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New Year's Day |
|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흑인 음악계에 수많은 수퍼 스타들이 존재하지만 그등중 최고의 아티스트를 꼽으라면 당연코 스티비 원더가 1 위의 자리에 뽑힐 것이다, 이 글은 단순히 스티비 원더를 칭송해서 이 글을 쓰기위한 서술이 아니라 왜 스티비 원더를 수퍼 스타인 마이클 잭슨이나 프린스등이 아닌 최고의 흑 진주로 생각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스티비 원더의 이미지는 영화 음악으로 쓰였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나 종종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Part Time Lover, 광고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Yester Me Yester You Yesterday 그리고 팝 팬들이이면 누구나 한번 들어보았을
하지만 그것은 스티비 원더의 단편적인 음악들 뿐이고 그의 음반을 모조리 구해서 들어 본다면 아마 사막에 오아시스를 만난것처럼 너무나 기뻐서 그의 음반에 입을 맞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이유는 비틀즈가 백인 음악에 있어서 음악 형식이나 멜로디의 보고라면 스티비 원더는 흑인 음악에 모든 장르를 포섭하는 음악적 뿌리를 잉태하고있어 그의 음악을 모조리 들어보면 그 광대한 장르들과 실험성 흑인만이 낼수있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보고 이기 때문이다,
국내에 발매된 스티비 원더의 음반을 하나도 빠짐없이 뒤져보니까 아쉽게도 그의 명작 앨범은 하나도 발매가 되지 않았고 우리에게 익숙한 그의 히트곡들을 모은 히트곡 모음집이나 배스트 음반 성격의 앨범들만이 말매가돼서 그의 음악의 진수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음만 남는다, 스티비 원더의 4대 명반
가수에게 누구나 그의 음악을 대표하는 명반이 존재하듯이 스티비 원더에게도 팝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아주 훌륭한 음반들이 있다, 스티비 원더의 지금까지 발표된 수많은 음반들중에 그의 최고 명반이라고 생각되는 앨범들을 딱 4장만 골라 그 핵심만 살펴보겠다, 그런데 특이할 만한 점은 스티비 원더를 대표하는 명반들이 모두 70년대 중 후반 그의 전성기때 작품이라는 것이다, 스티비 원더도 초창기때에는 레코드 회사가 원하는 대로 대중이 좋아할만한 작품들만 노래했는데, 그가 성인이 되어서 20대 중반부터는 아티스트로서 자기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명반들이 모조리 꼬맹이 스타로서 (참고로 스티비 원더는 13살때 데뷔하였음) 산전 수전 다겪고 음악적으로 새로운것을 창조하고픈 욕구가 한창 물오를대로 오른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요 앨범들을 살펴보면 1972년에 발표한 "Talking Book" (1) 이앨범 한장으로 그저 평범한 팝가수로서의 그의 위치가 완전 아티스트로서 인정을 받게되고 그해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거머쥐게된다, 이 앨범의 수록곡 들을 살펴보면 ,Shirley Brewer 와 듀엣으로 부른 리듬감이 넘치고 아주 사랑스런 발라드 you're the sunshine of my life 가수 ,박진영이 kiss me 에서 샘플링으로 사용한 funk 의 고전 superstition, 조지 마이클이 엘튼 존과 듀엣으로 멋지게 리메이크해서 부른 Believe (When I Fall In Love It Will Be Forever,,,) 또 너무나 멜로디가 아름다운 팝 발라드의 진수를 보여주는 'You and I' 등등 ,이 앨범 한 장만 가지고있어도 흑인 음악의 보고를 만난 듯 그냥 흐뭇해지는 스티비 원더의 대표작 중에 대표작이라 할 수 있겠다.
