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진화론이 어떤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태어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대적하였는지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를 위해 창조과학이 어떻게 쓰임 받고 있는 지를 첫 번째 강좌에서 소개하였다. “창조과학에 대한 소개 II” 에서는 진화론이 교회와 신학에 준 부정적인 영향과 교회 및 사회 교육에서의 창조과학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드리겠다.
본론
1. 신학의 변화 - 자유주의 신학의 대두와 영향
1) 진화론의 거짓 증거들
학문의 여왕이라는 신학도 진화론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게 되었다. 왜냐하면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성경에서 주장하는 하나님의 창조는 거짓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가설에 불과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화의 증거가 있다고 믿게 된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다. 지금은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자바인, 필트타운인 등은 진화의 결정적인 증거로 여겨졌다. 자바인은 원숭이의 두개골 일부와 사람의 다리뼈 일부를 가지고 주장한 것인데, 15m 떨어져 있는 두 뼈가 한 개체라는 주장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고, 이것을 발견한 듀보아가 같은 지층에 있던 사람의 머리뼈는 감추고 거짓말을 하여 인류와 원숭이의 중간단계인 원인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지금은 진화론자들은 자바인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그때 당시의 학자들도 많이 의심했지만, 대중들에게는 결정적인 증거로 비춰졌다. 필트타운인은 더 심한 거짓 주장이었다. 이것은 과학적 사기인데, 사람의 두개골에 원숭이의 턱뼈를 교묘하게 붙인 것이었다. 필트타운인에 대하여 수많은 박사 논문들이 나왔고,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진화되는 결정적 증거로 50년 동안 인정받았었다. 후에 이 뼈들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조사하다가, 이 뼈들이 불과 몇 십 년밖에 안된 뼈라는 것이 드러났고, 더 자세히 조사하면서 가짜로 사람의 머리뼈와 원숭이 턱뼈를 붙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은 진화론이 전혀 증거가 없는 가설에 불과하며, 또한 과학적으로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비교적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자바인이나 필트타운인과 같은 가짜 때문에 진화론이 과학적 진실인 것처럼 인정받는 세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신학자들은 과학적 사실인 진화론과 성경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 지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고, 이것이 더 나아가 유신론적 진화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즉 진화는 사실이고, 하나님이 진화의 과정을 통해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진화론 자체가 하나님을 부인하는 물질주의적 사상인데, 거기에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을 붙인 것은 진화론자들도 비웃을 일이고, 성경말씀과도 맞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유신론적 진화론은 거짓된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창조하신 진리의 말씀을 왜곡시키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2)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
르네상스 이후 과학이 하나님을 대신하고, 인간 이성이 최고의 가치로 군림하게 되자, 인본주의적 세상에서 성경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석하기 시작한 것이 자유주의 신학이다. 처음부터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성경말씀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고대 자료로 보는 문서 비평적인 학문이 발전되었고, 신학교에서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기보다는 하나의 자료로서 취급하게 되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신학교는 자유주의 신학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영향력이 크다. 우리나라의 많은 목사님들도 자유주의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신 분들이 많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성경을 그대로 진리의 말씀이라고 믿는 목회자가 50%도 안 된다는 놀라운 이야기도 있다. 이런 상황은 인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당연시 되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놀라운 부흥이 이 당시에 있었고, 자유주의 신학을 배운 목사님들이 목회를 하면서 많은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르네상스 이후 극단적인 자유주의 신학, 이에 대항하여 나온 근본주의 신학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극단적인 형태는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인간 지식이 우월하다는, 즉 과학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 그리고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이라는 믿음은 아직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자유주의 신학이 보편화됨에 따라, 성경이 증거하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약화되기 시작했다. 목사님들은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내용에 대하여 설교하는 것을 피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진화론이라는 과학과 맞지 않는 하나님의 창조를 주장하기 어렵고, 신학교에서도 유신론적 진화론을 배운 목사님들이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할 뿐 아니라, 기적도 부인한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홍해가 갈라지는 하나님의 역사도 갈대밭을 그냥 걸어간 것이었다고 해석한다. 물론 갈대밭에 왜 이집트 군사들이 빠져 죽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하지만.... 또한 예수님의 부활도 부인한다. 예수님이 실제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신앙이 회복된 것을 의미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결국 자유주의 신학은 처음에는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고, 다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도 부인하는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 신학과 인본주의 영향으로 성경말씀과 과학이 충돌된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쉽게 성경말씀보다는 과학을 믿고, 성경말씀은 무시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흔히 드는 예가 갈릴레오에 대한 종교재판을 들고 있다. 과학적인 사실인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를 기독교가 억압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과학에 대하여 기독교가 왈가불가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한다.
