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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Save The Last Dance For Me<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에스더2381 2011. 2. 2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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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Garde-Moi La Derniare Dance


소개
이 곡은 원래 미국 노래로서 원제를 <Save The Last Dance For Me>라고 하며,

1960년에 다크 포무스(D. Pomus)가 작사하고 모트 슈만(M. Schuman)이 작곡했다.

같은 해에 드립터즈가 불러 미국 히트 차트의 톱이 되었다. 74년에도 토니 데프랑코가 주축이 되어

활동한 데프랑코 패밀리의 레코드로 리바이벌 히트한 바 있다.


작곡자 모트 슈만(프랑스어로는 ‘모르 슈망’이라 읽음)은 본명을 모티마 슈만이라고 하여,

 1938년 11월 12일 뉴욕 브룩클린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폴란드에서 건너온 이민이었으며,

 집이 가난하여 두 사람 모두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가 음악과 친해지게 된 계기는 아버지가 동료들과 합창단을 결성, 활동했던 점과,

 백부 중 한 사람이 음악을 좋아해서 네 살인가 다섯 살의 조카에게 억지로 바로크 음악을 들려준 덕분이었다.

 만돌린을 배우고, 이어 피아노에 정열을 불태운 슈만은 시민을 위한 강좌에 다니며 매일 밤 피아노를 연습했다.

양친은 고생해서 그를 대학에 보내 2학년까지 그곳에 적을 두었으나,

당시 매료되어 들은 것은 라디오에서 흐르는 파퓰러 음악이었다.


1952년부터 53년에 걸쳐 록 음악이 크게 인기를 얻고 있었던 무렵, 그는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권유를 받아 어틀랜틱 레코드를 찾아갔는데, 그의 작품을 25달러에 사 주었다.

 이렇게 해서 작곡가 모트 슈만이 탄생했다. 이후 3년간 그는 열심히 작곡했고,

한 악보 출판사가 계약을 맺어 주었다.

 

그러던 중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그의 작품을 다루어 일약 주목을 모았다.

레이 찰스나 앤디 윌리엄스 등을 위해서도 곡을 썼고, 몇 편의 히트곡도 태어났다.
1963년, 영국에 대두하기 시작한 새로운 음악 활동을 시찰하기 위해 악보출판사는 슈만을 유럽에 파견했다.

 3개월의 예정이었지만, 주말을 파리에서 보낸 그는 완전히 이 도시가 마음에 들어,

귀국하고 나서도 언젠가 파리에 살려고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1964년, 일을 구실로 해서 코트 다쥐르에 체재하던 어느 날 자크 브렐의 쇼를 보고 상당히 큰 쇼크를 받았다.

 그리고 66년, 「Jacques Brel Is Well And Living In Paris」라는 쇼를 뉴욕에서 상연,

브렐의 샹송을 소개했으며, 이때 그 자신도 처음으로 가수로서 무대에 섰다.
1971년, 슈만은 프랑스에 영주할 것을 결심하고 미국을 뒤로 했다.

 

 파리에서는 줄리앙 클레르(Julien Clerc)의 가사를 쓰고 있었던 에티엔느 로다 질과 만나 의기투합,

 로다 질 작사·슈만 작곡의 노래가 잇따라 만들어졌다. 슈만 자신이 부른 LP 레코드가 72년 가을에 출반되고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올렝피아 극장에도 진출하여 호평을 받았다. 이후 그는 프랑스를 근거로 하여

 가수겸 작곡가로서 활약했다.


모트 슈만 초기의 대히트곡이 이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이다.

프랑스에서는 이것에 앙드레 사르베·프랑수아 레나 등 두 사람이 프랑스어 가사를 붙이고,

 달리다가 불러 성공을 거두었다.


샹송 레코드는 달리다 외에 다니엘 다리외의 노래도 좋다. 그 밖에 마야 카사비안카(Maya Cassbianca) 등이 있고,

 작곡자 모트 슈만 자신도 프랑스어와 영어를 섞어서 취입했다. 영어 음반은 드립터즈 등의 것이 있다

출처 :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정원
글쓴이 : 아프리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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