뒤이어 발표된 "Innervision" (2) 이 앨범 역시 그해의 그래미 앨범상으로 뽑혔고 많은 싱글들이 컷트되어 히트를 기록했는데 스티비 원더의 강한 사회 비판 의식이 담긴 living for the city 비롯하여 이젠 록 밴드들까지 연주하는 higher ground 는 인종을 뛰어넘는 고전이 되었다, 이 앨범의 특징이라면 전작 앨범보다 한층 더 음악적인면에서 성숙됨을 보여주었고 스티비 원더가 정신적으로 성숙해짐에 따라서 음악으로 사회 비판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사회 참여 운동 의지를 강하게 어필했다는점이다, 그리고 또 이 앨범에서 높이살 만한 것은 음악적인 면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연주력이 매우 정교하며 funk음악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인데,마치 funk 음악을 하려면 이 앨범을꼭 들어야만하는 funk 의 교과서와도 같은 작품이다.
1974년에 발표된 "Fulfillingness First Finale" (3) 또한 그해의 그래미 앨범상을 3년 연속으로 휩쓰는 기념을 토하는데 얼마나 그당시 스티비원더의 창작열이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이 앨범에서도 몇몇의 좋은 곡들을 히트 시켰지만 스티비 원더의 대표곡과도같은 중요한 곡들을 살펴보면 72년에 발표됐던 talking book 에 수록된 사랑의 발라드 'You and I' 와 쌍벽을 이루는 잔잔한 피아노 연주에 아름다운 R & B 멜로디가 흘러 넘치는 'Too Shy To Say' 와 조지 마이클도 그의 앨범 'listen without prejudice'에서 리메이크해서 재수록한 'They Won't Go When I Go' 는 흑인 노예들의 고톨을 노래한듯한 영가적인 분위기를 품기고 Boogie On Reggae Woman 에서는 레게 리듬을 차용해서 약간 변형된 리듬을 들려주는데 이는 그의 음악적 탐구심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알 수 있다.
1976년에 "Songs In The Key Of Life" (4) 앨범이 2장짜리로 발표되는데 이 앨범에서 그의 모든 음악적 역량이 집약적으로 함축되어 그의 최고 전성기의 음악적 성숙도를 보여준다, 앨범 크기나 수록곡들의 장르적 다양성 참여한 많은 수퍼급 아티스트와 세션 연주자들 레코딩에 투자된 자본등 그야말로 헐리우드 블럭버스터 영화같은 팝역사에 기록될만한 앨범이라 생각된다, 수록곡들을 면밀이 살펴보면 갱스터 가수 쿨리오가 gangster's paradise에서 샘플로 채용한 ,,Pastime Paradis,,,,곡과 윌 스미스도 wild wild west 에서 샘플링으로 차용했던 ,i wish 이런 면만봐도 후배 음악인들이 얼마나 스티비 원더에서 음악적 영향을 받았는지 알수있다, 조지 마이클도 꾸준히 스티바 원더곡을 리메이크하는데 as 라는 곡을 리메이크해서 자신의 베스트 음반에 수록하기도해 스티비 원더에 대한 경의로움을 표시하기도했다, 그리고 라디오에서 종종 흘러나오는 그래서 우리귀에 친숙한 sir Duke 곡도 이 앨범에 수록되있고 그 외에도 여자 가수와 듀엣으로 부른곡과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분위기를 표현한곡등등 너무나 다양하고 사랑스런 곡들로 채워진 앨범이다,
이상 스티비 원더의 4대 명반을 살펴보았다. 스티비 원더는 Songs In The Key Of Life 앨범을 끝으로 그 이후에는 종종 히트곡들을 만들어 내지만 그의 음악적 전성기에 버금갈만한 훌륭한 앨범들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는 5살이 될 무렵에 이미 몇 갖가지 악기들을 다룰 수 있었으며, 9세가 되던 해인 1954년 봄에 탐라 레코드의 테스트에 합격하였고, 그 해 6월에 싱글 Mother, Thank You를 앙징스럽게 노래하며 데뷔하였다 이후 교과목 공부와 새로운 음악 세계에 몰입하며 4년여의 세월을 보낸 스티비 원더는 1963년 5월에 발표한 싱글 Fingertips로 차트를 석권하며 천재적인 소년 가수라는 극찬을 받았다. 1965년 후반에 발표한 싱글 Up Tight(Everythings Alright)로 화려한 재기를 한 그는 다음 해 7월에 밥 딜런의 Blowing In The WInd와 그해 10월에 A Place In The Sun 등을 히트시키며 인기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계속해서 1967년 3월 Travlin' Man과 6월에는 I Was Made To Love Her등의 싱글을 히트 시키며 팝 계의 무서운 아이로 성장한 그는 1968년 말의 For Once in My Life와 1969년 5월의 My Cherie Amour와 그 해 10월의 Yester Me, Yester You, Yesterday등을 대히트 시키며 70년대를 맞이했다.