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건국주역은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은 기독교였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일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를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대한민국의 건국은 특히 중요하다.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건국이 있었기에 훗날 산업화와 민주화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국기독교는 건국에 크게 공헌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초중고 역사 교과서에는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60주년이 지났지만 그에 대한 평가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광복 후 한국기독교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
우리의 3영수로 불렸던 이승만, 김구, 김규식,을 비롯해 민족 지도자 다수가 기독교와 관련을 맺고 있었다.
백범 김구,는 광복 후 민족의 당면과제로 건국과 교육건설을 제시하면서 “경찰서 열을 세우는 것보다 교회 하나 세우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한국기독교는 대한민국건국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했다.
건국헌법은 민주준의, 국민주권주의, 를 기초로 삼고 있다.
대다수의 민족 지도자들은 기독교를 통해 그러한 사상에 눈을 떴으며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등을 통해 그 꿈의 실현을 시도하기도 했다.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을 통해 더욱 구체화 되었고, 광복 후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으로 그대로 채택되었다. 대한민국 건국헌법이 그 정통성을 3.1운동과 임시정부에 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3.1운동을 계승하는데 가장 적극적인 그룹이 바로 한국기독교였다.
실제로 기독교는 3.1운동의 정당한 계승자였다. 민족 대표33명중 16명이 기독교지도자들이었다. 광복 후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적 이상에 기초한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거기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1. 기독교가 서구의 오랜 역사에서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민족의 역사에서 정신적 기반으로 실험되었던 불교와 유교가 실패했다는 점도 있었다.
2. 새로운 국가는 개인이나 사회나 도덕적으로 고상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은 기독교외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도덕성은 국가 건강의 척도와 직결되는데 기독교가 바로 그 비결이었다.
3. 기독교가 민주주의 이념을 가장 잘 대변한다는 점이었다. 기독교가 아니면 참된 자유 민주 평등의 정신을 구현 할 수 없다고 보았다.
민주주란 꽃은, 기독교 문화의 밭에서만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러한 시도들이 기독교의 국교 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국가건설이었다. 이는 초기부터 일관되게 견지해 왔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도 그 사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승만은 그것을 미국에서 몸소 체득해 새로운 건국의 좌표로 삼고자 했다. 이승만대통령이 공산주의에 대해 강력히 대항하여, 기독교 사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건국한 것은 역사상 높이 평가할일이다.
기독교의 반공주의도 그와 동일한 맥락이었다. 공산주의는 자유 민주주의로 가는 노정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공산주의 자체는 생산과 분배의 수단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포장에 불과했고,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은 정치체제였다. 공산주의는 일당 독제체제 였다.
숙청은 반대자들을 억압하고, 축출하는 최고의 무기였다.
공산주의에는 자유나 혹은 다른 다양성이 존재할 여백이 전혀 없었다. 광복 이념부터 기독교는 이러한 공산주의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로 출발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한국기독교는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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