친다. 홀에 서있는 방문객 중에 이 노인이 총자산 3조엔 롯데그룹의 총수라는 것을 알아보는 사람은 적다.
짝수 달은 일본, 홀수 달은 한국에서 일한다는 그의 사령탑은 롯데호텔 신관 34층의 스위트룸. 한국에서는 여기에 틀어박혀서 부하들에게 차례로 지시를 내린다.
98년 롯데는 한국에서 종합 슈퍼마켓 업계에도 본격적으로 참가하여 6년 동안 32개 점포를 집중적으로 냈다. 까르푸 같은 외국자본과의 과열된 경쟁을 뚫고 순식간에 업계 2위에 올랐다. 한일의 ‘시차’를 이용한 폭발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두 개의 국적을 가진 이색 재벌의 팽창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신격호 회장의 활동은 영원할 수 없다. 올해 5월 롯데는 집행임원제를 도입했다. 새로 집행임원이 된 8명 중 3명은 차기 사장으로 주목받는 신동주(시게미쓰 히로유키)의 참모라는 말이 있다. 업계의 억측을 부른 것도 당연했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롯데 그룹을 통솔해 온 신 회장도 이제 여든하나. 인터뷰에서 신 회장은 “(도쿄 롯데월드 구성은) 어떻게든 생전에 실현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과자로 고수익을 올리는 모델을 구축해, 일본에서 축적한 이익을 한국에 투자함으로써 두 나라에 걸친 거대 기업을 일구었다. 카리스마적인 경영철학, 선견지명을 갖춘 그가 없었다면 롯데의 급성장은 없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포스트 신격호 체제에 대한 불안감이 지금 롯데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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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리더십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코노미의 어원이 된 '에코노미아(Economia)'라는 말을 사용한 인물이다. 그는 에코노미아를 '가정이나 국가를 꾸려나가기 위해 필요한 자연스러운 경제 활동'으로 규정했다. 그런가 하면 돈벌이 자체가 목적인 활동을 크레마티스티케' (Chrematistike)라고 규정하고 이를 부자연스러운 활동이라고 불렀다. .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적군을 정복한 사람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정복한 사람이 더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가장 어려운 승리는 곧 자신에 대한 승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뛰어난 점으로 연결된다. 개인적으로 욕망의 절제와 중용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는 정책적으로 시장 참여자의 어느 부분을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불만을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존속을 위해서 규제는 필요한 도구라는 것을 지적했다는 점이다.
회계부정과 관련하여 파산보호 신청을 한 광케이블 통신업체인 글로벌 크로싱이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의 부사장이었던 사람의 진술에 따르면, 최고 경영진들은 수천 명의 직원을 해고시키면서 파산보호신청을 하면 그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직원들은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고위 간부들은 회사를 떠나면서 상당한 퇴직금과 보너스를 챙겨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의 행위는 합법적인지 모르지만, 비윤리적인 처사임에 분명했다. 이것은 그대로 방치될 수 있을까?
우리가 '사람들 사이의 마땅한 신뢰 관계'를 의미하는 윤리를 생각하게 될 때, 돈이라는 경제적 힘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사회적 힘의 크기 사이에는 매우 분명한 항등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돈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주도하면 사회는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고 타락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사람 사이의 신뢰가 사라지면, 자본주의 역시 설 땅을 잃게 된다.
"너희가 사는 땅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사는 땅에는 너희 동족으로 억눌리고
가난한 사람이 어차피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의 손을 뻗어 도와 주라고 이르는 것이다." (신명기)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유혹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리고 어리석고도 해로운 온갖 욕심에 사로 잡혀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라." (디모데오 전서 )
성경 역시 부의 추구는 경제적인 활동이 아니라, 부를 추구하는 자가 도덕성을 희생해서 얻은 사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부의 추구가 사회라는 큰 집단을 활력 있게 만들고 융화 시키는 매커니즘의 일부로 인식되기 이전에,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을 어겨서는 안된다는 교훈 즉 윤리학의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인간의 윤리적 행동과 관련하여 그 당위성에 대하여 검토해 온 생각들을 바탕으로 이제 '경영자 혹은 직장인은 모름지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정리해 보자. 이것이 지금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을 사유한 목적이 되는 것이다. 기업 경영의 우선적 과제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윤리경영은 기업의 명성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력을 미친다.
윤리경영이란 무엇일까? '미덕을 따르는 영혼의 활동'으로서 경영을 이해할 때,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마 다음과 같은 간결한 세 가지 핵심적 개념에 대해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첫째, 개인으로서 자신의 이해 관계를 조직의 이해관계와 일치시키는 것이다. 경영자는 경영자대로, 구성원은 구성원대로, 개인적 이해와 조직의 이해를 병존 시킬 수 있는 정신적 태도와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누구든지 사회적 존속을 위해 규제되어야 한다. 누구도 개인적 이해를 조직의 이해 위에 놓아서도
안되고, 반대로 조직은 그 구성원의 희생을 강요해서도 안된다. 조직의 구성원들은 장기적으로 조직 속에서 희생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번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기업은 스스로 시장의 일부가 아닌 좀 더 커다란 지역공동체의 일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땅에서 벌었으니 그 이익을 이 땅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훌륭한 직원은 반드시 먼저 훌륭한 기업 시민이어야 한다. 미덕이 곧 행복이기 때문이다.
셋째, 기업의 활동에 관련이 있는 모든 사람들 즉 직원, 고객, 주주, 관련업체 종사자, 지역주민 등에게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보, 경영 성과에 대한 정보, 환경 보호적 정보 등 중요한 경영 정보에 대한 투명하고 적절한 공개 방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법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이 윤리적이라는 말로 대치되어서는 안된다. 세금을 낸다 하여 지역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다. 경영 역시 그 속에 경영의 도를 가지고 있는 어진 상술이어야 한다. 경영모델이
모색되고 온갖 경영적 실험이 행해져야 한다. 이것이 혁명적인 세계 속에서 기업이 번성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실험은 반드시 하나의 게임의 원칙, 사회적 신뢰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윤리 경영은 이 방향으로 기업을 인도하는 등불이고 경전이며 행동 철학이다. 스승 플라톤이 이데아의 세계를 추구한 이상주의자였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뛰어난 현실주의자였다. 지나치게 고삐가 풀려 스승으로부터 버림을 받기도 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인적으로 불행한 인생을 살았지만, 결국 스승의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의 적절한 조화를 모색함으로써 스승을 빛나게 하였다. 그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 주는 충고는 이익을 구하더라도 '미덕을 따르는 영혼의 활동'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한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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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조 강희제의 리더십(유비, 누르하치 등의 인물 포함)
청왕조의 태조 누르하치가 만주 일대를 평정한 후 2대 태종 홍타이시 때를 거쳐 3대 세조 순치제에 이르기 까지 만주족 전사들은 명왕조와 전쟁을 계속했다. 결국 명왕조를 군사적으로 복속은 시켰지만 한족들의 자존심은 만주족 출신의 청왕조에 봉사할 수 없다는 입장이 완강했다. 그 완강한 민족적 저항의 벽을 뚫고 거대민족 한족의 에너지를 새로운 국가 건설에 동원해 내는 믿기지 않는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이 바로 강희제다. 아울러 그는 아들 옹정제, 손자 건륭제에 이르는 3대 130여 년 간의 찬란했던 전성기를 구가하게 만든 장본인이자 시발점이었다. 강희제는 타이완과 티벳을 복속시켜 오늘의 중국 지도를 그린 인물이다. 또 그는 자기 모국어가 아닌 중국어를 자라면서 몸소 익히고 오늘날 '강희자전'으로 더 잘 알려진 방대한 중국어 사전을 편찬해 냄으로써 오늘의 중국어가 설 기반을 확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힘으로 영토를 넓힌 무력 군주이면서 동시에 문화적 고풍을 진작시킨 탁월한 문화 군주였다. 한마디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믿기지 않는 문무겸전(文武兼全)의 리더였던 것이다. 만주족 전사들이 명왕조를 무너뜨리고 베이징에 입성해 중국 전체를 평정하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분명 '기적'이었다. 하지만 그 기적을 지속시켜 청왕조를 단단한 반석 위에 올려 놓고 '강희제-옹정제-건륭제'로 이어지는 3대 130여 년 동안 지속된 청왕조의 찬란한 전성기를 연 것은 기적 그 이상의 일이었다. 강희제는 과연 어떻게 15만명 남짓한 변방의 소수민족이었던
만주족을 이끌고 당시에 이미 인구 1억 5000만 명이 넘는 거대민족 한족을 268년간이나 통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일까? 게다가 61년이란 긴 세월동안 황제로서의 리더십을 지속해서 발휘할 수 있었던 그 믿기지 않는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또 그 유례가 없는 문무겸전의 믿기지 않는 리더십의 비밀은
어디에 있던 것일가? 이런 물음을 던지며 '강희제 리더십'의 실체와 만나 보도록 하자.
천자(天子)로 불린 중국의 황제는 특별한 존재였다. 오직 황제만이 얼굴을 남쪽으로 향해 남면(南面)할 수 있었고, 모든 신하들은 북쪽으로 얼굴을 향해 그를 우러러 보아야 했다. 또 황제만이 붉은 먹물로 글씨를 썼으며 모든 신하는 검은 먹물만 써야 했다.
그 뿐만 아니라 '황제'라는 글자는 어떤 문서에서나 줄을 바꾸어 새로 시작해야 했고 다른 줄의 첫머리보다 반드시 올려서 써야만 했다. 더구나 아무리 높은 대신이라 할지라도 천자를 알현하기 위해서는 황성의 첫 번째 문인 대청문을 지나 모두 7개의 문을 거쳐 약 2킬로미터의 거리를 걸어가야 했다. 그런가 하면, 예로부터 천자는 일일만기(一日萬機), 곧 하루에 1만 건의 사무를 처리한다고 이야기되었다. 다소 과장된 것 같지만 실제로 황제의 하루는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매일 새벽 4시에 기상해서 선대의 가르침을 담은 조직과 보훈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침 7시부터는 대신들과 만나서 정치를 논의하고 연이은 접견을 오후까지 계속했다. 늦은 오후에는 학자들을 불러 경서와 역사강의를 듣고 저녁 7~8시부터는 지방관들이 보내온 주접(奏摺; 관료들이 황제에게 직접 보고하는 일종의 비밀통신)을 꺼내 읽어 이것에 대한 답장 즉
유지를 썼다. 결국 제대로 하려면 엄청난 격무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중국 황제의 자리였다. 청왕조를 연 태조 누르하치와 그 다음 대인 태종 홍타이시까지는 만주에서 살았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들판을 쏘다니며 사냥을 일삼았고 조정의 격무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3대 세조 순치제가 명왕조를 멸망시킨 뒤 베이징에 입성한 후 그는 스물셋 한창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그 순치제의 아들로 청왕조의 4대 황제가 된 이가 바로 성조 강희제이다. 여덟살 나이에 황제에 오른 강희제는 5년간의 섭정체제를 거친 후 재임 6년차부터는 직접 통치를 시작했다. 그리고 61년동안 청왕조를 이끌었다. 사상 유례없이 롱런한 황제였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사실 중국의 황제들은 대부분 장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강희제가 말년에 자신의 상유(上諭), 곧 미리 써 놓은 유서에서도 언급했듯이 중국황제들 중에 흰수염이 날 때까지 살아있던 경우가 많지 않았다고 하지 않던가. 그만큼 중국 황제들은 장수하지 못하고 대부분 단명에 그쳤다. 진시황제(BC256~BC210)가 불로초를 찾으라고 그토록 독려했다지만 그 역시 환갑을 넘기지 못했다.
대부분의 중국 황제들이 장수하지 못하고 단명한 까닭은 두 가지 상반된 이유로 해석된다. 하나는 격무 탓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나친 방사(房事) 탓이다. 국정에 충실하려던 황제의 경우에는 격무에 시달리다 죽기 일쑤였고 환관과 대신들한테 실질적인 국정을 찬탈 당한 황제의 경우에는 그저 궁안에서 볼모나 마찬가지의 신세에서 방사(房事)나 즐기다 조로(早老)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강희제는 이 두가지 함정을 모두 피해갔다. 그는 환관과 대신들에 둘러 싸인 명목상의 황제가 아니었다. 그는 격무에 시달렸지만 문약(文弱)에 빠지지 않고 광야를 누비던 만주족의 핏줄답게 틈나는 대로 사냥을 즐기며 그것을 견뎌낼 만한 체력을 유지했다.
말년에 가서 다소 몸이 쇠하긴 했지만 그래도 강희제는 강건한 인물이었다. 칭하이(淸海)에서 돈도브의 군대를 격파하고 티벳으로 진격해 그것을 복속시켰던 것이 강희 59년 즉 그의 나이 67세 때였으니 말이다. 강희제는 대단한 호기심의 소유자였다. 그는 사물들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탐구하는 것을 즐겼다. 그래서 그는 유달리 천문학, 지도제작, 광학, 의학, 대수학 등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아울러 그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좋아했다. 서방에서 온 예수회 선교사들과도 자주 어울리곤 했다. 그는 선교사들의 공학적, 의학적, 예술적, 천문학적 기량을 높이 평가하고 이들을 적극 활용했다. 사실 강희제는 청소년기가 되어서야 한자를 배웠지만 열심히 한학을 배운 덕에 왠만한 학자 못지않은 상당한 한학 실력을 갖추었고 글씨도 달필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소림사 현판도 강희제의 글씨라고 한다. 더구나 강희제는 주자학과 수학, 자연과학 등에 정통한 호학인(好學人)으로 4만 9000여 자가 담긴 중국 최고 · 최대의 사전인 <강희자전(康熙字典)>을 비롯해 당시(唐詩)를 모은 <전당시(全唐詩)>, <주자전서>와 <성리대전> 등을 편찬한 탁월한 '문화군주'였다. 게다가 강희제는 학구열까지 대단한 사람이었다. 책을 보다가 피를
토할 정도로 면학에 힘썼는가 하면 한인 출신의 유학자에게서 주자학을, 예수회 출신의 서양인 신부로부터 자연과학을 전수받는 등 배움에 있어서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바로 강희제의 이런 호학과 향학열 그리고 호기심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가 청왕조의 문화적 전성기를 이뤄낸 바탕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강희제는 결코 문약(文弱)에 기운 황제가 아니었다. 그는 대단한 무력을 과시한 황제이기도 했다. 강희 20년인 1681년에 '삼번(三藩)의 난'을 진압함으로써 명왕조의 잔존세력을 일소하였고 2년 후인 1683년에는 타이완을 점령해 병합했다. 또 그 2년 후인 1685년 강희 24년에는 러시아 군대를 패퇴시키고 알바진 요새를 공략했으며,
그 후 네르친스크 조약(1689)을 통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시켰다.
