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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민감한 양심도 경쟁력이다. [조엘 오스틴]

에스더2381 2010. 5. 3. 12:07

 

 

   양심은 영혼의 나침반인 동시에 내면의 경보장치다.  우리가 옳지 않은 일을 하려고 할 때, 양심은 마음을 찌른다.  이 경고음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양심은 옳고 그름을 알려주는 인생 최고의 친구다.

   대화를 나누다가 분위기가 가열됐다고 하자.  슬슬 열이 받아 한마디 쏘아 붙이려는데 갑자기 내면에서 경고음이 울린다.  "화를 눌러.  입술을 꽉 깨물고 일단 밖으로 나가 마음을 가라앉혀.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면 안돼."

   이것은 가정을 지키려는 양심의 소리요,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다.  우리는 이 소리를 무시한 채 멋대로 행동할 때가 너무도 많다.  결국 대판 싸우고 나서 각방을 쓰고야 만다.  하지만 양심의 소리에 따라 아내에게 져주면 아침 식탁부터 달라진다. - 여성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

   민감한 양심을 길러야 한다.  양심이 그만두라고 할 때 그만두면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양심이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  늘 내면의 느낌을 살피고 양심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  - 

 

   우리 교회에서 잠시 계약직으로 일했던 피터라는 젊은이를 최근에 다시 만났는데 하마터면 얼굴을 못 알아볼 뻔했다.  눈 주위에서 시작하여 얼굴 전체에 검붉은 멍이 가득했고, 팔은 욱신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피터, 도대체 어찌된 일이에요?  무슨 일이 있었 던 거예요?

   "이틀 전 밤에 차량 강도를 만났어요."

   "뭐라고요?" 

    " 일을 마치고 집에 가던 중에 신호등 앞에서 멈췄거든요.  그때 강도들이 들이닥쳐 저를 차에서 끌어내렸어요.  지갑이 없다는 이유로 흠씬 두들겨 맞고 거기에 버려졌죠."

   "많이 놀라셨겠어요."

   "예. 그런데 희한한 사실은 그날 밤 웬지 그리로 가기 싫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피터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이 안에서 뭔가가 다른 길로 가라고 말했어요.  심지어 논쟁까지 벌어졌죠.  '늘 이길로 갔어.  가장 빠른 길이야.  왜 다른 길로 가야해?'  저는 그렇게 반박했어요."

   이 남자는 종교를 믿지 않으면서도 하나님 이야기를 꺼냈다.  "하나님이 저한테 경고하신 거예요.  저를 보호하시려는 것이었어요."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목사님, 그분이 시키시는 대로만 했더라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요."

   곤란한 상황에 빠지거나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 내면으로 경고음을 보내신다.  피터의 경우처럼 극적인 경고음은 아니더라고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이 안전하고 평안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우리는 내심 무엇을 해야 할지 알면서도 다른 행동을 선택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렇게 무시할 때마다

양심의 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간다.  급기야 양심의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막 무례한 말을 던지려는데 갑자기 내면에서 뭔가가 입을 막는다고 하자.  왠지 이 말을 해서는 안 될 것만 같다.  하지만 양심의 소리를 무시한 채 결국 무례한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면 곧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다시 돌아가 사과사지 않으면 다음 번에는 경고음이 처음만큼 크고 강하게 들리지 않는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양심이 완전히 마비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음성이 희미하게 들린다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양심이 썩을 대로 썩어 가책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라면 정말 큰 일이다.  우리는 양심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당신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도와주세요.  제 양심이 마비될 때까지 놔두지 마세요.  차갑게 굳은 가슴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멋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양심 불량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민감한 양심을 주세요."

 

          -  순종하면 양심이 민감해진다.  -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  하나님의 나지막한 음성 곧 양심의 소리를 따라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자신을 솔직히 돌아 보고 변화하겠다는 의지를 품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도와주신다.  몇 십 년 간 평범함의 굴레에 갇혀 사느니, 잠깐 변화의 고통을 감내하는 편이 훨씬 낫다.

   순종은 하면 할수록 쉬워진다.  순종이 순종을 낳는다.  반대로 불손종은 다시 불순종을 낳는다.  이렇게 우리 양심은 매일 민감해지거나 무뎌진다.  순종할 때마다 양심이 민감해진다.  순종하면 조금 더 빛으로 나아간다.  마음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반응 속도가 더 빨라진다.  나중에는 찜찜한 기분이 들자마자 곧바로 잘못을 바로잡는 경지에 이른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지다.  내면에서 나지막한 음성이 들리자마자 우리는 곧바로 행동을 취해야 한다.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 중 쌀쌀 맞기 그지 없던 녀석이 한 명 있었다.  상대방을 사정없이 깔아뭉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루는 친구들끼리 식사를 하러 갔는데 웨이터가 그만 이 친구의 음식을 잘못 주문해버렸다.  그러자 친구는 많은 사람 앞에서 웨이터에게 심한 면박을 주었다.

