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1877년 독일 뷔르템베르크 출생
1890년 괴팅엔의 라틴어 학교 입학
1891년 마울브론 신학교 입학
1892년 작가가 되기 위해 신학교 자퇴
1902년 시집 <시모음(Gedichte)> 출간
1905년 <수레바퀴 밑에서> 출간
1911년 화가 한스 쉬틀제네거와 함께 인도 여행
1919년 에밀 싱크레어라는 이름으로 <데미안> 발표
1939년 2차 세계대전 발발. 나치의 탄압으로 작품들이 몰수되고 출판 금지됨.
1957년 <헤세 전집> 출간 1962년 뇌출혈로 사망
"견딜 수 없는 이 마음의 황폐로부터, 나는 지금껏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일로부터 탈출로를 발견했다.
물감과 페인트를 붓으로 칠하는 작업, 이 작업에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이 예술 작업을 통해 나는 커다란 위안을 받는다."
제1차 세계대전 후 40세가 되었던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헤르만 헤세는 그림 그리기에 푹 빠져들었다.
이 무렵 헤세는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헤세에게 이 우울로부터 탈출하게 해줄 그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림 그리기 작업은 그가 위기를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헤세는 무려 3,000여점의 수채화를 남겼다.
그는 여러 화가와 교류를 하며 그림을 그렸고 자연의 풍경을 그림속에 남겼다.
그는 풍경화뿐만 아니라 자화상도 시도했다. 더 나아가서 자신의 글과 그림이 함께 담겨있는 삽화집도 출판했다.
"나와 나의 작은 수채화 물감들은 시와 먼 기억들, 내가 그렸던 꿈들을 그린다.
나는 여전히 내가 그림에 있어서 단순한 아마추어임을 잊지 않고 있다.
나는 글을 쓸때 펜으로, 그림을 그릴때 붓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 순간 내 마음은 따뜻해진다. 그 순간 나는 즐거움으로 견딜 수 없게 된다."
헤세의 첫번째 전시회는 1920년에 열렸다. 헤세는 1921년과 1922년에 연이어 전시회를 열었다.
이어 그의 시와 그림이 담긴 삽화집과 동화같은 책을 연이어 출판한다.
1955년에는 헤세의 수채화가 그려진 예술 우편엽서가 시중에서 사용된다.
헤세의 사후 그의 수채화 그림들은 도쿄를 비롯한 뉴욕과 몬트리올, 파리,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스페인 마드리드, 함부르크, 삿포로등에서 전시된다.
"나는 단순한 풍경화를 그리고 있으며 내가 그 풍경들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내가 보는 풍경들은 아름답다.
하늘과 동물들, 사람과 그들의 인생들, 내가 본 풍경들은 아름답고 나는 그 풍경의 위엄에 압도된다.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내가 쓰는 문학도 한단계 발전되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 뿐만 아니라 내 마음의 깊이도 깊어짐을 내가 예술을 보는 안목도 깊어짐을 알 수 있다.
나의 글과 나의 그림이 바라보는 저 목표 지점에 강렬한 잠재성이 이를 그 지점에 절대적이며 숭고한 가치가 있다.
그림 그리기 없이, 나는 지금의 작가가 될 수 없었다."
풍부한 색채를 밝고 따뜻하게 자유롭게 표현한 헤세의 그림들은 마치 폴 세잔의 풍경화들을 보는 듯한 감성을 전해준다.
그의 그림속에서 헤세가 194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 까지 발전한 헤세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작가이자 화가였던 헤세는 그림그리기를 통해 자신의 문학 세계도 발전했으며
자신의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몇 손가락안에 드는 근,현대 작가인 헤세의 소설 작품들은 전 세계에 6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그의 작품은 1960년대 이후의 미국과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헤세의 작품은 특히 어느 시대에나
어느 국가에서나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나는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어떤 작업을 할때 긴장과 집중감을 느낀다.
글을 쓸때도 느끼는 그 긴장감과 집중감은 그림 그리기를 하면서도 발견된다.
적당히 그리고 주의깊게 색채와 그 색채와 연결된 다른 색채를 발견하고
그 다음 그 색채를 칠하는 작업은 즐거운 일이다."
꿈을 그렸던 헤세는 어릴때부터 시인이 되기를 항상 원했다.
40세가 되어서 그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고 스위스의 한 전원마을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몇가지 꿈을 꾸었고 그 꿈들을 그림으로서 표현했다.
평생 내면의 언어와 내면의 영원한 세계를 문학으로서 표현했던 헤세는
그의 철학과도 닮은 그림 그리기 작업을 통해 그 자신의 삶을 이겨냈다.
"나무들은 사람처럼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웃음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춤추기도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나의 삶들이 때때로 운명처럼 전설처럼 내 앞에 정확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세계가 이 세계 바깥의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느낀다.
그리고 내가 나의 내면의 세계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때면 그 사실들은 한결 더 다가온다."
헤세의 그림들은 대체로 따뜻한 동화책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색채는 대개 따뜻하면서도 온화하다.
그의 그림들은 대부분 풍경화이며 그가 그림을 그린 장소는 마을의 절벽 근처에서
그리고 꽤 고딕스런 분위기가 있는 분위기 있는 좁고 오래된 탑이었다.
헤세는 85세의 나이가 되기 까지 3,000여점의 수채화를 그렸고 35,000여편이 넘는 글들을 남겼다.
"나는 그림을 그릴때면 미소를 짓는다.
나는 매일 똑바로 서서 몇 시간동안이나 테라스에 앉아서 정원에 앉아서 작은 탑 안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나도 놀랄만큼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연필과 펜을 가지고 저녁 산의 먼 투명한 색채를 그리며 그것에 깃든 그림자를 스케치한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피곤하다. 매우 피곤하다.
그리고 내가 낮에 그렸던 그림들을 저녁에 살펴 볼때면 내가 보았던 그 많던 아름다운 풍경을
내가 얼마나 그림속에 그려냈는지 살펴 보고 나면 나는 조금 슬픈 기분에 젖는다.
나는 그림을 통해 자연의 무결함, 자연의 순수함, 자연의 청순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려운 삶속에서도 우리들의 믿음과 자유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헤세가 그림을 그릴 때
그는 마치 빈센트 반 고흐처럼 물감과 캔버스를 들고 노란 밀짚모자를 쓰고 낭만스런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그림을 그렸다. 헤세의 그림들은 독일 표현주의 그림들을 닮아 있으며 그의 굵직한 선들은 야수파의 그림들을 닮아 있다.
그리고 그가 그린 색채들은 입체주의 그림들을 닮아있다. 그의 그림들은 그가 문학작품에서 표현했던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의 조화를 나타낸 철학세계를 닮아있다. 가을 날 오후의 침묵과 고독의 세계,
그 나무들 헤세가 겪었을 마음의 감정들과 자연에서 받았던 자연에 대한 존중심이 그림속에서 나타난다.
헤세는 그림 그리기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받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며
그의 글쓰기 작업을 발전 시킬 수 있는 마음의 감수성을 발견했다.
헤세는 그림 그리기 작업을 통해 마음의 깊이와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마음의 인식을 높혔다.
헤세는 글 쓰기와 그림 그리기가 하나로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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