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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라
에스더2381
2010. 3. 24. 18:12
국민일보에 연재되었었던 성경의 인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 본 "김영진" <성서원 회장>님의 글을 옮겼습니다.
![]() ![]()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 1:2) 성경의 스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실패로 이어지는 ‘새드 무비’이다.아담과 하와는 금단의 실과를 먹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고 가인은 아벨을 죽여 살인자가 되었고 사람들은 죄악의 관영으로 큰 홍수의 비극을 겪었으며 바벨탑을 건설하다가 서로의 언어도 알아듣지 못하게 되는 슬픔을 당했다.이스라엘 백성은 400년의 노예 생활을 한 끝에 탈출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 새 나라를 건설했으나 분단의 비극을 겪었으며 결국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양쪽이 다 멸망했다.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고 그분의 부활을 믿으며 복음을 전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순교의 피를 뿌렸다.고난 끝에 로마 제국의 공인을 받은 기독교는 황제의 권력을 등에 업고 타락하기 시작하더니 르네상스의 물결에 떠밀려 큰 치욕을 당했다.다시 종교개혁으로 새 출발을 한 개신교도 한때 복음을 전파했던 강대국들의 타락과 횡포에 휩쓸려서 싸잡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지식인과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결국 타락한 인류의 역사가 큰 전쟁과 함께 멸망하여 종말을 맞게 되며 이어 심판의 날이 임하리라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 20:15)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인류 역사의 드라마는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고 우울한 실패의 이야기들로 이어지고 있다.그래서 성경에는 괴로워하고 슬퍼하여 우는 자는 많아도 웃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그런데 그 중에 크게 웃은 사람이 하나 등장하는데 바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그 사람이다.그녀도 실은 별로 평탄하거나 행복하게 살지 못했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든 인생을 살았다.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창 16:2) 사라가 남편에게 그렇게 권할 때 그녀의 나이는 75세였다.그 나이가 될 때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여 남편에게 다른 여인과 동침하여 자식을 낳으라고 권하는 아내의 마음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절한 것이었다.아브라함은 그 여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로부터 다시 14년의 세월이 지나 사라의 나이 89세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장막을 찾아오셨다.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0) 이미 경수가 끊어진 사라는 장막 문에서 그 음성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웃다가 하나님께 들켰다.하나님이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나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그 말씀을 듣고 사라가 당황하여 웃음을 감추며 변명했다.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셨던 것이다. “아니라,네가 웃었느니라.” 과연 그 이듬해에 사라는 아들을 낳았다.하나님은 그 아들의 이름을 미리 ‘이삭’이라고 지어주셨는데(창 17:19) 그것은 ‘웃음’이라는 뜻이었다.아브라함이 100세 되던 해에 이삭을 낳은 사라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창 21:6)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열살이나 연상인 그 남편을 주인이라 부르며(창 18:12) 인고의 삶을 살았으나 그 주관이 뚜렷하여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며 산 여인이었다.그는 자신의 소생이 없었으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극진하게 돌보았다.뿐만 아니라 자립한 롯이 북방의 군대에 납치되어 갔을 때 아브라함은 318명의 장정들을 이끌고 그들을 추격했는데 그들은 모두 집에서 길리운 자들이라고 되어 있다. “그 조카의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창 14:14) 그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집에서 길러낸 자들이었다.자식을 낳지 못한 사라는 그냥 신세 한탄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의지할 곳 없는 고아들을 데려다 보살피며 길렀는데 그 수가 점점 많아져서 무려 318명이나 되었던 것이다.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이 사실이 우리에게 감동적이라면 하나님도 역시 감동하시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긴 인고의 세월 끝에 크게 웃었던 사라의 웃음은 어둡고 우울한 성경의 기록을 대번에 밝고 활기찬 약속으로 뒤집어 놓는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에게 미리 ‘웃음’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그리고 그 이삭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했다.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눅 6:21) 김성일<한세대 교수> |
출처 : 임마누엘 카페
글쓴이 : 루디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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