이것은 사실에 대한 두 가지 오해가 있다. 첫째는 그 당시의 가톨릭 종교 지도자들이 지동설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취한 것은 사실이지만, 천동설은 그리스 시대부터 내려오던 지식이었을 뿐이다. 성경말씀에 근거해서 천동설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 둘째로 종교지도자들이 지동설을 억압한 것은 성경 때문이 아니라, 이때 당시 종교재판을 주도한 사람들은 성직자인 동시에 과학자들이었기 때문에 억압한 것이었다. 그때까지 자신들이 알고 있던 과학적 사실과 지동설이 배치되기 때문에 종교적 권위를 이용하여 억압한 것이다. 지금도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 과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는 기존의 기득권을 가진 과학자들에게 배척을 당하고, 억압당하는 유사한 과정을 겪고 있다.
창조과학자들이 진화론이 거짓되다는 주장에 대하여 일부 교회에서는 배척당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창조가 과학적으로도 모순이 없으며, 노아홍수 심판 때의 홍수에 의한 증거들이 많다는 창조과학 내용들이 일부 목사님들에게는 자신들이 배운 유신론적 진화론과 맞지 않아 당황하기도 한다. 또는 창조과학이 근본주의 신학에서 나온 잘못된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창조과학과 근본주의 신학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2. 근본주의 신학과 창조과학 운동
1) 근본주의 신학
근본주의 신학은 우리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한 신학이다. 그것은 근본주의 신학에서 나온 세대주의가 우리나라 신학계에서 이단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목사님들은 근본주의 신학이 우리나라에 정착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신학이 잘 발전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우리나라 배경에서 근본주의 신학은 성경말씀에 대한 지나친 집착, 잘못된 해석체계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근본주의 신학을 바라보는 눈이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 근본주의 신학은 제대로 소개되지도 않은 것이다.
근본주의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것이다. 성경말씀에 대하여 인간의 이성에 타협하여 해석하는 것에 대한 강한 반발이다. 그래서 근본주의 신학은 성경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매우 노력한다. 따라서 근본주의 신학의 내용 중에는 좀 지나치게 성경의 문화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미흡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근본주의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이 강력하게 대두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는 이해가 필요하고, 또한 좀 고지식해 보여도 성경말씀 중심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자세에 대하여 존중해야 할 것이다.