그런가 하면 1696년과 1697년에는 준가르 전사들의 지도자 갈단을 정벌하러 나서 결국 그를 자결케 했고 사망하기 두 해 전인 1722년, 강희 59년에는 티베트를 공략해 복속시켰다. 현재 러시아 다음으로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있는 중국의 지도는 이 시기에 대체적인 윤곽을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강희제의 치세를 세계사적으로 비교해서 보면 이렇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즉위한 것은 강희 21년 즉, 1682년이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가 사망한 것은 강희 54년 즉, 1715년이었다. 결국 강희제의 시대는 유럽의 절대주의 왕정과 맞물리는 시기였다. 하지만 당시 청왕조는 러시아는 물론 유럽 최강이었던 프랑스보다도 국부(國富)면에서 앞섰다. 한마디로 강희제는 그의 치세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강대한 나라의 CEO로 61년을 지낸 셈이었다. 바로 문무겸전의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말이다.
청왕조를 세운 만주족과 그 지배를 받게 된 한족 간에는 먹거리가 사뭇 달랐다. 더구나 청왕조 초기에는
이른바 만주족의 만식(滿式) 먹거리와 한족의 한식(漢式) 먹거리 간의 차이 만큼이나 만주족과 한족간의 민족적 갈등과 불화도 적지 않았다. 더구나 만주족은 15만여 명에 불과했고, 한족은 그 100배가 넘는 1억5000여만 명이었다. 청왕조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한족의 참여가 절실했다. 그런 이유로 강희제는 만주족과 한족 간의 갈등과 불화를 씻고 민족간 화해와 통합을 이루기 위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고민 끝에 던져진 강희제의 카드는 언뜻 보기에 의외의 것이었다. 다름 아니라 상호 이질적인 만주족 먹거리인 만식과 한족의 먹거리인 한식을 한데 모아 놓으라는 것이었다. 강희제는 만주족과 한족간의 민족적 화해와 화합을 이루기 위해 전국적으로 만주족과 한족의 고유한 먹거리들을 모아 올리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요리 비법, 색상, 맛과 향, 건강식의 네 가지 기준을 적용해 108가지의 음식을 최종 선발해 차려 놓았다. 그리고 이 음식들이 차려진 자리에 만주족 출신과 한족 출신 관료들을 함께 불러모아 대연회를 연 것이다. 이것이 이름하여 만한전석(滿漢全席)'이다.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드라마 '대장금'에서도 '만한전석'이 선보인 적이 있다는데 시대적 배경으로
보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게다가 '만한전석'은 중국황실의 음식연회이기에 그것이 조선의 궁중에서 재연될 리도 만무했다. 어쨌거나 시청률 50%를 넘는 초인기 드라마에서 등장했던 그 '만한전석'의 진정한 유래가 다름아닌 강희제의 피나는 만주족-한족 통합노력의 결실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을 듯 싶어 사족을 달았다.
강희제가 만한전석을 통해 얻고자 한 것은 한마디로 음식의 나눔을 통한 민족간의 화해와 통합이었다.
먹거리의 통합을 통해 만주족과 한족간의 화합을 꾀한 그 발상이 참으로 탁월하지 않은가. 아무리 서로 으르렁거리고 질시하다가도 먹는 자리에 와서는 서로에 대해 너그러워지고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강희제는 바로 그것을 노렸을 것이다. 결국 강희제의 이런 감각있는 화해와 통합의 노력 덕택에 15만 명 남짓했던 만주족이 당시 1억 5000만 명이 넘는 한족을 268년간이나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니, 단지 지배한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만주족의 에너지와 한족의 에너지를 뒤섞어 내어 대중화
(大中華)의 시너지를 이뤄낸 것이 아니었을까?
강희제가 중국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군(名君)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독특한 통치 철학에 힘입은 바가 컸다. 강희제의 통치 철학은 한 마디로 '국궁진력(鞠躬盡力)'으로 요약된다. '국궁'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구부린다는 뜻이고, '진력'은 온 힘을 다한다는 의미이다. 결국 '국궁진력'이란 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구부려 온 힘을 다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 해석해 봐도 이 말은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황제가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당시 동아시아 왕조 국가에서는 그 어디서도 있을 수 없는 발상이었다.
당연히 신하들이 "국궁진력이란 말은 신하가 쓰는 말이므로 황제가 쓰기에는 적당치 않다."며 진언에 진언을 거듭해 올렸지만 강희제는 뜻을 굽히지 않고 '국궁진력'의 말을 고집했다. 그리고 오히려 한술 더 떠 "짐은 하늘의 종이기 때문에 어떤 일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군주라는 것은 죽을 때까지 쉴 수가 없는 것이다." 면서 자신의 황제로서의 소임이 묵묵히 하늘과 백성을 향해 '국궁진력'을 실천하는 것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모든 것과 구별되고, 모든 것 위에 있으며, 모든 것을 다 가진 황제가 '몸을 구부린다'는 의미의 '국궁'을
입에 담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던 시절에 강희제는 스스로를 하늘과 백성의 종이라고 여기며 죽는 날까지 '국궁진력'의 자세를 견지하고 이를 실천했던 것이다. 이처럼 진심으로 '국궁진력'을 다했던 그였기에 강희제는 오늘날에도 장쩌민과 후진타오 주석 등 중국 지도부가 "신중국 건설을 위해 강희제를 배우자."고 합창할 만큼 감동어린 리더십의 전형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국궁진력' 이야말로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 곧 '섬김의 리더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강희제는 죽기 5년 전인 1717년 '고별상유(上諭)' 즉 사실상의 유언을 남겼다. 근 60여 년의 치세를 돌아보며 남긴 고별상유 치고는 너무나도 짧은 글이었지만 강희제는 그 짧은 상유를 남기기 위해 10년동안 고민했노라고 고백하고 그것도 모자라 "간을 드러내고 쓸개를 끄집어 내며 오장을 보여주는 것처럼 진심을 털어 놓았노라."고 말하고 있다. 거기서 강희제는 "자신의 마음을 천하를 보살피는 데 다 쏟아 부었노라."고 고백한다. 과연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리더가 몇이나 될까? 특히 '고별상유' 중에서 "한 가지 일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온 천하에 근심을 끼치고, 한 순간을 부지런하지 않으면 천대 · 백대에 우환거리를 남긴다."는 구절은 오늘의 리더들이 진정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경구가 아닐까 싶다. 진정한 리더는 언젠가 고별상유 곧 자기만의 유서를 미리 남겨야 할지 모른다. 그 때 구구한 변명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가는 일에 대한 짧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남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진짜 리더다. 굿 리더(Good leader)를 넘어선 그레이트 리더(Great leader)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희제는 뒷마무리가 깔끔하고 끝이 좋은 그레이트 리더였던 셈이다. 60년 넘게 천하를 이끌었지만 "한 가지 일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온 천하에 근심을 끼치고, 한 순간을 부지런하지 않으면 천대 · 백대에 우환거리를 남긴다."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그레이트 리더, 강희제.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신중국 건설을 위해서는 강희제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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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사 리더들의 리더십
1. 유비(촉) : 무한한 배려를 바탕으로 한 온정주의
1) 병법에 약하고 정치수완도 없었습니다.
2) 전쟁에서 승률은 20%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3) 주변 인재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4) 기강이 쉽게 해이해 집니다. : 유비 사후 역사에서 사라짐
2. 조조(위) : 능력 위주의 엄격한 선별주의
1) 전쟁에서 80%의 승률로 승률이 높은 리더
2) 엄격한 기강은 불필요한 반발을 샀습니다.
3) 진심어린 충성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인한 충성이었습니다.
4) 나라의 운명이 길게 가지 못했습니다.
3. 손권(오) : 장점은 높이 평가하고 단점은 눈감아주는 동기부여주의
1) 장점을 인정하면서 단점을 가혹하게 질타하지 않았습니다.
2) 인재를 끌어 모으고 내부 반발을 잠재웠습니다.
3) 가장 오래 건재할 수 있었습니다.
4. 순자(荀子가 가르친 리더의 마음가짐 6가지
1) 지시는 권위 있고 엄격하게 하라
2) 상벌은 신념을 가지고 하라
3) 진지와 창고는 견고하게 보존하라.
4) 부대 이동은 시중하게 고려하되 실행은 빠르게 하라.
5) 적국의 동태를 항상 주시하라.
6) 확실한 전략만 실행하라.
(리더가 평범하면 옳고 그름을 분명히 이야기 해주고, 리더가 무대포 형이면 장점만 보도록 노력하고 단점은 덮어두라는 등 여러 종류의 리더를 이겨내는 리더가 진정한 리더라는 가르침)
5. 十八史略에서 유방과 항우의 대결에서 유방이 승리한 원인
1) 전략에 있어서는 장량만 못하고
2) 내정에 있어서는 소하에 못 미치고
3) 전쟁에서는 한신을 따라가지 못했다
4) 그러나 그러한 인재를 다스리는 능력이 있었으나
5) 항우는 곁에 있는 범증 한명도 다스리지 못했다.
청 태조 누르하치
누르하치라는 이름은 여진어로‘멧돼지 가죽’이라는 뜻이다. 멧돼지의 가죽은 질기다. 또한 그것만큼 뜨거움과 차가움을 잘 이겨내는 물건도 없다. 누르하치는 천만가지의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내고 자기 부족을 이끌어 나가라는 염원에서 그의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유목생활은 하루도 빠짐없이 속도와의 전쟁이다. 말의 기동력에 민첩성을 부여하기 위해 누르하치의 여진족 전사들은 가볍게 몸을 치장했다. 그들은 몸놀림을 편하게 하기 위해 부드럽고 가벼운 재질로 갑옷을 만들었다. 당시 여진 사람들의 갑옷 재료로는 화살에 잘 뚫리지 않는 조선종이가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 역사의 일부인 북방 역사를 통해 배우는 가장 핵심적인 가치가 바로 이 점이다. 길들여지지 않는 정신. 이러한 자주적 태도는 오늘날 기업활동에서도 적용할 만하다. 독자적인 사업영역을 포기하는 기업에게는 자기 영역의 확보란 요원하기만 하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본질을 잊지 않는 기업만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역사와 경영이 맥을 같이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경쟁자에게서 배운 경쟁력은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을 예고한다.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몽골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던 것은 한족이 취한 이이제이 정책의 변용이었다. 선진국의 많은 신생기업들이 창업과 동시에 엑싯 플랜(exit plan)을 세우는 것은 설립목적에 따라 경쟁사와 경쟁방식을 설정하고 자기 사업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청의 창업자는 명을 극복하는 방법이 여진족의 조직화에 있음을 간파하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에 골몰했다. 고심 끝에 그는 여진사회의 오랜 수렵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깃발’을 떠올렸다. 그랬다! 깃발 아래 뭉치고, 깃발로 소속을 드러내며, 깃발로 험한 세상을 뚫고 나가면 될 것이다.”
“누르하치는 명으로부터 제대로 배웠다. 적을 통제하기 위해 다른 적을 끌어들이되, 그 적이 화근이 되지 않도록 통제했다. 몽골족을 일정 지역 내 거주하게 한 것, 등은 모두 명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공동경영방식을 취하는 한, 한족에게 청은 물리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동참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누르하치는 이처럼 명분을 바탕으로 실리 획득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한족의 적은 갑자기 흐릿해지고 말았다.”
“누르하치의 인재활용 원칙에는 적재적소의 원칙이 적용되었다. 그는 능력에 맞는 일을 시켜야 제대로 효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르하치는 중국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가까이 있는 1위를 늘 주시하고, 따라붙으면서 끊임없이 배웠고, 틈새를 엿봤다.”
“누르하치는 항상 이길 만한 요소, 즉 승리의 요인을 만들어놓고 싸움을 벌였다. 수많은 전투에서의 매복, 전략적 교두보 및 요충지 확보, 허 찌르기, 심리전, 첩자파견, 정보전, 정면공격과 같은 전술적 우위를 확보한 다음에 싸움을 걸었다.”
“하나의 승리를 통해 연속적인 승리 기반을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였고, 그 결과 연속적인 승리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 기업에서 얘기하는 포지셔닝 전략이나 연관 산업으로의 이동? 확장성과 같은 개념과 볼 수 있다.”
“꿈은 결코 작지 않았다. 누르하치에게는 해가 떠서 해가 지는 끝없는 대륙의 지평선만이 목표였다. 그는 이 같은 대륙의 웅혼한 기상을 품고 창업했다. 그리고 자신이 오랑캐라는 사실을 평생 잊지 않았다. 그랬다, 여진족은 오랑캐였다! 누르하치의 이 같은 각성이 끝내 민족의 과제를 끌어안은 것이다. 한 사람의 CEO가 세상을 바꾼 셈이다.”
“청의 기반을 세운 CEO들의 특징을 분석하면, 누르하치는 앞장서서 밀어붙이는‘깃발형’CEO였고, 홍타이지는 전략가형 CEO라고 할 수 있다. 섭정왕으로 홍타이지의 아들 순치제를 도와 중국대륙을 M&A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숙부 도르곤은 황제에게 방향을 잡아주는‘코치형’지도자로 볼 수 있다. 만주족의 중국 M&A에는 다양한 리더십이 시의적절하게 때 맞춰 작용한 측면이 커 보인다.”
* 이들은 강희제의 대륙통합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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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프랭클린의 리더십
프랭클린의 가장 뛰어난 재능은 그의 조직적이고 정치적인 구조 그리고 의사전달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정보나 믿음 또는 요구사항을 나눌 수 있게 만드는 리더십 스킬의 사용능력인 것을, 관찰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벤은 이론가나 훈련된 연구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그저 아이디어는 그 시대의 기본적인 해결문제와 연계되지 않거나 그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이 일반 시민들에 의해 평상시 생활에 이용되지 못한다면 소용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우친 아주 영리하고 정치적인 사람이었다. 우리는 프랭클린을 생각할 때 그가 번개가 치는 폭풍 속에서 연을 날리며 거기에 달린 열쇠에 번개의 에너지를 찾으려 서 있는 전경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을 서술한 것이기 보다 프랭클린의 개성과 성향을 보여주는 아이콘과 같다. 그는 어떻게 그의 주위에 창조적인 에너지를 모이게 하고 그것을 유용하고 발전적인 것으로 승화하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학습과 변화의 사회적 지렛대
전기 작가인 웰터 아이잭슨은 프랭클린을 '네트워크의 달인’으로 기술하고 있다. 프랭클린은 그의 공적인 그리고 사적인 삶을 성공적으로 이용해 사업의 성공을 키웠다. 그는 사교 클럽을 구성하고 참여하는 것과 공동이익단체 구성원이 되는 것을 즐겼다.
