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는 그 곳'을 부를 때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다양하다. 초기에 어떤 친구들은 나에게 이 노래를 쓸 때 혹시 내가 연애를 하고
있었느냐고 물은 지체들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내가 깊은 주님의 임재 가운데 영감을 받아서
이 노래를 썼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정말 신기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이 노래를 썼을 때 등대선교회를 작게 시작하고 있었고,
그 당시에 (아마도 2001년도였던 것 같다) 그저 낮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낮은 생활'이라는 것은 그냥 하나님의 비전 앞에 순종하여
낮아질 데로 낮아진 가난한 생활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는 대청역에 오피스텔을 얻어서 그 곳에서 내 주변에 있었던
청년들을 사랑하고 양육할 수 있는 내가 아는 방식대로 그들을 섬기며
그냥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음반을 내는 것에 대한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대부분의 노래들은 영어로 되어 있어서 한국에서
음반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은 나의 사역의 대상이 한국인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앞에 40일 아침 금식을 작정하고 새 노래를 위해서
아침 금식을 하고 있었다.
이 40일 기간동안에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노래들이 바로
'복음을 살자' '마지막 때에' 그리고 '내가 꿈꾸는 그 곳'이다.
하루는 지하철을 타고 등대선교회 사무실로 오고 있는데,
그냥 지하철 안에서 내 수첩을 꺼내서 내가 꿈꾸는 그 곳의
가사를 적기 시작했다. 특별한 계시나 어떤 영감이 있었다기 보다
그냥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쓴 것이 바로 내가 꿈꾸는 그 곳의 후렴 부분이다.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구절들을 마저 쓴 것이다.
나는 이 노래를 썼을 때 이 노래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금식 가운데 주신 곡이기는 하지만, 이 노래는 그냥 자연스러운
나의 표현이었기 때문에 그리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작은 소그룹으로 예배할 때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등대공동체에서 함께 예배할 때 이 노래를 부를 때
종종 누군가가 매우 크게 통곡하며 우는 것이었다.
꼭 한 두사람씩 이 노래에 깊은 영혼의 절규같은 울음으로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몇 번 일어난 이후에 나는 영혼들 안에
주님을 사랑하고픈 간절한 마음들이 숨겨져 있다가
이 곡을 부를 때 그 마음들이 자유함을 얻어서
그들의 영혼 깊은 곳에서 반응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나에게도 이 곡이 간절한 신앙의 고백이 되었고,
주님과의 친밀함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며 묵상할 때 부르곤 한다.
[배송희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