   기숙사로 돌아온 지 1 시간즘 지났을까.  이 친구가 내 방으로 찾아와 차를 빌려달라고 했다.  나는 키를 내주며 이유를 물었다.  

  "이 늦은 시간에 어딜 가려고?" 

"응 견딜 수가  없어서.  아까 내가 웨이터에게 심하게 굴었잖아.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아.  다시 가서 사과해야 겠어."

   그때부터 이 친구는 눈에 띄게 바뀌기 시작했다.  냉담하고 무례한 사람에서 친절한 사람으로 변해 갔다.  지금은 세상에 그렇게 사려 깊은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다.   우리도 하나님과 협력하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우리 모두는 실수를 저지른다.  문제는 실수를 한 다음이다.  "무례하게 대해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할 때 우리의 양심은 더욱 민감해진다.  깨끗하고 민감한 양심으로 살면 하나님이 끝없는 복을 부어주신다.  그러나 썩은 양심으로 살면 결국 자신만 손해다.  죄책감에 빠져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떳떳하게 기도 할 수도 없다.  복을 기대하지 않게 되며, 얻을 수도 없다.

   이때는 어서 올바른 길로 돌아오는 게 상책이다.  내 친구처럼 자존심을 접고 즉시 순종해야 한다.  상처를 준 사람에게 사과하고 나면 마음이 얼마나 가벼워지는지 모른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저 사람에게 못되게 군 저를 용서해주세요."

   회개하면 굳었던 양심이 풀어진다.  무거운 짐이 떨어져 나가고 단잠을 이룰 수 있다.  게다가 하나님이 다음 번에는 저 잘하게 도와 주신다.

   오래 전 어느 날 아버지가 예배를 마친 후 텔레비젼 방송 제작 현장에 찾아오셨다.  마침 그때 나는 함께 일하는 직원 대여섯 명과 모여 뭔가 우스운 이야기를 하며 키득 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 였는지 아버지는 우리가 예배 담당자 중 한 사람을 놀린다고 오해하셨다.

  원래 아버지는 더없이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분이셨지만, 이번에는 많이 화가 나셨는지 남을 놀리면 안 된다며 우리를 호되게 꾸중하셨다.  "아버지, 그런게 아니에요."   내가 아무리 말해도 아버지는 막무가내셨다.  아버지가 그러고 나가시자 우리는 기분이 꽤 언짢았다.

   그리고 그날 밤 집에 들어간 지 두어 시간쯤 지난 후 아버지가 내 방에 들어 오셨다.  "얘야, 할 얘기가 있단다.  아까 내가 너무 심했지?  미안하다.  오해였어.  애비를 용서해다오." 아버지는 내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이미 다른 직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사과하신 후였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아버지는 마음의 짐을 안고 잠자리에 들 수가 없으셨던 것이다.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다른 직원들도 그랬으리라.  아버지는 우리의 대장이셨지만, 겸손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셨다.  양심이 민감하다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그러니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을 어찌 귀하게 쓰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양심이 깨끗하면 행복해진다.  - 

 

   우리는 민감한 양심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밝혀주시는 최선의 길로 갈 수 있다.  마태복을 6장 22절에서는 눈이 몸(마음)의 등불이라고 말한다.  양심은 바로 우리의 "영적눈"이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눈이 밝으면, 온 몸이 밝을 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양심이 깨끗하면, 인생이 밝고 행복해진다.  긍정적인 비젼을 얻고 하나님의 복을 풍성히 누리게 된다.

   하지만 그 다음 구절은 오늘날의 세태를 말해 준다.  한 역본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양심이 어둠으로 가득 차 있으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지독하겠느냐."  많은 사람들이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가슴 한 구석에 답답함을 느끼며 행복을 맛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양심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고음을 넘 오래 무시해 온 까닭이다.  그들의 양심은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 있다.

   옳은 방향으로 돌아서지 않으면 굳은 양심은 녹아 내리지 않는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는가?  즉시 옳은 방향으로 돌아서야 한다.  꼴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는가?  잠시도 미루지 말고 어서 그 일을 해야 한다.  작은 문제라도 그냥 둬서는 안된다.  어떤 문제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즉시 순종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 무거운 짐이 떨어져 나간다.  나는 사도행전 23장에 실린 사도 바울의 고백을 참 좋아한다.  "나는 오늘까지 모든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살아 왔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내게 말한다.  "목사님은 이 부분이 부족해요. 저 부분이 문제예요>"

   나도 내가 완벽하지 않은 줄 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 양심이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다는 사실!  나는 그분을 기쁘시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밤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는 이유다.  이것이 내가 늘 웃음을 달고 사는 이유다.  민감한 양심으로 살면 날이 갈수록 더 좋은 인생이 펼쳐진다.

 

 

출처 : maranata37lily
글쓴이 : 샤론 victoria33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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