첫 번째로 구성된 그러한 그룹은 시를 짓는다든지 수학을 즐기는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특별한 젊은 거래상들의 모임이었다. 프랭클린은 그 그룹을 '준토(Junto)’라고 이름을 붙였고 다음과 같은 계명을 만들었다. 현 멤버에 대해 경시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 종교와 직업을 떠나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어떤 사람도 자기의 의견이나 종교로 인해 탄압되지 말아야 한다고 믿어야 한다. 진실을 진실이라는 이유로만 따르고 사랑해야 한다. 확연히 프랭클린의 목표는 혁신에 필요한 적절한 집단 역학을 이루는 것이었다. 즉 다양하고 깊은 사고의 흥미로운 사람들이 비교적 안전하게 그들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곳이다. 이것은 아직도 이루기 힘든 조건이지만 300여 년 전에는 거의 불가능했었다. 준토의 리더와 창시자로서 준토가 주는 정보와 관계에서 가치를 얻으려면 프랭클린은 말하기보다 듣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이들의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 집단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던 프랭클린은 그만의 매력과 지적인 카리스마를 이용해 사름들과 관계를 맺고 다른 멤버의 주의를 그가 탐구를 원하는 이슈에 집중시켜야 했다. 노예제도가 미국 사업에 도움이 되었나, 어떤 요소가 특정한 글을 독특하게 하는가 등 각각의 그룹 토론은 사회학, 철학, 과학 등 다양한 범위를 다뤘다. 다뤄지는 보편적인 주제 외에 프랭클린은 멤버들간에 사업의 성공과 명망, 혹은 정치적 야망을 한층 더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도록 장려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상호간의 건강한 사리 추구에 의한 동기 부여로 멤버들은 정기 모임에 고정적으로 참석했고 활동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참여했다. 많은 혁신들이 고려됐고 산출물을 만들어 냈음은 물론이다. 프랭클린이 택한 개혁과제들은 화재보험, 소방서 자원 봉사단, 식민지 내의 화폐이용, 지방정부 세금을 이용한 경찰력 운영, 펜실베니아 대학교로 변경된 학원 창립들을 포함하고 있다. 준토는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는지 지지하기도 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성공적인 공공제도로 바꾸는 천부적인 재능 외에도 프랭클린은 언론의 귀재였다. 인쇄물이 현재의 TV프로그램이나 인터넷이 가진 영향력을 가졌을 당시, 신문, 잡지, 준토 멤버와 다른 관계자의 출판물 등 그의 간행물들은 점점 더 응집해 결국 식민지 내 우편배달 시스템을 발판으로 모든 주에 전달되게 되기도 했다.
혁신 리더십 역량
우리는 프랭클린의 성공을 그의 여러층을 이루고 흥미로운 독특한 개성이나 역량을 비춰 가장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프랭클린이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혁신 리더로서의 뛰어난 역량 덕분이었을 것이다.
▶ 분리된 연대성 = 사회적 요구를 인식하고 민감하게 대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기를 기꺼이 하는 마음 : 힘의 구조를 바꾸는 동시에 권력을 존중하는 것 등
▶ 고단위의 실용주의 = 세상에 묻혀 일하며 더 높은 이상을 추진하려는 욕망
▶ 효과적인 효율 = 보수적으로 재무자원을 사용하지만 돈이 주어지면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 인색하지 않게 돈에 주의하는 것
▶ 조직의 설계 = 혁신을 이뤄내기 위해 조직의 구조 프로세스, 관리, 모델을 어떻게 설계하고 이용하는지 아는 것.
▶ 건설적인 성급함 = 현상 유지를 열망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권력의 자제와 지배를 실천해 변화를 열망하는 건강한 성급함.
▶ 유머감각 = 삶을 즐기며 명랑한 마음을 갖는 동시에 위엄을 보이고, 목적의식을 가지며 다른 이들을 존중하는 것.
▶ 한결같고 집중된 힘 = 날카로움을 유지하며 긴 시간을 집중해 업무에 충실하지만 휴식과 안정에도 유의하는 것.
▶ 정보 통찰력 = 데이터를 모으는 기술, 데이터를 정보화하고 새로 얻어진 정보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해결법을 구성하고 실행하는 데 영향을 주는 것.
빈센트 콘티 박사 Vincent A. Conte,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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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구자경 명예회장
구자경 회장의 비하인드 스토리 매스컴 기피증이란 말이 돌 정도로 매스컴에 거의 얼굴을 보이지 않았던 구자경 회장.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럭키를 물려받아 현재의 LG로까지 이끌어 왔습니다.
1. 성공 비결 1 - "경험은 밑바닥부터"
생산현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경영자. 스스로 연구하고 현장을 뛰는 경영자. 어떻게 그는 현장을 잘 아는 경영자가 됐을까? 산업의 기본은 제조업이고 제조업의 기본은 기술이라는 구자경의 성공 철학 하나!
2. 성공 비결 2 - "작은 것부터 아껴라"
"뭉치돈 나가는건 표가 나서 신중해지지만 작은 돈은 그렇지 않다. 작은 돈을 쓰는데 더 신중해야 한다" 는 특유의 금융 철학. 계산도 하기 힘든 재산을 가졌으면서도 남은 음식 몇 조각, 동전 몇개의 소중함을 아는 구 회장의 몸에 밴 검약 정신을 갖고 있다.
3. 성공 비결 3 - "창의와 모험 정신"
있는 돈 다 싸서 외국으로 달아날 궁리를 하던 6.25의 혼란기에 전 재산을 투자해 플라스틱 산업을 시작한 아버지 구인회와 유전공학이란 말조차도 생소하던 시절 유전공학에 2500억을 투자해 14년 만에 거대한 성과를 얻어낸 아들 구자경. 그들은 어째서 그런 모험을 했던 것일까? 창의와 모험 정신, 구자경의 성공 철학 셋!
4. 성공 비결 4 - "기업은 사람이다"
누구도 구자경의 존재를 모르던 때, 세상을 놀라게 하며 계승한 그룹 회장직. 아루런 잡음없이 끌어온 50년 세월, 그 비밀은? "실천과 원칙 그리고 합리성이 있는 인화 만이 진정한 인화다." 구자경의 성공 철학 넷!
- “우리 집안엔 때가 되면 물러나는 전통이 확립돼 있다. 조부께선 회갑이 되시자 모든 재산과 땅문서를 아버지께 물려줬다. 할머니께서도 회갑 때 곳간 열쇠를 어머니께 넘겨줬다.”
- “근검 절약해라, 돈을 쓸 때는 크게 써라, 사업을 하려면 크게 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자식들에게도 되풀이하고 있다.”
- “열 번 재고 한 번 가위질 하라’는 것이 긴 수련을 통해 터득한 요령이라면 요령이고 철학이라면 철학이다.”
- “남과 같이해선 남 이상 될 수 없다.” (구자경 명예회장의 좌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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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시대의 리더십
세계화 및 정보기술(IT) 혁명 등 격변기를 맞고 있는 지금, 세계의 경영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으므로 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대응해야 한다. ‘정보시대’로 접어든 21세기 리더십은 어떤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객중심의 경영(Customer Driven Management)’이다. 고객이익과 기업이익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일치된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현재와 미래의 고객욕구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공급사슬(SCM)의 효율적인 구축, 고객의 원만한 불만처리, 신제품 개발 등을 통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둘째, ‘가치중심의 경영(Value Driven Management)’이다. 기업의 성공적 경영이라 함은 이윤을 극대화시키고 주주의 부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매출액을 늘리며 원가절감을 하고 주주의 배당액을 증대시켜야 한다.
셋째, ‘인터넷 중심의 경영(Internet Driven Management)’이다. 기업과 고객의 관계는 과거에는 일:다수(one to many)의 의사소통 방식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일:일(one to one)방식으로 바뀌었다. 고객 개개인을 위한 디자인, 가격, 품질은 물론 주문과 대금결제 등의 서비스도 인터넷이라는 의사소통 수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넷째, ‘경제의 세계화(Globalization)’이다. 글로벌화의 진행은 현금흐름 뿐만 아니라 인적자원의 교류도 자유롭게 하고 있다. 21세기 리더는 출생지가 어디인가에 상관없이 경영활동에 최대한 기여할 수 있어야 하며, 세계적 공통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여 어떤 지역에서도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관계성(Relationship)’이다. 조직간의 관계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시장에서의 경쟁관계도 복잡성과 다양성을 더해가고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정부, 노조, 소비자, 환경단체 등과의 관계로서 기업경영과 관련된 이해집단과의 협력 및 제휴 등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혁신경영(Breakthrough Management)’이다. 필요할 경우 기존의 사고와 조직을 파괴하고 기존사고의 틀에서 벗어난다면 10-20%가 아니라 300-500%의 파격적인 생산성 및 수익증대도 가능할 것이다.
일곱째, ‘전문지식(Specialized Knowledgement)’이다. 리더는 자신이 속한 부서의 전문지식 예컨대 정보기술, 마케팅, 물류관리, 전자상거래, 생명공학, 금융공학 등과 같은 전문지식을 이해하고 그 흐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어야 무한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리더십 향상기법 및 제언
미국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 포인트’에서는 생도들로 하여금 리더십을 배양시키기 위해 조직을 굳건히 만드는 ‘단결력’, 리더에게 필요한 ‘자신감’, 조직의 상층부에서 요구되는 ‘경영자적 자질’ 등을 익히도록 요구하고 있다. 21세기 리더십은 목표에 대해서는 능동적인 아이디어를 발휘하며, 부하에 대해서는 개개인에게 깊숙이 관여하며, 일에 대한 관념에서는 새로운 접근방법을 개발하고 열의를 강조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강력한 감정이 수반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리더는 부하를 ‘명령’의 대상이 아닌 ‘서비스’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만족시켜야 한다. 부하들이 창의력과 자율성을 발휘할 때 최대의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데 그를 위해서는 우선 조직내에서 협력 및 상호존중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며 그와 같은 분위기를 위해서는 서비스 리더십이 필요하다. 21세기 리더십은 20세기의 그것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예컨대 변화를 ‘위협’이 아닌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경영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과는 다른 역량이 요구되는 상황이 닥쳤을 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자신감, 취사선택의 판단능력,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하는 자세 등이 필요하다. 또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부하에 대한 봉사가 무엇인지를 잘 파악해야 하고(Service Concept), 봉사할 마음가짐을 가지고(Service Mind), 봉사하는 방법을 아는(Service Skill) 것이 중요하다. 한편 바람직한 리더십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평가시스템을 외형적 실적중심에서 인간관계, 신뢰감, 비전 등을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실 리더는 조직의 허리 역할을 한다. 허리가 강해야 강자가 될 수 있듯이 기업 및 조직도 강한 리더가 있어야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 “기업과 조직의 궁극적인 경쟁력의 수준은 리더의 자질을 초과할 수 없다”는 말을 곰곰히 새겨 보아야 할 때이다. 자기 자신과 조직에 열정 및 에너지를 북돋우기 위해 ‘파이팅(fighting)!’을 외쳐야 한다. 오늘날 크든 작든 조직을 운영하는 리더라면 언제나 고민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조직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가 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구조조정이 일상화되는 때에 리더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복잡하고, 어렵고, 스트레스 투성이면서 성과가 떨어지는 수많은 기업들이 이제는 획기적인 도약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과업에 대한 정열과 패기, 그리고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는 능력이 리더에게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리더는 스스로 획기적인 ‘사고전환’을 해야 한다. 기업으로 하여금 100년 혹은 200년 이상을 생존시키기 위해서는 기업내 구성원의 사고가 젊어져야 하고 또한 그들을 관리하는 리더는 더욱 젊어져야 한다. 오늘날 기업을 발전시키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영환경에 민감하게 대응할 뛰어난 적응력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폭넓게 관리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21세기 리더와 리더십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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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의 여덟가지 일반적인 법칙
1. 절대적으로 정직하게 행동하라
2. 자기의 할 일을 정확히 파악하라
3. 희망 목표를 분명하게 밝혀라
4.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라
5.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라
6. 부하들을 챙겨라
7. 나보다 임무를 우선에 두어라
8. 앞장서라
1. 절대적으로 정직하게 행동하라
모든 리더쉽은 정직에 기초를 두고 있다
많은 응답자들이 정직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즉 리더와 그의 추종자 간에 기본적인 신뢰가 없으면, 그 리더는 영원히 의심받을 것이며, 설령 다른 리더쉽 원칙들을 적절히 잘 실천한다 해도 많은 어려움이 따르리라는 것이다.
정직이란 옳은 것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직하지 못하면 어떤 조직에서나 또 어떤 노력을 하든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직이란 진실을 말하는 것 이상을 말한다. 정직이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때로 성공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정직을 지킨 독에 성공하는 조직도 있다.
하지만 절대적 정직이 항상 리더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리더가 아무리 싸움에서 진다 해도, 절대적인 정직을 지킨다면 리더로서의 권한은 유지된다. 반대로 이 법칙을 무시하는 리더들은 결코 전적인 신뢰를 얻을 수 없으며, 제 아무리 능력이나 업적이 뛰어날지라도 부하들의 지지를 받는 리더가 될 수 없다.
공자는 역경(易經)에서 “급격한 변화는 그에 맞는 권위를 필요로 한다. 사람은 영향력 있는 지위와 더불어 내면의 힘을 갖추어야만 한다. 그의 행동은 더 높은 진실과 일치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옳다고 느끼는 일만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2. 자기의 할 일을 정확히 파악하라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당신이 ‘이 일’과 관련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고등학생 때 이미 컴퓨터 관련 사업을 시작해 성공적으로 꾸려나가고 있었다. 그는 배우고 경험을 쌓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대학 1학년 때 학업을 중단한 것도 사업에 전력을 기울이기 위해서였다.
스티븐 스필버그 역시 벼락성공을 거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일에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10대 초반에 이미 첫 번째 영화를 만들어 지방 극장에 팔았다.
하지만 그는 혼자서 공부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20대가 되었을 즈음에는 이미 충분한 노력을 쏟아부어 자기 일을 꿰뚫고 있었다.
3. 희망 목표를 분명히 밝혀라
이 법칙에는 계획, 목표 설정, 의사소통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4.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라.
남다르게 열심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용기가 없으면 영광도 없다”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5.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라
목표가 높을수록 달성가능한 역시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리더가 높은 목표를 갖고있으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누가 승자인가? 누가 성공한 리더인가? 가장 높은 목표를 갖고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이다.
6. 자신있는 태도를 견지하라
긍정적인 결과를 예측한다는 것은 리더인 당신이 자신있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초기 프랑스가 함락된 후에도 영국은 왜 독일에 항복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바로 단 한 사람 위스턴 처칠 때문이었다고 한다. 영국은 윈스턴 처칠의 자신 있는 태도 때문에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자신 있는 태도가 그의 성공을 이루었다.
당신의 통제력은 생각보다 크다. 긍정적인 태도는 병도 고친다.