2) 창조과학 운동
창조과학 운동이 근본주의 신학의 배경에서 나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진화론이 성경의 창조주를 부인할 때, 동일하게 과학의 이름으로 창조주를 인정하는 운동이다. 성경말씀이 과학적인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창조과학 운동도 근본주의 신학처럼 성경해석에서 문화적 상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할 수 있으며, 과학적 해석이 잘못될 수도 있다. 성경에 대한 어떤 해석도 완전한 해석은 있을 수 없다. 성경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메시지를 모두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강조점이 달라질 때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양한 해석을 제공해준다. 또한 해석하는 사람의 제한점 때문에 성경은 항상 제한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창조과학은 과학적인 자료가 성경말씀과 모순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과학적인 자료를 통해 성경말씀대로 창조되었고, 대홍수의 심판이 있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성경말씀은 불변하지만, 과학적인 자료는 인간의 해석을 담고 있다. 따라서 창조과학의 내용은 과학의 발전과 새로운 시각에 따라 발전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오류가 있다면 수정될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깊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는 창조과학 사역자들이 이 시대의 레갑족속이라고 생각한다. 예레미야 시대에 레갑족속은 레갑의 아들 요나단이 포도주를 먹지 말라고 한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레갑족속의 우직함을 칭찬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 안타까워하셨다. 창조과학 사역자들은 성경말씀을 우직하게 믿고, 과학적인 증거들을 찾고 해석한다. 따라서 창조과학은 일반 과학에서 다루는 과학적인 내용을 사용하지만, 일반 과학과는 전혀 다르다. 일반 과학들은 관찰하고 실험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지만, 창조과학은 성경말씀을 기준으로 관찰하고 실험을 하며, 그 현상을 설명한다. 따라서 일반 과학자들 입장에서 창조과학자들은 잘못된 과학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관찰과 실험을 통해 결론을 내리기 전에 이미 성경을 통해 결론이 나와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창조과학은 과학 이전에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도구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적인 사실들을 억지로 성경말씀에 맞추려고 하거나, 무시해서도 안 된다. 많은 경우 성경과 과학이 갈등을 일으킬 때, 성경에 대한 더 깊은 해석이나, 과학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3. 창조과학에 대한 오해, 과학에 대한 오해
1) 창조과학에 대한 오해
창조과학에 대한 다른 측면의 오해가 있다. 창조과학을 통해 창조를 증명한다는 오해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창조는 인간의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과학은 진화될 수 없다는 명백한 증거들과 창조되었기 때문에 관찰될 수 있는 현상들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창조과학에서 다루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창조와 노아 홍수이다. 노아 홍수와 같은 격변에 대한 증거들은 매우 풍성하다. 그러나 그것도 진화론적 지층해석이나 연대가 틀렸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증거일 뿐, 노아 홍수 자체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노아 홍수와 같은 대격변이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뚜렷한 증거들이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뿐이다. 창조과학은 성경을 기초로 하고 있지, 창조과학이 성경말씀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것이다.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는 창조과학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일부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성경말씀을 믿음으로 믿으면 충분하지, 굳이 과학적 증거를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말씀을 믿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을 풀어서 해석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풀어서 해석해주셨고, 지금도 수많은 목사님들이 성경말씀을 풀어서 해석해서 말씀을 전하고 계신다. 창조과학은 단지 과학적 자료들을 사용한다는 독특함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창조과학 사역자들은 성경말씀에 대한 깊은 확신과 이해가 우선 있어야하고, 그 후에 과학 자료들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많은 경우 선배 창조과학자들이 잘 풀어서 해석한 것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 지식보다는 성경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창조과학 사역자들의 필수 요소인 것이다.
2) 과학에 대한 오해
창조과학자들이 성경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과학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모든 과학자들이 창조과학자들처럼 이미 마음속에 내린 결론을 가지고 관찰하고 실험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객관적인 사실만을 이야기하고, 과학자들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그 결과를 발표한다고 믿는 사람은 이제 없다. 과거에는 그렇다고 사람들이 믿었다. 그러나 모든 과학자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이 진화론적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피조세계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보지 못한다. 창조과학자들은 창조주를 믿기 때문에 그런 것이 너무 잘 보인다.
모든 과학자들은 그전에 이루어졌던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존하고 있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필트타운인을 생각해보라. 필트타운인에 대한 수많은 박사논문이 있을지라도 실제로 필트타운인이 거짓된 것에 불과한 것이 밝혀졌을 때, 그 모든 연구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이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주신 지성으로 많은 과학지식을 축적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해를 선인과 악인에게 모두 비춰주시듯, 하나님을 모르더라도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다.
