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에 연재되었었던 성경의 인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 본 "김영진" <성서원 회장>님의 글을 옮겼습니다.
![]() ![]() 솔로몬은 세상에 오기 전에 이미 축복의 사람으로 선별되었던 것을 보게 된다. 이 일에 대해 주석가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총애라기보다 그 어머니 밧세바의 영향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다. 첫째,어머니의 혈통을 소중히 여기는 모계 중심사회에서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이는 다윗이 밧세바를 더 사랑한 조건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둘째,하나님은 하나님의 일꾼을 뽑으실 때 그를 양육하고 지도할 양육자를 먼저 생각하신다는 점이다. 솔로몬의 양육이 밧세바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학문이나 예절이나 궁중 생활에 대한 적응은 궁궐에서 받는 교육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의 인성이나 대인관계나 처세나 하나님 중심의 사상은 가정교육을 통한 밧세바의 지도로 봐야 하겠다. 그러기에 솔로몬이 태어나기 전부터 솔로몬의 즉위나 사역이나 축복된 삶까지 하나님이 예언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현재나 미래를 동시에 보시기 때문에 솔로몬의 장래를 성경에 밝혀 놓으셨다. 한 개인의 사역과 삶은 그 본인과 부모와 가문과 그 시대와 관련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우리는 밧세바와 같이 내 자신과 가정과 현실에 꼭 필요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자. 솔로몬은 20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일천번제의 제사를 드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할 때에 “나는 작은아이”라고 자신을 낮추면서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하므로 하나님 마음에 맞았다고 칭찬 받았다. 또한 하나님은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과 함께 부와 영광까지 덤으로 주셨다. 솔로몬이 자신을 어린아이로 표현한 것이나 지혜를 구한 것이나 일천번제를 드린 것 모두가 하나님의 예언에 상응하는 훌륭한 태도였다. 이같은 솔로몬의 태도에 기뻐하셨을 하나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하나님은 사람을 선택하시지 그 마음까지 주장하시지는 않으신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생활을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솔로몬은 솔로몬대로 감격스러운 큰 제단을 가졌지만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 나라의 솔로몬 왕을 통해 천국에서도 잔치가 벌어졌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하나님의 선택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를 통해 이룩할 사역을 위해서도 복이요,하나님의 섭리를 성취하는 데에도 복이 된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솔로몬은 자기 이전에나 이후에 그와 같은 지혜나 축복을 받은 사람이 없었다. 모든 나라가 솔로몬의 번영을 부러워하였고 모든 군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려 하였다. 사람은 하나님께 선택받는 축복도 있어야 하지만 그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지혜와 덕을 갖추어야 한다.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자 일천번제를 드렸으며 성전을 7년 동안 완공하고 화목제로 소 2만 2천과 양 12만 마리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다. 이는 엄청난 제사로 다른 사람들이 따를 수 없는 헌물이었다. 이는 단순한 제물이기보다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이요 방법이었다. 제물을 통해 자기 과시나 환심을 생각했다면 제사의 제물 대신 잔치를 벌였을 것이다. 여기서 솔로몬이 지니고 있던 영적인 질서를 찾아볼 수 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는 말과 같이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솔로몬의 영감을 짐작할 수 있다. 솔로몬이 마음껏 하나님을 사랑한 것처럼 하나님도 솔로몬을 마음껏 사랑하였다. 이 본문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겠다. 하나님의 복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섬기자. 사역에 욕심을 부리기 전에 하나님이 맡기실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이기 때문에 의욕이나 사역의 목표나 축복의 내용을 제한하지 않으신다. 은사나 달란트는 그 개인의 특성이지 은사로 그 개인의 가능성까지 한정시키지는 않으신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과 같이 힘쓰고 노력하고 사모하는 자에게는 하나님도 아끼지 않으신다. 아들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이신데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않겠는가.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나 하나님의 복을 제한하지 말자.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식을 가질 때에 하나님의 임재를 구름이 성전에 가득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 성전에 “내 이름을 두고 내 눈동자를 두시겠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집’이요,‘만민의 기도하는 집’으로 확실하게 성별시키셨다. 이때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린 길고도 자상한 기도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대표적인 기도이다. “주의 백성이 범죄하고 주께로 돌아와서 이 전에서 간구하거든 죄를 사하시고 저희 죄로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을 때에도 이곳을 향하여 빌면 저희 기도를 들어주시라”고 기도하였다. “만일 온역이 생기고 깜부기가 나고 황충이 날 때에도 죄를 깨닫고 손을 펴 기도하거든 저희 죄를 사하시고 들어주시라고 간구하였다”“이방인이라도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들으시고 전쟁을 위해 성전 있는 편을 향하여 기도해도 들으시며 포로로 붙들려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해도 들어주시라고 간구하였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위해 최상의 정성을 쏟고 힘을 다해 건축하는 충성된 하나님의 종이었다. 이같은 정성과 충성된 마음에 못지 않는 그의 신앙이 우리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가 드린 세밀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따를 수 없을 만큼 대표적인 보고를 드린 점이다. 이러한 기도의 내용이 그의 신앙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솔로몬을 통해 빼놓을 수 없는 가슴아픈 가르침이 있다. 솔로몬도 나라의 번영과 세상의 영광과 금을 돌같이 흔하게 쓴 부요함에는 무너지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일만이천의 마병이나 일천사백이 넘는 병거나 국고성이나 병거성으로도 그의 불행을 막을 수 없었다. 후비와 빈장을 천명이나 거느린 솔로몬은 눈과 귀가 가려져 그의 생각과 뜻이 병들고 말았다. 이방 여인들을 통해 세워진 우상전각이나 우상숭배야말로 솔로몬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솔로몬은 출발도 잘했고 통치나 나라의 운영도 성공한 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왕에게 금한 말을 많이 두지 말고 아내를 많이 두지 말며 금을 많이 소유하지 말라는 말씀을 어기고 말았다. 결정적인 실수는 이방 여인들을 통해 하나님 신앙이 그에게서 떠나기 시작한 데 있었다. 요셉이나 다니엘과 같이 끝까지 성공한 사람으로 솔로몬이 남아주지 못한 점이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영적인 승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경건생활에 있다. 날마다의 규칙적인 경건훈련이야말로 그 개인을 살리는 첩경이다. 경건하게 살자. <솔로몬을 통해 얻는 교훈> 나라의 번영이나 개인의 성공이나 큰 축복은 반드시 허락한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이룩한 것이 아니라 내려주시고 맡기신 분이 계시다. 우리는 언제나 청지기로 자신의 위치를 밝혀야 한다. 주신 분의 뜻을 따라 선용할 때에 모든 축복은 그 가치를 드러낸다. 사람들은 자기의 능력으로 성공한 줄 알기 때문에 교만하여 실패한다. 항상 주신 분을 기억해야 하겠다. 솔로몬의 실패는 그 자신도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이는 그의 신앙과 그의 지혜를 보아 알 수 있다. 그러나 죄와 타락성은 그의 지혜까지도 빼앗아갔다. 또한 세상의 향락은 그의 신앙까지 침몰시켰다. 결국 거인이 여자와 향락으로 인해 불행한 사람으로 전락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경계심을 풀고 근신하는 마음을 버리면 누구나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깨어 있어야 한다. |
출처 : 임마누엘 카페
글쓴이 : 루디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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