“우리 몸에는 완전한 약국이 있습니다. -노먼 커즌스 (Norman Cousins).. 여러분의 몸은 어떤 병이라도 치유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약을 갖고 있습니다. 이 약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긍정적인 생각과 유머 감각뿐입니다.”
7. 부하들을 잘 챙겨라
군대에는 “만약 당신이 부하들을 잘 돌본다면, 부하들이 당신을 돌볼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은 “우리 회사의 최우선 순위는 직원들입니다. -- 여기서 Assumption 하나.. 리더쉽은 사람과 관련 것이다. 왜냐면 직원들이야말로 회사의 열정을 고객에게 전달할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니까요. 그 다음 두 번째 우선순위는 고객만족입니다. 이 두 목표가 먼저 이루어져야만 주주들에게 장기적인 이익을 안겨줄 수 있지요“ 슐츠 말대로 스타벅스는 건강관리, 스톡옵션, 교육 프로그램, 경력 상담, 제품 할인 혜택등 풍부하고 포괄적인 직원 복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성공한 리더들은 부하를 잘 챙긴다. 매리어트 호텔의 창립자 (J. W. Marriott)는 “회사가 직원들을 잘 돌보면 직원들이 손님들을 잘 돌봅니다”
7. 나보다 임무를 우선에 두어라
리더에게는 자신의 임무달성과 함께 부하를 돌보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임무든 부하든 리더의 의무는 언제나 그 자신의 이익에 우선한다.
모든 리더는 주어진 임무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이익이 자신의 이익에 우선한다는 원칙 만큼은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것이다.
8. 앞장서라
리더가 되는 단 하나의 실질적인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앞장서라는 것이다. 리더란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앞에서 끌어당겨야 하는 사람이다.
앞장 선다는 것은 기꺼이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리더가 되고 싶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성공하는 지도자의 8가지 원칙2005/03/31 07:59
리더십은 제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분야인데,
(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예전에는 관심이 있어 공부도 좀 했는데 지금은 ... 책만 삽니다. ^^)
요즘 제일 사고 싶은 책은 잭 웰치의 '승리(Winning)'입니다.
GE의 잭 웰치 회장이야
미국 기업최고경영자들 중에서도 신화 중의 신화처럼 여겨지는 인물인지라
여기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이번주 뉴스위크에 '잭 웰치의 리더십 원칙'이 나왔는데,
마음을 두드리는 부분이 있는지라 간단히 정리해 드립니다.
지도자란 뭘 해야 하느냐 하면...
1. 축하하는 행사를 많이 만들어라.
=파티 너무 많이 하면 회사가 너무 노는 분위기로 가서 안좋을 거 같다구요?
아닙니다. 축하할 일 있거들랑 많이 많이 하십시오.
그거야말로 공을 인정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이겼는데, 성공했는데, 그게 소소한 일이라고 무시하고 지나간다구요?
저런... 기뻐할 기회를 마구 갖다 버리시는군요.
리더가 이걸 안해주면 아무도 안합니다.
좋은 일 하고도, 축하할 일 두고도, 썰렁하게 지나가면 안되지요.
2. 부하직원들이 모험을 할 수 있게 하라.
=너무나 많은 경영자들이
직원들에게 새로운 일을 하라고 부추기다가도,
막상 시도해서 실패하고 나면 '작살'을 냅니다.
혁신과 실험을 원하거든 모범을 보이세요.
지도자가 과감하게 뭘 해보려다 실수할 수도 있지요.
실수했다구요? 구구절절 이유 설명하고 설교하실 필요 없습니다.
유머 좀 섞어서 가볍게 지나가세요.
그러면 직원들이 실수 한번 했다고 인생 끝나는 거 아니구나 하는 거
눈으로 보고 배우지요.
그럼 되는 겁니다.
또 한 가지,
그 조직 내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은 절대 아니라는 거 명심하십시요.
3. 질문을 많이 하십시요.
=리더란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회의시간에 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인양 직원들에게 물어보세요.
"만일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하지?"
"왜 안될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렇다고 묻기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리더란 자신이 제기한 의문들이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이슈를 만들고 나아가 행동으로 이어지는가를 확인해야지요.
4. 배짱과 감으로 밀고 나갈 줄 알아야지요.
=지도자란 인기 테스트 받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끌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미 '리더'인데, 자꾸 그 자리에 출마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인기에 연연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보세요. 이미 뽑혔다구요.
5.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솔직하세요.
=보통사람들이란 당연히 나쁜 소식을 전하는 악역을 맡기 싫어하지요.
다음달에 직원 반 자를 거야, 이런 말 하기 어렵지요.
그래도 솔직하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비즈니스가 잘 안되면 안된다고, ...
지도자란 일이 잘못되면 책임을 지고,
일이 잘되면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넘겨주는 사람들이랍니다.
6. 상사와 부하직원도 결국 유유상종이랍니다.
=낙관적인 전망을 갖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지도자들 밑에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다네요.
또 그 팀 전체가 그런 분위기가 되구요.
불행한 팀이 승리하기는 어렵답니다.
그렇겠지요. 지도자나 부하직원이나 맨날 심란한 얼굴로
징징 울고 다니면 뭐가 되겠습니까.
결국 지도자의 일이란 부정적 사고와 싸우는 것이 아닐까요.
7. '비전'은 그냥 보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먹는 거냐. 물론 그것도 아니지요.
숨쉬고 더불어 살아가는 거랍니다.
비전을 말할 때는 이상하고 애매한 표현 쓰지 말랍니다.
직원들 헷갈려요.
과녁이 흐릿하면 맞추기 어렵지요?
회사가 직원들에게 어떤 보상을 해줄 것인지 정확하게 밝히세요.
그걸 선명하게 알면 직원들이 변합니다.
8. 최고의 선수를 만들어내라.
=운동경기에서 뛰어난 선수가 많은 팀이 이길 가능성이 높지요.
네,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도자는 '우수 선수' 양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베스트 플레이어는 어떻게 만드느냐.
첫째 평가를 잘해야지요. 그 자리에 제대로 된 사람 데려다 일 시키고 있느냐.
둘째 유능한 코치여야 합니다. 지침을 제시하고 비판하고 도와서 선수가 실력을 증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셋째 지도자 자신이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감이 있어야 남을 인정하고 격려하고 신경쓰는 여유도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감있는 지도자와 함께 일할 때
직원들은 기꺼이 위험부담을 질 용기를 내고 꿈을 넘어서고....
별거 별거 다 하게 된다는 거 아닙니까.(오, 놀라워라!)
여하간에, 이게 성공하는 팀의 '연료'와 같은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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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서비스 리더의 덕목
리더는 누구인가? 리더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리더라고 해서 완벽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리더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은 있게 마련입니다. 누구든지 멋진 리더가 되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리더의 덕목들에 비추어서 자신의 현재 위치를 점검하고 꾸준히 자신을 갈고 닦아 나가야 합니다.
1. 리더는 비전과 목표를 정확히 설정하고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서비스 조직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며, 조직이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목표를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해 가야 합니다. 한 방향을 향해서 나아가기 위해 조직은 비전, 핵심가치 그리고 목표를 설정하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함께 나눈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비전과 목표를 만드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직 구성원들 사이에 끊임없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공유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2. 리더는 자신의 소명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리더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새로운 직책에서 리더의 위치를 부여 받게 되면, 스스로 '지금 이 자리는 나에게 어떤 일을 하도록 요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직책을 부여받기 전까지 승승장구하던 사람도 새로운 자리에서 타인을 실망시키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 가운데서도 자주 범하는 실수는 자신의 소명을 정의하는데 실패하는 경우입니다. 과거에 어떤 길을 걸어왔던지 새로운 직책이 요구하는 소명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3. 리더는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인재를 배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리더는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입니다. 조직이 갖고 있는 최고의 자원인 인재를 가장 효과적으로 배분함으로써 최고의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인재의 적재적소 배치를 통한 최고의 성과 올리기를 위해선 핵심 인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이들의 특성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서 그들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조직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역량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몰락의 길로 들어서는 리더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4. 리더는 언행의 일치를 보여야 합니다.
리더의 신뢰가 실추되는 많은 경우는 말과 행동이 다를 때 일어납니다. 리더는 자리에 맞는 언행을 보여야 하며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 파급효과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 거의 몸에 배어 있어야 합니다. 생각나는대로 말을 던지고, 그것을 번복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귄위의 실추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권위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5. 리더는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부하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것은 달변이 아니라 몸소 자신이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리더가 화려한 미사여구로 한 두 번 전체를 속일 수 있으나 오래 오래 그들 모두를 말만으로 속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것이 몸에 완전히 익어 있어야 합니다.
6. 리더는 불편부당해야 합니다.
공과 사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하며 자리가 올라가면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이 거의 부하 직원들에게 알려진다고 보면 됩니다. 특히 사적인 목적을 위한 사소한 금전 문제가 이미지와 권위를 실추시키는 경우가 자주 일어남을 명심해야 합니다.
7. 리더는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결과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언행은 아래사람들의 신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조직의 과오에 대하여 앞장서서 해결하고 책임지려고 하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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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중심의 리더십
- 개인 및 대인관계의 효과성 - (스티븐 코비 / 김영사)
스럽고, 점진적이고, 매일매일 순차적으로 단계를 밟아가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것이 나의 평소 지론이다. “ 빠르고, 비용이 들지 않고, 즉각적이고, 또 아주 쉽게 ”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약속하는 어떤 자기개발 제품이나 프로그램은 올바른 원칙들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체중 감량이건 기술 습득이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오늘날의 광고 문구들은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특정제품을 구입하도록 유혹하고 있다. 자기개발 방법에 관한 이와 같은 현실은 왜 우리가 ‘ 응급처치식 ’ 접근법에 중독되어 있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정한 성품 및 역량개발이란 자연 법칙과 같은 지배 원칙에 불가피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제시할 것이다. 우리가 이 같은 원칙을 지킬 때, 우리는 자신의 과거 관행을 깨뜨리고, 낡은 습관들을 버리고, 패러다임을 바꾸게 되며, 일차적 강점인 훌륭한 성품을 갖추고, 효과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정신력을 갖게 될 것이다.
예외 없이 기존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 또는 낡은 패러다임을 파괴함으로써 가능했다. 원칙중심의 리더십 역시 변혁의 패러다임이다. 원칙중심의 리더십은 현대생활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딜레마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사고방식이다.
부터 시작되어 외부로, 4가지 차원에서 실천에 옮겨진다. 그 4가지 차원이란 1. 개인차원(나와 나 자신의 관계), 2. 대인관계 차원(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및 상호작용), 3. 관리차원(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일을 완수하는데 필요한 책임감), 4. 조직차원(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교육시키고, 보수를 지급하고, 팀을 구성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구조전략과 시스템을 한 방향으로 정렬시키는 차원)을 말한다.
신뢰성이란 성품과 역량의 조합이다. 즉 당신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나타내는 당신의 성품과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역량을 말한다.
대인관계 차원에서의 신뢰 : 신뢰성은 신뢰의 기초다. 신뢰는 두 사람 사이에 ‘ 나도 이기고, 상대방도 이기는 ’, 즉 승/승 이행합의를 가능케 하는 ‘ 감정은행 계좌 ’ 이다.
1. 원칙 중심 리더들의 특성
없이 배운다.
다.
잡힌 삶을 산다.
로 여긴다.
2. 7가지 습관 재확인
1, 2, 3과 관련된 것들은 인간의 일차적인 천부적 재능이다. 이와 같은 재능이 잘 연마된 사람에게는 습관 4, 5, 6의 실행으로 이차적 재능도 부여된다. 끝으로, 습관 7과 관련된 인간의 재능은 자기 성장과 발전의 실행과정을 쇄신시켜 준다.
차적 재능에는 1) 자아의식, 즉 자신에 대한 인식, 2) 상상력과 양심, 3) 의지 또는 의지력 등이 포함되고, 이차적 재능에는 4) 풍요의 심리, 5) 용기와 배려, 6) 창의성 등이 포함된다. 인간의 일곱 번째 재능은 자기쇄신의 능력이다.
1) 습관 1 : 주도적이 되라
2) 습관 2 : 목표를 확립하고 행동하라
3) 습관 3 :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하라
4) 습관 4 : 상호 이익을 추구하라
5) 습관 5 : 경청한 다음에 이해시켜라
6) 습관 6 : 시너지를 활용하라
7) 습관 7 : 심신을 단련하라
3. 저지 세력을 극복하기 위한 3가지 결심
흔히 범하는 두 가지 실수
1)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2)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을 갖고 있지 않다.
강력한 저지세력 같은 것도 있어서 우리가 애써 한 결심이나 진취적인 노력을 무력화 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1) 식욕과 정욕, 2) 자존심과 가식, 3) 야심과 공명심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저지세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름의 3가지를 결심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1) 첫째 : 식욕과 정욕이라는 저지세력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제력과 극기를 연마하기로 결심한다.
2) 둘째, 자존심과 가식을 극복하기 위하여 한층 더 자신의 성품과 역량 위주로 일해야겠다고 결심한다.
3) 셋째, 끝없는 야심과 공명심에 대한 열망을 극복하기 위하여 내 재능과 자원을 고귀한 목적과 봉사의 삶에 바치기로 결심한다.
성장을 위한 제언
자신의 기본적인 신체적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열정이나 감정도 통제할 수 없다. 아니 통제는 고사하고 오히려 그것의 희생물이 되어 재물이나 지배력, 지위, 권력만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일단 기본 욕구를 극복하는데 성공한다면, 보다 높은 수준의 결심들도 수행할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4. 일차적 강점 : 성격이 아닌 성품
통해, 인간의 자기소외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다 파는 인격의 상품화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흔히 성공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긍정적 성격의 특성조차 사실은 이차적 강점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됨됨이, 다시 말해 성품에 기초를 두고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언어와 스타일과 의도가 아무리 훌륭했다 해도, 만일 신뢰가 없다면 우리는 일차적 강점이나 지속적인 성공을 획득할 수 없다.
즉 사회적 지위나 신분, 명성, 부, 재능 등을 갖추었으면서도 일차적 강점, 즉 훌륭한 성품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흔히 있다. “ 당신의 성품이 아주 크게 소리치기 때문에 당신의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 ” - 에머슨 -
우리가 자기 자신을 보는 시각이 어떤가에 따라 우리의 태도와 행동뿐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보는 시각까지도 그 영향을 받게 된다. 자신을 보는 시각이 단지 사회적 거울, 즉 현 사회의 패러다임과 우리를 둘러싼 주변사람들의 의견, 인식 그리고 그들의 패러다임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자기인식 내용은 마치 요술거울에 비친 모습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가치와 잠재력을 인정받는데 있다. 진정한 자기존중이란 자신에 대한 지배력, 진정한 독립성 그리고 승/승의 상호의존적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 대중을 구원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보다 한 개인에게 자기 자신을 온통 헌신하는 것이 더 고귀한 일이다. ” - 댁 함마르셀드 -
지 특성
1) 성실성 : 성실성이란 우리가 자기 스스로에게 부여한 가치이다.
