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룹(동영상)/내동영상
[스크랩] 하와
에스더2381
2010. 3. 24. 18:13
국민일보에 연재되었었던 성경의 인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 본 "김영진" <성서원 회장>님의 글을 옮겼습니다.
![]() ![]() “아담이 꾐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꾐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딤전 2:14)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하와를 원망하는 기록이 없다.욥이 고난당하고 있을 때 찾아온 빌닷의 충고에서 여자를 비하하는 듯한 표현이 한번 나올 뿐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욥 25:4) 그러나 이는 ‘모든 사람’을 강조하여 표현한 말일 뿐이다.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와의 문제를 거론하신 적이 없다.그런데도 바울은 타락의 원인을 제공한 자로 하와를 지목한다.자신의 신념대로 잘못된 길을 가다가 회심한 바울은 하마터면 자신을 멸망에 빠뜨릴 뻔했던 죄의 근원을 따져 올라가다가 그 끝에서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를 발견하고 모든 문제가 거기서 비롯되었음을 깨달았던 것 같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고후 11:3) ‘이와’는 ‘하와’의 헬라어 형태다.어쨌든 뱀의 미혹을 당한 하와 때문에 바울은 여자들이 기도할 때에 머리에 무엇을 쓰라느니(고전 11:13)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이 좋다느니 까다로운 주문을 하고 있다.바울이 독신으로 살았으니 망정이지 사나운 아내라도 있었다면 그 얼굴을 할퀴어 놓았을지도 모른다.하와는 정말 그렇게 경솔하여 쉽게 잘못을 범하고 책망받아야 하는 존재였던 것일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실 때의 정경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하나님은 그녀를 흙으로 빚으시지 않고 아담의 가슴에서 취한 갈빗대 즉 더 나은 재료로 만드셨다.‘돕는 배필’의 돕는다는 말은 구해낸다는 뜻의 ‘에셀’이다.하나님은 아담을 그의 고독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여자를 만드셨다.그래서 여자는 호기심이 강하고 모험적이며 사랑스러운 존재로 창조되었고 눈부시게 아름다왔다. 하와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배필로 주시기 위해 손수 만드신 최고의 작품이었다.그녀가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웠을 것인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모험적이고 진취적인 그녀의 관심은 당연히 ‘모든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오직…’ 먹지 말라는 그 나무에 쏠리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벼르던 뱀이 미혹하기 좋은 상대는 아담이 아니라 모험적인 하와였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너희가 죽게 될 것이라고 하셨단다” 뱀이 기회를 놓지지 않고 결정타를 날렸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와의 호기심은 죽음보다도 강했다.그녀는 목숨을 걸고 금단의 경계를 넘어서기로 했던 것이다.불순종의 저편에 비록 고통과 죽음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미지의 세계를 기어코 열어보아야 하겠다는 욕망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그런 무서운 호기심을 그녀에게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다.하나님은 일이 그렇게 될 것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그리고 그 책임을 하나님이 지시기로 했던 것이다.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창 3:15) 그것은 여자를 미혹한 뱀에게 내린 저주였다.그리고 세상이 모두 죄악에 빠지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독생자를 여자의 아들로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달리게 함으로써 하나님 자신이 아픔을 당하고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자유의 대가를 치르신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금단의 실과를 나누어 먹고 에덴동산을 나온 하와는 그 후로 많은 슬픔과 고통을 겪었다.그녀의 첫 아들인 가인이 아우 아벨을 때려죽이는 최초의 살인을 목격했고 죽은 아들에 대한 애통과 죽인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그리고 그런 고통과 아픔은 그녀의 모든 자손들에게 유전되었다.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그녀에 대한 고마움보다 원망을 더 많이 하고 있다. 최후의 마지노선마저 돌파해버린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창조적 성품과 상상력으로 온갖 화려한 문화를 만들어내었다.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만들어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고 고통과 실패를 자초하기도 했으나 인간의 드라마는 그만큼 다채로웠다.르네상스 이후로 인류는 반역의 문화로 하나님을 대적했으나 그들이 없었다면 세상은 너무 적막했을지도 모른다.하와가 금단의 실과를 먹지 않았다면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나름대로 행복했을지 몰라도 모차르트나 셰익스피어는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하와에게 마음 먹은 것을 위해 목숨을 거는 진취적 성품을 주셨다.가나안 여자와 결혼한 아들이 장자권을 물려받지 못하게 목숨 걸고 저지했던 리브가의 결단과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의 탄생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마리아의 결단은 모두 그러한 하와의 성품에서 유래한 것이었다.하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여인이었고 우리 모두의 사랑스러운 어머니였다. 하와는 금단의 실과를 먹어 죽음을 초래했으나 성경은 그녀를 죽은 자의 어머니가 아닌 산 자의 어머니로 기록했다.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창 2:20) 김성일 <한세대교수> |
출처 : 임마누엘 카페
글쓴이 : 루디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