과학이 아주 객관적이라는 오해와 더불어 과학은 진리라는 오해가 있다. 물론 어떤 과학적 사실들은 “법칙”이라고 불리는 변하지 않는 진리도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과학지식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한다. 요즘처럼 빨리 발전하는 세상에서는 1년만 지나가도 낡은 지식이 되고 말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마치 과학은 진리만을 이야기한다는 오해를 하고 있다. 과학은 제한된 것이다. 사람이 관찰하고 실험할 수 있는 것을 다루는 것이다. 따라서 관측이 불가능한 것은 과학의 영역에서 다루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다. 진화론은 과학적 방법으로 알 수 없는 기원에 관한 가설을 제시하고, 관찰할 수 없는 진화를 주장한다. 따라서 진화론은 신념에 불과한 것이다. 단지 하나님이 없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인간적인 신념인 것이다. 진화론의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굳게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은 기원에 대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따라서 과학은 기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과학은 알 수 없다. 우리는 믿지 않지만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였다고 한다. 이 세상과 우주는 엄청난 질서와 설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혜를 가진 전능자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주장에 반대할 근거는 없다.”
4. 창조과학 사역의 방향
1) 창조과학 교육 사역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잠 1:3). 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더라도 창조주 하나님을 모른다면 모래성에 쌓은 집과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초등, 중등, 고등학교 및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내용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에 대한 것은 없다. 도리어 진화론 교육을 통해 하나님이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종교라는 잘못된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창조과학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세상의 교육 현장에서 잘못된 진화론과 함께 창조론도 교육되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적어도 진화론의 잘못된 점은 교육되어야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진화론이 증거가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진화론 비판 교육은 반드시 제도적인 교육에서 이뤄져야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깊게 뿌리내리도록, 인본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특별히 교회학교에서 잘못된 진화론 교육의 영향으로부터 어린 학생들을 보호해야한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가장 근본이라는 것, 하나님은 창조주라시는 것에 대한 기초가 든든히 세워져야한다. 이런 의미에서 창조과학 사역은 소수 과학자들의 과학 연구 뿐 아니라, 창조과학 지식을 학생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교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선교사들의 경우도 선교현장에서 적용할 때 매우 큰 복음 전달의 수단이 되고 있어, 선교사들을 교육하는 사역도 더 확장되어야할 것이다.
2) 창조과학 연구 및 창조과학적 삶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예수님 안에서 회복되어야 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과학 사역자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명령이다. 이 땅 끝은 지리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정신적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구원의 감격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식도 변화시키고, 삶도 변화시켜, 자신의 삶 자체가 선교사로 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직업이 지식세계, 학문세계와 연관되어 있다면, 주변의 학자들을 변화시키고, 학문 자체를 변화시켜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는 사명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모든 분야, 모든 땅에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과학과 성경이 분리되어 있다는 이원론적 사고를 버리고, 과학이든 무엇이든 하나님의 통치 하에 있음을 선포해야한다. 해 아래 있는 어떤 것도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닌 것이 없고, 그분의 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없다. 따라서 창조과학 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과 연관된 지식들을 새롭게 할 수 있다. 창조과학은 지금까지의 지식과 삶을 창조주 하나님 중심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 하에 있음과 이 모든 것들을 노아 홍수 때처럼 심판하시고 새롭게 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사는 것이다.
어떤 과학자들은 창조과학자들만이 할 수 있는 연구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과학자들은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학문과 지식을 새롭게 할 수 있다. 진화론의 영향을 받지 않은 학문이 거의 없기 때문에 모든 지식이 창조주를 아는 지식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어떤 경우든지 자신의 삶의 영역을 하나님의 능력과 지식으로 새롭게 하는 것이다.
결론
창조과학 사역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께 그분의 창조하심을 인정하고, 그분께 영광을 올리는 것이다. 계시록에서 이십사 장로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유가 그분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계 4:11)”
하나님이 창조주라고 선포하는 것은 바로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그분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삶의 주인이 그분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잘 알게 되면,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죽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더욱 깨닫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