2) 성숙도 : 성숙도란 용기와 배려 사이의 균형이다.
3) 풍요의 심리 : 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들이 쓰기에 충분한 자원이 있다는 신념이며 우리의 내면에 있는 개인적 가치의식과 안정감으로부터 나온다.
내면에서부터 외부로 ’ 라는 패러다임은, 만일 우리가 승/승 합의와 시너지적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게 하는 신뢰를 발전시키려면 먼저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자기 자신의 삶과 부수적인 단기적 욕구를 차원 높은 목적과 원칙을 달성하는 데에 집중시켜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키기에 앞서, 자기 자신에 대해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또한 지속적인 성장과정, 즉 점진적으로 보다 수준 높은 형태의 독립성과 상회의존성으로 이끌어가는 상향적 나선형을 뜻한다.
향하는 일차적 강점의 패러다임에 입각하여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올바른 원칙과 일치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원칙을 지향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인간의 천부적 재능, 즉 양심을 훈련하고 또 그것에 따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양심을 훈련하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자기 수양과 정직한 삶, 영감을 가져다주는 독서와 고상한 생각을 하는 숭고한 이상의 생활태도가 필요하다.
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성품과 역량을 개발해야 한다. 어떤 프로그램을 개선하고자 할 때는 먼저 그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개선되어야 함을 명심하라. 어떤 조직에서건 그 조직의 전략, 구조, 시스템,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조직의 구조나 시스템 등은 결국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에 의해 움직이는 팔이나 손에 불과하다.
5. 과거와의 결별
사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전통적 사고방식과의 과감한 결별을 통해 이루어졌다. 과학 분야에서는 극적인 변화, 사고의 혁명, 지식의 비약적 도약, 낡은 제약으로부터 갑작스레 해방되는 것 등을 가리켜 ‘ 패러다임의 전환 ’ 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패러다임의 전환은 오래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으며, 새롭고 획기적인 사고방식을 제공해 준다.
스의 신대륙 발견,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음속의 한계를 돌파한 조종사 척 예거 “ 진정한 장벽은 하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초음속 비행에 관한 우리 인간의 지식과 경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
고 새로운 습관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 개인의 승리 ’를 성취하는 것을 방해하는 저지세력과 도구를 극복해야 하는 반면, 개인적 승리를 가능하게 하는 추진세력을 배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명확한 자기정체성과 강한 목적의식, 즉 자기가 누구이며 성취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효과성이 높은 성공적인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일을 처리한다.
력이란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키며 책임을 존중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이 자제력이야말로 우리가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꼭 필요한 열쇠이다.
발사 때 지구중력을 벗어나게 하는 데에 훨씬 더 많은 힘과 에너지가 드는 것처럼 인간도 새로운 행동을 시작할 때에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낡은 습관들이 중력처럼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잡아끌기 때문이다. 우리를 나쁜 습관들로 다시 주저앉히는 3가지의 강력한 세력은 첫째, 식욕과 정욕, 둘째, 자존심과 가식, 셋째, 야심과 허영심이다.
리는 잠자리의 유혹을 극복하고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있을 때 그날의 첫 번째 승리를 체험할 수 있다. 그런 뒤에야 우리는 다른 일들로 옮아갈 수 있는 것이다. 위대한 일들은 아주 작은 것들로부터 성취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른 아침의 성공은 우리에게 정복감, 극복감, 성취감을 가져다주며, 바로 그러한 느낌이 우리로 하여금 그날 하루 동안에 있을 보다 어려운 일들을 극복하게 하고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한다. 자신에 대한 승리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낡은 습관을 깨고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좋은 방법이다.
시 매일매일 마음의 뿌리를 단련시킴으로써 규칙적으로 또한 점차적으로 쌓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기적 안목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그러한 안목에 기초해 몇 가지 일을 결정하고 헌신해야 한다. 사람이란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을 키우기 위한)
1) 지키지 못할 약속은 절대로 하지 말라
2) 보다 좋은 일을 하고, 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의미 있는 약속을 하고, 결의를 다지며, 책무를 다하라
3) 자신에 대한 자아인식을 활용하여, 약속을 할 때는 매우 선별적으로 하라
4) 약속이란 자신의 성실성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재는 척도임을 기억하라
5) 자기 성실성, 즉 자신에 대한 극기는 대인관계의 성공을 위한 초석임을 명심하라
춰 정신과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에게 물어라 “ 이 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은 무엇일까? ”
6. 진정한 성장을 위한 6일간의 창조
자연스러운 발달 순서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단계적 발달과정은 인간의 모든 생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소유는 주는 것에 선행한다. 인간관계가 서먹서먹하고 서로 감정이 상해있을 때는 상대방과 단둘이서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원칙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내심과 내적 통제력, 다시 말해 정서적인 성숙이 요구된다.
서적으로 미숙한 사람은 성품상의 결함을 메우기 위해 자신의 지위나 체격, 완력, 경험, 지능 혹은 감정으로부터 힘을 빌려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은 첫째, 자신을 약하게 만들고, 둘째, 상대방을 약하게 만들며, 셋째, 대인관계 자체를 약하게 만든다.
은 자연적인 과정이다.
- 우리는 각기 다른 날(성장의 수준)에 위치해 있다.
- 비교는 위험한 것이다.
- 지름길은 없다
-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시작해야 한다.
- 자기성찰은 자신의 약점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힘을 가져다준다.
7. 자신을 파괴하는 7가지 큰 죄
간디는 이 세상에 우리를 파괴하는 7가지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간디가 지적하는 이 7가지 모두가 사회적 혹은 정치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아울러 특기할 사실은, 이 7가지 ‘ 큰 죄 ’의 교정 수단으로 간디가 든 것은 사회적 가치가 아니라 하나같이 자연 법칙과 원칙에 기초한 객관적 기준이나 사실 들이라는 점이다.
1) 일하지 않고 얻는 재산
이는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무언가를 얻는 행위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땀 흘려 일을 하거나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않고 사람이나 사물을 조작하는 기법, 즉 시장이나 자산을 조작하는 것 등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이런 것들이 일종의 전문직처럼 되어있다. 일은 하지 않으면서 돈을 벌고, 탈세를 통해 부를 축적하며, 자기 몫의 재정적 부담은 회피하면서 정부의 혜택은 받으려 하고, 아무런 위험 부담이나 책임은지지 않으려 면서 시민으로서 혹은 회사의 구성원으로서의 특권은 다 누리려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일부 네트워크형 마케팅 기법이나 피라미드형 조직들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그런 조직들은 대개 그럴싸한 이유로 충분히 합리화되고 있지만, 그것들이 갖는 정서적 동기는 어디까지나 탐욕에 근거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사회 규범이나 관습은 결국 사람들의 판단력을 왜곡시킨다. 정의와 판단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자연의 법칙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판단력 역시 그만큼 손상을 입게 마련이다. 당신의 생각이 왜곡된다는 이야기다. 당신은 머지 않아 왜 어떤 것은 성공하고 어떤 것은 성공하지 못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합리화된 거짓말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결국 ‘ 농장 ’ 의 법칙에서 멀어져 사회적 혹은 정치적 환경으로 옮겨간다.
2) 양심이 결여된 쾌락
양심이 결여된 쾌락이 궁극적으로 치러야 할 비용이란 실로 엄청나다. 시간과 돈이 소요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평판이 크게 나빠지리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무엇보다 근시안적으로 자기 탐닉을 일삼고 자신의 욕구 충족에만 급급한 사람은 주위 사람들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힌다. 양심에 구애됨이 없이 자기기만에 빠져 멋대로 자연 법칙에서 이탈하는 행동은 매우 위험하다. 양심이란 본질적으로 불변하는 진실과 원칙들의 저장소이며, 자연법칙을 감시하는 내면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3) 성품이 결여된 지식
얕은 지식은 위험하다. 그러나 더 위험한 것은 박식하지만 원칙에 기초한 성품이 결여된 경우이다. 내면적인 성품개발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하는 지적개발은 마약에 취한 10대 청소년에게 고성능 스포츠카를 맡기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교육 현장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모든 것이 젊은이들의 성품개발을 소홀히 한 결과인 것이다. 앞으로는 지적개발과 성품개발이 좀 더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하자. 오늘날 교육 개혁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련의 공통원칙, 가치 및 우선순위에 대한 합의를 기초로 그러한 작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더 이상 종전과 같은 전문화, 세분화, 이념 논쟁 등에 비중을 두지 않는다.
4) 도덕(윤리)이 결여된 사업(비지니스)
애덤 스미스는 “ 국부론 ” 에 앞서 발간된 “ 도덕적 정신 ” 이라는 책에서, 도덕적 기초, 즉 서로를 대하는 태도, 박애정신, 봉사정신, 기여정신 같은 것들이 사회체제를 성공적으로 만드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지적한 바 있다. 애덤 스미스는 ‘ 모든 ’ 비즈니스 거래에는 양측 모두 그 결과에 대해 기꺼이 승복한다는 일종의 도덕적 기초가 깔려 있다고 보았다. 비즈니스에 있어서의 공평성과 호혜원칙을 자본주의라 불리는 자유기업 체제의 받침대와 같은 것이다.
5) 인간성이 결여된 과학
테크닉과 테크놀러지가 과학의 전부라면, 그러한 과학은 곧 인간성을 말살시켜 버리고 말 것이다. 물론 과학에 있어서 발전이나 때로는 ‘ 혁명 ’ 적인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성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인간의 진정한 진보란 있을 수 없다. 인간 사회의 온갖 불평등 및 불의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은 나침반의 진북(眞北)에 해당하는 자연법칙 및 원칙들뿐이다. 과학과 테크놀러지는 거의 모든 것의 얼굴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근본적인 것들은 여전히 그 효용을 잃지 않고 있다.
6) 희생이 없는 종교
적극적인 교회활동은 희생 없이도 가능하지만, 교회의 가르침인 복음을 따르는 것은 희생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종교의 사회적 측면 및 종교적 관행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불우한 이웃들과 함께 하지도 못하며, 또 그들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자연 우리의 경제체제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을지도 모르는 기타 사회문제들에 대해서도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를 필요로하는 사람들을 도우려면 자만심과 편견을 버리고 봉사에 따르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남을 섬기는 위대한 지도자들은 겸양의 미덕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이들이 가진 내면의 종교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최고경영자들 가운데도 겸손하고 남을 섬기는 지도자들이 있는데, 이들이야 말로 자신의 자존심을 희생하여 권력을 나누어 주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희생 덕분에, 이들 최고 경영자들의 영향력은 회사 안팍으로 크게 증가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얘기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요즘 사람들은 ‘ 종교 ’ -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 바라고 있으면서도 희생은 원하지 않는다. 영적인 것을 추구하면서도 단식을 통해 어떤 의미를 되새긴다거나 혹은 익명의 자선행위를 통해 그것을 실현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다.
7) 원칙이 없는 정치
요즘 정치인들 중에는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내용은 차치하고 단지 피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만 수백만 달러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만약 그런 것이 먹혀든다면, 우리의 정치 체제는 준거가 되어야 할 자연법칙과 동떨어진 채 흘러가게 될 것이다. 자연의 법칙은 자명하고, 외재적이며, 관찰 가능하고, 자연적이며, 논쟁의 여지가 없는 법칙들을 뜻한다. 독립선언서에 인용된, “ 우리의 이 진리들을 자명한 것으로 믿는다 ” 라는 말과 같이 자명한 법칙이다. 건전한 사회로 가는 열쇠는 사회적 의지, 사회적 가치체계 등을 올바른 원칙과 같은 방향으로 일치시키는데 있다. 범죄자들의 가치체계는 자연법칙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영화 <십계>를 보면 모세는 이집트의 파라오 왕에게 이런 말을 한다. “ 우리는 당신이 아닌 하느님의 법에 의해서만 다스려질 것이오 ” 결국 “ 우리는 율법을 구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통치를 받지 않을 것이오 ” 라는 말이다. 최상의 사회, 최상의 조직에서는 언제나 자연법칙과 원칙이 지배한다. 그것이 바로 헌법이다. 최상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원칙에 복종해야만 한다. 아무도 원칙위에 있을 수는 없다. ‘ 7가지 습관 ’ 은 이제까지 언급한 7가지의 큰 죄를 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내가 추천하는 ‘ 7가지 습관 ’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십계명을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십계 1 - 하나이신 하느님을 찬미하라
십계 2 -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
십계 3 - 주일을 거룩히 지켜라
십계 4 - 부모에게 효도하라
십계 5 - 사람을 죽이지 말라
십계 6 - 간음하지 말라
십계 7 - 도둑질을 하지 말라
십계 8 -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
십계 9 -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십계 10 -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8. 성공의 기준, 도덕의 나침반
간행위의 지침이다. 확실한 원칙들이야 말로 인간의 효과성을 지배하는 것이다. 세계 6대 종교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핵심 원리를 가르치고 있다. “ 뿌린대로 거두리라 ” , “ 말보다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 ” 등이 그것이다. 진북향의 원칙에 관한 한, 세계는 이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진북의 원칙들은 객관적이고, 기본적이며,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들이다.
세우게 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회사의 헌법적 원칙들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모두 동의한다. 그 중에서도 공평성, 친절, 존엄성, 자선, 성실, 정직, 질(양질), 봉사, 인내 등에 대해서는 모두 보편적인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와 정반대되는 원칙들에 근거해서 자신의 인생을 살려고 하거나 혹은 사업을 하려고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겠는가. 나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불공평, 속임수, 비열함, 무익함, 열등함, 타락 등이 행복을 지키는 데 필요한 기본 요소라고 믿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관행 위주로 한다면, 어느 정도 서비스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고객들이 특이한 사안이나 문제를 제기하게 되면 통상의 서비스 규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고객 서비스는 깨져 버리고 말 것이다. 직원들이 고객 서비스의 원칙에 따라 일관성 있게 행동할 수 있으려면 먼저 새로운 정신 자세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직원들이 원칙을 이해하고 또한 실제 상황에 그것을 적용할 수 있도록 그들을 훈련시킴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러한 훈련에는 사례 연구, 역할 연습, 모의 연습, 현장 실습 등의 방법이 이용될 수 있다.
