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제 딸이 척수종양에 걸렸다는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후 제 딸은 병원에서 종양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웃 할머니가 ○○센터에 가면 환자를 위해 안수기도를 해주는데, 효과가 좋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곳을 찾아가 안수기도를 청했습니다.
그런데 담당자는 제 딸의 상태를 보더니, “건물을 팔아서라도 헌금해라.”, “헌금하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고 재발한다.”며 수차례 헌금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저는 4억 원이라는 돈을 몇 차례에 나누어 헌금으로 지급했고, 그 때마다 딸의 안수기도가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딸의 병이 낫기는커녕, 몇 달이 지난 아직도 치유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안수기도를 받았지만, 계속 부족하다는 헌금 때문에 이젠 더 이상 기도도 받을 수 없을 듯합니다. 저는 단지 제 딸의 병을 치료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제가 너무 어리석은 판단을 한 걸까요? 그렇다면 이런 저를 어떤 누가 도와줄 수 있을까요?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 때 종교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이 사례 역시, 수술을 해도 나아지지 않은 딸을 살리고 싶은 부모님의 간절한 마음 때문에 생긴 일이었는데요. 헌금으로 전 재산을 쏟아 부은 딸의 부모님은 과연 재산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안수기도로 받은 고액헌금은 돌려줘야
이 사례는 지난 2월에 실제로 있었던 일을 재구성한 것인데요. 대법원은 이런 상황에서 딸을 살리고자 했던 부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안수기도와 헌금 수수의 액수가 종교행위의 한계를 넘었을 뿐만 아니라 딸이 병으로 죽을지도 모르는 부모님의 절박한 상황을 이용하여 고액을 취득한 행위가 불법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죠.
고법 "안수기도로 받은 고액 헌금 돌려주라" | 연합뉴스 2010. 2. 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3123946
이 사건에서 ○○센터 측에서 주장한 것은, '딸의 병이 낫자 헌금을 직접 낸 것이지 절대 먼저 내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는데요.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직접적으로 ‘헌금을 내라’고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헌금을 내지 않아서 딸의 병이 재발하고 있다.’, ‘헌금을 내야 딸이 빨리 낫는다.’라고 말했다면 헌금을 내지 않을 부모가 누가 있을까요? 재판부는 안수기도가 이루어질 당시의 분위기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센터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도를 넘은 안수기도, 피해자의 승낙이라고 볼 수 있을까?
PD수첩에나 나올 법 한 위험한 안수기도! 물론 좋은 취지로 안수기도를 하는 종교인도 많지만, 몇몇 나쁜 사람들 때문에 선량한 종교인들도 함께 피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지난 2006년, 어떤 종교단체에서는 어떤 젊은이의 정신병을 고치기 위한 안수기도를 하기 전, 실시 방법이나 안수기도에 따른 고통에 대한 설명도 미리 한 후 안수기도를 진행했는데요. 안수기도를 받은 피해자와 가족 역시 이 모든 것에 동의를 한 상태였고, ‘환자 입실경우 반드시 보호자와 동반해야 하며 환자에 대한 모든 책임은 보호자에게 있다’는 서약서에 서명까지 한 상태였습니다.
드디어 안수기도가 시작되었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피해자의 사지를 각각 다른 사람이 잡은 상태에서 단체장은 피해자의 눈 주위를 손가락으로 누르고 이마와 뺨을 치면서 오랜 시간 기도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정신병이 낫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의 신체에 상처가 더 생기기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피해자가 분명히 승낙을 한 상태에서 안수기도를 했을 경우, 안수기도를 한 이 단체에 죄를 물을 수 있을까요?
대법원은 사건에 대해서도 단체에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안수기도를 하면서 피고인이 행사한 유형력은 그 동기나 수단, 방법에 있어서 상당성이 인정돼 형법 제20조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형법
제20조(정당행위)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종교적 기도행위의 일환으로서 기도자의 기도에 의한 염원 내지 의사가 상대방에게 심리적 또는 영적으로 전달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인정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상대방의 신체의 일부에 가볍게 손을 얹거나 약간 누르면서 병의 치유를 간절히 기도하는 행위는 그 목적과 수단면에 있어서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지만,
그러한 종교적 기도행위를 마치 의료적으로 효과가 있는 치료행위인 양 내세워 환자를 끌어들인 다음, 통상의 일반적인 안수기도의 방식과 정도를 벗어나 환자의 신체에 비정상적이거나 과도한 유형력을 행사하고 신체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압하여 그 결과 환자의 신체에 상해까지 입힌 경우라면,
그러한 유형력의 행사가 비록 안수기도의 명목과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해도 사회상규상 용인되는 정당행위라고 볼 수 없음은 물론이고, 이를 치료행위로 오인한 피해자측의 승낙이 있었다 하여 달리 볼 수도 없다.”
(출처 : 대법원 2008.8.21. 선고 2008도2695 판결【상해·폭행】[공2008하,1310])
종합해 보면, 피해자의 승낙에 의한 것이라도 폭행에 의하여 사람의 신체에 해를 입히거나, 그로 인해 사망에까지 이르게 하는 행위는 윤리적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없고 또한 사회상규에 반하는 것이며, ‘피해자의 승낙’ 역시 사회상규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으므로 폭행치사죄가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나쁜 마음을 먹은 단체장들이 이 사실을 알고 절실한 사람들의 마음을 농락하는 행위를 멈춰 주었으면 좋겠네요!
선량한 목적의 안수기도! 더럽히는 사람이 없었으면
사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안수기도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영화 엑소시스트에서 나오는, 잡귀를 물리치기 위해 목사가 행하는 기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할 뿐이지요.^^;
알아보니, 안수기도는 ‘목사나 신부 등이 기도를 받는 사람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일’을 말한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안수기도는 축복과 신유, 은총과 새 능력을 받는 행위로 신앙 행위 중에서 흔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선량한 목적의 안수기도를 더럽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안수기도가 종교적 기도행위의 하나로 좋은 취지에서 행해진다면 서로에게 좋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 안수기도를 하는 종교 단체장들 역시 ‘과격하지 않은’ 부드러운 안수기도의 방법을 찾는 게 과제가 아닐까 요? 안수기도의 효과로 병이 낫고, 장애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는 것 보다 내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종교 단체장들도 안수기도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시킬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치유를 간절히 기도하는 본래의 취지를 이어가 주길 바랍니다.
아직은 정직하고 훌륭한 종교인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본 기사는 ‘피해자가 승낙한 경우라도 사회상규에 반하는 행위를 행할 경우, 법에 의해 처벌 될 수 있다.’는 내용을 쉽게 풀어 쓴 글로써, 특정 종교나 종교단체를 비방할 목적이 전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 이윤희 기자
모든 일러스트 =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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