이때까지 그가 애정을 보인 리듬 dosd 블루스와 소울이 가미된 음악성에 70년대에 와서 팝과 록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러한 첫 번째 시도는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의 작품을 어렌지한 1970년의 싱글 We Can Work It Out에서 조심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이 노래의 히트에 힘입는 그는 1971년 5월에 전자 건반 악기를 대거 사용한 앨범Where I'm Coming From을 발표하였고 싱글 If You Really Love Me를 대히트 시키며 자신의 능력이 다양함을 과시했다. 이 무렵에 그는 자작곡 Never Had Dream Come True와 Singned, Sealed, Delievered I'm Yours등을 히트시키며 작곡가와 프로듀서로서도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기타, 베이스, 플롯, 섹소폰, 피아노, 키보드, 신디 사이저, 드럼 등 여러 형태의 악기들을 자유롭게 연주하였고 작품의 필요성에 따라서 그 악기들을 사용하기도 했다.1971년에 당시 소속사인 모타운의 동의를 얻어 자신의 출판사인 '블랙 불 뮤직'과 '토러스 프로덕션'을 설립한 그는 1972년 11월에 슈퍼 히트 앨범Talking Back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에서는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 I Believ, Superstition, Blame It On The Sun 등의 히트곡들이 쏟아져 나왔다. 뒤이어 발표된 앨범Innervisions는 Living For The City, Don't You Worry About A Thing, Higher Ground 등의 히트곡들이 탄생되었다.
1973년에 불의의 자동차 사고를 당한 그는 중태에 빠졌으나 매우 빠른 회복세를 보였고, 다음해에 앨범Fulfillingness First Finale을 발표하여 Boogie On, Reggae Woman을 대히트 시켰다.1976년에 Songs In The Key Of Life 2장짜리 앨범을 발표하는데 싱글 I Wish (76년 12월), Sir Duke(79년 11월) 등으로 70년대 동안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고 tv 다큐멘타리 사운드 트랙 journey through the secret life 앨범을 담당하기도한다,그는 Master Blaster를 노래해 1980년의 문을 열었다. 이 시기에 발표된 Happy Birthday는 위대한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날을 기리기 위한 노래인데 국내에서는 생일 축하곡으로 애청 되고 있다.1984년에 영화 '붉은 옷의 여인'의 트랙 앨범인The Woman In Red에서 커트 된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가 공전의 히트를 날렸다. 이 노래는 1985년에 발표되어 대히트한 Part Time Lover의 인기를 무색케 하며 현재에도 애청되고 있다.그는 1991년에도 영화 사운드트랙으로 재미를 보았는데, 스파이크 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정화 "정글 피버"의 트랙 앨범인 Music From The Movie Jungle "Jungle Fiver"로 차트의 중위권의 인기를 구가 하였다.
출처 - www.phono.co.kr
'내 그룹(동영상) >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Oh! Pretty Woman - Roy Orbison (0) | 2011.02.28 |
---|---|
[스크랩] ?Diana - Paul Anka (0) | 2011.02.28 |
[스크랩] Kiss and Say Goodbye / Manhattans (0) | 2011.02.28 |
[스크랩] Woman In Love / Barbra Streisand (0) | 2011.02.28 |
[스크랩] How Deep Is Your Love / BeeGees (0) | 2011.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