9. 원칙중심의 지도력
지도력의 3가지 유형
* 첫 번째 수준에서는 추종자들이 두려움 때문에 지도자를 따른다. (강압적 지도력)
* 두 번째 수준에서는 추종자들이 혜택이나 이익을 얻기 위해 지도자를 따르게 된다. (실리적 지도력)
* 세 번째 수준에서는 추종자들이 지도자를 믿고 또 그가 성취하고자 하는 바를 신봉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원칙중심의 지도력)
도력은 모든 인간관계에 내재하는 질(양질)과 탁월함과 우수성을 나타내는 상징이며 인간에 대한 존경심에 기초하고 있다. 원칙중심의 지도력에도 통제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외부적 통제가 아니라 자기통제이다. 사람들이 자기 지도자를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여기고, 그에 따라 그 지도자를 신뢰하며, 그에게서 감화를 받고, 그가 제시하는 목표들을 굳게 신봉하게 되고, 그가 자신들을 이끌어 주기를 바랄 때에 비로소 지도력은 창출된다. 지도자는 자신의 목적의식과 비전, 성품과 본성, 그리고 자신이 표방하는 것을 바탕으로 추종자들과의 관계에서 원칙 중심의 지도력을 쌓아갈 수가 있다. 원칙중심의 지도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지도자들은 장기적인 헌신과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결국 지도자는 자기의 참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다.
구
1) 설득 : 추종자들의 생각과 관점에 대해 진정한 존경을 표시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이나 희망사항을 합리적인 이유와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설득에는 ‘ 내용 ’ 만큼이나 그 ‘ 이유 ’ 의 설명이 중요하며, 서로에게 유익하고 만족스러운 결과가 도출될 때까지 대화를 지속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2) 인내 : 사람과 수행 과정에 대해 인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추종자들의 실패와 약점 그리고 불편함이 있더라도, 또한 목적 달성을 원하는 자신의 초조함과 기대감을 이겨 내면서, 단기적인 난관과 저항에 아랑곳하지 말고 원래의 목적에 충실하는 것이다.
3) 온화함 : 추종자들이 나타내는 취약성, 비밀, 감정 등에 대해 강경하고 딱딱하며 경직된 자세보다는 온화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4) 배움의 자세 : 배움의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당신이 모든 해답과 통찰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동시에 추종자들이 갖고 있는 독특한 관점과 판단과 경험을 가치있게 생각하는 자세를 뜻한다.
5) 수용 : 수용이란 당신의 판단을 보류하고, 의심스러운 부분은 추종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며, 상대방으로부터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어떤 구체적인 증거나 실제적인 행동을 요구하지 않음을 뜻한다. 당신의 문제처럼 생각해 보는 것이다.
6) 친절함 : 대인 관계에 있어서 세심하고 자상하며, 사려 깊게 작은 일(실은 작은 일들이 큰일이다)들을 기억하는 성의의 표출을 말한다.
7) 열린 마음 : 추종자들의 잠재성과 관련하여, 항상 정확한 정보와 장기적 안목을 갖기 위해 노력함을 뜻한다. 이는 동시에 그들이 현재 소유하고, 지배하고, 행동하는 것과 상관없이 현재 상태의 그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함을 뜻하며, 또한 그들의 행동보다는 그들이 가진 의도나 욕구, 가치, 목표 등을 충분히 고려함을 의미한다.
8) 진심어린 충고 : 추종자들이 저지르는 실수나 잘못 또는 ‘ 방향 수정 ’ 의 필요성을 지적해 주되 진심 어린 보살핌과 배려, 따뜻함을 잊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실수를 바로잡는 것을 겁내지 않도록 해 준다.
9) 일관성 : 당신의 지도자 스타일이 조작적인 기술에 머무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일관성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어려울 때, 위기나 도전에 직면했을 때, 혹은 진퇴양난에 빠졌다고 느낄 때는 조작적인 기술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바로 이러한 때일수록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관성은 그 사람의 가치와 행동 규범을 나타내고 성품을 드러내 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즉, 일관성이란 당신이 어떤 사람이며,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반영해 준다.
10) 성실성 : 성실성이란 당신의 말과 느낌을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연결시킴을 의미한다. 또 진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을 가리키며, 어떤 행태이든 악의나 속이고 싶은 마음을 품지 않고,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조종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보다는 자신의 의도를 끊임없이 돌아보면서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보통 사람 이상도 아니고 비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결코 환상을 좇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단지 실용적인 이상주의자라고 주장한다. 또 내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이룩할 수 있었던 것들을 특별한 재능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다.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내가 기울였던 만큼의 노력을 경주하고, 내가 가졌던 것과 같은 희망과 신념을 일구어 나간다면, 내가 이루었던 일들을 똑같이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한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 - 마하트마 간디 -
10. 의사소통 체계의 명확화
인식과 신뢰 : 대부분의 신뢰 문제는 관련 당사자 중 한쪽 또는 모두 그 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임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해결된다.
- 믿음을 갖는다.
- 상대방과의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문제 인식 차이가 해결될 수 없기를 바란다.
- 외부의 영향을 수용하고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열린 마음을 갖는다.
청한다.
- 그런 다음 당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말한다.
- 준거 틀이 같거나 의견이 같은 곳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하여 서서히 의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라
소통 방법은 일대일의 관계이다. 효과적인 의사소통에는 기술이 요구되며 이 기술은 훈련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논리의 언어와 감정의 언어를 구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상대방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통해 상대방의 느낌을 이해하는 것, 공감이 필요하다.
11. 영향력을 갖는 30가지 방법
보기 : 당신은 누구이며, 어떻게 행동하는가?
1) 불친절한 말과 부정적인 말을 삼가라
2) 다른 사람에게 인내심을 발휘하라
3) 사람과 그 사람의 행동이나 수행능력을 구별하라
4) 익명으로 봉사하라
5) 주도적인 반응을 선택하라
6) 다른 사람에게 한 약속을 지켜라
7) 영향력의 원에 초점을 맞추라
8) 사랑의 법칙을 실천하라
하고 배려합니까?
9) 다른 사람들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가정하라
10) 먼저 이해하도록 노력하라
11) 허심탄회하고 솔직한 표현과 질문을 칭찬하라
12) 이해심 있는 반응을 보이라
13) 감정이 상했을 때 자신을 선도하라
14) 자기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한 후 용서를 구하라
15) 논쟁은 창밖으로 날려 버려라
16) 한 걸음씩 전진하라
17) 공통 관심사에 대한 책임감과 소속감을 늘 새롭게 하라
18) 먼저 상대방의 영향을 받아들여라
19) 상대방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
는 것
20) 말을 준비하기 전에 먼저 마음과 정신을 준비하라
21) 싸우거나 도망가지 말고 차이점을 인정하고 대화하라
22) 가르침의 시기를 파악하고 이를 활용하라
23) 한계와 규칙, 기대와 결과들에 동의하라
24)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말라
25) 교차로에 있어보라
26) 논리와 감정의 언어로 말하라
27) 효과적으로 권한을 위임하라
28) 중요한 기획에 사람들을 참여시켜라
29) 수확의 법칙에 따라 훈련시켜라
30) 자연적인 결과로 하여금 책임 있는 행동을 가르쳐라
BR>1) 이해하기 전에 충고한다. -> 경청한 다음에 이해시켜라
2) 행위나 태도의 변함없이 인간관계를 형성 혹은 재형성하려 시도한다. -> 일관성과 성실함을 보이는 것 “ 당신의 성품이 아주 큰 소리로 외치기 때문에 당신이 하는 말은 내게 들리지 않습니다. ”
3) 좋은 본보기와 인간관계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 비전, 사명, 역할, 목적, 실행지침 그리고 기준들에 대해 가르치고 말하는 것이다.
됨은 말하는 바나 우리가 행동하는 바보다는 훨씬 더 웅변적이고, 설득력 있게 의사를 소통케 해준다.
12. 결혼 생활과 가족 관계를 풍요롭게 하는 8가지 방법
1) 장기적인 전망을 유지하라
2) 결혼과 가정생활에 대한 각본을 고쳐 쓰라
3) 당신의 역할을 재고하라
4) 목표를 재설정하라
5) 가족체계를 재정렬하라
6) 3가지의 근본적인 기술을 재정케 하라(시간관리, 의사소통, 문제해결)
7) 내적인 안정감을 되찾으라
- 진북의 원칙
- 풍부한 개인생활
- 자연을 감상하라
- 심신을 단련하고 개발하라
- 봉사하라
- 성실성을 보여라
- 그 밖의 다른 사람들
8) 가족 사명서를 개발하라
13. 자녀들을 챔피언으로 키우기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준다. (원칙중심적인 성품)
들이 스스로 자기 관심사를 개발하도록 격려한다.
를 만든다.
탁월한 모범을 보여주도록 한다.
는 시각화 능력을 가르친다.
- 시각화란 모든 일은 두 번 창조된다는 원칙에 기초한 것으로, 먼저 정신적으로 창조된 이후에 눈에 보이는 형태로 창조된다는 것이다.
친구들을 포용한다.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고, 신념을 갖도록 가르친다.
하고, 자원을 제공하며, 피드백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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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자질을 갖추는 요령
기업은 자질을 갖춘 신입사원을 좋아한다.
사실 자질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너무 조용해도 안되고 잘난 척도 감점 요인이다.
물론 이력서에서 엘리트 인재는 쉽게 식별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원자의 10% 남짓이다.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이력서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
이때 면접에서 옥석이 가려지는데
면접관들이 공통적으로 보는 항목이
자질이고 그 중 하나가 ‘CEO 자질’이다.
거창하게 최고경영자가 아니더라도 부서를 책임지고 끌고 가려면
리더십으로 나타나는 CEO 자질은 필수다.
타고난 리더십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의식적인 노력도
중요하다.
1.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
신입생 환영회와 MT, 농촌봉사활동 등 여러 행사에 적극 참여하라.
캠퍼스 안팎에서 접할 수 있는 각종 경험들은 물론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이를 진행하다 보면 조직사회에 대한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다.
2. 단체에서는 나서서 임원을 맡아라.
이왕 단체활동을 하려면 일반회원보다는 임원이 좋다.
학부와 단과대학 학생회, 총학생회 등에서 일하거나 동아리 임원을
맡아보는 것도 경험이다. 선후배 교류폭이 커지며, 교수들과의 인적 네트워크도 넓어져 도움을 얻을 수 있다.
3. 동호회를 개설하라
이미 만들어진 동호회나 모임에 가입하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
개설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 인터넷 카페, 스터디그룹 등을 개설하면 여러 가지 이점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4. 간접 체험이 중요하다
성공한 CEO들의 리더십을 배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관련 서적을 읽어 리더십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리더십을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방법은 무엇이지 배워야 한다.
세미나를 통해 간접 경험을 쌓는 것도 바람직하다.
명심하자.
타고난 리더십은 1%고 학습된 리더십은 99%라는 사실을.
5. 스피치 연습은 필수다
리더십 학습을 위해서 꾸준한 스피치 연습을 해야 한다.
남과 타협하거나 설득할 수 있는 언변도 중요하다.
명강사의 테이프를 듣고 적으면서 화법을 줄을 치면서 분석하라.
대화에서 상대방을 인정하거나 호감가게 말을 해주면 상대방을 설득할때 유리하다.
언행일치와 솔선수범의 태도를 갖추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6. 스스로 자신을 PR하라
지금은 자기 PR시대.
자신의 장점을 남에게 알리지 않으면 남들은 당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모른다. 리더십을 드러내려면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라.
자신의 능력과 성공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알리는 것도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7. 리더십의 기본은 인품이다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사고하라.
리더십의 기본은 인품에서 나온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생활방식 속에서
저절로 리더십은 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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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리더십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은 스타벅스를 세계적 커피 브랜드로 만들어 냈다. 막대한 홍보비는 없었다. 비결은 슐츠 회장의 리더십이었다.
그는 저서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신화'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보람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기업을 만들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생각이 바탕이 된 슐츠 회장의 제대로 된 직원관리는 종업원의 질 높은 서비스를 낳았고, 이는 다시 기업의 브랜드가치로 연결됐다. 이처럼 CEO의 바람직한 리더십은 세계적 기업이 되는 데 필수요소일 터.
세계 수많은 기업들의 경영진들에게 그 나라의 문화와 업종과 기업상황에 맞는 리더십에 대해 조언한 경험을 갖고 있다. 지난 22일 '리더십 코칭'에 대한 강연을 위해 방한한 그를 만나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를 들어봤다.
출처: 머니투데이 (2003.10.01)
- 리더십 코칭
리더십에는 이미 '이끈다, 가르친다'는 의미가 있다. 그 리더십을 코치한다는 '리더십 코칭'의 의미는 과연 뭘까.
"기업의 리더에도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리더(Emerging Leader), 좀더 향상된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리더(Developing Leader), 다국적 기업으로의 도약 등 발전과 변화를 꾀하는 리더(Strategic Leader) 등으로 나눠볼수 있지요. 리더십 코칭이란 그 리더의 유형이나 역량을 측정해 상황에 필요한 리더십이 무엇인가에 대해 조언해주는 일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해가 쉽진 않았다. 구체적 예를 부탁했다. "다국적기업 하인즈(Heinz)의 여러 회사 중 한 리더가 '명령하달식'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어, 조직 구성원의 문화와 맞지 않아 불만이 높았지요. 그 리더에게 다각도의 리더십 코칭을 통해 수평적인 조직문화로 바꿀 것을 조언했지요. 기업성과 역시 자연스레 향상됐습니다."
즉 리더십 코칭이란 리더의 성과보다는 행동에 중점을 맞춘 것이라는 설명이다. "리더의 행동이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해 결국 조직의 성과향상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리더십 코칭입니다."
- 한국적 리더십
크리스 피어스쿡(Chris Pierce-Cooke,50) 라이트 매니지먼트 컨설턴츠(Right Management Consultants, 이하 라이트社) 글로벌 수석 부사장은 리더십 코칭 및 인적관리(HR) 컨설팅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다.
라이트 매니지먼트 컨설턴츠(Right Management Consultants)
라이트는 1980년 설립됐다.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세계적 인적자원(HR) 관련 컨설팅 기업이다. 전 세계 35개국에 300여개 지사, 3600여명의 컨설턴트를 보유하고 있다.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 중 80% 이상이 라이트사를 고용하고 있다.
포브스 선정 미국 200대 최우량 중소기업에 4년 연속 선정된 바 있고, 비즈니스위크의 미국 100대 최우량 중소기업에도 올랐다.(미국에서 컨설팅기업은 속성상 중소기업으로 분류된다) 한국에는 지난 7월 지사를 설립, 활동을 시작했다.
개념적 설명은 역시 딱딱했다. 한국 기업들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키기 위한 리더들의 필수덕목이 무엇인지 물었다. "한국 기업은 연공서열을 중시하며, 또 최고경영자가 독단적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가장 큰 덕목은 유연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바람직한 리더의 예로 김정태 국민은행장을 꼽았다. 보수적인 문화를 가진 은행간의 합병과 구조조정을 큰 잡음없이 유연하게 처리했다는 점이 그 이유였다. "한국에서는 CEO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조되는 미국식 스타일보다는 원활한 의사소통과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강조하는 유럽 스타일의 리더십이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피어스쿡 부사장은 최근에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노조와의 갈등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무능력과 성과에 따른 인사관리 시스템이 한국 문화에서 아직도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은 측면이 물론 있지요. 하지만 이런 문제보다는 노측의 입장을 듣고 그것을 객관적 문제로 이해하는 리더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인적관리의 본질이지요."
최근 자살한 정몽헌 현대 회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정치 남북관계 등 복잡한 문제가 있어 단순한 경영 리더십만의 문제로 논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리더가 스트레스와 개인 감정을 다루는 문제에 있어서 좀 더 훈련이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끝으로 한국의 CEO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CEO에겐 지능과 감성 뿐 아니라 용기도 필수적인 덕목입니다. 리더는 구조적으로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기 힘든 위치지만, 마음을 열고 부하직원 동료 고객회사 등에게 냉정한 평가를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꼭대기부터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해야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조직으로 바뀝니다. 그래야만 회사의 경영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다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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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하게 하는 리더십, 망하게 하는 리더십
기업을 흥하게 하는 리더가 있고, 망하게 하는 리더가 있다. 모두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 추진과정에 따라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기업을 흥하게 또는 망하게 하는 리더십은 무엇이
고, 그 차이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흥하게 하는 리더십
1. 활력을 모으는 리더십
리더의 성격에 따라 조직 분위기는 180도로 달라진다. 근래 들어 많은 취업 희망자들이 CEO의 자질을
꼼꼼히 살펴보려고 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기업의 조직 분위기는 매출곡선과 관계없이 결정되
게 마련이다. 물론 여기에는 구성원 개개인의 역할이 뒤따르게 된다. 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리더가
조직을 응집력 있게 만들지 못하고 활력을 모으지 못한다면 분위기는 금세 퇴색해 질 수 있다.
활력 있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리더는 경우에 따라 상황연출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이 설사 위기에 봉착했다고 하더라도 리더는 항상 위풍당당하고 자신감에 차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린 커다란 곤경
이 빠져 있다는 태도로는 조직을 전투장으로 끌고 갈 수 없다". AT&T의 전 CEO인 알렉스 맨들의 이야
기처럼 리더의 얼굴은 언제나 밝고 희망에 차 있어야 한다.
2. 상황파악이 정확한 리더십
미래가 불투명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불투명한 시대에서는 전문지식의 무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문지식은 상황파악을 명확하게 하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전문지식이란 상황흐름에 대
한 정확한 예측과 진단을 할 수 있는 전문성을 말한다.
전문성이 결여돼 있는 상태에서 만약 당신이 권위적인 위치에서 명령을 내리거나 지시를 내린다면 회사를 구렁텅이로 빠트릴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지식들, 경쟁사의
정보들…. 전문성은 이러한 상황에서 리더십을 강하게 만드는 묘약이 된다.
3. 수평적인 의사소통
제휴가 다반사로 이뤄지고 대외업무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독자적으로 무엇을 추진하기보다는 여러 명이, 다른 조직 또는 다른 기업과 함께 일을 추진하는 파트너십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제휴와
파트너의 시대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 돋보이는 리더가 승자가 될 확률이 높다. 부하직원과 상대방을 보다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내편으로 만드는 커뮤니케이션 기술, 디지털 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리더의 또 다른 자질이다.
그러나 의사소통만 원활하게 한다고 해서 기업을 흥하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대방의 직급에 관계없이 의사를 존중해주어서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확산되어야 한다. 의견개진이 수직적이고 경직된 상태라면 위기에 몰린 회사를 살릴 수 있는 아이디어도 묵살될 수밖에 없다.
망하게 하는 리더십
1. 독불장군식 리더십
한 경제신문이 네티즌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기업경쟁력이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느냐"가 질문이다. 설문 결과 많은 네티즌들은 50% 이상이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에서 경쟁력이 나온다고 답변했다. CEO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보면 아직 우리 사회가 최고경영자 중심의 경쟁력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외국의 유명 기업에서는 최고경영자 외에도 약 40∼50명의 핵심 리더들이 포진되어 기업의 경쟁력을 다방면으로 유발해 낸다고 한다. CEO를 구심점으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좋지만 모든 상황
이 CEO의 말 한마디로 좌우되는 것은 조직을 획일적으로 만들 소지가 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내부의 의사결정이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경우이다.
2. 공감하지 못할 목표를 제시하는 리더십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열정이 넘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열정은 자칫 그릇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정도가 지나치면 화가 된다'는 얘기다. 실제로 조직의 역량을 간과하고 목표를 지나
치게 높이 잡아 오히려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조직은 지나치게 높게 할당된 목표를 달성하느라 과정을 무시하게 되고 이는 부메랑이 되어 기업에 화를 끼치게 된다. 따라서 리더는 조직의 열성을 합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을 짜야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목표를 수립해야만 한다.
3. 말과 행동이 다른 리더십
계획과 실천이 다른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설계도면대로 건물이 지어지지 않아 입주자가 불안해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 "버젓이 기업 전용기를 타고 가서 공장장에게 종업원 수를 줄이라고 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잭 룬드버그, 덴버 살라/스베달라 인더스트리즈 CEO).
잭 룬드버그의 말처럼 리더의 말과 행동은 작은 것이라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우리는 하겠다.
고 말한 대로 행동한다."는 美 크래프트 CEO의 말처럼 최고경영자는 항상 일관된 말과 행동을 보여야 한다. 말과 행동이 다른 리더는 누구라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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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인 리더의 특징
적어도 정상적인 리더라면 리더라는 위치가 축복인 동시에 얼마나 무거운 부담인지를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리더라는 위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개인적인 삶과 공동체와 조직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리더인 우리들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웨렌 베니스(Warren Bennis)와 버트 나누스(Burt Nanus)는 기업의 CEO들과 미국을 진보시킨 기업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중요한 특징들을 정리한 바 있다.
이 특징들은 리더인 우리들에게 많은 힌트를 던져주고 있다.
1. 자각
이들이 인터뷰했던 리더들은 모두가 자기지식면에서 뛰어 났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마디로 이들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의 자질과 그것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으며,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 더 많은 지식을 쌓아가고 있었다. 자칫하면 “자기지식”면에서 약점을 가지기 쉽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2. 가치있는 피드백
좋은 리더들은 자신의 행동과 성과에 대한 피드백을 얻기 위해 가치 있고 다양한 근원을 개발한다. 핵심은 역동적인 리더들은 가치있는 피드백을 의도적으로 얻고자 했다는 사실이다. 많은 리더들에게 최고의 근원은 배우자이다. 이들의 연구에 의하면 ‘포춘’지가 선정한 200대 기업 중 40여명의 CEO가 첫 배우자와 살고 있었으며 결혼과 가정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즉, 그들은 진정으로 신뢰할만한 가치있는 피드백을 제공해 주는 사람과 관계를 지속하고 그 의견에 귀 기울이며, 이를 통해 변화를 추구했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가치있는 피드백을 추구하며, 그것을 향해 열린 귀를 가지고 있는가?
3. 학습에 대한 열망
유능한 리더들은 훌륭한 화자(Speaker)인 동시에 청자(Listener)이다.
그들은 자신의 업무와 일, 회사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항상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학습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끊임없이 기술과 능력을 연마하고 향상시킨다. 동시에 누구에게서든 배우고자 하는 겸손함을 가지고 있다. 또 그들은 긍정적인 변화를 이룰 수 없었던 경험을 통해서도 배울 뿐 아니라, 예상치 못했던 난관을 피하기 위해 늘 새로운 정보에 귀를 기울인다.
4. 끝없는 호기심
리더들은 모험가이자 위기 수용자로 호기심이 많다.
그들은 어떤 큰 위기가 닥쳐와도 기꺼이 감수한다.
롱펠로우는 “인생은 여행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 그 여정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5. 역경에서의 깨달음
누구나 인생에서 큰 역경과 위기, 실패를 겪게 마련이다. 이들이 연구했던 리더들 중에도 어린 시절을 힘겹게 보낸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UCLA의 존 우든 감독과 같은 사람은 어렸을때 겪었던 남다른 좌절을 매우 감사하게 여긴다. 그런 고통을 통해 미래의 성공을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는 그를 성장시켰다.
그의 목표는 단지 좋은 시즌 전력이나 연속승리, 챔피언이 아니라 선수들이 실패와 성공을 통해 뭔가를 배움으로 미래를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6. 전통과 변화의 균형
유능한 리더는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화이트 헤드는 유능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개혁과 변화 뿐 아니라 전통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웨렌 베니스는 자기 자신이 개혁과 변화에 대한 욕구가 너무 커서 전통과 안정을 고려하지 못했고, 그로인해 큰 문제에 봉착한 적이 있었음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역사와 문화에 지나치게 집착했더라면 이뤄내지 못했을 일도 많았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그러고 보면 여기에는 분명히 모순이 존재한다. 따라서 리더는 문화적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그것에 함몰되지 않는 비결을 알아야 한다.
7. 개방적인 스타일과 올바른 업무처리
유능한 리더는 자신이 모든 문제를 다 다룰 수는 없으며, 더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료들과 시스템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8. 훌륭한 역할 모델
좋은 리더들은 좋은 역할 모델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그들은 자신이 역할 모델과 선구자 노릇을 하는데 자부심을 갖는다. 결국, 역동적인 리더는 진심으로 그를 따르는 추종자를 만들게 되고, 사람을 길러내게 된다.
“인간은 권력을 쥐었을때 자신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준다”라는 소포클레스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좋은 리더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 올바른 푯대를 세울 수 있다면 그 축복은 리더 자신 뿐 아니라 그와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의 것이 될 것이다.
CEO의 리더십 스타일
경영이론가 찰스 파커스가 몇년 전 전세계 160명의 유명 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리더십 스타일 연구 분석에서 5가지 리더십 스타일이 나타났다.
1. 전략형
CEO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기업의 중장기 전략을 세우고 진로를 설정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스타일이다. CEO는 또 많은 시간을 조직의 출발점(사업의 추진)과 도착점(시장위치)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일에 보낸다. 관심사도 조직 내부문제보다는 고객, 경쟁자 등 외적 요인에 더 많이 집중돼 있다. 또 탁월한 기획력이나 일상적인 조직업무를 알아서 수행하는 직원들을 높이 평가하는 스타일이다.
2. 인적자원형
전략형과는 정반대되는 유형이 인적자원형이다. CEO는 전략수립보다는 종업원 개개인의 성장과 개발을 관리하는 것이 최우선 업무라고 생각한다. 종업원들로 하여금 조직에 대한 확실한 가치관과 행동을 취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궁극적인 목표 역시 일관성있게 행동하는 장기근속자들을 위성CEO로 키워 각 조직의 수준에 맞게 배치함으로써 기업을 일종의 우주로 만드는 것이다.
3. 전문가형
전문가형은 주요 임무가 경쟁우위의 원천이 될 전문영역의 확대로 보는 스타일이다. 신기술 연구, 경쟁제품의 분석, 엔지니어와 고객의 만남 등 전문성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또 전문성을 획득하고 공유하는 종업원들에 대해 승진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관심을 보인다. 전문경력자를 우대하지만 동시에 편견이 없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신입사원들을 선호하기도 한다.
4. 규제형
규제형은 명확한 통제시스템을 만들어 이를 종업원과 고객들에게 적용시키려 하는 스타일이다. 종업원들에게는 항상 일관성 있는 행동을 요구하고 고객들에게 예측가능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관리상의 문제점을 평가하며 절차, 법규, 보상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궁극적으로는 통제시스템을 만들어 이를 알리고 준수하는지를 감시함으로써 기업이 부가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5. 혁신형
혁신형은 도중에 전략적 실수로 혼란이 야기된다 해도 지속적인 혁신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주된 임무라고 여기는 스타일이다. 또 전략형 CEO와는 달리 어떤 목표보다는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 관심이 있고 통제시스템이나 규칙에는 큰 관심이 없다. 대신 많은 시간을 종업원들의 동기부여를 위한 강연이나 회의에 사용한다. 공격적이고 독립적인 기질도 강해서 미래에 대한 열정과 개방성향의 종업원을 선호한다.
자, 그렇다면 당신의 리더십 스타일은 이 5가지 중 어느 유형인가. 예컨대 “나의 스타일은 전문가형인데 전략형 요소가 가미돼 있다”거나 “전략형인데 인적자원형 요소도 가미돼 있다”는 식의 느낌은 받지 않았는가. 실제로 다수의 CEO들은 “자신이 규제형이지만 필요할 경우는 전략형 요소들을 활용한다”는 식으로 리더십 스타일을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라고 한다.
그러나 찰스 파커스의 연구결과는 유능한 CEO들은 대체로 하나의 리더십 스타일을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신이 선택한 리더십 스타일을 조직의 모든 의사결정과 행동을 지휘하기 위한 일관된 나침반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어떤 스타일의 CEO를 선택할 것인가는 순전히 비즈니스 차원의 문제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후진성은 대개 유능한 CEO의 부재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 기업들도 유능한 CEO에 대한 판단을 리더십 스타일로 가려내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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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CEO의 좌우명(無順)
1. 경청(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2. 땅속의 씨앗은 자기의 힘으로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 온다.(이승훈 마산자기회사 창업주)
3. 한번 사람을 믿으면 모두 맡겨라.(구인회 LG그룹 창업주)
4.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한다.(박용호 두산그룹 회장)
5.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6. 남과 같이 해서 남 이상 될 수 없다.(김인득 벽산그룹 창업주)
7. 스스로 쉬지 않고 노력한다.(김종희 한화그룹 회장)
8. 겉치레를 삼가고 실질을 추구한다.(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9.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자.(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10. 인화가 제일 중요하다.(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
11. 아직 배가 12척이나 있고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윤병철 우리금융그룹 회장)
12.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겨라.(정건섭 동양화재 대표)
13. 우주는 무한하고 인생은 짧다.(이방주 현대산업개발 대표)
14. 효도는 모든 행동의 근본이다.(박찬법 아시아나항공 대표)
15.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한다.(강영중 대교그룹 창업주)
16. 디지털 세상에 선을 창조한다.(김남주 웹젠 대표)
17. 넓고 깊게 안다.(이승한 삼성테스코 대표)
18.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신호주 코스닥증권시장 사장)
19. 기업은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
20. 의가 아닌 것은 취하지 말라.(박정구 금호그룸 전 회장)
21. 충분히 생각하고 단호히 실행하라.(김영수 캐드콤 대표)
22. 깊은 강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배종렬 삼성물산 대표)
23. 약속은 꼭 지킨다.(구본무 LG그룹 회장)
24. 남보다 먼저 시간을 더 투자할 각오를 한다.(안철수 안철수연구소 대표)
25. 하면 된다.(김태연 TYK그룹 회장)
26. 원칙이 곧 지름길이다.(배중호 국순당 대표)
27. 실천이 중요하다.(최태원 SK회장)
28.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또 나날이 새롭게 하라.(조운호 웅진식품 대표)
29. 정성을 다해 노력한다.(서경배 태평양 대표)
30. 꿈꾸는 자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김범수 NHN 대표)
유명 CEO의 좌우명 2(無順)
1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 - 재물에 있어서는 물처럼 공평하게 하라
2 마산자기회사, 이승훈 창업주 - 땅속의 씨앗은 자기의 힘으로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온다
3 경주 최부잣집 백산상회, 최준 창업주 -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4 유한양행, 유일한 창업주 - 기업은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
5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인천 창업주 - 신의, 성실, 근면
6 샘표식품, 박규회 창업주 - 옳지 못한 부귀는 뜬구름과 같다
7 코오롱그룹, 이원만 창업주 - 공명정대하게 살자
8 경방그룹, 김용완 명예회장 - 분수를 알고 일을 즐긴다
9 효성그룹, 조홍제 창업주 - 덕을 숭상하며 사업을 넓혀라
10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 - 수신제가치국평천하
11 LG그룹, 구인회 창업주 - 한 번 사람을 믿으면 모두 맡겨라
12 쌍용그룹, 김성곤 창업주 - 인화(人和)가 제일 중요하다
13 현대그룹, 정주영 창업주 -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14 벽산그룹, 김인득 창업주 - 남과 같이 돼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
15 교보생명, 신용호 창업주 - 맨 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는다
16 대림그룹, 이재준 창업주 - 풍년 곡식은 모라자도 흉년 곡식은 남는다
17 개성상회, 한창수 회장 - 아름답고 평범하게 살자
18 한진그룹, 조중훈 창업주 - 모르는 사업에는 손대지 말라
19 대상그룹, 임대홍 창업주 -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고 있다
20 한화그룹, 김종희 창업주 - 스스로 쉬지 않고 노력한다
21 롯데그룹, 신격호 창업주 - 겉치레를 삼가고 실질을 추구한다
22 SK 그룹, 최종현 회장 - 학습을 통하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
23 을유문화자, 정진숙 회장 - 차라리 책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거지가 더 낫다
24 두산그룹, 박용곤 명예회장 - 분수를 지킨다
25 금호그룹, 박정구 전 회장 - 의가 아닌 것을 취하지 말라
26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 - 모은 일에 정성을 다하자
27 두산그룹, 박용오 회장 - 부지런한 사람이 성공한다
28 우리금융그룹, 윤병철 회장 - 아직 배가 12척이나 있고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29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 -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끝까지 완수하자
30 미래산업, 정문술 회장 - 미래를 지향한다
31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 -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 없다
32 두산중공업, 윤영선 부회장 -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
33 캐드콤, 김영수 대표 - 충분히 생각하고 단호히 실행하라
34 아티포트, 김이현 회장 - 사슴은 먹이를 발견하면 무리를 불러모은다
35 SK텔레콤, 조정남 부회장 - 하는 일마다 불공을 드리는 마음으로 대하라
36 동양화재, 정건섭 대표 -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겨라
37 연합캐피탈, 이상영 대표 - 물은 모두를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는다
38 삼우무약, 이성희 회장 - 이득은 적당히 탐해야 한다
39 원일종합건설, 김문경 회장 -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40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 경청
41 현대모비스, 박정인 회장 - 인내
42 LG 칼텍스정유, 허동수 회장 -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
43 코오롱건설, 민경조 대표 - 덕은 외롭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44 한국타이어, 조충환 대표 - 밝고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지니자
45 현대산업개발, 이방주 대표 - 우주는 무한하고 인생은 짧다
46 삼성물산, 배종렬 대표 - 깊은 강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47 현대아산, 김윤규 대표 - 부지런하면 굶어 죽지 않는다
48 만도, 오상수 대표 - 나의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
49 KT, 이용경 대표 - 노력한 만큼 거둔다
50 LG그룹, 구본무 회장 - 약속은 꼭 지킨다
51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 -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한다
52 벽산, 김재우 대표 - 계획은 멀리 보되 실천은 한 걸음부터
53 아시아나항공, 박찬범 대표 - 효도는 모든 행동의 근본이다
54 한라공조, 신영주 대표 -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55 재능교육, 박성훈 회장 - 교육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살자
56 삼성전자, 이윤우 부회장 - 단순한 것이 최고다
57 대우인터내셔널, 이태용 대표 -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나서 천명을 기다린다
58 OTIS & LG, 장병우 대표 - 걷고 또 걷는다
59 휠라코리아, 윤윤수 대표 - 정직
60 한세실업, 김동녕 대표 - 한 걸음 늦게 가자
61삼성테스코, 이승환 대표 - 넓고 깊게 안다
62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 -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63 LG화학, 노기호 대표 - 선(善)을 따르는 것이 물의 흐름과 같다
64 대우일렉트로닉스, 김충훈 대표 - 생행습결
65 신한카드, 홍성균 대표 - 모든 일은 즐겁게 하는 것이 제일이다
66 포스틸, 김송 대표 -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67 골든브릿지, 정의동 회장 - 아는 것도 어렵고 행하는 것도 쉽지 않다
68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 지고 이겨라
69 KT 네트웍스, 이경준 대표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70 유한킴벌리, 문국현 대표 - 세 사람이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71 대교그룹, 강영중 창업주 -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한다
72 동양시스템즈, 구자홍 대표 - 기본에 충실하자
73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 - 병사가 교만하면 싸움에서 반드시 진다
74 코스닥증권시장, 신호주 사장 -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75 TYk그룹, 김태연 회장 - 하면 된다
76 광혁건설, 신현각 대표 - 인정을 베풀면 훗날 좋은 모습으로 불 수 있다
77 아산재단, 정몽준 이사장 - 화합은 하지만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78 이니시스, 이금룡 대표 -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자
79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 - 죽을 각오로 싸우면 반드시 산다
80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헤어친다
81국순당, 배중호 대표 - 원칙이 곧 지름길이다
82 하나투어, 박상환 대표 -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는 발전이 없다
83 마리오, 홍성열 대표 - 준비를 하면 근심할 것이 없다
84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 매순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자
85 한솔그룹, 조동길 회장 - 겸손하게 살자
86 로만손, 김기문 대표 -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하라
87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 -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살자
88 CJCGV 박동호 대표 - 촌음도 나의 것
89 미래에셋그룹, 박현주 회장 - 독수리는 조는 듯이 앉아 있고 호랑이는 앓는 듯이 걷는다
90 SK, 최대원 회장 - 실천이 중요하다
91 휴맥스, 변대규 대표 - 깊이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자
92 파이언소프트, 이상성 대표 -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하라
93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대표 - 남보다 시간을 더 투자할 각오를 한다
94 웅진식품, 조운호 대표 -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또 나날이 새롭게 하라
95 태평양, 서경배 대표 - 정성을 다하여 노력한다
96 NHN, 김범수 대표 - 꿈꾸는 자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97 SK 텔레콤, 가종현 상무 - 범사에 감사하라
98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 - 떳떳할 수 있게 살아야 한다
99 웹젠, 김남주 대표 - 디지털 세상에 선(禪)을 창조한다
100 컴투스, 박지영 대표 - 모든 사람에게 배울 점이 있다
0 조선시대 학자, 율곡 이이 - 먼저 뜻을 크게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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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전문가 존 맥스웰 박사의 강연회
리더십은 바로 영향력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만일 당신이 스스로 리더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당신의 말과 행동이 누구에게도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다면 당신은 리더가 아니다.
리더십의 5단계
리더십, 즉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에는 다섯 가지 단계(5 Levels of Leadership)가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지위(Position)이다. 당신이 특정한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의무감에서 당신을 따른다. 당신의 지위가 당신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당신의 영향력은 당신의 직무상 권한 이상을 뛰어넘지 못한다. 리더십이 이 단계에 오래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조직원들의 이직률은 높아지고 사기는 떨어지게 된다.
두 번째 단계는 허용(Permission)이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당신의 지위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이 당신을 따르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따른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소는 ‘관계’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사람들은 당신의 지위 이상으로 당신을 따른다. 일하는 것이 즐겁다. 그러나 이 단계에 너무 오래 머무르고 더 이상 진보하지 않으면 동기 부여된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낀다.
세 번째 단계는 성과(Production)이다. 사람들은 당신이 조직을 위해 이루어 놓은 일로 인해 당신을 따르게 된다. 여기에서는 ‘결과’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 단계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공을 감지한다. 그들은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의 행동을 지지한다. 이러한 추진력 때문에 작은 노력으로도 문제가 해결된다.
네 번째 단계는 인물 계발(People)이다. 사람들은 당신이 그들을 위해 행한 일로 인해 당신을 따르게 된다. 당신은 다른 사람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장기적인 성장이 일어난다. 당신이 조직 내 리더를 양성하기 위한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직과 구성원들의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리더라면 이 단계에 오르고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하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다섯 번째 단계는 인격(Person-hood)이다. 사람들은 당신의 인격과 당신이 대변하는 일을 통해서 당신을 존경한다.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면 당신의 리더십은 최고로 평가받을 것이다.
이 같은 ‘리더십의 5단계’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리더십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알고 있다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셈이다.
하지만, 자신의 리더십의 단계를 알고 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리더십의 단계는 나이처럼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안타까운 사실은 2단계에서 바로 4단계로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순간순간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리더십의 성장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의 리더십을 성장시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여기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리더십의 단계를 오르는 방법
일단 첫 번째 지위의 단계는 어느 누구에게나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단계이다. 내가 선생님이 되면 당연히 내가 맡은 학급 내에서 리더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2단계에서부터 리더십의 단계를 올라가는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리더십의 두 번째 단계인 ‘관계(허용)’ 단계에서는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는 능력이 매우 중요시된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첫째, 새로운 친구 만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자주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면 당신이 해야 하는 일에는 변화가 생길 것이다.
당신은 또한 새로운 친구들 때문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게 되고 그 관계 안에서 이전과는 다른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얻게 된다.
둘째,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으려면 그 사람들과 의사소통(Communi-cation)을 잘 해야 한다.
특히 사람을 만날 때 항상 ‘HOPE’를 가지고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HOPE’란 희망(Hope), 사랑(Love), 상대에 대한 가치부여(Personal values), 격려(Encouragement)의 머릿글자를 딴 것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때 비관적인 이야기보다는 희망적인 말을 하며, 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고 격려하면서 사랑으로 헌신한다면 어느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리더십의 세 번째 단계인 ‘성과’단계에서는 사람들과 조직을 이끄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러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나는 우선 여러분들에게 좋아하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모든 일은 좋아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설득하라.
둘째,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성과를 내라. 리더십의 성장은 효과적인 변화가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게 될 때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따르게 된다.
당신에게 기회가 왔다면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당신의 영향력을 확장시키는 좋은 기회로 삼아라. 당신이 성장하면서 성과를 내게 된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변화시키는 일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돕게 될 것이다.
리더십의 네 번째 단계인 ‘인간계발’단계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개발하고 훈련시키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인간관계를 깊고 견고히 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리더십의 다섯 단계의 각 단계는 이전 단계의 성과 위에 존재한다. 따라서 이전 단계가 소홀하면 붕괴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당신이 허용(관계)의 단계에서 성과(결과)의 단계로 이동할 때 당신을 따르면서 성과를 거두도록 도왔던 이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이 이용당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더 나은 상황 혹은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그들과의 관계를 계속적으로 연결한다면 당신의 리더십은 계속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둘째, 당신은 팀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을 자신과 동일한 리더 수준에 이르도록 돌봐 주어야 한다. 당신의 추종자들을 당신과 함께 최상의 수준에 이르도록 돌봐 주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신과 다른 지도자들의 일치된 영향력은 나머지 사람들에게 일체감을 심어 준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할 경우 모임 안에서의 관심도와 충성심에는 균열이 생기게 된다.
리더십은 결국 당신의 돈이나 직위 없이도 자발적으로 당신에게 헌신하길 원하는 추종자들을 모으는 능력이다. 나아가서는 당신과 같은 리더들을 양성하여 조직의 파워를 폭발적으로 확대시키는 능력이다.
당신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타인에게 변화와 열정을 끌어내는 영향력이 부족하다면 당신이 한 주에 60시간을 일한다 해도 당신의 팀의 성과는 머지않아 막다른 골목길에 도달할 것이다.
따라서 당신이 성공하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자신의 리더십의 단계를 점검하고 이를 발전시킬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만일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들이 어렵고 순서들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면 단 한 가지만 기억하라.
“당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치를 부여하라. 그러면 당신은 자연스럽게 성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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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코비 박사의 상생 리더십
“직원들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파트너로서 인정받기 원한다”
한국리더십센터 초청으로 한국을 세 번째로 방문한 스티븐 코비 박사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한국에서 1백20만부가 팔렸고, 전 세계 36개국에서 번역돼 1천3백만부 이상이 팔렸다. 지난 10, 11일 강연회를 연 코비 박사는 21세기 환경에서는 ‘상생의 리더십’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Q 당신의 책에는 가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이유와 가정 교육이 궁금하다.
가족은 사회의 기본이다. 유대감이 좋은 가족이 행복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교육할 때는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나에게 가르쳐달라고 한다. 부모가 아이의 학생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직적 커뮤니케이션이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저항감을 가지지만, 언젠가는 전환이 되게 된다. 가족은 내가 책을 쓰는데 실험실 역할을 한다.(스티븐 코비 박사는 1956년 샌드라 메릴 코비와 결혼하여 9명의 자녀를 뒀고, 손자?손녀만도 20여명이 넘는 대가족을 이끌고 있다.)
Q 동양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 있는지?
동양에 대한 관심이 많고, 동양 서적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코란도 많이 읽었고, 나의 영웅은 간디다. 동양사람들은 고요함과 자기성찰을 많이 하는 반면, 서방은 행동중심적이고 추진력이 강한 면이 있다. 이 부분을 접목해서 균형을 이룰 때 상당한 지혜가 발휘될 것이라고 믿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만나 서신 모음집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이번 방한에 노대통령과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Q 제왕적 리더십에 대한 회귀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권위적이고 비도덕적인 리더십은 오래가지 못한다. 도덕적 관리가 더해져야 오래갈 수 있다. 중산층이 넓어져야 된다. 그리고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의 차별이 없어야 한다. 간디와 만델라는 이것을 실천한 인물들이다. 권위주의 리더십은 오래가지 못한다. 정보가 민주화되고 개인의 목소리가 커지는 사회로 변화되고 있다.
Q 한국 CEO와 미국 CEO의 차이점은?
한국에서 강연할 때는 통역하기 때문에 느낌을 정확히 전달받을 수 없다. 일반적인 느낌을 얘기하자면, 미국 CEO들과 비교할 때 아시아나 남미 CEO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더 잘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느낌이다. CEO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것은 그들이 많이 겸손해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재적으로 뭐가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지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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